과부마을 이야기 1
제임스 캐넌 지음, 이경아 옮김 / 뿔(웅진)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출판사 [뿔>. 마지막으로 책을 낸 것이 2012년. 그럼 일단 [뿔>이란 브랜드는 없어졌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근데 문제는 엘러스데어 그레이의 <라나크>, 도리스 레싱의 대표작 <황금 노트북> 같은 것도 함께 사라져버렸다는 것. 웅진지식하우스라는 브랜드는 왕성한 작업을 하고 있는 바, 이런 것들도 좀 다시 찍어주시라.


 

 위키피디아에서 작가 제임스 캐넌을 검색해보면, 1968년 콜롬비아에서 낳고(구체적 지명은 나오지 않는다) 자라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비리그 가운데 하나인 콜롬비아 대학에서 문예창작 MFA, 석사를 받았다고 한다. 2007년에 <과부마을 이야기 Tales from the Town of Widows>를 미국, 캐나다, 영국에서, 모국어인 스페인 언어가 아니라 영어로 발간했단다. 그러니 이 책을 러시아 문학 전공자 이경아가 번역했다는 걸 나처럼 의아해하지 않기 마시기 바람. 난 노문학자가 서문학 책을 번역한 걸로 단단히 착각하고 틀림없이 영어본의 중역 아니겠는가 짐작했었다.
 굳이 <과부마을 이야기>를 위키피디어까지 뒤져 검색해본 이유는, 책 뒤표지에 쓰인 찬사가 너무 과하다싶어서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콜롬비아 작가가 바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그이의 대표적 작품이 <백년의 고독>. 솔직하게 말하자면, <백년....>은 읽어본지 마치 백년은 된 거처럼 하도 오래 전이라 지금은 그냥 책에 대한 감정만 남아 있을 뿐이지만(여보 의사양반. 내 가슴에 심장이 어디 있는지 점 좀 찍어줘, 그러시지 않겠습니까요, 그래서 쇤네가 심장의 위치에서 1cm 옆에다 점을 찍어드렸습죠. 그랬더니 아니나 달라, 대령께서 거기다가 권총을 쏴버렸지 뭡니까요, 하는 장면은 아주 또렷하게 기억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반군들과 마르케스 특유의 환상적 리얼리즘, 내가 일컫기를 “아몰랑 주의” 작품의 특징을 흔히들 이야기하는 바, 그게 벌써 언제 적 환상적 리얼리즘이냐고. <백년...>이 1967년 아닌가 말이다. 1960년대 이후 라틴 아메리카 소설문학에서 무수하게 쏟아진 아몰랑 주의 작품 또는 아몰랑 형식을 무려 40년이 지난 2007년에 다시 또 써먹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닌 거 같다.
 1992년 11월, 심심산골의 외딴 마을 마르키타에서 사건은 벌어진다. 공산주의 반군이 마을에 쳐들어와 늘 하던 대로, 그게 다 산골마을의 불쌍한 인민들을 위해 투쟁하려고 하는 충정어린 행위인 것뿐인데, 투쟁도 뭘 먹어야 하니 산골마을 인민들이 먹을 걸 싹 공출해가고, 투쟁도 리비도가 너무 쌓이면 도무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라서 동네 아무 여자나 그냥 겁탈해버린다. 여기까진 늘 해오던 식이니 뭐 그런가보다 했다. 그러나 그날은 글쎄 거기다가 하나를 더 보태, 열세 살이 넘은 남자들까지 몽땅 혁명군으로 공출을 해버린 것. 당연히 게릴라 대원이 안 될 방법도 있긴 있다. 그들이 쏜 총알을 피하는 재주만 있으면. 그리하여 적지 않은 남자들이 총 맞아 죽고, 죽은 사람보다 월등히 많은 사내들은 울며불며 게릴라 대원의 임명장을 받아들었으며, 딱 한 명, 마을의 초등학교 교사 ‘앙헬 타마카’만이 공산주의 혁명의 완수를 위해 자진해서 게릴라 부대에 지원한다. 그리하여 마리키타에선 모랄레스 여사의 기지로 여자 옷을 입어 징집을 피할 수 있었던 십삼 세 훌리오 모랄레스를 포함한 어린 소년 네 명과 로마 가톨릭 신부 라파엘, 이렇게 다섯 명의 남자, 나머지는 전부 여자, 합해서 99명의 주민만 남아 외딴 산골에서 스스로의 삶을 살게 된다. 아, 두 명 더. 어느 깊은 밤, 혼자 떨어져 동네로 들어와 후임 초등학교 교사로 임용되는 세뇨리타 클레오틸테, 비극의 밤에 근동의 커피농장에서 일을 하던 청년 산티아고. 클레오틸테는 과거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을 당시 반정부군에 의하여 능욕을 당했던 적이 있어 극도로 남성을 혐오하는 자칭 숫처녀. 산티아고는 전형적인 동성애자로 여성의 역할을 하는 소위 바텀 전문. 여성의 리비도와 인류의 영속을 위한 측면에선 전혀 필요 없는 남성.
