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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보장 김치 - 욕쟁이 요리 블로거 당근정말시러의 맛보장 레시피
당근정말시러 지음 / 빛날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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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기대됩니다. 지난번 책도 너무 잘 보면서 따라하고 있는데 김치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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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전에 꼭 가고 싶어요!! 부탁해요! 뽑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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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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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이면서 재미난 글을 쓰고 싶은데 가능한가요?

<글쓰기 강좌>를 들으면서 내가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가 단 하나, 이거였다. 그냥 편하게 친구들한테 이야기를 하듯이 신변잡기적인 글을 썼더니 소소하고 재미나다고 말을 많이 해줘서 자신을 가지고 본격적인 글쓰기를 했는데 이건 아니다 싶은 게다. 내가 무슨 글쓰기 따위를 배워봤겠는가. 더구나 단무지(단순, 무식, 지*)이라고 불리던 공대에서 6년, 그런 직장을 4년 다녔던 나인데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라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글을 한 번 써봐야지’ 하는 마음을 먹기 시작하면서 글이 안 써졌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A4 용지 서 너장 넘어가는 글 정도는 30분 정도면 뚝딱 쓰고도 남았다. 거의 머리 속에서 생각나는 속도로 글을 적어 내려가는 수준이었다. 말하고 싶어서 입에서 근질대던 것을 거의 쏟아냈었다. 그리고 그렇게 훌렁 쓴 잡글을 내 친구들은 읽고 나면 눈물 찔끔나게 재미나다고 말해줬다. 그런데 진짜 글쓰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무슨 전문 작가라도 된 마냥 한 줄 쓰는데 일주일이 걸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게 마음에 드냐. 천만에. 일주일만에 쓴 그 한 문장을 백 스페이스로 지우는 순간의 그 허무함을 무엇에 비교할꼬.

답답한 마음에 남편한테 이 증상을 호소했더니, 니 편한대로 쓰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라고 역시 천하태평한 그 성격대로 말하고 주변 친구들에게 말하니 너만큼 글 잘 쓰는 사람이 없다고(친구들 중에 문학도는 없다.) 뭐가 걱정이야, 라고 역시 심각하게 살지 말란다. 역시 도움 되는 놈 하나 없군, 하면서 친구들은 돈 주고 그런 것도 배우냐는 <글쓰기 강좌>를 신청한 것이다. 도대체 나는 왜 글이 안 써지는 거죠?

공부를 해야죠.

두 번의 강의를 듣고 한 번의 전화 상담을 통해 결국 선생이란 작자가 말하는 것은 역시 선생의 답, 답다. 이 뻔하디 뻔한 답 앞에서 결국 모범생처럼 공부를 하라고 하니 해야지, 라는 생각에 무려 10권이 넘는 책을 단숨에 주문해버렸다. 단연 글쓰기 방법론(글의 기본은 되어야 된단다.) 추천 시집(멋진 말이 많단다.) 인문학적 개론서(주제 의식이 있어야 한단다.) 고전(뭐라고 해도 고전을 읽어보란다.) 그리고 남편을 위해서 이 책 ‘캐비닛’을 하나 슬쩍 껴서 샀다. 분명 10권이 넘는 책을 사면서 남편이 화장실에서 읽을 만한 소설책 하나 없으면 분명 한 소리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어디서 이 책을 추천해서 산 게 아니라 알라딘 서점 돌아다니다가 책 표지가 제법 코믹 카툰 같아서 남편이 좋아할만하겠다는 생각으로 구입한 책이다. 그리고 당연히 글쓰기 방법론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지. 이 책 한 권 읽고 나면 뭔가 글쓰는 방법이 보이겠지. 이렇게 고민이 많아지다 보니 새벽에 잠이 안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내가 역시 고민없이 살아서 그렇게 잠이 많았더거군. 그런데 새벽에 잠이 안 와서 글이나 쓰려고 노트북 앞에 앉았는데 여전히 한 줄도 안 써지는 거다. 잠은 안 오고 글도 안 써지는데 마침 식탁 한 구석, 남편을 위해 소설책을 두는, 그곳에 있던 이 책을 본 것이다. 그냥 저거 읽다가 잠이나 자야겠다, 뭐 이런 생각이었다. 그리고 잠을 자긴 커녕 다 읽는다고 밤을 꼴닥 샜다.

