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 인 더 하우스 보이 프럼 더 우즈
할런 코벤 지음, 노진선 옮김 / 문학수첩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초의 기억은 빨간색 계단 난간, 어두컴컴한 숲, 콧수염을 기른 남자의 초상화, 여자의 비명이었다. 그 이미지가 등장하는 꿈을 평생 꿨지만 아직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의미가 있기나 한지 모르겠지만.

 

 

숲에 버려졌던 어린 소년은 어른이 되었다.

전편에서 DNA 사이트에서 자신과 일치하는 DNA를 가진 사람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와일드는 그 사람보다 더 가까운 사람을 찾아낸다.

아버지를 찾아간 와일드.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단서는 알 수 없었다.

여행 중에 만난 여자와의 하룻밤. 아이가 생긴 줄도 몰랐다는 말을 듣고 와일드는 그냥 집으로 돌아온다.

 

<보이 인 더 하우스>에서는 와일드의 가족 찾기와 함께 SNS 망령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조직적으로 타깃을 잡아서 거짓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버리는 악플러들.

그들을 찾아서 처단하는 조직.

그 사이에 와일드와 연관된 사람들.

살인.

스릴러 독자라면 혹~ 할 이야기들이 널려있다.

할런 코벤은 이야기꾼이다.

 

와일드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가 가진 이야기의 마지막이 다 보이지 않았다.

숨겨진 조각 하나가 풀렸을 때 진정한 이야기의 끝을 알게 될 것이다.

 

헤스터와 오렌의 알콩달콩은 볼 수 없었지만 그들의 진지하고 깊어진 관계는 안정적이다.

와일드와 라일라의 사랑도 안정되어가고 이제 와일드는 정착하려 한다.

하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와일드의 역사가 남았다.

그를 찾는 사람들도 여전하고, 이제 와일드는 쓰임에 따라 적이 될 수도 아군이 될 수도 있는 강력한 '사람'을 얻었다.

찾기 쉽지 않은 와일들을 한방에 찾아낸 해커.

SNS에서 거짓을 휘두르는 사람들을 혼내주는 자경단의 리더.

그가 와일드의 힘이 될지 그의 반대편에 설지는 오직 할런 코벤만이 알 터.

 

리얼리티 쇼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진정한 사랑도 보지 못하는 사람의 모습은 절망스럽다.

그러나 먹고 먹히는 이 먹이사슬의 진정한 승자는 누구일까?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

이 시리즈는 읽을수록 사람들의 겉과 속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게 된다.

 

정직하고 선량한 사람의 탈을 쓰고

모니터 불빛 아래서 벌이는 그들의 잔인함은 현재 진행 중이다.

<보이 인 더 하우스>를 읽으며 SNS를 접어야 하나?라는 생각도 해봤다.

 

내가 아는 SNS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진정한 마음일 거라 믿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크릿 플레이스 더블린 살인수사과 시리즈
타나 프렌치 지음, 고정아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범인은 중요하지 않아요~ 찾아가는 길이 중요하지~

 

 

 

<페이스풀 플레이스>에서 아홉 살이었던 홀리는 이제 사춘기 소녀가 되었다.

사립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는 홀리는 학교 익명게시판인 <시크릿 플레이스>에서 1년 전 죽은 옆 남학교 학생 크리스토퍼 하퍼의 죽음과 관련 있는 게시물을 발견하고는 옛정(?)이 있는 스티븐 형사에게 건넨다.

 

스티븐은 이제 미제사건부서에서 일한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살인사건부서에는 아직 발령받지 못했다. 홀리가 가져다준 그 '단서'가 자신이 살인사건부서로 갈 수 있는 티켓이길 바란다.






피 끓는 10대들의 호르몬이 여기저기서 들끓고 있는 학교를 배경으로 형사들과 학생들의 첨예한 대립을 그린 <시크릿 플레이스>.

 

첫 수사를 맡았던 콘웨이는 쉬워 보였던 이 사건이 풀리지 않은 채로 일 년이 넘어가고 있다.

콘웨이와 스티븐은 이 해묵은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떤 학교든 뭉쳐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

조앤과 줄리아로 대표되는 두 그룹은 서로 다른 성향으로 대립적인 관계다.

이 깜찍한 여자아이들은 서로 상대방 그룹을 의심스럽게 만든다.

스티븐은 이 아이들에게서 일 년 전 알아내지 못한 이야기를 알아내야 한다.

