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숲에서 월든을 읽고 필사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클로드 모네 그림, 전행선 옮김 / 더모던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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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었다.

그랬음에도 이 책에서 만난 문장들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이런 문장들이 있었나? 싶었던 글들 앞에서 허겁지겁 읽어대기 바빴던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그렇게 흘려보냈던 문장들이 이렇게 다시 내 앞에 머문다.


모네의 <수련>을 미디어아트로 감상했었다.

작품 속에 풍덩 몸담고 있던 그때의 기분이 생생하다.

아이들이 많이 왔던 때라서 그 경쾌한 소리가 아직도 귀에 들린다.

그때는 어수선한 분위기가 맘에 들지 않았는데 이제 와 그때를 떠올리면 그 웃음소리와 왁자지껄했던 느낌만이 살아있다.



필사는 작년부터 조금씩 해오고 있지만 자꾸 멈춘다.

뭔가 미션(?)이 떨어져야만 움직이는 것처럼 필사는 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으면서 좀체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모네의 그림은 햇빛 속에서 보면 찬란하고, 어스름 빛에 보면 은은하다.

마음을 안온하게 하는 그림을 넘기면 현실을 돌아보는 글들이 나를 깨운다.








우리는 무언가를 얻는 대가로 그에 해당하는 만큼의 삶을 지불해야 한다.


대가가 따르는 건 마법만이 아니다.

공으로 얻는 모든 것엔 언젠가 치러야 할 값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독서와 대화와 사고는 소인족의 키만큼이나 수준이 낮다


이 대목에서 웃음이 낫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수준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읽은 것을 내 것으로 소화시키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그건 내 것이 아닌 것이다.


남의 생각을 자기 것인 양 지껄인다고 수준이 높아지는 게 아니다.

옳고, 좋고, 맞다고 느낀 것들을 실생활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계속 낮은 수준에 마물뿐이다...







책에 직접 글을 쓰는 건 두 번째다.

모네의 그림을 보며 힐링하고

소로의 글을 읽으며 생각을 깨우고

잊지 않기 위해 필사를 한다.

그러고 나면 계속 생각이 머문다.


왜 이 문장이 끌리는지

좋은 문장인 거 같은데 왜 이 문장은 끌리지 않는지

그때는 좋다고만 느꼈던 문장이 왜 지금은 사무치게 다가오는지..


그때는 느껴지지 않았던 글의 뜻

몇 년 지났다고 이렇게 와닿는 느낌을 오롯이 느끼며 고급스러운 책 매무새와 듬직한 느낌의 무게감을 느끼는 시간들이 즐거웠다.


책은 읽을수록 내가 모르는 게 많다는 걸 알려준다.

두 번 세 번 만나게 되면 내 안에서 살짝 건드려진 채 솟구치지 못했던 감정들을 만나게 된다.



보고, 읽고, 쓰고, 사유하기.

그림, 글, 필사, 생각.



한 권의 책에서 이 네 가지를 만족하게 하는 책을 만났다.


모네의 그림에 대한 장황한 알은체 대신

소로의 글들을 접목시켜 놓음으로써 읽는 이 스스로 생각의 깊이를 더하게 만들어진 책이다.



책을 선물해 주고 싶은 사람에게 건네주면 좋을 책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알아서 기뻐할 것이고

책을 모르는 사람도 받았을 때 모든 감각이 깨워지는 책이다.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기에 가장 기분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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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가
김진영 지음 / 반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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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이미 조용히 시작되었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점점 유화를 잠식해 갔다.

김진영 작가는 <마당이 있는 집>으로 알게 되었다.

처음 <마당이 있는 집>을 읽고 우리나라 장르소설도 많이 발전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우연치 않게 읽게 된 책 한 권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작가님이라 이번 신간 <여기서 나가>는 제목부터 호기심을 잔뜩 가지게 했다.


<여기서 나가>라는 말이 주는 느낌은 강렬했다.

발을 들이면 안 되는 곳에 발을 들인 느낌

무언가가 사수하는 공간에 발을 들여 침입자가 된 느낌

내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내쳐지는 느낌

이 복잡한 느낌들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고 처음부터 책의 분위기는 불안과 긴장을 고조시켰다.


비가 대차게 쏟아지는 밤

논에 심어논 작물들이 걱정되어 나간 상조는 검은 형체의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인물을 본다.

그 자가 서 있던 곳에서 빨간 글씨로 큰 아들 형진의 이름이 적인 5만 원짜리 불태워진 지폐를 주운 날부터 상조는 큰 아들의 죽음에 의심을 품는다.

