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읽은 몇 권의 책 가운데 재미있게, 감명깊게 또는 시간 죽이기 마침하게 읽은 것들만 모아보았습니다. 순서는 읽은 날짜 순입니다.

 

 

1. 주느비에브 빠뜨, <사서 빠뜨>

 유년기 부터 초등학생 까지의 자녀를 둔 부모에게 권하고 싶은 책. 아동 도서관에서 60년이 넘게 사서 직업을 가졌던 전문가가 권하는 책들을 소개받을 수 있다. 특별히 명심해야 할 것은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부모가 가장 가까운 도서관이란 것.

 

 

2. 제이디 스미스, <온 뷰티>

흑인과 백인이 결합하여 가정을 꾸린 두 인텔리 가정의 재미난 야단법석. 한 쪽은 남자가 흑인이고 다른 쪽은 여자가 흑인인데 두 집안이 학문적 갈등으로 시작해 범 가족적으로 원수지간. 거기다가 적당한 베드씬까지 겹쳐 흥미로운 한 바탕의 난장판을 벌이는 게, 아주 끝내준다.

 

 

3. 에밀 졸라, <인간짐승>

목로주점의 제르베즈 아줌마가 낳은 둘째 아들. 혈관 속에 끔찍한 범죄 유전자가 흘러 욕정을 일으키는 순간 상대 여성을 살해하고 싶은 갈증으로 부르르 떠는 인간, 자크.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가 늘 그렇듯이 막장을 향해 모든 등장인물들이 조금도 멈춤없이 질주하는 세기의 혼돈.

 

 

4. 윌리엄 트레버, <루시 골트 이야기>

독후감 쓰기 참 막막했던 소설. 읽고나면 가슴 속에 휑뎅그렁한 바람이 스며들만큼 인간이 가슴 속에 쌓아두는 죄책감과 허무한 그리움을 어떻게 이리 잘도 그려놓았는지. 혹시 당신은 손수건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5. 존 드릴로, <화이트 노이즈>

세상에 이런 아이디어가 있을 줄 내 몰랐다. 미국 중부의 한 소도시에 대학이 있는데 글쎄 "히틀러 학과"를 개설했단다. 심지어 독일어도 해독하지 못하는 한 인간이 히틀러 학과를 개설하고 학과장 자리에 앉았는데, 다섯번째 결혼으로 구성된 복잡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해서 정말 바람 잘 날이 없다. 무조건 웃길 거 같지? 예상외로 문명비판적이기도 하고, 근사할 걸?

 

 

6. 발레리 라르보, <페르미나 마르케스>

세월이 흘러흘러, 저 먼 시절 청춘을 맞아 이제 여성을 향한 갈증이 돋을 무렵을 온전하게 보냈던 생토귀스탱 기숙학교의 기숙사. 라틴 아메리카에서 유학온 학생, 어린 수컷들이 시절을 보내는 풋풋한 일탈과 동경과 성장 이야기.

 

 

7. 카를 차페크, <오른쪽/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짧아서 단편이라기 보다 손바닥 장掌 자를 써서 장편소설이랄 수 있는 각 스물네 개의 이야기를 담은 책. 20세기 초반의 체코를 정말로 손바닥 내려다보듯 훤하게 다 써놓았는데, 범죄 이야기가 많음에도, 숱한 범죄자들의 악하지 않은 한쪽 면에 집중하는 독특한 시전.

 

 

8.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싱글 맨>

죽은 남자 애인을 잊지 못하고, 새로운 애인은 여간해 생기지 않는 동성애자 교수. 그의 하루를 따라가는 작가의 시선. 도시 이곳저곳에 사랑의 흔적은 남아있고, 풋풋한 젊고 아름다운 청춘들은 눈에 띄는데 이제 그들에게 접근하기는 또 좀 그렇고, 그래, 그것도 인생이지.

 

 

9. 오에 겐자부로, <만엔 원년의 풋볼>

끔찍한 모습으로 목 매달아 죽은 친구, 뇌 헤르메스를 안고 태어난 아들, 알콜 중독 증세에 빠져든 아내. 아 이렇게 죽을 수도 없고, 이렇게 살 수도 없어 학생운동 출신인 동생과 함께 저 옛날 만엔 원년에 민란을 일으켰던 고향으로 귀향해서, 천만에도 몰랐다, 조선인 거물 백승기와 흥미진진한 한 판 풋볼 게임을 크게 벌이게 될지.

 

 

10. 레슬리 마몬 실코, <의식>

모든 것을 잃고 부유하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삶. 그들은 여전히 자연의 한 개체로 존재하며, 주술과 의식에 의탁하기도 한다. 한때 백인처럼 군인이었던 시절엔 그들처럼 찬란했으나 전쟁이 끝나고 다시 인디언으로 돌아온 이들은 다시 거대 자연의 부분으로 의식을 치루어야 했으니

 

 

11. 존 치버, <이 얼마나 천국 같은가>

존 치버의 마지막 작품. 비오는 밤, 낡은 집에서 침대에 앉아 읽는 이야기일 뿐이라는 작가의 겸사에도 불구하고, 존 치버는 그의 마지막 발언으로 사랑과 환경문제를 선택한다. 앞으로 남은 삶은 눈썹 만한 순간. 그가 생의 끝에서 뒤돌아 본 화면은 무엇이었을까.