게다가 콘웨이의 마음에 들어 살인수사과로 옮겨 가고 싶은 욕망에 꿈틀댄다. 그러나 스티븐은 신중하다.

 

그곳은 아름다웠다. 나는 아름다운 것이 좋다. 옛날부터 그랬다. 내가 가지지 못했다고 미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좋아했다. 그것을 가지려고 더 노력하고 더 꽉 움켜잡는다.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때까지.

 

 

스티븐은 조용하고 진지하면서도 집요하다.

선생은 물론 경찰까지 마음대로 요리하는 있는 집 아이들.

그 아이들 중 한 명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

누군가 크리스토퍼의 죽음에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이 단서가 과연 범인에게로 이어질까? 아니면 범인을 은폐하기 위한 계략일까?

 

사춘기 아이들의 심리와 신중하게 사건을 대하는 형사의 심리 묘사가 압권인 이야기다.

 

있는 집 아이들은 부모의 힘을 등에 업고 무서운 게 없다.

세상을 다 가진 아이들은 어른들도 우습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꺼내지지 못한 고통과 슬픔과 자괴감들이 끙끙거리고 있다.

그걸 감추기 위해 아이들은 더 잔인해지고, 더 싸가지 없어지고, 더 잘난 체한다.

 

그들의 우정이

그들의 비밀이

그들의 거짓말이

그들의 보호막이

한 겹씩 벗겨질 때마다 이미 그 시기를 지난 어른들의 이해가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읽을수록 타나 프렌치의 필력에 반하게 된다.

섬세하면서도 디테일한 이야기의 플롯은 독자를 시작과 동시에 끝까지 달려가게 하는 힘이 있다.

두꺼운 벽돌 책임에도 불구하고 시작하게 되면 멈추기 힘들다.

 

기숙 학교의 살인 사건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흥미로운 소재는 아니다.

그러나 타나 프렌치의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읽으면서 페이지가 줄어드는 게 아까울 정도였다.

빨리 다음 작품을 만나고 싶어서..

 

연달아 프렌치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깊숙한 이야기의 늪에 더 머물고 싶어진다.

무더운 폭염 속에서도 이 이야기들은 더위를 잊게 만들어 주었다.

 

더위 피해서 폭염 속에 돌아다니느라 체력을 고갈 시키느니

얼음 음료를 앞에 두고 편안한 집에서 촘촘하지만 묵직한 스릴과 긴장이 넘치는 타나 프렌치의 작품을 읽으면 더할 나위 없는 더위 사냥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이스풀 플레이스 더블린 살인수사과 시리즈
타나 프렌치 지음, 권도희 옮김 / 엘릭시르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렇게 지독한 가족 스릴러는 처음이야!

 

 

<시크릿 플레이스>를 읽기 전 부랴부랴 전편격이라 할 수 있는 <페이스풀 플레이스>를 읽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이 <시크릿 플레이스>에 나오기 때문에 미리 읽어 두고 싶었다.

 

 

사실 한심하고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였다. 십 대 소녀들이 매일같이 겪는 그렇고 그런 얘기. 하지만 바로 그 일이 이번 주에 있었던 모든 사건들로, 지금 이 방으로 우리를 이끈 것이다.

 

 

지긋지긋한 가족과 동네를 떠나 경찰이 된 프랭크.

어느 날 자신을 찾는 다급한 동생의 전화 한 통이 그를 다시 페이스풀 플레이스로 이끈다.

 

같이 도망치기로 한 날 홀연히 사라진 프랭크의 첫사랑 로지.

그녀의 가방이 범죄의 온상이었던 16번지 벽난로에서 발견된다.

 

연을 끊고 살았던 가족이 있는 곳.

첫사랑 로지의 흔적이 남은 곳.

 

누가!

왜?

로지를 죽였을까?

 

어딘가 살아있을 거라 생각했던 로지의 죽음은 아주 오랜만에 만난 남동생 케빈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발을 빼려야 뺄 수 없는 이 지긋지긋한 동네. 그리고 그의 가족.

원하지 않았던 가족 상봉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럭저럭 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프랭크가 원하지 않았지만 그의 딸 홀리도 몰래 자신의 가족을 만나왔다는 걸 알게 된다.

 




촘촘한 이야기가 스릴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스릴러의 탈을 쓴 문학작품이다!

 

누가 로지를 죽였는가?

누가 케빈을 죽였는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자신은 이 사건에 관여할 수 없는 프랭크는 휴가를 내고 단독으로 사건에 뛰어들지 않고(!) 살인수사과의 신참 스티븐을 꼬드겨 자신에게 사건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게 만든다.

