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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숙사에서 시가전차를 타고 네 정거장 (8분),
도보로 25~30분 걸리는 거리에 우리 학교가 있습니다.

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이 건물이 바로!
...우리 학교?
...였으면 좋겠지만,
...여기는 신시청입니다.

규모면에서는 독일에서 제일 큰 시청 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신시청의 맞은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에 맞서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이 건물!

여기가 우리 학교?
...역시 아니고,
...여기는 법원입니다.

법원 앞으로 구불구불 펼쳐진 넓은 잔디,
졸졸 흐르는 인공 냇물과 힘차게 물줄기를 뿜는 분수대를 지나서 등교하지요.
오늘은 이곳에서 벌거벗은 아가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답니다.

법원 건물과 잔디밭 사이로 난 골목으로 들어가면
이 건물 바로 뒤에 우리 학교가 있습니다.





여기가 우리 학교?
예!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이상 학교에 처음 가본 날, 제 마음 속에서 일어났던 경로였습니다.





우리 학교의 정문 전면이예요.
창문에 푸른 하늘이 담길 때의 색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학교에는 총 4개의 학과가 있습니다.
그래픽 디자인 및 북아트 학과, 사진학과, 회화과, 미디어 예술학과.
물론 각 학과에서 세부 전공은 지도교수별 총 15개로 나뉩니다.
전반적으로 시각 예술 위주인 학교라고 할까요.

그래픽 디자인 및 북아트, 사진 분야에 관해서는
독일 내에서의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지요.

사진학과는 이미 19세기에 독일 최초로 창설되었습니다.
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를 논하고 있던 시절,
이미 대학에 학과를 설치했다는 사실은 확고한 신념을 보여주는 대목이겠지요.

저도 기회가 되면 사진학과의 수업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정문 위로 큼직하게 써있는 이름이 우리 학교의 정식 명칭이지요.
'그래픽 및 북아트 대학 (Hochschule für Grafik und Buchkunst)'
학문 및 상업, 서적 및 출판의 도시 라이프치히 미대다운 이름.

북아트가 중요하긴 하지만
이것은 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육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영문 명칭은 독일어 정식 명칭과 달리
'라이프치히 시각 예술 대학 (Academy of Visual Arts Leipzig)'라고 명명한 듯 하네요.

괴테가 우리 학교에서 스케치를 배웠으며,
그가 이탈리아 등을 여행하면서 그린 데생 실력은 여기 기인합니다.
괴테는 자서전 '시와 진실(Dichtung und Wahrheit)'을 우리 학교에 헌정한 바 있지요.





학교 안으로 들어가서 창 밖을 바라보면,
이렇게 교정의 안뜰이 보입니다.





우리 학교의 내부.
4층 건물에 옥탑층과 지하 작업실까지 총 6개의 층이 있습니다.

까만 옷 입은 남자 둘이 난간에 팔을 괴고 있는 곳이 3층이고,
바로 그 아래 보이는 2층의 까맣고 큰 문이 우리 클라스 강의실이예요.

사실 이제까지는 이 모습도 그저 괜찮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오늘,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20세기 초 우리학교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발견했어요.

그리고는 이곳이 1900년경에는 이런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죠.
사진 학과가 일찌기 개설된 학교라 이런 사진들이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대출불가한 책을 급히 찍은 것들이라 컬리티가 많이 떨어지는 점을 감안해서 봐주세요.





이렇게 장식되어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매우 신경 쓴 실내였군요.
괴테 시대에는 또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보지 않았으면 모르되, 일단 보고 나니까, 웬지 속상합니다.
지금 모습에 이제까지는 별 불만 없었지만,
지금도 저런 모습이라면 근사할텐데 하는 아쉬움이 자꾸 드는 건 왜일까요.
관리 좀 잘 하지...

전쟁과 분단, 사회주의를 겪지 않았다면
이곳 라이프치히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가끔 상상해 봅니다.





100여년 클라스 내부 모습도 한번 보실래요?
회화과 학생들의 아뜰리에입니다. 1910년경이라고 하네요.
실험 가운같은 걸 입은 학생들도, 왠지 지금보다 더 멋지군요.
멀리 모자 쓴 모델 주목~





여기는 교내 인쇄 실습실. 1925년경.
실습실은 예나 지금이나 아주 다르지는 않은 것 같고요.

다시 시간 감각을 챙겨서, 2004년 7월으로 돌아가 볼까요?





이날은 석사 학위 수여식이 있는 날이라 학교에 활기가 넘쳤습니다.
정장 입은 외부 인사들도 학교에 많이 보였구요.