그 의심은 큰 며느리에게 집중되고 상조는 자신이 죽기 전에 형용과 성희에게 땅을 증여해 준다.

이 모든 건 큰아들을 죽인 며느리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손녀에게 재산이 가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아버지에게 땅을 증여받은 형용은 그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형이 몰래 어머니 이름으로 사둔 땅에 베이커리 카페를 차린다.

형의 친구라는 필석의 도움을 받아 일본식 카페를 연 형용은 입소문으로 금방 인기를 끌어 SNS 명소가 된 카페를 운영하며 성공을 꿈꾸지만 아내 유화는 재료들이 빠르게 상해버리는 이 공간에서 일본식 옷을 입고 일본어로 자신을 꾸짖는 귀신을 보게 되는데...









형용은 그 미소에 자기도 모르게 경계를 풀었다. 필석이 이어서 들려줄 말이, 이 터가 정말 특별한 곳임을 증명해 주기만을 바랐다. 그리고 어느새 그 말이 사실인지 여부는 형용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작도 그랬지만 이번 작품도 몰입도가 상당하다.

페이지마다 의심을 심어놓고

인물들마다 서로를 믿지 못해 갈등한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공간이 대립하는 이 이야기는 오래 묵은 인간의 욕망과 염원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군산이란 도시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그 안에서 발생된 인간의 욕망이 염원과 맞물려 죽은 자가 산자를 몰아내는 상황이 리얼하게 그려진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한국에서 부를 이룬 일본인들은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 한국인으로 살려고 했다.

성공한 일본인도 있고 실패한 일본인도 있다.

그들의 자손들이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 인간의 욕망만을 자극하여 부를 축적하고 자신들의 리그를 만들어 갔다는 사실이 은근하게 깔려있다.

<여기서 나가>는 실패한 일본인이 남긴 지독한 욕망에 잠식되는 인물로 형용을 내세운다.

잘난 형의 그늘에서 차남으로서 자기 것을 갖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형용에게 카페 '유메야'는 마지막 보루였다.

그걸 지키기 위해 그가 한 일들은 [잘, 살기 위한] 노력이었을까, 그저 돈에 대한 욕망이었을까...


공간에 깃든 사람의 염원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생각해 볼 이야기였다.


이 작품의 모든 인물들이 그저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맹렬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람이었든, 재물이었든, 자신의 욕망이었든...

옳은 마음씨가 결여된 행동은 그것이 얼마큼의 노력을 쏟아붓던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거 같다.


그저 오컬트적인 공포 소설로만 치부하기에는 역사적으로 청산 안 된 일들이 끝까지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더 간담이 서늘해지는 이야기였다.


인간이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과 그 불가능성을 테스트 당한 느낌이다.

내가 상조였다면?

내가 형용이었다면?

내가 유화였다면?

내가 해령이었다면?


인간의 욕망과 자기 파괴성의 불편함과 사유를 동시에 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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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선 남자 스토리콜렉터 126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허형은 옮김 / 북로드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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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사정이 허락하는 한 위장잠입해서 비밀리에 수사해야 해.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디바인 자네가 곧 육군 당국이야."

"만약 '물 샐 틈 없는' 제 위장이 까발려지면요?"

"그럼 우리는 모르는 사이인 거네."



트래비스 디바인이 돌아왔다!

전편 보다 더 강렬하게!

첫 장면부터 디바인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전편 보다 훨씬 노련해진 요원의 모습이다.


익숙한 클리셰를 강조하는 캠밸 장군은 절친의 딸이자 대녀인 제니 실크웰이 고향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을 디바인에게 수사하라 명한다.

CIA 작전장교인 제니가 어째서 고향에서 죽음에 이르렀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디바인은 국토안보부 특별수사관이 되어 메인주로 떠난다.


제니는 적에게 당한 걸까. 아니면 아군에게 당한 걸까?





이번 사건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사건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니의 죽음은 석연치 않고, 경찰을 비롯 마을 사람들과 실크웰 가족 역시 디바인에게 친절하지 않다.

경찰은 노골적으로 디바인을 무시하며 감시하고, 제니의 남동생은 사람을 시켜 디바인에게 싸움을 걸고, 제니의 여동생은 정체를 알 수 없다.

외롭게 혼자서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디바인.

그러나 정체 모를 사람들이 디바인을 죽이기 위해 쫓고,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거짓말을 한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게 되는 디바인.


전편에서도 이렇게 화끈했었나? 싶게 화끈한 액션에 물불 가리지 않는 행동이 시원하게 전개된다.

