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넥카 강변에 위치한, 작지만 알찬 대학 도시 튀빙엔입니다.
아기자기 예쁘장하면서도 깊은 연륜과 사색이 베어들어 있는 곳.
제가 이제까지 둘러본 꼭 40군데 독일 도시 가운데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곳 중 하나로 꼽는 도시랍니다.
제 머릿속에 오랜 유년시절부터 별다른 근거없이 각인되어 있던,
독일의 거리며 집들에 대한 원형과 놀랄만큼 유사한 모습을 이곳에서 발견했기 때문일까요.
위 사진에서 늘어선 작은 집들의 끝,
둥글고 노란 탑처럼 생긴 건물 2층에는 시인 횔덜린이 오랜 기간 거처한 방이 있습니다.
독일 지명에 익숙치 않은 분들,
튀빙엔이 어디이며 어떤 특색을 가진 지역인지 감이 잘 안 오시지요?
그래서 또 지도를 만들어봤답니다. (친절~ *^ ^*)

튀빙엔을 소개드리는 참에 혼동하기 쉬운 독일 지명들을 몇개 모아봤습니다.
튀빙엔(Tübingen)은 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슈바벤 지역의 대학 도시입니다.
한편 튀빙엔과 이름이 아주 비슷한 튀링엔(Thüringen)은
중부 독일 구동독 지역에 위치한 주(州)의 이름이랍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익숙한 도시, 바이마르가 있는 주이지요.
튀링엔 주 가까이, 니더작센 주에 속한 괴팅엔(Göttingen) 역시
튀빙엔과 마찬가지로, 작지만 유명한 대학 도시입니다.
'그림 동화'를 펴내었던 그림 형제와
중학교 수학 시간에 이름 들어본 것 같은 수학자 가우스가 괴팅엔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지요.
다시 튀빙엔 근처로 돌아오면,
괴팅엔과 이름이 비슷한 괴핑엔(Göppingen)이 보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보면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의 고향인 칼브(Calw)에 비해 큰 도시였던,
괴핑엔에서 온 소년이 동네 자랑하며 목에 힘주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다시 튀빙엔으로 돌아와서,
맨 위에 등록한 사진에 보이는 횔덜린의 거처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이 집의 정원에서 본 모습입니다.
학생 할인을 받아도 1유로인 입장료를 내야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약 1400원이니 아껴가며 즐감하시기 바랍니다.
이 집의 전면, 동그랗게 돌출된 구조물의 2층에 횔덜린의 방이 있습니다.

완전 반원 모양에 창문이 세개나 있는 작은 방으로,
두 개의 의자는 이 방 자체에 처음부터 딸려있던 가구라고 합니다.
이 애매하게 생긴 좁은 방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창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조용하고 아름답습니다.

시심이 깃들만한 풍경이지요?
횔덜린은 튀빙엔 대학에서 학업을 연마했지만,
이곳이 대학 시절에 머물렀던 방은 아닙니다.
정신 질환을 얻어서 다시 튀빙엔에 돌아왔을 때,
1807년부터 1843년까지 36년 간 침머 일가의 보호를 받으며 이 방에 거주했다고 합니다.
횔덜린이 튀빙엔 대학에서 공부하던 시절,
그는 빼어난 두 명의 교우, 헤겔, 셸링과 동문수학했습니다.
불세출의 세 지성이 우연하게도 같은 시기, 같은 대학에서 깊은 교분을 나누었던 것이죠.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신학과 학생들이 수학하는 바로 이 건물에서 말입니다.

헤르만 헤세는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에서
튀빙엔 대학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슈바벤 지방에서는 재주가 뛰어난 아이일지라도 부모가 부자가 아닌 한,
오직 한 가지 좁은 길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주(州)의 시험을 거쳐 신학교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는 튀빙엔 대학에 진학하여 목사나 교사가 되는 길이었다.
이 대학은 횔덜린, 헤겔, 셸링 뿐 아니라,
매 시대 걸출한 인재들을 배출해내었습니다.
대학 건물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이 학교 출신 선배들의 이름이 이다지도 자랑스럽게 나열되어 있습니다.