학위 수여식과 동시에 졸업전시회를 오픈합니다.
아직 학업도 시작 안 했는데 웬지 졸업하고 싶어지더군요.

석사(Diplom) 학위 수여식과 박사(Meister) 학위 수여식은 각각 다른 날 거행됩니다.
학위 수여식과 함께 졸업전을 오픈하지요.

석박사 졸업전, 룬트강이라는 전시회 시즌이 오면
이렇게 지역 방송에서 취재를 나와서 뉴스로 내보내기도 합니다.
21세기다운 변모이지요?

볼거리 많은 실습실 구경은 다음을 기약하고,
학교 밖으로 다시 나가볼게요.
날씨가 좋거든요.





학교 옆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이 길이, 저는 무척 마음에 듭니다.
여름인데도 가을의 냄새가 나서 개인적으로 '가을길'이라 부른답니다.
가을이 오면 정말 운치있을 것 같아요.

이 작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미대와 음대가 맞은 편에 나란히 서 있습니다.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 음악 연극 학교.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이후부터 항상
음악하는 학생들 연습 소리가 들리는 학교에서 공부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됩니다.
이 점은 제게 여전히 반가운 환경이지요.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바로 음대랍니다.작성자 : 유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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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glee 2014-01-16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사진유학을 알아보다가 들어오게 되었는데 라이프치히 대학교에도 사진과정이 있는 걸 처음 알았네요. ^^ 좋은 사진과 지식을 얻어갑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7월 9일, 하노버 근처의 볼펜뷔텔(Wolfenbüttel)에 다녀왔습니다.
남북으로나 동서로나 독일의 한 복판에 있는 곳이랍니다.

이 도시 토박이인 철학과 교수님이 학생들을 초대한,
당일치기 철학과 세미나 여행에 살짝 끼어서 따라간 거죠.
낯을 별로 안 가리는데다 궁금한게 많아서
이런데 낑기는 거 무척 좋아한답니다. ^ㅡ^

르네상스 시대 독일 최초로 도시 계획에 따라 정비된 도시이고,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지어진 곳이며,
작가 레싱과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거주했던 도시, 볼펜뷔텔.
무엇보다도 이곳에는 '아우구스트 대공 도서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라이프치히 대학의 서적학과에서도
작년에 이곳으로 세미나 여행을 했다지요.

이곳은 당대 독일 최대의 도서관으로,
13만여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16~17세기의 인물 아우구스트 대공 혼자서(!)
이 장서를 모두 수집했으며 그 목록을 모두 꼼꼼하게 카탈로그에 기록해두었습니다.

이 방은 아마도 신학과 역사학 관련 장서가 있던 방이었을 거예요.
이렇게 책으로 가득한 방이 몇개 더 있답니다.





이 할아버지가 만년의 아우구스트 대공입니다.
위대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연구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숨이 컥 막히게 생긴 사람이
숨이 컥 막히는 공간에서
숨이 컥 막히는 행적을 남겼다는 평이 우리들의 중론이었습니다.

문득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라는 책 제목도 떠오르더군요.





이 도서관 한켠에서는 전설적인 서체 디자이너
헤르만 차프(Hermann Zapf)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딴 Zapf Dingbat, Zapf Chancery로부터
제가 개인적으로 매우 선호하는 Optima, Palatino에 이르기까지,
숱한 유명한 서체를 개발한 디자이너이지요.

그의 칼리그래피 및 활자 서체에서부터 디지털 폰트까지.
원본의 스케치와 설계도가 모두 근사한 취향을 보여주었습니다.

우연히 접한 전시회인데 기대 이상으로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그의 수작업과 구상안은 문화적 배경에 뿌리를 둔 탄탄한 기초와 진정성을 지니고 있어서
많은 자극을 받을 수 있었거든요.

도서관과 서체 디자이너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고요?
이 도서관은 16~17세기의 수많은 장서 원본을 소장하고 있어
필체 및 활자 연구에도 매우 이상적인 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진은 금속 활판에 새긴 서체와
그것을 판화하듯 종이에 찍어낸 작업물입니다.





고급스런 하얀바탕의 두꺼운 종이에 무광금박처리한 칼리그라피.
우아하고 멋진 필체와 세련된 감각을 가진 서체 디자이너지요?
이상 모두 몰카 도촬이었으니 사진 컬리티를 문제 삼지 마세요. ^ ^

사실 난 헤르만 차프의 전시를 더 보고 싶었는데,
할 수 없이 졸린 철학과 세미나를 들으러 발길을 옮겨야 했습니다.

