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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쿠스의 죽음 ㅣ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1
막스 갈로 지음, 이재형 옮김 / 예담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위키피디아를 보면 ‘막스 갈로’라는 사람은 어려서 이태리에서 이민 온 사람이라고 한다. 이태리 이민자가 프랑스에서 막강한 유명세를 탄 사람을 나는 한 명 더 안다. 이브 몽탕. 불세출의 선배 가수 에디트 피아프가 힘껏 밀어줘 유명세를 타고 스타가 된 다음에 입 싹 닦음. 몽탕은 나중에 정계에 입문하려다가 했나? 못 했나? 그건 기억나지 않는다. 반면에 막스 갈로는 이태리 출신 프랑스 인으로 국회의원도 하고, 장관 바로 아래 차관도 하고, 하여간 프랑스의 대표 지성으로 추앙받다 어? 바로 작년 2017년에 죽었단다. 원래는 공산주의자였다가 좀 온화한 사회주의자로 변신한 (남자의 변신도 무죄!) 사학자이자 소설가, 작가, 언론인, 정치가 등 이력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세계적 인물을 대상으로 소설을 쓴 이 양반의 작품으로 다섯 권짜리 <나폴레옹>도 있고, 프랑스 사회주의자 <장 조레스>도 있고,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도 있으며(이건 꼭 읽어봐야겠다), 내가 주시하고 있는 로마의 주요 인물 다섯 명에 관한 소설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시리즈도 있다. 번역물로 나온 역사책으론 <프랑스 대혁명> 정도.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시리즈의 첫 번째 인물이 스파르타쿠스. 원래 책의 제목도 그냥 <스파르타쿠스>인데 번역을 거치면서 <스파르타쿠스의 죽음>으로 꼬랑지가 붙었다. 작가 자신이 프랑스 사학계의 대표선수였던지라 영화나 드라마에서 필요 이상으로 영웅시되었던 한 인간의 면모를 찾아볼 수 있는 기회로 생각했다. EBS든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든가에서 스파르타쿠스 전쟁에 관해 다큐멘터리를 방송해준 기억이 나는데, 이태리 중남부에서 시작해 시칠리아와 실금 같은 해협 하나를 사이에 둔 레기움에 이르기까지 검투사 출신의 노예가 이끄는 반란군의 장정과 전술에 관해 참 재미있게 봤다. 책을 읽으니 당시 TV에서 본 반란군의 행적이 새삼스레 기억나는 거다. 아니면 기억은 무슨 개뿔 같은 기억, 그냥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마치 전에 TV에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을 수도 있었겠지. 하여간 그랬다.
물론 이 책은 최고의 사학자 겸 소설가가 쓴 ‘픽션’이라서 등장인물 전원이 실제 당시를 살고, 투쟁하고, 피살을 당하든지 남아서 동료들의 행적을 기술하든지 했던 것은 아니다. 갈로가 생각하기로는, 로마는 스파르타쿠스와 노예들의 반란에 관한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기를 바란 것 같다. 아니면 반란을 일으키긴 일으켰지만 그들이 얻은 건 잔인한 보복과 죽음뿐이었다는 단편적 사실 정도를 당대의 로마 시민이나 노예들이 알기 바랐을 거라고, 실제로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진압한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의 입을 통해 얘기하고 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잔인하기로 이에 비교할 수 없다고 책에서 강조하는 장군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가 아마 플루타르코스가 쓴 <영웅전>에도 나오는, 영웅 수준의 전략가일 걸? 시선을 스파르타쿠스, 노예 신분에서 스스로 해방을 시켜 자유를 위한 투쟁을 벌인 자들의 입장에서 서술했기 때문에 실제보다는 과하게 잔인한 인물로 묘사했을 수도 있겠다. 왜 이렇게 생각하느냐 하면, 그래도 영웅이라 후세의 역사가가 칭할 정도라면, 물론 책의 주인공 스파르타쿠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수많은 병사들을 한꺼번에 장악하는 매력을 동반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나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을 읽고, 정말 역사의 아이러니에 대해 경악을 했다. 흔히들 이야기하기를, 역사는 승자들의 것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역사는 기록한 자들의 것이다. 또 얘기하는 바, 페르시아와 그리스가 모두 아홉 번을 싸워 그 가운데 딱 세 번만 페르시아가 졌다. 근데 그리스에선 헤로도토스라는 특출한 역사가 또는 기록자가 있어서 그걸 <역사>라 제목을 붙여 그리스가 이긴 딱 세 번의 전쟁만 기술해놓았다. 결론은, 역사는 이긴 자가 아니라 기록한 자의 것이고, 기록을 유실하지 않고 보관해 성공적으로 후세에 전한 자들의 것이라는 진실. 중요한 건, 누군가가 끝까지 살아남아 투쟁의 전 과정을 기록하는 것. 이 책에서도 막스 갈로는 스파르타쿠스의 입을 통해 선언한다. “기록되는 사람은 죽지 않는 법이야.”
나는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에 매력을 느끼는 만큼 막강한 통일 진秦나라 군대의 말단 하사관 계급 진섭陳涉의 반란에 상당한 관심이 있다. 또 우리나라 역사에서 진정한 영웅은 스스로 밭을 갈고 똥지게를 날라야 했던 왜소한 체구의 잔반殘班 전봉준이라고 여긴다. 예속과 핍박과 노예상태 또는 노예상태에 준하는 착취에서 스스로 백성들을 규합하고 체제를 전복시키려했던 인물들. 이들의 공통점은 스스로 반란에 성공하여 권력을 탈취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겉으로는 몰라도 진심으로는 해보지 못했으면서도 거세게 저항했다는 점. 이들이 진정한 혁명가 아니었겠는가.
책은 생각만큼은 재미있지 않았다. 그건 정말로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생각해온 스파르타쿠스의 격랑과 폭풍과 투쟁은, 이제 다시 생각해보니, 삼국지연의에서 단칼에 목이 떨어지고 일마단기로 적진을 휩쓰는 무협지, 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긴박감 넘치게 보아온 드라마틱한 장면으로만 포장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막스 갈로라는 사학자는 결코 그렇게 쓰지 않았으며 그리 쓸 수도 없었겠지. 주어진 사료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보다 객관적인 한 노예출신의 영웅의 삶을 자신의 역사관에 맞게 서술해나갔겠지. 언제나 진짜 인간의 삶은 드라마나 영화, 무협지보다는 덜 드라마틱하니까 당연히 생각보다는 재미가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더욱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몇 달 후, 갈로의 두 번째 로마 인물 소설 <네로의 비밀>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