 여자들만 남아 있는 마을. 시기는 비록 20세기 말이었으나 콜롬비아 산골이라는 지역적 구속은 여성들로 하여금 어떠한 일도 스스로 결정해서 행동으로 쉽게 만들어가지 못했다. 비록 여러 가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줄 아는 비교적 현명한 여성 로살바 파티뇨가 남자가 없는 와중에 피해조사 차 방문한 공무원으로부터 치안판사로 임명을 받았다고 해도 말이다. 마을은 길거리마다 각종 쓰레기와 집 없는 개와 고양이로 넘쳐나고, 당연히 냄새가 코를 찌르는 불결한 환경에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인플루엔자의 습격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지긋지긋한 게릴라 부대의 공포와 가족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떠나버려, 더욱 황폐해져버린 상태.
 작가는 애초부터 로마 가톨릭하고 맺힌 것이 좀 많았던 모양이다. G.K. 체스터턴이 주인공으로 내세운 브라운 신부는 못생기고 머리 벗겨지고 배도 나와 겉으로 보기엔 참 인상 좋지 않은 인물을 엔간해선 악당으로 지목하지 않는 반면, 이 책의 작가 제임스 캐넌은 머리 벗겨지고, 배 나오고, 못생기기까지 한 라파엘 신부를 좌익과 우익 게릴라들보다 더 흉악한 악당으로 만들어버렸다.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종교, 종교라고 해야 콜롬비아에선 로마 가톨릭 말고는 없었으니 당연히 가톨릭이지만 하여간 종교를 배척하는 이유가 자연스럽게 등장하긴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너무 했음. 사제와 예수와, 하느님과, 천국과 지옥을 빙자한 이리 상태가 너무 적나라하다. 그렇게까지 했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데, 뭘 가지고 그러는지 궁금하시지?
 기어이 여자들만 남아 16년 동안 거의 완벽하게 외부와 격리된 생활을 하는 마을. 그들은 자연스럽게 공동체 사회를 만들고 자연과 비슷하게 변모할 수밖에 없는데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이게 책을 읽는 핵심인데 그걸 알려드릴 수는 없지. 책은 재미있어서 술술 읽히기는 한다. 또 잘 쓴 아롤랑 기법을 쓴 소설들이 그렇듯이 자연스럽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그건 지금이 1960년대가 아니라 21세기라서 그렇게 읽힐 수도 있는 것. 근데 나도 참 무식했던 것이, 콜롬비아의 내전은 20세기에 끝난 걸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 세상에 어렵게 사는 사람들한테 관심을 더 가져야겠다.
 그리고, 아직도 이런 장르의 작품을 ‘환상적 리얼리즘’이라 칭하는 독자들과 평론가들이 있을까? 난 솔직히 모르겠다. 정말 <과부들....>을 리얼리즘 문학으로 줄을 그어야 하는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