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9
제임스 M. 케인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평점 :
음. 이런 내용인줄 몰랐다. 예전에 이리 노니는 골짜기, 포천군 이동면 낭유리에서 군역을 치룰 때 국내개봉을 해, 야한 영화라고 소문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못보고 그냥 지나갔는데 이제야 원작 소설로 읽었다. 뭐, 야하게 연출을 하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그렇게 만들 수 있겠지만 굳이 베드 씬을 강조할 필요까진 없을 듯.
언제나 길 위에 있어야 하는 팔자를 타고난 화자 ‘나’ 프랭크 체임버스. 초장부터 술에 잔뜩 취해 캘리포니아 로스 엔젤레스 근교를 달리는 건초트럭의 짐칸에 누워 정신없이 자다가 발목이 덮개 밖으로 비죽 튀어나오는 바람에 쫓겨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주머니에 땡전 한 푼 없이 길을 따라 무작정 걷다가 ‘쌍둥이 떡갈나무 선술집’ 영화에 자주 보다시피 펍pub 정도로 보이는 미국식 휴게소에 들어가 무전취식을 하고, 마음 좋은 그리스 이민자 닉 파파다키스의 호의로 점심도 얻어먹고 휴게소에서 취직도 하는 것이 첫째 장章. 총 열여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길지 않은 소설 가운데 1장을 읽으면서, 분명히 이 책은 로드 무비, 아니면 <길 위에서>를 쓴 잭 케루악 류의 비트 문학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케인이 이 책을 쓴 시기도 1934년의 미국. 어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말이지. 아, 뭐 그렇다고 꼭 집어서 <포스트맨은....>을 비트 문학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싶다. 소설 한 편 읽는데 그까짓 장르에 대한 잡소리는 안 해도 충분하니까.
실제로 등장인물 프랭크 체임버스는 팔자에 역마살이 끼어 늘 길 위에 있어야 편안함을 느끼는 인종 같아 보인다. 소설 속에서 형사에게 신문을 받을 때 보면, 정말로 프랭크는 미국의 거의 모든 도시를 다 섭렵했고, 거의 모든 도시에서 크고 작은 말썽을 피웠으며 사소하게 유치장이나 구치소를 들락거린 전력이 있다. 이런 인간이 한 장소에 머무는 경우는? 예, 맞습니다. 여자가 개입을 한 것. 그것도 프랭크의 관습을 초월한 자유분방함, 아니, 아무 생각 없이 일단 저질러버리는 배은망덕은 자신을 어여쁘게 여겨 음식과 일자리를 준 선술집의 주인 닉 파파다키스의 어린 아내 코라와 사랑의 화염을 활활 태워버리기에 이른다.
내용은 여기까지. 물론 다음 장면은 눈치 빠른 분들은 충분히 짐작하실 수 있을 터. 이 책이 나오기 67년 전인 1867년에 이와 비슷한 구도의 소설을 며칠 전에 소개한 적이 있다.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 여기서도 나이 많은 닉 파파다키스 씨와 그의 젊은 아내 코라. 부부 사이에 어느 날 불쑥 등장한 젊고 기운찬 남자 프랭크. 크! 감 확실하게 잡히실 듯. 맞다. 당신의 감이 맞다. 일은 그렇게 흘러간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아메리카 대륙의 서쪽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지는 건 20세기. 보다 적극적인 불륜과 범죄의 하모니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소설을 뭐라 해야 좋을까? 동시대를 누빈 알프레드 히치콕과 비견하는 고전적 범죄소설이라고 하면 어울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