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나가
김진영 지음 / 반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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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이미 조용히 시작되었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점점 유화를 잠식해 갔다.

김진영 작가는 <마당이 있는 집>으로 알게 되었다.

처음 <마당이 있는 집>을 읽고 우리나라 장르소설도 많이 발전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우연치 않게 읽게 된 책 한 권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작가님이라 이번 신간 <여기서 나가>는 제목부터 호기심을 잔뜩 가지게 했다.


<여기서 나가>라는 말이 주는 느낌은 강렬했다.

발을 들이면 안 되는 곳에 발을 들인 느낌

무언가가 사수하는 공간에 발을 들여 침입자가 된 느낌

내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내쳐지는 느낌

이 복잡한 느낌들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고 처음부터 책의 분위기는 불안과 긴장을 고조시켰다.


비가 대차게 쏟아지는 밤

논에 심어논 작물들이 걱정되어 나간 상조는 검은 형체의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인물을 본다.

그 자가 서 있던 곳에서 빨간 글씨로 큰 아들 형진의 이름이 적인 5만 원짜리 불태워진 지폐를 주운 날부터 상조는 큰 아들의 죽음에 의심을 품는다.

그 의심은 큰 며느리에게 집중되고 상조는 자신이 죽기 전에 형용과 성희에게 땅을 증여해 준다.

이 모든 건 큰아들을 죽인 며느리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손녀에게 재산이 가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아버지에게 땅을 증여받은 형용은 그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형이 몰래 어머니 이름으로 사둔 땅에 베이커리 카페를 차린다.

형의 친구라는 필석의 도움을 받아 일본식 카페를 연 형용은 입소문으로 금방 인기를 끌어 SNS 명소가 된 카페를 운영하며 성공을 꿈꾸지만 아내 유화는 재료들이 빠르게 상해버리는 이 공간에서 일본식 옷을 입고 일본어로 자신을 꾸짖는 귀신을 보게 되는데...









형용은 그 미소에 자기도 모르게 경계를 풀었다. 필석이 이어서 들려줄 말이, 이 터가 정말 특별한 곳임을 증명해 주기만을 바랐다. 그리고 어느새 그 말이 사실인지 여부는 형용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작도 그랬지만 이번 작품도 몰입도가 상당하다.

페이지마다 의심을 심어놓고

인물들마다 서로를 믿지 못해 갈등한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공간이 대립하는 이 이야기는 오래 묵은 인간의 욕망과 염원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군산이란 도시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그 안에서 발생된 인간의 욕망이 염원과 맞물려 죽은 자가 산자를 몰아내는 상황이 리얼하게 그려진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한국에서 부를 이룬 일본인들은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 한국인으로 살려고 했다.

성공한 일본인도 있고 실패한 일본인도 있다.

그들의 자손들이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 인간의 욕망만을 자극하여 부를 축적하고 자신들의 리그를 만들어 갔다는 사실이 은근하게 깔려있다.

<여기서 나가>는 실패한 일본인이 남긴 지독한 욕망에 잠식되는 인물로 형용을 내세운다.

잘난 형의 그늘에서 차남으로서 자기 것을 갖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형용에게 카페 '유메야'는 마지막 보루였다.

그걸 지키기 위해 그가 한 일들은 [잘, 살기 위한] 노력이었을까, 그저 돈에 대한 욕망이었을까...


공간에 깃든 사람의 염원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생각해 볼 이야기였다.


이 작품의 모든 인물들이 그저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맹렬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람이었든, 재물이었든, 자신의 욕망이었든...

옳은 마음씨가 결여된 행동은 그것이 얼마큼의 노력을 쏟아붓던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거 같다.


그저 오컬트적인 공포 소설로만 치부하기에는 역사적으로 청산 안 된 일들이 끝까지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더 간담이 서늘해지는 이야기였다.


인간이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과 그 불가능성을 테스트 당한 느낌이다.

내가 상조였다면?

내가 형용이었다면?

내가 유화였다면?

내가 해령이었다면?


인간의 욕망과 자기 파괴성의 불편함과 사유를 동시에 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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