나는 그 돈으로 전부 캔맥주를 샀다. 대략 사백오십 박스 정도였고 캔으로 치면 만 개가 넘는 엄청난 양이었다. 대형 할인마트 직원은 개인이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맥주를 사는 것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말했다. 나는 이 황홀한 자본주의에서 자기 돈을 주고 물건을(그것도 화약이나 총도 아니고 캔맥주 따위를) 맘대로 살 수 없다는 직원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페이지 168]

그해 여름, 나는 집 안에 틀어박혔고 캔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집 안에 처박혀 캔맥주만 마신 것이다.
[페이지 169]

깡통을 찌그러뜨리는 것! 사소해 보이지만 이것이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이상한 이야기 같지만 깡통을 찌그러뜨리는 순간, ‘될 대로 되라지’ 같은 파괴적인 정서가 생겨나고 그 파괴적인 정서는 다시 냉장고를 열어 새로 캔맥주를 따게 하는 힘을 준다.
자신이 왜 그런 짓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죽을 때까지 그 짓을 할 수 있다.
[페이지 169]

웃기게도 캔맥주를 한꺼번에 사백오십 박스사면 세무서에서 전화가 온다.
“다름이 아니라 맥주를 한꺼번에 사백오십 박스나 사셨는데요. 개인이 이렇게 한꺼번에 맥주를 많이 사면 용도에 대해 신고를 해야 합니다. 무자료로 불법유통되는 사례가 있어서요. 무슨 행사가 있는 겁니까? 행사가 있으면 행사 이름 좀 가르쳐주십시오. 저희도 자료를 작성해야 하니까요.”
“행사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냥 혼자 마시려고 샀습니다.”
“아니, 여보세요. 혼자 마시려고 맥주를 사백오십 박스나 산다는 게 말이 됩니까?”
딸깍!
[페이지 171]


마음에 드는 구절들이 참으로 많았는데 특히 주인공이 엄마가 돌아가서 남은 유산으로 모두 맥주를 사고 주구장창 맥주만 마셨다던 이 에피소드에서 나는 거의 데굴데굴 구를 뻔 했다. 그래 이 기분이야. 아니 산에 살고 있다는 마법사가 나와서 단군 신화 어쩌고 저쩌고 하는 부분에서, 프리셀 게임만 십 년 했다는 한 똑똑한 유학생 이야기 부분에서, 외계와 통신한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 그 새벽에 혼자 미친 년처럼 눈물까지 찔끔거리면서 키득거린 것이다. 만약 남편이 그 새벽에 오줌이 마려워서 화장실을 나왔다가 식탁 불빛 밑에서 머리까지 풀어헤치고 흐느끼면서 책을 읽고 있던 나를 봤더라면 정말 제가 요즘 글 쓴다고 하더니 맛이 갔군, 그랬을 것이다.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웃어본 적이, 이렇게 시원했던 적이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이후 오래간만이다. 난 그다지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징징대기만 하기 때문이다. 뭐가 이렇게도 관계는 복잡하고 뭐가 이렇게 인생들이 기구한지. 그래서 그 다들 좋아하던 <상실의 시대>의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도 별반 좋아하지 않았다. 도대체가 난 그의 소설만 읽으면 그의 책 제목대로 참으로 상실감만 느끼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캐비닛’은 그냥 웃긴 정도가 아니라 짠, 하면서 웃기다. 감동적이면서 재미난 글을 쓴 이 녀석, <글쓰기 강좌> 뭐 이런 거 안 만드나?

