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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총사 1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이규현 옮김 / 민음사 / 2011년 9월
평점 :
소설책 읽는 재미, 적어도 이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감히 누가 있어 알렉상드르 뒤마와 어깨를 견줄까. 아주 오랜 동안 읽고 싶었던 책인데 마음과는 달리 선뜻 책을 사게 되지 않아 자꾸 뒤로 미루기만 했던 소설. 당연히 소년시절부터 <삼총사>의 축약본, 만화책, 영화 같은 것들 숱하게 봐왔지만 정작 뒤마가 쓴 소설의 완역본은 처음 읽었다. 다 읽은 다음에, <삼총사>는 당연히 완역본을 읽지 않으면 진짜 제 맛을 알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일단 사건이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하게, 연속적으로, 일관성 있게 일어난다. 그리고 이걸 축약하여 소년용, 영화 시나리오, (아동용)만화책으로 만들려면, 음모와 악마성과 기타 등등, 성인이 읽기엔 흥미진진할지언정 소년들에게는 선뜻 권하기 힘든 비도덕의 전형이 책을 힘차게 견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로 만들었거나 청소년용으로 다시 쓴 <삼총사>를 보면 거의 대부분 세 권으로 된 이 책의 첫째 에피소드로만 구성된 것이 보통이다. 그야말로 진짜 <삼총사>를 만들어가는 초입만 읽거나 보고 감히 <삼총사>를 읽고 봤네 하는 것이니, 마치 현덕, 운장, 익덕이 분홍빛 복숭아꽃이 만발한 과수원 뜰에서 염소 한 마리 잡아놓고 좋은 술 진탕 때려 마시면서 의형제를 맺는 소위 “도원결의”까지 읽고 나서, 내가 <삼국지연의>를 읽었네, 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니면 자기 형 무대를 독살한 형수 반금련과, 혼인의 침상에서 분탕질을 친 푸줏간 주인이자 용맹하기 이를 데 없는 서문경이를, 무대의 아우 무송이 한 주먹에 때려죽여 복수하는 것까지 읽고, 내가 <수호전>을 읽었네, 하는 것과 같다. 못 믿겠지? <삼총사> 읽어보시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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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재미있는지 세 권에 천 쪽이 넘는 걸 하루에 한 권씩, 그것도 밤마다 소주 한 병씩 마셔도, 사흘에 완파할 수 있을 정도다. 무슨 뜻이냐 하면, 한 번 손에 들었다하면, 낮엔 소위 “뒤마 폐인” 또는 “삼총사 폐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하라는 거.
내용이야 뭐 다들 아시는 거니까 여기다 또 주접스럽게 소개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도 완역본을 읽기 전까지 전혀 몰랐는데, 다르타냥과 세 명의 귀족 출신 총사들의 맞수가 처음엔 추기경과 떨거지들이었다가, 나중엔 상대역이 안느 드 브뢰유, 또는 라 페르 백작 부인, 또는 밀레디 드 윈터, 또는 샤를로트 바크송, 사실 네 명이 다 같은 여자인데, 이 신출귀몰하고 눈부신 금발에다가 글래머, 경국지색의 미인과 떨거지들로 바뀐다. 여기서 미인과 그 ‘떨거지’의 범위 속에 놀랍게도 붉은 모자의 추기경까지 포함된다는 사실. 당연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추기경은 추기경 나름대로 어깨에 힘을 팍팍 주고 있으나, 책의 후반으로 가면 틀림없이 그도 밀레디의 떨거지 가운데 한 명임이 분명하다. (책에서는 목적상 추기경이 국왕 루이 13세와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는 음흉하고 현명한 악당으로 나오지만, 역사상 리슐리외 추기경은 국왕을 도와 왕권의 강화와 확립에 혁혁한 공을 세운 훌륭한 “중세” 권력자였다)
밀레디. 당연히 영어로 Milady를 일컫는 말일 텐데, 나는 왼쪽 어깨에 백합 문양의 낙인이 찍힌 이 여자만큼 팜 파탈을 본 적이 없다. 앞에서 말했듯 적당한 키에 맑고 흰 피부, 눈부신 금발에 당시 미인의 기준에 딱 맞을 포동포동한 살집과 한 번 봤다, 하면 숨이 넘어갈 때까지 결코 잊지 못할 빼어난 외모에다가 숨 막히는 말솜씨, 순간순간 능란하게 변신하는 순발력과 상대의 심리상태를 놀라우리만큼 정확하게 파악하는 안광의 소유자. 웬만한 인간이라면(남자는 당연하고 여자를 포함해도) 이 여자와 5분간의 대화만 했다하면 거의 틀림없이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초인간적인 설득력까지, 거의 신 또는 악마의 바로 옆에 그녀의 자리가 있을 것이다. 만일 이 여자가 남자였다면? 그리 잘 생긴 사람이 신 또는 악마, 가운데 거의 대부분 악마의 바로 옆에 있을 정도로 악역을 준 인물은 누구? 이거 퀴즈다. 어느 작가가 또 19세기에 있어서 굉장한 미남을 자기 작품마다에 등장시키는데 하나같이 악당으로 만든 소설가는? 궁금하셔? 바로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이 못생겨서, 잘 생긴 남자한테 자격지심이 있어서 그랬다고 치고, 뒤마는 왜 절세미인한테 이리 야박한 배역을 줬을까? 뭐라? 별 걸 다 가지고 고민한다고? 그렇다. 그냥 놔두자.
19세기를 프랑스 문학의 역사로 만들기 시작한 알렉상드르 뒤마. 앞에서 말했듯 다른 건 몰라도 책 읽는 재미, 스토리 하나로 독자를 확 잡아당기는 힘에 관해서는 도무지 이이와 어깨를 견줄 작가가 별로 없다. 죽을 고생을 하다가 우연히 무지막지한 거액의 보물을 손에 넣고 복수를 실행에 옮기는 <몽테크리스토 백작>, 완벽한 검정색을 띈 튤립을 만들어낸 <검은 튤립>에서의 펄쩍펄쩍 뛰는 현장감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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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설가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팜 파탈의 악마적 장악력을 구경하는 일 역시 매우 즐거울 것이다. 물론 현대적 시각에서 보면 등장인물들의 순진성 같은 것이 과장되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혹시 알아? 무대가 되는 1620년대의 프랑스에선 사람들이 정말 그리 순진했었는지. 베토벤의 교향곡 악보를 지금 보면 너무 단순해서 깜짝 놀라지만 아직도 감동을 하듯, 우린 알렉상드르 뒤마의 순진한 등장인물들을 보고 여전히 즐거워할 수 있을 것이다. (글쎄, 날 믿으시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