게다가 뭔가를 숨기기만 하는 거 같던 알렉스와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  



냉철한 분석력과 액션배우 뺨치는 능력을 겸비한 디바인은 바닷바람이 거센 추운 메인주에서 매서운 홀대를 받으며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과거의 해결되지 않은 일들은 언제든 매듭을 짓기 위해 미래를 찾아온다.


디바인은 제니가 동생 알렉스를 위해 무언가를 추격했고, 결국 고향에서 그 일의 매듭을 짓고자 했음을 알아낸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전혀 모르쇠로 디바인을 대하고

알렉스 본인은 아무런 기억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디바인은 어떻게 오랫동안 숨어 있는 범인을 잡아낼까?

그토록 마을 전부가 지키려고 했던 비밀을 디바인은 밝혀낼 수 있을까?


전작 보다 디바인의 활약이 돋보였지만 갑작스럽게 능력치가 배가된 느낌이 들었다.

외진 마을의 비밀들이야 뻔하고, 그 상황에서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이유도 뻔하지만

이 뻔한 스토리를 누가 쓰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는 게 바로 작가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 데이비드 발다치는 디바인을 통해 작품 속에서 전에 없이 화끈한 액션신을 보여준다.

<모기남 시리즈>에서 보여주지 못한 액션의 통쾌함을 디바인을 통해 보여주려는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싸늘한 거 같았던 가족들도

뭔가를 감추기 급급한 마을 사람들도

결국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또 다른 살인을 부르고 사람들이 계속 죽어 나가는 이 현상은 누구의 책임일까?


권력이 아무리 좋아도, 자신의 앞날이 얼마나 창창하던

옳은 결정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때 그 사람들이 옳은 결정을 했더라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전편을 읽지 않더라도 무난하게 읽을 수 있는 <경계에 선 남자> 영상미가 있어서 머릿속에서 휙휙 그려지는 이미지가 곧 영화로 나올 기세다.

새로운 미국의 숨은 영웅으로 탄생할지 기대되는 캐릭터 트래비스 디바인!


다음 편에서는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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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 연습장
강윤미 지음, 공인영 그림 / KONG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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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쁨과 감동 두 가지를 간직한 그림책 <귤 연습장>을 만났습니다.

예쁘네라고 생각했지 큰 감동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읽어가다 뭔가 뭉클한 감정이 돋아나는 걸 느꼈네요.



나는 귤이 많은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귤이 많은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는 귤이 그냥 나무에서 툭 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가지 끝에 하얀 꽃이 피어 있는 걸 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감정의 싹이 틀 때도 비슷해요.

처음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느 순간 와르르 돋아나기 시작하죠.




귤 나무의 시작인 하얀 꽃망울이 피는 게

감정의 싹이 트는 모습으로 이어지는 글을 보며 저도 모르는 감정이 쓱~ 자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바쁜 일손을 도우려 귤을 따는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죠.

계속되는 반복적인 귤 따기 노동이 지루해질 때 

아이는 생각합니다.




귤 하나에 단어 하나를 생각했어요


귤 하나에 단어 하나.


엄마 귤

친구 귤

별 귤

겨울이라는 귤


귤을 따며

가까이 있는 사람들

좋아하는 것들

갖고 싶은 것들을 떠올리며 이름을 붙여줍니다.




이따금 나의 마음은 귤껍질처럼 울퉁불퉁해졌어요.


귤에 감정을 투영한 말들이 참 좋았습니다.


아이가 딴 귤들은 박스에 담겨 육지로 나아갑니다.

아이는 자라 귤처럼 섬을 떠납니다.


귤 연습장 덕분에 시인이 된 아이는

다른 아이들도 각자의 꿈을 그 연습장에 써넣을 거라 말합니다.



이 그림책을 보면서 인생의 흐름을 본 기분입니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며 꿈을 키운 사람의 생각이 커지는 걸 보는 느낌이 참 포근했어요.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내 꿈은 어디에 적어 둔 걸까?

지금 나는 꿈을 이룬 어른인 걸까?

아니면 아직도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어른일까.

아니면 이제 꿈을 접고 그냥 일상에 묻혀사는 어른일까..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이 아직 다 자라지 못함을 느꼈습니다.

내 생각은 저만치 어린 생각 속에 남아 있는데

몸만 늙었네요..



귤 하나에 꿈을 담은 이야기 <귤 연습장>


지금 마음에 가지고 있는 여러분의 <귤 연습장>을 펼쳐보세요.

거기에 적혀 있던 당신의 꿈은 어디쯤 와 있나요?

모두가 <귤 연습장>에 적힌 모습대로 살고 있었으면 좋겠네요..