그리고 <브로큰 하버>에서 인상적인 형사로 뇌리를 강타했던 케네디가 여기서 프랭크에게 엄청나게 깨진다(?)

케네디가 이렇게 바보스럽게 보일 줄이야!

 

술이 들어가면 집안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

그런 아빠에게서 동생들과 엄마를 지켜야 했던 맏이들.

아이들을 끊임없이 단속해야 했던 엄마의 걱정은 삐뚤어진 참견으로 상처를 남기는 언제나 도돌이표인 학대가 된다.

이웃 간의 불화와 자그마한 동네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피 끓는 청춘들...

 

 

더블린은 시한폭탄을 안고 묵묵히 항해하는 떠돌이 배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프랭크의 딸 홀리의 영리함은 더 가슴을 에이게 만든다.

 

필력 좋은 작가의 글은 버릴 게 하나도 없다.

쫄깃하다 못해 찡하기까지 한 이야기 앞에서 멘탈이 녹아내릴 것만 같다.

 

타라 프렌치.

미국 스릴러의 속도에 익숙한 독자들은 타라 프렌치의 아일랜드식 스릴러에 적응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타라의 작품에서 범인을 잡는 건 쓸데없는 짓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사건이 발행하기까지 응축된 시간들과 상황들과 감정들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들이 한순간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게 만드는 기폭제가 된다는 그 사실이 중요하다.

그래서 뼛속까지 내려가는 울림이 있는 스릴러가 된다.

 

타라 프렌치의 글은 독자들에게 익숙하지만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게 바로 타라 프렌치의 매력이다.

 

스릴러 덕후들이라면 꼭 읽어 보시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88번 버스의 기적
프레야 샘슨 지음, 윤선미 옮김 / 모모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런던에 가면 88번 버스를 타고 프랭크, 리비, 딜런이 달렸던 노선 그대로 다녀보고 싶다.

 

"에이, 그렇지 않아요. 말 안 하면 두고두고 후회해요. 인생은 딱 한 번뿐이니까요. 알죠?"

 

 

8년 사귄 사이먼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배낭 두개를 매고 런던에 도착한 리비.

그녀는 언니네 집으로 가기 위해 88번 버스를 탄다.

그리고 그곳에서 노 신사 프랭크를 만난다.

서슴없이 말을 건네는 프랭크는 의심할 시간도 주지 않고 리비를 무장해제 시킨다.

 

60년 전 88번 버스에서 만난 빨강 머리의 아가씨.

그녀의 당찬 모습에 반한 프랭크. 그녀가 버스에서 그려준 자신을 그린 그림 한 장을 간직하고

그녀가 적어준 전화번호를 잃어버린 프랭크는 그날 이후 그녀를 만날까 싶어 시간이 나는 대로 88번 버스를 탄다.

 

프랭크의 사연을 들으며 리비는 #88번버스의그녀 를 찾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프랭크의 요양사 딜런이 그녀를 도와 버스 정류장마다 #88번버스의그녀 를 찾는 포스터를 붙인다.

프랭크의 소원은 이루어질까?

 

세대를 건너 이어지는 그들의 모습은 다른 듯 닮았다.

60년 전 그녀의 모습이 리비의 모습이었다.

 

부모의 의지를 꺽지 못해 자신의 길을 관철시키지 못한 프랭크와 리비에게 88번 버스의 그녀가 남긴 선물은 프랭크에서 리비에게로 이어진다.

못된 남자를 만나서 아이를 갖게 된 여자들의 이야기도 리비에게로 대물림된다.

그러나 그렇게 답습하는 이야기는 조금씩 나아진다.

세대가 거듭되면서 그녀들과 그들의 이야기는 점점 더 나은 자리를 잡아간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기적은 있을 법 하지 않은 일을 가능하게 만든다.

<88번 버스의 기적>은 비현실적인 이야기 같으면서도 현실적이다.

그래서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언젠가 가 본 적 있는 거리들의 모습이 계절을 달리해서 떠오르고

다음에 가게 되면 88번 버스를 타고 프랭크, 리비, 딜런과 함께 하는 마음으로 그들이 달렸던 코스를 더듬어 보고 싶다.

 

"세월이 지나니 생각이 바뀌더라고. 뭐 내가 세기의 러브스토리를 원해서 그녀를 찾는 게 아니야. 그러기엔 너무 늙었지. 난 그녀를 찾아서 감사 인사를 하고 싶어."

