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라이프치히의 중앙역은,
그 자체로 볼거리인,
유럽에서 몇 안 되는 기차역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곳에서는 기차가 도시를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한번 들어왔다가 도로 빠져나가야 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아침 일찍 기차를 기다릴 때면 늘 이런 풍경을 하염없이 응시합니다.
건물의 구조는 이상하게도, 사람의 마음에 상징적 의미의 각인을 형성합니다.
본의 조그만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것은
'흐름과 이동'의 가운데 몸을 싯는 행동이었습니다.
라이프치히의 이 거대한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것은
'넓은 세계로 나아감'을 의미하는 행동이 됩니다.
기차가 나를 실으러 일부러 들어 왔다가 도로 빠져나가는 구조 속에서는
'나'라는 존재의 목적성이 한층 강화됩니다.
아침 해가 빛나는 저 통로 너머에는
희망 가득한 세계가 무한히 펼쳐져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공의 물리적 제약을 받는 이 세상에서
어느 장소도 무한한 곳은 없습니다.
내 앞에 펼쳐진 가능성은 무한하되,
그것은 새로운 유한의 제약을 받습니다.

지난 한달간 사용한 독일 철도 패스입니다.
이것은 무제한이자 제한이었고,
내게 자유이자 구속이었으며,
무한이자 유한을 의미했습니다.
하루종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지만,
거기에는 한달 간 4일이라는 제한이 뒤따랐습니다.
독일의 어디든지 무제한으로 달려갈 수 있지만,
거기에는 독일 국경이라는 제한이 뒤따랐습니다.
이 기차표가 주는 자유에 돈을 지불했지만,
그 댓가로 나는 지난 한달 이상 이 기차표에 구속되었습니다.
월말에 나는 독일 남부 지역에 들리는 김에,
이 기차표가 내게 부여한 자유와 구속을 조금만 더 누려보기로 했습니다.
아름다운 호수를 보면 마음이 탁 트일 것 같아,
나는 이 기차표의 제한과 무제한을 이용하여 보덴제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보덴제는 독일의 국경 지역이었습니다.
나는 이 기차표가 제시한 무한과 유한의 끝장을 본 셈입니다.

그곳에는 육안으로 무한하게 느껴지는 큰 호수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땅덩어리로 둘러싸인,
사실상 그 끝이 명확히 유한한 곳이었습니다.
그 무한과 유한을 바라보는 내 영혼은 자유로웠을지라도,
내가 입은 육신은 그 와중에 온갖 현실적인 문제들로 나를 끊임없이 구속했습니다.
세상의 어느 곳에 위치해 있다해도,
나, 비물질과 물질, 영혼과 육체의 인간은,
유한 없는 무한을, 구속 없는 자유를,
제한 없는 무제한으로 누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여행이었습니다. 작성자 : 유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