 

 

12. 메릴린 로빈슨, <하우스 키핑>

집과 집을 구성하는 가족을 지켜내는 일. 하우스 키핑. 그러면서 사라진 가족 구성원을, 꼭 그런다는 의식도 없이,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는 일. 한 고아 소녀 루스와 그의 이모 루실이 만들어가는 가족. 그리고 기다림. 미국 북서부 지역의 황량하게 아름다운 산과 호수가 배경으로 깔려 있고 책을 읽으며 그걸 머리 속으로 그려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

 

 

13. 토니 모리슨, <재즈>

이런 책을 흔히 필독서라고 부른다. 하지만 읽기가 쉬운 수준은 아니다. 재즈의 진정한 맛은 즉흥 연주라고 하는데, 그걸 본따 토니 모리슨이 그냥 즉흥적으로 글을 썼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흑인 문학이며, 첫 장면부터 쉰 살이 넘은 조 트레이스 씨가 열일곱 살의 아가씨 도카스와 바람을 피우다가 질투에 못이겨 총으로 쏴 죽였으며, 그의 아내도 역시 질투에 못이겨 이미 죽은 도카스 양의 시신을 훼손하려 했던 충격적인 장면을 아예 내놓고 시작한다. 어때 혹 하시지?

 

 

1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리고베르토 씨의 비밀 노트>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새엄마 찬양> 후속편이라고도 한다. 마누라 죽고 장가든 리고베르토 씨가 새마누라 쫓아내고 독수공방을 지키며 비밀노트에 온갖 성적 판타지를 적기 시작했고, 동시에 열 살 먹은 아들놈은 새엄마를 찾아가 화가 에곤 실레를 핑계로 이제 갓 돋기 시작한 은밀한 에로티시즘을 톡,톡 건드리기 시작하는데 하여간 바르가스 요사, 요사스럽기는 하다.

 

 

15.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바람의 그림자>

 

시간 죽이는데 장땡이다. 오랜만에 읽은 스릴러. 도시의 외딴 골목 한 구석에 비밀의 문이 있어서 허락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데, 그곳은 이른바 책의 무덤. 책의 무덤이 있다는 건 극한의 비밀. 그곳에서 발견한 책 한 권 때문에 벌어지는 사달이 이렇게까지 크게 번질 줄은 꿈에도 몰랐지? 시대는 프랑코 개자식의 엄혹한 독재시대.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이는 나날과 사건들.

 

 

16. 프랑크 틸리에, <뫼비우스의 띠>

역시 스릴러. 이건 스릴러인지 모르고 선택했던 책. 놀랍게도 과거와 미래가 소통을 한다. 그리하여 미래는 과거를 조정해서 한때 미래였던 현재를 바꾸려 하는데, 과거와 미래가 무한 순환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왔다 갔다 하기를 몇 차례였을까. 노약자와 임산부는 책을 읽지 마시라. 살인 장면이 끔찍 itself이며,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 수 있다.

 

 

17. 윌리엄 트레버, <여름의 끝>

아 어쩜 좋아. 어쩌자고 이리 쓸쓸하고 사람 마음을 텅 비워버리는 진공의 상태로 몰아갈 수 있을까. 트레버가 여든한 살에 쓴 책. 그리 노년임에도 이런 감성이 충만했을 수 있었다니 놀라움 자체다. 읽는 내내 독자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동감의 감정으로 절절매게 만드는 대단한 문장들. 그러나 (언제나 매력적인)불륜 이야기.

 

 

18. 알렉시 제니, <프랑스 식 전쟁술>

해설까지 800쪽이 넘는 길고 긴 장편소설. 인도 차이나 전쟁과 알제리 전쟁, 거기다가 항독 레지스탕스 전력까지 있는 노인의 회고록을 써주는 '나'. 강한 인간이 약한 동족에게 벌이는 잔혹한 학살. 인간 이외의 어떤 동물도 저지르지 않는 무차별적 공포와 살육. 기계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인간에 대한 죽임. 이 모든 것을 알렉시 제니는 한때 많은 식민지를 보유했던 자국민들에게 또박또박 짚어간다.

 

 

19. 피오나 맥팔레인, <밤, 호랑이가 온다>

재미있는 책. 읽기 시작하면 손을 뗄 수가 없다. 호랑이가 뭔지 결코 미리 알려줄 수 없다. 정체를 밝히는 것이 책을 끝까지 읽는 일이기 때문에. 혼자 사는 할머니과 노인복지사. 그리고 저 먼 먼 첫사랑. 사구지역 언덕받이의 집에선 향유고래의 울음소리와 물을 뿜는 모습도 거실의 통창문을 통해 보이는데, 일흔다섯 살의 노파한테는 하필 밤마다 호랑이가 오는 거였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