"이 자식아! 책 한 권 값이면 삼 인 가족이 맛있는 자장면으로,
게다가 서비스 군만두도 곁들여서, 즐겁게 저녁을 먹는다. 이 썩을 자식아!"

작가의 수상 소감을 밝히는 마지막 말을 읽고 나서 책 값 9800원의 가치를 아는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독서 일기를 쓰려고 다시 곰곰이 책을 읽다보니 이 작가는 자장면의 맛을 아는 놈인 것 같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딱 <캐비닛>이 그 많은 9800원짜리 음식 중에 자장면과 서비스 군만두를 먹었을 때 느끼는 그런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글이다. 외식치곤 넘치지도 모자르지 않는, 외식치곤 입가에 묻는 짜장이 곤혹스러운, 그래서 즐거운 저녁 외식 말이다.

어떻게 하면 감동적이고 재미난 글을 쓰죠?
감동적인 삶이란 없어. 삶은 그저 견디어 내고 껄껄 웃으면 되는 거야. 그리고 글쟁이는 그것을 말할 뿐이야.

결국 글쓰기 방법론 책은 반품을 해야 하나 마나 고민하게 만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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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7-09-23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음,음...리뷰 잘 읽었습니다. '감동적인 삶이란 없어. 삶은 그저 견디어 내고 껄껄 웃으면 되는 거야.'라는 구절이 저에게는 참 인상적이네요. 그저 껄껄... 추천하고 갑니다~

비로그인 2007-09-23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책이죠 :)
김언수 작가 후속편이 기다려집니다 ^^

절벽마녀 2007-09-25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결님..음.......처음 리플 받아봤습니다..ㅠㅠ..이 감동을 어찌하리오..ㅠㅠ....책만 혼자 읽다가 아무래도 독서일기 혼자 쓰니깐 진도가 안나가서 오픈하면 좀 써질까 싶어서요. 저의 첫 리뷰를 자축드리옵니다.ㅋㅋㅋㅋㅋ.

절벽마녀 2007-09-25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고양이님. 안녕하세요. 저 역시 김언숙 작가의 후속편이 기대되는데, 한 3년또 고시원에서 생활한 뒤 내실려고 하시는지..쩝..ㅋㅋㅋ

후렛헤즈 2007-11-13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을 사려고 검색해서 들어왔다가 리뷰가 좋아서 괜히 덧글도 끄적이고 갑니다-
글 정말 재밌게 잘 쓰시는 데요- 앞으로도 좋은 리뷰 많이 써주세요 :-]

후렛헤즈 2007-11-13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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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렛헤즈 2007-11-13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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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렛헤즈 2007-11-13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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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렛헤즈 2007-11-13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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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말 재밌게 잘 쓰시는 데요- 앞으로도 좋은 리뷰 많이 써주세요 :-]

후렛헤즈 2007-11-13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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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말 재밌게 잘 쓰시는 데요- 앞으로도 좋은 리뷰 많이 써주세요 :-]
 
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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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 어릴 적, 가장 맛있던 기억은 유채꽃밭이다. 병아리 솜털같던 꽃술과 손톱만한 겨자색 꽃술을 가진 유채꽃밭을 보면 입 안에 침부터 고였다. 툭, 꺽어서 푸른 실이 가닥가닥 붙어있던 겉껍질을 한 거플 벗거내면 투명하고도 끈적한 액이 손에 묻어났다. 분명, 한 번도 먹어 본 적도, 본 적도 없지만, 유채꽃을 사탕 수수라 생각했다. 투명하고 끈적한 액이 묻어있던 한 거플 벗겨진 유채꽃대는 딱, 솜사탕 몇 가닥이 붙어있던 나무 젓가락같이 감질맛나는 달콤함을 주었지만, 딱히 사탕을 사주지 않던 그 시절, 그만한 달콤함은 동생 분유통에 손가락을 찍어먹던 이후로 처음이었던 게 분명했다.

