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나의 아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7
아서 밀러 지음, 최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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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 전에 <세일즈맨의 죽음>을 정말 아무 감동 없이 읽었다. 왜냐하면, 그때 내 나이 너무 어려서 세상이 어떨 것이란 짐작도 못했던 시대였기 때문. 그러니 그게 제대로 읽혔겠는가. 생각해보면 나도 세상에다 대고 늘 엄살만 부리던 허약한 젊은이였다. 뭐 지금도 그리 나아진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세일즈맨의 죽음>은 조만간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세일즈맨....>을 다시 읽어볼까 마음먹게 만든 작품이 바로 <모두가 나의 아들>. 이 책을 읽고 얼른 밀러를 검색해서 이이가 공산주의자 아니었나, 확인해봤다.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자본의 톱니바퀴에 해체되는 가족과 개인이라고 할 수 있어서 검색해봤는데, ‘주의자’ 수준은 아니었다.
 총 세 막으로 구성된 희곡. 밀러 자신이 대공황 시절에 집안이 결딴이 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음식점 접시닦이부터 사환, 운전수 등 안 해 본 잡일이 없었고, 수없이 많은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미시간 대학을 졸업했다고 ‘두산백과’에 씌어있다. 그러니 공산주의자는 아니지만 자본이 인간에게 함부로 행패부리는 건 어려서부터 익히 알고 있었을 거다. 아니면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겠는가.
 1막에선 그냥 환갑이 지난 늙은 주인공 조/케이트 켈러 부부의 둘째 아들 래리가 2차 세계대전 중 버마 또는 중국 해안 근방에서 실종된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흐른다. 일요일의 평화로운 아침. 맏아들 크리스의 초대로 오랫동안 옆집에 살았던 디버 집안의 딸, 앤이 어제 도착해 이제 갓 일어나 식당에서 케이트 여사가 해준 밥을 먹고 있다. 뉴욕에 살고 있던 이 아가씨가 앞으로 사건이 벌어질 이 집에 왜 왔느냐 하면, 크리스가 자기 동생의 애인 앤과 결혼할 것임을 부모에게 통보할 예정이기 때문. 제목이 <모두가 나의 아들>이고, 전쟁 중 비행기 조종사였던 둘째 아들은 버마, 그러니까 미얀마 정글 상공에서 실종, 죽음 또는 전사가 아니라 ‘실종’된 상황이라, 일찍이 메릴린 로빈슨의 공감 가는 소설 <하우스 키핑>에서 봤듯이 사라진 가족을 기다리는 고통과 고독에 대한 작품일 것이라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밀러 또한 뛰어난 드라마 작가들이 늘 그렇듯이 시치미 뚝 떼고 독자(또는 관객)을 그쪽 방향으로 몰아간다. 둘째 래리가 틀림없이 살아있(다고 생각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어머니 케이트 여사는 결코 첫째 크리스와 앤의 결혼을 허락할 수 없는 것.
 여기에 켈러 가족과 조 켈러 씨가 운영하는 회사의 동업자이자 생산담당 부사장 정도였던 스티브 디버 씨의 가족 사이에 오래됐지만 짙은 안개 속에 묻혀있었던 사건이 틈입해온다.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켈러-디버 회사에서는 항공기 엔진의 헤드를 만들어 군납을 했었는데, 미국 조달청에서 30분마다 조금이라도 빨리 선적을 하라고 독촉전화를 해대고, 만일 납기를 조금이라도 맞추지 못하면 계약이 파기당할 수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 그만 엔진 헤드에 실금이 간 불량품을 만들어내고 만다. 언제나 건강체질이었던 조 켈러 사장이 하필이면 딱 하루 몸살이 나서 집에 몸져누웠던 날, 납기에 극도로 쫓기는 일이 벌어졌고 스티브 디버 씨는 워낙 새가슴에다가 강박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라 불량 엔진 헤드를 납품해버리고 만다. 그리고는 불량 엔진을 장착한 전투기 스물한 대가 공중에서 폭파되어 조종사 전부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져 디버 씨는 지금 교도소에 갇혀 있는 상태인 것.
 이런 상황.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대량주문을 받아 생산라인을 풀가동하며 주문량의 일부씩을 납품하고 있는데, 만일 한 번이라도 납기를 지키지 못하면 대량주문 자체를 취소하겠다고 하는 거. 이건 갑질이 아니라 계약에 의거한 정당한 요구다. 돈 많은 거대 회사가 하는 짓이라고 다 갑질은 아니다. 중소기업이 납기 안에 정상제품을 납품할 수 있다고 처음부터 약속을 해서 성립한 계약이다. 근데 눈앞에 납기일이 닥친 순간 불량제품이 쏟아졌다면? 게다가 대량주문 취소가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 치명상을 초래한다면? 당연히 회사 문을 닫아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일반 상식적 대답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디버 씨는 가족과 나의 복지를 위해 납품을 해버렸고, 그래서 스물한 명의 튼튼한 청년들이 이국의 하늘에서 폭발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사업하는 게 즐겁고 쉬울 거 같지? 천만의 말씀. 속 편한 건 역시 봉급쟁이다. 디버 씨 봐라. 자기는 진심으로 처자식의 복지와 잘 나가는 회사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불량품을 납품해 지금 교도소에 박혀 있지만, 자식들은 아버지가 너무 불명예스러워 면회는커녕 편지 한 장 써본 적이 없다. 하! 아빠가 날 위해 전투기에 들어갈 불량품을 납품했다고요? 뻔히 공중에서 폭발할 걸 다 알면서도. 그러고도 그게 나를 위해 저지른 거라고요? 내가 언제 회사 물려달라고 부탁한 적 있어요? 자식 키우는 거 다 이런 법이다. 고까워 말아라.
 그래서 이 드라마의 제목이 <모두가 나의 아들>이라?
 천만의 말씀. 난 지금 이 독후감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드라마의 진짜배기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다른 얘기들만 열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하여 진짜로 밀러의 <모두가 나의 아들>을 읽은 분들이 이 독후감을 본다면, 참 희한하게도 수박 겉만 핥는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근데 여기서 말아야지. 연극을 진짜 연극답게 만드는 마지막 반전의 순간을 확 밝혀버릴 용기까지는 다행스럽게 나는 가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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