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시 페이션트 에디션 D(desire) 14
마이클 온다치 지음, 박현주 옮김 / 그책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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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히 내 사랑 줄리엣 비노쉬가 주인공 역을 한 영화를 생각하면서 읽은 책. 그러나 영화는 제쳐두자. 이 책을 다 읽으면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가 스리랑카 태생의 캐나다 시인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쏙 빼놓고, 유럽과 아메리카의 백인들 입맛에 맞게 얼마나 절묘하게 각색해버린 영화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자, 시작해보자.
 두 작은 그룹small groups이 작품을 만든다.


 첫째 그룹은 다리슬라우 드 알마시 백작을 중심으로 1930년경부터 카이로를 거점으로 북부 아프리카 사막지대를 탐험하던 몇 사람들. 알마시, 진지한 영국인 매독스, 훌륭한 식견을 갖고 있는 독일인 바그놀드. 재즈의 황금시대로 접어든 1936년, 여기에 새로이 백만장자이자 자신의 개인 항공기를 이용해 사진사를 겸하고자 하는 얼핏 보면 낭만주의자 비슷한 제프리 클리프턴이 신혼여행을 겸해 흉골상절흔이 특히 아름다운 아내 캐서린을 동반하여 카이로에 도착, 이들과 합류한다. (흉골상절흔, 책 전체에 특별한 매력으로 묘사된다. 양쪽 쇄골이 마주치는 곳 바로 위에 옴폭 파인 부분, 바로 거기다.) 이때부터 1939년까지의 모임.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할 즈음, 조국으로 돌아간 매독스는 앞으로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바그놀드, 알마시 등과 총구를 맞대야할 지도 모르는 운명에 처한 것을 비관하여, 목사가 침을 튀어가며 참전과 전쟁에서의 승리를 주장하는 붐비는 교회 안에서 자신의 심장을 향해 권총을 당겨 현장에서 즉사한다. 캐서린과 그녀보다 열다섯 살 많은 알마시 백작은 기묘하게 서로를 이끄는 공감으로 내연의 관계를 맺고, 영국인 사교집단의 속성상 벌써부터 이를 눈치 챈 거의 모든 인사들보다 훨씬 나중에 이걸 알게 된 성질 급한 제프리는 아내를 옆자리에 태우고 비행기를 몰아 자살비행에 나선다.


 다른 한 그룹은 온몸이 거미처럼 까맣게 타버린 한 화상환자. 비행기에서 탈출했으나 온몸이 불에 타고 있는 채로 사막 위에서 홀로 서 있는 것을 본 베두인에 의해 기적적으로 생명을 구한다. 비행기가 추락한 곳이 연합군 지역이었으며 환자가 비행기 조종사임이 확실하니 영국인으로 짐작하여 그냥 ‘영국인 환자’라고들 칭한다. 환자는 자신에 대한 모든 기억을 상실한 상태. 지금은 피렌체 북쪽에 있는 빌라 산 지롤라모의 옛 수도원 자리에 있는 야전병원에 유일한 환자로 캐나다 출신 간호사 해나의 집중치료를 받고 있다. 해나의 아버지는 용감하게 참전하여 전사해버리고, 해나는 새엄마 클라라만 캐나다에 남겨둔 채 간호사로 전쟁에 뛰어들어 이탈리아 전선에 영국인 환자와 둘이 남아 있는 상태. 그녀는 전쟁 중 전쟁의 비인간적, 야만적인 폭력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죽음 또는 전쟁에 외상을 입은 상태이지만 스스로는 확실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해나를 찾아온 아버지의 옛 친구. 자칭 도둑, 강도라지만 알고 보면 연합군 측 스파이. 이태리에서 연맹국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해 산 채로 양 손의 엄지손가락을 절단하는 고문을 받아 불구가 됐다. 시도 때도 없이 해나가 영국인 환자를 위해 가지고 있는 모르핀 주사를 훔쳐 해나와 환자 앞에서 노골적으로 주사를 맞고 행복해한다. 한 명 더. 조그만 몸집의 인도 시크교도 출신의 폭탄제거 전공 공병중위. 시크교도 가족의 둘째 아들로 원래는 첫째가 군인, 둘째는 의사, 셋째는 사업을 하는 가풍이지만 형은 백인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전쟁에 참가할 수 없다고 징집을 거부해서 감방에 들어가는 바람에 대신 전쟁에 참가하게 됐다. 죽을 확률이 매우 높은 폭탄제거 반에 소속되어 있으나 인도인 특유의 기계공학적 기질이 그로 하여금 폭탄 전문가가 되게 만든다. 젊은이로 다섯 살 어린 해나와 뜨겁지는 않고, 좋은 관계를 만들기도 한다.
 그래, 등장인물 소개면 뭐 스토리도 다 말한 것과 비슷하다. 더구나 영화도 있으니 스토리 소개를 빙자한 등장인물 소개로 독후감의 주요 부분인 ‘작품의 내용’은 이걸로 갈음한다.