라고, 난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으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하지만 어찌 어릴 적 기억이 이토록 맛난 유채꽃밭만 있었겠는가. 오히려 사탕을 사주지 않는다고 동네 슈퍼마켓에서 사탕을 훔치다가 걸려서 카운터 앞에 손들고 서 있다가, 엄마가 '동네 창피해서 못 산다' 라고 나를 때리면서 울다가 , 사탕을 한 웅큼 집어 와서 보란 듯이 사들고 나 목덜미를 끌고 집으로 가던, 그런 시간들이 더 많던 어린 시절이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은 돌이켜보면 천진난만하지도, 명랑하지도, 그리 유쾌하지만도 않은 나날들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내 일기장 어디에도, 난 아이여서 좋다, 라는 말은 없다. 항상 '어른이 되고 싶다. 빨리 커서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 라는 말만이 그득하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니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의 기억은 아련하고, 유쾌하기만 하다. 학교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하던 오색 공기 놀이, 떡볶기 안의 오뎅 한 조각 잘라먹으면서 깔깔대던 웃음, 학원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체크 무늬 남방 남학생의 바람 냄새. 심지어 체육 시간에 도시락을 까먹다가 걸려서 도시락을 입에 물고 교무실 구석에서 손 들고 있던 기억마저 서른 살에는 나의 어설프면서 치기어린 영웅담으로 둔갑해버렸다. 분명 그 때 당시에는 그 교무실에서 손을 들고 있던 나는 도시락 좀 까먹었다고 그런 창피를 주는 체육 선생에 대한 분노로 가득한 16살 독기 어린 소녀였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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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친구가 '아름다운 문장이 가득해' 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열 장도 안 읽고 책장에 놓아버렸을 책이다. 그 정도로 줄거리가 뻔하디 뻔한 80년대 한 가족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고 뻔한 달동네와 며느리를 학대하는 뻔한 시어머니, 아내의 핍박을 무시하던 뻔한 아버지, 결국 뻔하게 죽어버린 선생과 어린 여동생, 그리고 역시 뻔하게 미치는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화훼관련 책인 줄만 알았던, 그래서 오래전에 보고도 읽어보지 않던, 친구가 내가 글쓰기를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서 건내던,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꼼꼼히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다보니 그 뻔한 이내 삶의 사이를 채우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었고, 나는 참으로 뻔한 삶만을 바라보고 그 사이를 채우는 것들에 대해 무관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뻔한 사람들 사이를 채우고 있던 것들은 구부러진 등을 안을 때 토닥토닥거리던 어린 여동생의 손가락이요, 넘어져서 생채기가 날 때조차 그 바람에 사뿐히 날리던 연분홍 벚꽃이요, 카스테라를 만들 수 있는 밀가루라며 시멘트 벽돌을 열심히 빻아주던 손놀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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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하는 것은 그 사탕을 훔쳐서 목덜미를 잡혀 가던 아이가 아니라, 16살 독기 어린 소녀가 아니라, 유채꽃대를 훓던, 어설프면서 치기어린 도시락 까먹기를 하던 아이만이 가슴 속에 남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다 읽고 나니 어린 여동생을 자기 손으로 보내고 시멘트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있을 동구가 아니라 '단술같은 바람 속, 융단같이 깔린 낙엽' 위에서 여동생을 위해 감나무 감을 따려고 폴작거리며 웃고 있을 동구가 생각난다.

속눈썹까지 간질거리는 이 봄 날, 내 마음 속, 그 유채꽃대를 훒던 그 아이를 기억하게 해 준 이 작가에게, 솜사탕 하나 날려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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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 - 인류 최후의 에덴동산, 아마존 오디세이
정승희 지음.사진 / 사군자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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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생활 다큐멘터리가 TV 속에는 성행이다. 그런데 픽션도 아니고 논-픽션인 생활 다큐멘터리 속에서 삑-소리 나는 욕을 하면서 싸우는 사람들의 광경이 꼭 나온다. 정말 영화같이, 드라마같이, 절정 부분에 가면 갈등이 생기고, 영화같이, 드라마같이 사람들이 싸운다.