천문학자 케플러와 낭만주의 시인 뫼리케의 이름도 보입니다.
2004년인 올해는 뫼리케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라서,
이 건물에서는 뫼리케 기념 전시회가 한창 열리고 있었습니다.
유난히 사상가와 시인을 많이 배출한 이 슈바벤 지역의 특성에 대해
헤르만 헤세는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에서 이렇게 언급합니다.
신학교의 소년들 중에는
한두 명 정도 영민하고 완고한 슈바벤적인 두뇌의 소유자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두뇌 소유자는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대한 세계의 핵심으로 궤뚫고 들어가
늘 어느 정도 메마르고 고집스러운 그들의 사상을
강력하고도 새로운 체계의 정점으로 만들어 놓았다.
슈바벤 지방은 훌륭한 교육을 받은 신학자들을 세상에 배출했을 뿐 아니라,
철학적 사색의 전통적인 능력을 자부심있게 내세우고 있다.
그러한 전통으로부터 이미 수체례 명망있는 예언자 및 이단적인 학설이 유래했다.
이렇듯 이 풍요로운 주(州)는,
정치적인 큰 전통으로부터는 한참 뒤져 있을지라도,
적어도 신학과 철학이라는 정신적인 영역에 있어서만큼은
전 세계에 여전히 확고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구나 이곳 주민들에게는 예로부터 아름다운 형상과 몽환적인 시심에 대한 환희가 깃들어 왔다.
매 시대마다 그로부터 훌륭한 시인들이 길러져 나왔다.
소설의 배경으로, 이 인용문에 언급된 마울브론 신학교에서
케플러, 횔덜린, 헤세가 각각 한 세기 정도의 간격을 두고 소년기를 보냅니다.
그러나 선배인 케플러, 횔덜린과는 달리,
헤세는 신학교의 교조적인 교육에 반발하여 그로부터 도주했습니다.
그는 튀빙엔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튀빙엔 중심가의 하켄하우어 서점에서 서적상으로 수련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헤세는 튀빙엔 대학의 문 앞에 다른 선배들과 이름을 나란히 하는 대신,
이 서점의 문 앞에 혼자서 이름을 걸어놓게 됩니다.

"1895년부터 1899년까지 여기서 헤르만 헤세가 서적상으로 일했다"
헤르만 헤세는 저와 똑같은 77년생입니다.
1877년과 1977년. 꼭 100년 차이지요.
그래서 95이나 99년에 내가 무얼했나 돌이켜보면,
헤세가 나와 같은 나이에 무얼했는지 정확히 비교할 수가 있답니다.
지난 2000년에는 헤세의 고향인 칼브와,
그가 소년기를 보낸 곳이자,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배경이 되는
마울브론 수도원을 방문했어요.
이번에는 그가 청년기를 보낸 튀빙엔까지 따라왔으니,
다음엔 그의 자취를 따라 바젤으로 가봐야겠네요. ^ ^
이렇게 시내를 구석구석 돌아봤으니,
한번 정도는 거리를 두고 시가지 전체를 한 눈에 조망해보면 좋겠죠.

시내에서 조금 오르막 길을 걸어올라가다 보면 이렇게 호엔튀빙엔 성이 서있습니다.
여기서 작지만 잘 정돈된 튀빙엔의 모습이 산뜻하게 눈에 들어오지요.

이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 도시의 분위기에 젖어,
저도 튀빙엔이 배출해낸 시인과 사상가들처럼 사색 좀 해봤습니다.
(복장이 전혀 사색적이지 않다고요? o_O;;;)

다시 시내로 천천히 내려오면 오늘을 사는 슈바벤 사람들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독일인'하면 전형적으로 떠올리는,
근면함, 검소함, 경건함, 그리고 청결함을 잘 갖춘 동네 사람들이죠.
이런 특성이 독일 어느 지역에서나 천편일률적으로 나타나는 건 아니랍니다.
시내에는 이렇게 예쁜 창문이 달린 시청이 있고요...

그 앞에는 시장이 서 있어 분주한 아침을 여는 시민들을 맞이합니다.

밤에는 이곳 시청 앞 광장에서
늦게까지 맥주를 마시며 왁자하게 떠드는 대학생들로 가득하지요.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대학 도시다운 생동감을 잃지 않는 점 또한 튀빙엔의 매력입니다.

시장 한 켠에는 이렇게 고서적상 할아버지가 고객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고요.
이 책 저 책을 펼쳐 보이며 뭔가 열띠게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시내 구석구석에서 폴폴 묻어나오는 정신적인 과거의 향취는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시민들의 삶 속에서 부단히 현재로 거듭납니다.
시인과 사상가의 도시, 튀빙엔 소식이었습니다. 작성자 : 유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