라이프치히에서 공부 많이 한 후에 헤르만 차프의 전시회에 또 가봐야겠어요.
우리 학교에도 '프레드 슈마이어스(Fred Smeijers)'라고
유명한 네덜란드 출신 서체 디자이너 교수님이 계십니다.
이분 수업도 많이 기대하고 있답니다.





도서관 견학을 마치고, 세미나에 참석하고, 시내를 둘러본 후,
학생들은 교수님 댁에 초대받았습니다.

이곳은 교수님의 서재예요.
아우구스트 대공의 도서관 견학 이상으로 인상적인 방문이었지요.

철학과 독일 학생들도 정말 멋진 서재라고 감탄했습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철학의 현장이군!'

방에는 벽면이 총 10개 있었습니다.
정10각형이 아니라 작은 사각형 몇개가 이어진 형태의 방이었는데,
그 10개의 벽면이 모두 이렇게 책으로 가득했습니다.
책상도 여러개였고요.

저 많은 책들을 주제별로 정리도 참 잘 해놓으셨더군요.
고대 철학, 중세 철학, 프랑스 철학, 19세기 낭만주의 문학, 현대 철학..

여기서 퀴즈 하나,
저기 축음기 비슷한 음악 나오는 기계(?) 위에 걸린 그림,
누구의 초상인지 아시는 분?

맞추시는 분께서 4주년 기념 정모에 나오시면
소정의 선물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 ^





역시 교수님 방의 일부.

우리를 인솔하셨던 교수님은 볼펜뷔텔 토박이십니다.
일주일에 한번 수업 있는 날만
2시간 30분~3시간 걸리는 라이프치히로 오신다고 하네요.

작은 도시에서 나름 유명 인사일테고, 또 평생 살아서 그런지,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사람이라 재미있었습니다.
옛 도서관 관장과 시 당국의 논쟁에 대해 우리에게 설명하는 중에
나이 지긋하신 분이 인사를 하며 지나갔는데
'저 사람이 지금 말한 옛 도서관 관장이십니다.'
라고 하시기에 학생들 모두 기막힌 타이밍에 감탄하며 웃었지요.





교수님의 서재를 점령한 철학과 학생들.
이날의 세미나 여행에 참석한 36명 학생들을 위해,
교수님이 손수 야채도 썰고 밥도 지어서 따뜻한 저녁을 요리해주셨습니다.
어디서 빌렸는지 그 많은 양의 밥을 짓기 위한 큰 남비 두개를 매고
학생들과 함께 시내를 돌아다니셔야 했어요.

와이프 없는 독신 남성이라서 모든 걸 혼자 준비하셨고,
철학과 학생 몇명이 교수님을 도와 서빙을 했지요.
저는 가만 있는게 도와주는 것이란 충고를 자주 들어온 터라
잠자코 저녁밥과 맥주를 먹고 마시기만 했습니다.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도시,
값진 책들이 가득 꽂혀있던 도서관과 서재,
학생들을 위한 교수님의 사려깊은 초대,
육체적 정신적 양식을 배불리 섭취하고 돌아온 기분이었습니다.작성자 : 유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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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른 나라 민속 의상 입어보는게 늘 소원이었습니다.
지난 번에 내가 기모노 함 입어보고 싶다고 흘려 말했더니,
일본 친구들이 진짜로 일본에서 유카타를 공수해 왔답니다!
일본식 신발인 게다와 작은 주머니까지요.
당황스러울 정도로 고마웠지요.

'일억 이천만 일본인들이 드립니다.'라고 건네주는데 그대로 감동...
이 친구들 덕에 일본에 대한 인상이 너무 좋아졌어요.

포토에세이에 독일 이야기로 도배해서 지루하실까봐
저의 면상 바쳐 망가진, 대고객 서비스를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여러분도 망가진 인물 사진 팍팍 올려주세요.

저의 유카타가 도착했다기에 특별히 앞머리까지 직접 잘랐는데
대략 어울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유카타 입는 거 보기보다 무척 복잡하답니다.
결국 기숙사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던 일본 여학생에게 SOS를 쳤죠.
그 여학생이 일본어로 된 설명서를 보고도 고개를 절래절래 젓더군요.

제 룸메까지 합세, 셋이 낑낑대면서
정식은 아니지만 대략 비슷한 모양으로 시도해봤습니다.
리본 매는게 거의 교련 시간에 시험보는 붕대 매기보다 어려웠어요.