창피하지도 않나?

그래서 생각하길, 담당 PD가 그러한 상황을 적당히 ‘연출’ 하고 쌍방 동의하에 찍은 논-픽션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작년 여름, 어찌하여 한 공영 방송 다큐멘터리에 나름 주인공으로 출연하면서 그 상황은 100% 픽션일 수 있다, 고 알게 되었다. 한 달 가까이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심지어 낮잠 자는 시간까지) 카메라를 들이미는데, 어찌 그 앞에서 부부가 말다툼하는 모습을 안보일 수 있겠는가. 더구나 부부가 갈등하는 모습을 한 번 찍고 싶다고 넌지시 말도 했던 터라, 나와 남편이 말다툼을 하기 시작하자 무겁다고 내려놓았던 카메라를 본능적으로 번쩍 들더니 코 앞에서 찍기 시작했다. 정말 부부 싸움은 논-픽션이었다고!

그런데, 정작 물에 빠진 돈을 말리지 않았다고 야단치던 남편에게 야속했던 마음이 PD 에게 돌아간 것이다. 우리 심각하거든요. 그 카메라 좀 내려주실래요? 부부가 말다툼을 하면 말리지는 못할 망정 온 동네 방네 소문을 다 내려고 하는 그 ‘직업 정신’이 너무나 얄미운 것이다. 더구나 마침 이러한 상황을 기다렸다는 듯이 찍는 그 순발력에 또 한 번 심사가 뒤틀렸다. 시청률도 생각해야 하니깐, 이라고 이해하면서도 한 인간의 감정 앞에서 무감정으로 일할 수 있는 그런 익숙함에 소름이 끼친 것이다.

+++

[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를 소름 끼치게 읽던 딱 중간, 이 책의 저자, 정승희가 궁금해서 검색을 했다. [KBS 도전 지구 탐험대]의 PD. 10년간 미국에서 머물면서 아마존 60여개 부족을 촬영 방송. 그러고 보니 발가벗고 커다란 뱀을 휘감고 애벌레나 개미 따위를 먹는 인디언과 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가슴 부분을 가리고 다니며 ’어머나‘를 연발하던 연예인의 모습을 TV에서 어느 날부터인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왜 [도전 지구 탐험대]는 종영을 하게 된 것일까.

개그우먼 정정아가 아나콘다에 물리는 사건으로 [KBS 도전 지구 탐험대] 종영.

기억이 난다. 정정아가 아나콘다에 물렸는데, 응급처치를 한 뒤 촬영을 다 못했다고 아나콘다의 이빨을 상처에 다시 꽂고 재촬영을 요구했다는 PD 이야기까지도. 그런데 그 PD가 이 책을 쓴 정승희 PD다. 절반 가까이 이 책을 읽은 나로써는 문명인들을 ‘자연을 떠나 왜 그렇게 불행하게 사냐고’, ‘무엇인가에 중독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 아니냐고’ 위로하고, 개미와 모호이 애벌레와 모뻬이다 애벌레 사이에서 더 맛난 게 무엇일까 갈등하고, 인디오의 돈은 몸빼 주머니에서 나오는 할머니의 꼬깃한 지폐처럼 살아있는 생물이라던 그 정승희 PD와 아나콘다 이빨을 상처에 다시 꽂고 재활영을 했다는 정승희 PD를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반나절의 검색 끝에 정승희 PD와 개그우먼 정정아가 공동 기자 회견을 통해 언론사의 오보이다, 라고 했고, 정정아는 손해 배상을 받고, [도전 지구 탐험]은 종영했고, 정승희 PD는 [스타 뉴스]와의 인터뷰 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3, 4년 전부터 준비해온 남미에 대한 여행정보와 남미 촬영 정보를 담은 교과서적인 책을 집필해 출간하겠다. 이번 일을 계기로 여행정보 책에 정정아 사건을 집중적으로 담으려 한다. 시골로 내려가서 근신하면서 글을 쓰겠다.“

2005년 10월에 프로그램은 종영되었고 딱 1년이 지난, 2006년 11월에 이 책이 나왔다.  정정아 아나콘다 사건 이야기는 그의 첫 번째 책, [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에는 나오지 않고, 열혈 게스트였던 미스코리아 손민지가 백혈병으로 죽었다는 이야기와 여자들만 있는 야르브족의 아나콘다 사냥 이야기만 나왔다.