 지금부터는 감상.
 작가가 실론, 그러니까 스리랑카 사람이다. 이이가 쓴 전쟁소설. 전쟁소설이랄 수 있지만, 사실은 전쟁 전과 후를 실제 무대로 전쟁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과 후유증에 대하여 신랄한 비판을 가하는 작품이라고 하면 더 좋겠다. 당연히 문학작품답게 여기에 연애담, 징글징글한, 그래서 아름다운 연애 이야기가 감미료로 들어가 더욱 윤기를 주고 있다.
 다시 한 번 언급하니, 작가가 인도 바로 아래의 섬나라 스리랑카 사람. 그는 자신의 분신, 또는 정말 전쟁에 참가했던 이웃 형이나 삼촌으로 폭탄제거 전공의 공병중위의 발언을 그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로 봐도 무방하다. 사실 책을 덮을 때쯤이면, 이 소설은 평소 별 말도 없고 사교성도 좋다고 할 수 없는 시크교도 공병중위가 구석에 조용히 앉아서 다른 이들이 하는 얘기를 모두 듣고 썼다는 걸 알게 되니, 내 의견이 그리 많이는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토론하거나 남을 공박하여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것에 상당히 소극적이다. 형은 백인들의 전쟁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교도소에까지 들어갔지만, 굳이 시끄럽게 나대기 싫어 그냥 신체검사를 받고 유럽행 배에 탑승해버리고 만다. 일정의 훈련을 받고나서도 온갖 백인들 틈새에서 떠들썩하니 섞여 있기가 싫어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공병에 지원해, 딱 두 명의 생존자 가운데 한 명이 된 인물. 주변에 이런 사람들 생각보다 많다.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 개중엔 이 청년처럼 똑똑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냥 어찌어찌하다가 유럽전선에 있게 되고, 어떻게 하다 보니 퇴각하는 독일군이 도시의 온갖 곳에 지뢰와 부비트랩을 설치해놓은 피렌체로 보내지고 거기서 또 지뢰가 한 가득 뿌려진 벌판 가운데 우뚝 선 빌라 산 지롤라모에 남게 된 것.
 그러나 이 청년이 1945년 8월, 전쟁의 막바지에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9월 2일에 있을 미주리 호 함상에서 항복문서에 조인할 일밖에 없는 상황에, 단파 수신용 헤드폰을 통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것을 알고는, 인간이라면 도저히 낼 수 없는 비명과 함께, 나름대로 사랑했던 해나를 두고 탈영을 감행, 조국으로 돌아가 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미국인이든 프랑스인이든, 난 아무런 상관 하지 않아요. 세계에서 피부가 갈색인 사람들에게 폭탄을 투하한다면, 영국인인 거죠. 벨기에의 레오폴드 왕이 있나 싶더니, 이제는 미국에 해리 트루먼이라는 빌어먹을 인간이 있는 거죠. 모두 그런 것을 영국인으로부터 배운 겁니다.’ (중략) 그는 젊은 군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백인 국가에는 그런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았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영국은 인도 군을, 프랑스는 알제리 군을 소집해 가장 험한 지역에 배치시킨다. 그건 나도 안다. 반면에 미국의 흑인에겐 무기도 지급하지 않고 태평양 전쟁에 필요한 짐꾼 정도의 노동력만 사용하는 하역병荷役兵으로 배치한다. 유럽에선 식민지 군대를 총알받이로 쓰고, 미군은 흑인들에게 총을 주면 그 총으로 백인들을 향해 난사할까봐 이런 코미디가 벌어진 것. 태평양 전쟁은 별개로 하고,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에 아무 관련이 없는 유색인종들을 불러다 희생시켜놓고 대량살상은 절대 백인끼리는 벌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어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이 책의 변할 수 없는 주제는 전쟁 후에도 이어지는 폭력 또는 후유증임이 확실하지만, 작가가 유독 강조하고 싶어 하는 이 장면에 대해서도 난 꼭 거론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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