 

 

자신의 의지대로 인생을 살았던 그녀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가치를 남겨 두었다.

노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리비와 딜런은 그들의 가족조차도 알지 못하는 진실과 진심을 알게 된다.

프랭크의 처지를 보면서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가하는 '삶의 참견'에 대해 생각해 본다.

 

태어날 땐 선택권 없이 태어났다 해도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최선의 선택은 그 누군가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다.

나 자신만이 온전하게 내가 원하는 걸 알 수 있으니까..

 

우리나라만큼이나 영국의 부모들도 자식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려는 걸 보니 역시나 답답하다.

그럼에도 좋은 기운으로 오지랖 넓게 사람들의 인생에 참견해서 그들의 인생을 바꿔 놓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88번 버스에서 맺은 인연들이 서로의 인생에 어떻게 참견하는지를 읽다 보면 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모처럼 훈훈한 마음으로 잠깐의 기적을 꿈꾸었던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드나잇 스완
우치다 에이지 지음, 현승희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담담한 문체가 쌓여서 결국 백조처럼 날아오르는 이야기.

 

 

"나처럼 되면 안 돼!"

나기사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째서인지 이치카의 고독이 제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처음에 불쾌했던 이치카의 눈. 그것은 예전의 내 눈이 아니었던가.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도 기대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고독한 아이의 눈.

 

 

여자가 되어 고향 히로시마를 떠나 성전환 수술을 받을 돈을 모으고 있던 나기사는 어느 날 졸지에 조카 이치카를 맡게 된다.

뉴하프의 삶을 살면서 진정한 여자가 되기를 소망했던 나기사에게 이치카는 짐이었지만 그녀를 돌보는 대신 고향에서 보내주는 돈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아기 때 보고 못 본 조카 이치카는 사촌 누이의 딸이다.

키가 크고 예쁜 얼굴을 가졌지만 표정도 말도 없는 아이다.

두 사람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됐다.

 

진정한 여자가 되기 위해서 꼭 모성애가 필요했을까?

 

발레에 재능이 있는 이치카는 전학 첫날부터 학교에서 폭력적인 아이로 자리 잡았지만 그녀 자신이 학대 피해자라는 걸 아무도 모른다.

견디기 힘들 때마다 팔뚝을 물어뜯는 자해를 하지만 아무도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치카는 말이 없는 아이로 살고 있었다.

 

그런 이치카가 짐스럽고 답답하지만 나기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잠시만 맡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 방어막이 되어 주었으니까.

그러나 이치카의 춤을 보고 이치카의 꿈을 이뤄주고 싶었다.

비싼 발레 레슨비를 감당하고, 이치카에 대한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가면서 나기사는 모성애를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게 전부가 되었어야 했을까?

자기 자신을 놓아 버릴 정도로?

 

일본에서 수많은 상을 받은 영화의 원작 소설 <미드나잇 스완>

꽉 막힌 일본의 현실 앞에서 나도 고구마 백 개는 먹은 느낌이다.

닫힌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소수"의 사람들의 모습이 먹먹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미즈키의 변신이 훨씬 주인공답게 느껴졌다.

 

이치카가 고생 끝에 백조처럼 날아오르려 할 때 그녀의 발목을 잡은 건 그녀를 방치했던 엄마였다.

스스로 달라졌다고 말하며 이치카를 찾아온 엄마 사오리는 나기사의 자리를 뺏어 버렸다.

아니, 나기사에게 영원히 뺏겨버릴지 모를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사오리는 이치카와 나기사 사이의 연락을 끊어버렸다.

 

왜 모든 인물들이 그렇게 극단적이어야만 했을까?

 

자식을 자신의 물건처럼 취급하는 부모.

자신의 꿈을 대신 이루게 하려는 부모.

그 어느 부모도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한 게 아니었다.

아이는 물건이 아니고, 대리만족이 아니니까...

 

꿈을 이루고 싶었던 백조들

누군가는 훨훨 날아올랐고.

누군가는 훨훨 날아오를 준비 중이고.

누군가는 훨훨 날아 사라졌다...

 

삶에 대해서

인생의 기회에 대해서

다른 정체성을 찾은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기회가 되면 영화도 보고 싶다.

우리에게 초난강으로 알려진 구사나기 츠요시의 연기가 보고 싶다.

나기사라는 역을 그가 완벽하게 소화했을 거 같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