그는 정정아 사건에 대해
쓰고 싶었던 것일까,
쓰지 못하게 한 것일까,
쓰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

스무살 청년, 이창수는 KBS 월드넷에 4부짜리 여행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기로 결정하고, 자전거로 쿠바를 횡단한다. 그 여행을 다룬 [원더 랜드]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나온다.

‘이창수의 쿠바 자전거 여행에 필요한 그림: 하바나 전경 스케치, 바닷가, 재미있는 장면, 주행 도중 넘어지는 장면, 재미있게, 감동적인 상황을 적절히 섞어...’ 앞으로 일주일간 찍게 될 나의 자전거 여정을 일종의 휴먼 드라마로 승화시키겠다는 계획인 것 같다. 하지만 자전거 펑크가 나고, 내가 주행 도중 넘어지는 위험천만한 장면들을 염두에 두어다는 것은 썩 기분이 좋지 않다. PD 형이 내 뒤를 따라오면서 ‘어서 넘어져’라고 부두식 주문을 외우지나 않나 모르겠다.

-중략-

자전거가 펑크 났을 때에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것 같다. 자전거를 타다가 펑크가 나면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다. 펑크를 때우는 작업은 그리 힘들지 않지만 의욕이 몸속을 빠져나간다. 그런데 PD형은 기쁜 얼굴로 차에서 내려 펑크 난 바퀴와 그것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해 있는 나를 촬영했다.

이창수는 일주일간의 월드넷 다큐멘터리 촬영을 끝내고, 마지막 남은 일정을 차질 없이 끝내기 위해서 얄밉던 PD 형 배웅은 커녕 간단히 작별 인사를 하고 니께로로 페달을 힘차게 밟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말없이 자전거 페달을 밟고 한참을 가다가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생각했다. 내가 오늘 니께로까지 가지 않으면, 그래서 원래 목적했던 카보 크루즈에 가지 않는다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중략- 바야모에서 7km 정도 간 곳에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PD 형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정류장으로 돌아갔다. 형은 대합실에 멍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나는 자전거를 들고 대합실까지 들어갔다. 내가 들어가자 형은 번쩍 손을 들고 나왔다. 우리는 얼싸안고, 얼마나 아쉬웠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리곤 맥주 한 캔을 나눠 마셨다. 따뜻한 맥주였지만, 더없이 맛있었다.

+++

정승희가 말하는 아마존은 인류 최후의 에덴 동산임이 분명한 듯 하고,
이창수가 말하는 쿠바는 체게바라 티셔츠만이 존재하는 한국과 다를 바 없음이 분명한 듯 하고,
김소현이 말하는 시골은 좋은 바람 마셔가며 여전히 부부싸움하는 곳이 이 분명한 듯 하다.

다만, 말하고 싶었을 정정아 사건,에 대해 한 마디 말도 안한 마흔 살 정승희나
한 달 동안 밥도 못 먹으면서 촬영하던 PD를 피해 제주도로 훌쩍 달아난 서른살 김소현이나
스무살 이창수보다도 못난 놈인 것도 분명한 듯 하다.

+++

잠깐, 아주 잠깐, 여전히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일상을 밥도 안 먹고, 머리도 못 감고, 카메라 테잎 50개가 든 가방을 한 쪽 어깨에 매달고, 그 놈 드럽게도 카메라 들이미네, 라며 욕을 먹으며 찍고 있을 그 PD 아저씨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명함을 찾아야한다는 귀차니즘에 결국 접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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