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섹스를 한다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 자작나무 / 1996년 8월
평점 :
절판


 

책은 이렇게 생겼다.

 

 


 

 출판사 ‘자작나무’가 뽑은 것이 거의 확실한 제목, “미국은 섹스를 한다.” 아, 정말 마음에 안 든다. 넌 안 하고 사냐? 원 참. 원래 제목이 “Diana o la cazadora solitaria". 당연히 스페인 말을 모르니 구글 번역기 돌렸다. 그랬더니 이렇게 나온다. ”Diana or hunter lonesome". 우리말로 하면 “다이아나 또는 외로운 사냥꾼.” 이걸 뭐라? “미국은 섹스를 한다”? 그래서 책 좀 팔아먹었을까? 저번에도 이 출판사 한 번 얘기한 거 같은데, 마지막으로 책 낸 것이 1997년. 망하지 않았으면 다른 회사로 넘어갔다.
 세 번째 읽은 푸엔테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를 통해 아주 매력적인 환상소설 <아우라>를 읽고 나서 이런, 이런 작가를 아직도 몰랐다니, 감탄을 하고 곧바로 재미난 스릴러 <의지와 운명>을 거쳐 그의 이름이 머릿속에 콱 박히게 된다. 카를로스 푸엔테스. 만일 푸엔테스가 아니었다면 나는 결코 <미국은 섹스를 한다>라는 제목의 소설을 읽기는커녕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다음 페이지로 커서를 옮겼을 것이다. 다행히 패스하지 않고 읽어보니, 이 책도 대박!
 <미국은 섹스를 한다>. 한국어 제목이 너무 후져서 더 쓰기가 싫다. 앞으로 원 제목과 비슷한 <다이아나>라고 부르겠다. 카를로스 푸엔테스가 이 책을 쓴 시점이 위키피디어엔 1995년이라고 나온다. 그러면 이이의 나이 만 67세. 와우! 1995년에 1970년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말이지? <다이아나>는 1969년 12월 31일에서 1970년 1월 1일로 넘어가는 60년대 쫑파티를 무대로 작품을 시작한다. 1960년대. 미국에 국한한 1960년대를 말하자면, 마틴 루터 킹, 케네디,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말콤 X를 잡아먹었고, 닉슨과 레이건 같은 잔인한 계부들을 우상화시켜 놓았을 뿐만 아니라 한쪽 발은 달(하늘에 떠 있는 달, 또는 달과 사냥의 여신 디아나Diana?)에다 걸쳐놓고, 다른 발은 베트남의 정글에 걸쳐놓은 상태에서(여기까지는 책의 224쪽 구절을 조금 변경해 인용) 70년대로 넘어가고 있었다. 모든 미국인은 위대한 미국이 동남아시아의 키 작고 비쩍 마른, 거기다가 피부색도 황갈색인 인간들이 복닥거리는 가난한 나라 베트남에게, 위대한 미국의 군대가, 유사 이래 처음으로 얻어터질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으며, 그들의 군대의 최전선엔 백인이 아닌 흑인들과 중국인들(혹시 한국군 아니었을까?)을 세웠던 건 미군 작전장교 말고는 세상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1968년엔 전쟁에 반대하는 학생, 언론인, 시민이 펜타곤을 향해 전진하다가 헌병들이 휘두른 곤봉에 맞아 피떡이 되기도 했고, 같은 시기의 프랑스, 멕시코, 일본 기타 등등의 나라에서도 젊은이들은 자유의 기치를 높이 든 채 미국의 젊은이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얻어터지고 있었다. 물론 멕시코 같은 개발도상국에선 다른 나라들하고 조금 달리 박달나무 육모방망이 대신 기관총 세례를 받기도 했지만. 이런 60년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밤. 화자 ‘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지만 문학을 위한 기재임을 주장하면서 언제나 새로운 연인을 쫓아다니기에 바쁜 카를로스 푸엔테스가 아내와 함께 자리를 빛내주고 있었는데,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국의 여배우, (스페인 말고 멕시코에 있는)산티아고에서 서부영화를 촬영하고자 날아온 다이아나 소렌이 등장해버리는 거다. 직감적으로 남편새끼가 저년에게 넋이 나갔음을 알아챈 아내가 “너무 늦지 않게 오세요.” 먼저 자리를 피해줌으로 해서 ‘나’는 다이아나에게 접근했고, 다이아나가 묵고 있는 스위트룸을 방문했으며, 샹파뉴 한 잔을 마신 다음, 했다.
 이후 두 달 동안 다이아나와 푸엔테스가 벌이는 엽색행각. 그리고 이 책 <다이아나>를 쓴 1990년대 초반에 당시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책은 구성된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간단하겠다고 생각하시지? 천만의 말씀.
 조금 추운 기가 있는 깜깜한 밤. 미국 중서부 아이오와 주 제퍼슨빌의 원형극장에 달과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는 이렇게 속삭였다. 잠깐만 기다려. 응? 그래, 자 내 치마를 들어 올려봐. 아래를 부드럽게 만져줘. 이제 달이 뜨면, 너는 나의 처녀성을 빼앗아가는 거야. 그녀의 첫 경험은 다이아나에게 평생의 그림으로 박혀있으며, 수렵의 여신답게 세상의 많은 남자를 사냥하면서 언제나 처음, 달이 뜨기 시작할 때를 상상한다. 다이아나. 말 그대로 외로운 사냥꾼으로 인생을 살았던 것. 근데 이게 다? 한 번 더, 천만의 말씀. 다이아나가 ‘나’에게 바랐던 것은 작가 또는 교수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 작가 또는 교수는 자신의 법적 남편인 프랑스 사람 이반 그래배트에게서 너무 많이 봐왔고, 그래서 애당초 질린 상태. 그녀는 마치 앙드레 말로 같은 능동적 ‘진영’을 동경해왔던 것이었는데 ‘나’는 모든 것을 문학적 기재로만 관찰할 따름일 뿐이다. 그러니 속궁합이 아무리 좋을지언정 그게 오래 가겠느냔 말이지. 원래 잘 쓴 연애소설치고 관계가 행복하게 끝나는 거 별로 없다. 그러니 독자가 이해해야할 밖에.
 혹자는 주인공 ‘나’의 이름이 작가의 본명인 카를로스 푸엔테스인 것을 보고 이 책이 자기 이야기일 것이라 짐작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읽기엔 꼭 그렇게만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자기 얘기를 뼈대로 하겠으나 작가는 별로 길지 않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과 미국과 멕시코의 정치상황과, 문학에 관한 “진지한” 논의를 다 풀어내고 있는, 다분히 문화비평적 서술로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비록 책 속에 노골적인 성애 묘사가 몇 군데 있지만 그렇다고 한국어 제목을 <미국은 섹스를 한다>로 뽑는 거 자체가 야만스럽다. 원래 제목이 얼마나 좋으냐 말이지. <다이아나 또는 외로운 사냥꾼>. 책 좋아하시는 분들, 책 좀 읽어보려 하시는 분들에게 요새 말로 강추할 목록 속에 올려야할 재미난 소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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