저처럼 몸만 나이 들어가는 어른이들에게도

다시 꿈꿀 수 있는 감정이 귤꽃처럼 하얗게 피어나는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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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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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에 대하여>를 읽지 않아서 이 작가의 스타일을 몰랐다.

정말 세상에 대한 문제 제기를 엄청나게 잘 하는 작가다.



책을 읽고 나서 멍해졌다.

'정신평등주의"로 사람들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전제로 사회 구조가 바뀌어 간다.

정말 세상 모든 사람들이 평등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평등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자신들 보다 똑똑한 사람들을 역차별 하는 세상은 왜 만들어지는 걸까?


처음엔 신랄하게 조롱하던 피어슨과 에머리.

피어슨은 자신의 집에서만은 현 체제를 불평하고 까발린다.

피어슨은 높은 IQ를 가진 일본 남자의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 둘을 낳았다.

다윗과 잔지바는 영재다. 하지만 모두가 평등한 시대에 그들은 역차별을 받는다.

피어슨은 웨이드와 사이에 딸을 하나 낳았다. 평범한 이름인 루시는 오빠 언니와는 다르게 모든 게 늦다.

어느 날 피어슨은 에머리와 거실에서 대화중에 루시의 지능이 낮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말을 루시가 듣는다.

그리고 피어슨은 루시에 의해 당국에 고발된다.

평등을 위해 하는 단어를 말했다는 이유로...


아주 옛날 자신이 여호와의 증인인 부모에게 했던 짓을 자기 딸에게 받게 되는 이 아이러니라니~



정의로움과 평등을 내세우며 세상은 또 다른 차별을 만들어 낸다.

이젠 아무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다.

내가 내뱉을 말을 머릿속으로 먼저 검열을 해야 한다.


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항상 문제의 불씨를 지니고 있는 피어슨이 불안불안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진정하라고, 세상에 들이대지 말라고 충고하는 에머리에게 동조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진정 선하거나 옳은 사람은 없었다.

에머리는 정치적이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빨리 알아채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자신의 친구를 짓밟아도 되는 걸까?


피어슨은 자신의 입이 참지 못하고 뱉어낸 말들로 인해 사회적으로 매장당한다.

그녀에게 결정타를 매긴 건 다름 아닌 에머리다.


40년간의 우정이 박살 나는 건 정말 순식간이다.

피어슨의 반격은 속 시원했지만 그렇다고 잘했다는 느낌은 없다.

이 모든 일이 나에게 일어난다면 이건 정말 서글픈 일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마음이 불편하다.

이 이야기의 끝은 다시 뒤바뀐 세상의 불공평함을 얘기하기 때문이다.

작중 피어슨이 쓴 <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는 이전 세상으로 돌아오는 문이 된다.

그러나 '정신적 평등'을 몰아낸 그 자리에는 저마다의 IQ를 바코드처럼 몸에 새겨 넣으려는 움직임이 있다.

평균 IQ 이하는 선거권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피어슨은 그 어떤 등장인물들보다도 지능이 낮다.

앞으로 피어슨은 어떻게 될까?


그러거나 말거나 사회적으로 매장 당했던 에머리는 다시 부활한다.

그리고 이제는 이전과 정반대의 입장에서 자신을 불태운다.

그럴 수 있었던 바는 피어슨이 올린 동영상이 파멸과 구제의 힘이 되었다는 게 웃픈 대목이다.


이 작품은 곳곳에 웃음 지뢰를 숨겨놓고 있다.

모두가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전제하에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무시한다.

그것이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피어슨 같은 사람이 있다면 에머리 같은 사람도 있다.

늘 돋보이는 건 에머리 같은 사람이고, 잘나가는 것 역시 에머리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피어슨 같은 사람들이 결국은 세상을 바꿀 힘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런 세상에서조차 에머리 같은 약삭빠른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 득세한다.

그래서 세상은 불공평하면서도 공평하고, 공평하면서도 불공평하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변해가는 사회 구조를 보면서도 나와 상관없다는 방관자 시선으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걸 잃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변화의 조짐에 민감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 나에게 직접적인 해가 안 된다는 이유로 방관만 하고 있다가는 결국 원하지 않는 세상에 내동댕이쳐지게 될 것이다.


라이오넬 슈라이버.

이 작가의 작품을 찾아봐야겠다.


아주 신랄하고, 유머러스하면서 세상에 던지는 문제들이 정말 날카롭다.

이 살아있는 이야기 앞에서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우리는 늘 늦지 않게 방관자의 입장에서 깨어나는 민족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옳지 못한 길을 갔다가도 다시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우리처럼 돌아올 수 있을까?

<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의 세상이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그것이 새로운 신호탄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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