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술꾼의 전설
요제프 로트 지음, 김재혁 옮김, 파블로 아울라델 그림 / 책세상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요제프 로트.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다. 당연히 참으로 재미있는 장편소설 <라데츠키 행진곡>을 읽고 이름을 기억해두었다가 마침 헌책방에서 눈에 띄어 망설임 없이 즉각 집어 들었다. 판형이 크다. B5 정도. 파블로 아울라델, 이라는 화백이 삽화를 그려 (한 번 세볼까?) 스물네 쪽을 채웠다. 본문이 총 75쪽이니 삽화를 빼고 글씨만 들어 있는 건 불과 51쪽. 단편소설 한 편을 달랑 싣고 책 한 권을 만들었다.
 전형적인 단편. 알코올의존증이 분명한 폴란드 출신의 노숙자 안드레아스. 어느 날 그에게 연속적인 기적이 출현한다. 어느 신사가 200프랑을 주는 것. 명예를 존중하는 안드레아스는 자신이 돈을 갚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적선을 거부하지만 양심상 견딜 수 없으면 생트 마리 데 바티뇰 성당에 있는 테레즈 성상을 위해, 일요일에 미사를 막 끝낸 신부에게 갚으라는 말을 듣고, 반드시 그럴 것이라 다짐하며 돈을 받았다. 알콜의존증 환자가 주머니에 돈이 생겼으니,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도리가 없는 것처럼 득달같이 카페에 들어가 술을 퍼마시기 시작한다. 카페에서 만난 뚱뚱한 남자가 자기네 집 이사하는데 도와주면 또 200프랑을 준다고 해서 돈을 더 벌고, 잡화상에 가 지갑을 샀더니 지갑 안에 1,000프랑 지폐가 한 장 들어있고, 하여간 돈벼락이 쏟아지는 기적이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1,000프랑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에밀 졸라의 <인간짐승>에서는 1천 프랑을 위해 살인도(그것도 자기 마누라를!) 서슴지 않을 돈이다. 그걸 또 여자와 술에 싹 말아먹고, 희한하게도 바티뇰 성당에 가서 부채를 갚으려고만 하면 그게 어긋나고, 뭐 그게 인생이긴 하지만.
 단편소설의 스토리를 더 이상 소개하면 미친 짓이다.
 작가 요제프 로트 자신이 심각하지는 않지만 하여간 술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애주가였던 모양이다. 거기다가 또 기독교인지 유대교인지 아무튼 그렇고. 그리하여 이 책의 제목에서 나오는 ‘전설’이라는 건 ‘읽을거리’, 그 개념 속에 종교적, 도덕적으로 뛰어난 성자들의 삶을 다룬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92쪽). 그러니까 작가 스스로 그의 말년의 작품 <거룩한 술꾼의 전설>은 한국인들이 거의 고정관념 속에서 생각하는 ‘전설’이 아니라 그냥 종교적 교훈이 조금 담겨 있는 읽을거리라고 여기면 딱이다. 직접 읽어보면 뭘 얘기하는지 아실 것. 작가 스스로도 이 작품은 소설이라기보다 소설의 하위개념인 ‘노벨레’, 일찍이 고트프리트 켈러의 <젤트빌라 사람들>에서 소개가 된 장르로 규정했다고 한다. 흠. 그럼 노벨레 한 편으로 책 한 권을 만들었다는 얘기지? 이런.
 평생 디아스포라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요제프 로트. 내가 그의 <라데츠키 행진곡>을 아무리 재미있게 읽었다해도, 이 책을 단칼로 잘라 얘기하면, 비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