그 와중에 일본 남자 주당들은 식탁에서 벌써 술 먹고 있었다는. ㅡ_ㅡ
100점 줬다가 한 3점 깎았습니다. ^ ^

입어본 소감은... 보기보다 시원하고 편하다는 거.
리본의 압박으로 밥을 조금만 먹어도 신호가 온다는 거.
앉으나 서나 자세가 항상 꼿꼿하게 유지된다는 거.

하지만 유카타를 입었다고 어찌 다 '마담 버터플라이'이겠습니까.
제가 다소곳이 멀쩡한 짓만 했을 리가 없지요.

저의 이름 중 '원(媛)'자가 일본식으로는 '히메'라 읽는다고 하여
우여곡절 끝에 저의 별명이 '야쿠자 히메사마'가 되었는데요,
일본 주당들이 '야쿠자 히메사마'답게 행동하라고 해서 평소대로 굴어봤습니다.





이거 입고 교토며 나라에 놀러가보는게 저의 새로운 소원이 되었습니다.
칼은 빼고... ^ ^: 작성자 : 유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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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면 오대산 월정사로 출사를 나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올 겨울엔 이상하게도 눈이 오지 않네요.
월정사 앞 전나무 숲길에 언제쯤 눈이 쌓일지 아시는 분 계신가요?

지난 계절의 사진들을 뒤적이니
각 계절의 내음이 농도 짙게 다가오는 것이 마치,
저의 애카와 함께 한 지난 2003년을 다시 한 번 거쳐온 느낌이 듭니다.
눈으로만 보며 숨을 들이키는데도 느껴집니다.
햇살의 강도, 공기의 냄새, 바람의 감촉이...

'애카'란 단어가 나와서 말인데,
우리 가족이 태동한 74년, 즉 부모님이 결혼하실 때 구입한
아사히 펜탁스의 기계식 수동카메라를 저는 '조강지카'라 부릅니다.
74년 이후 우리 가족사의 숱한 기록들을 꼼꼼히 담아주었죠.

부모님이 자동카메라를 쓰시면서부터
조강지카는 저의 개인사를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쾰른 대성당 상반측불궤 사진을 촬영할 때가 기억에 남아
문화 섹션에 기사로 등록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이 조강지카가 함께 했습니다.
나와 함께 고된 여행을 다니며
같이 구르고 엎어지고 부딪히고,
그래서 찌그러진 상처까지 남은 카메라입니다.

작년에 캐논의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한 이후,
이 디지털 카메라가 저의 '애카'가 되었습니다.
'조강지카'를 잊은 적은 한번도 없지만
'애카'가 생긴 이후 사용한 적도 없었지요.

애카는 유난히 초록에 강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5월에 촬영한 사진들에는
햇살에 투과되어 거의 형광 연두빛이 감도는 듯한,
눈부시게 찬연한 신록의 빛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었습니다.





5월의 즐거운 햇살과 푸근한 공기를,
그리고 그 햇살과 공기 속에서 빛을 발하며 반짝이기에,
어떤 인공적인 질료로도 흉내내서 만들기 힘든 초록의 색채를.

눈이 오기를, 애카와 함께 떠나기를,
기다리는 이 겨울의 한 가운데서
문득 다른 계절의 냄새가
지난 날의 그리움과 다가올 날의 기다림을 담고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요.작성자 : 유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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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의 설날

설을 맞아 깍깍 노래하는 것 같습니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정초에 까치가 우니 올해는 반가운 일이 생기려나."
(촬영 협조: 지나가던 우리 어머닙니다.)




이번 설에는 까치도 설빔을 입은 것 같습니다.

머리와 등의 검정은 꼬리의 검정보다 훨씬 짙고 윤기나는 벨벳의 검정이며,
검정 아래로 하얗디 하얀 배가 강한 컨트라스트를 이룹니다.

그토록 급격하고 시원스러운 대비를 뒤로 하며
날개에서 꼬리까지 부드럽게 흐르는 것은
다채롭고 은은한 색의 향연.

마치 곱게 지은 한복의 색상 같습니다.
짙푸른색으로부터 바닷빛 청록색을 거쳐,
검정색을 지나 올리브 그린, 갈색, 진홍빛에서 보라빛까지 돕니다.
색상환의 스펙트럼처럼.




떡국은 아니지만 까치 나름대로 설 음식도 맛있게 먹습니다.


2004년의 설을 맞은 까치의 모습을 담았습니다작성자 : 유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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