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 켈리는 누구인가?
로잘리 크넥트 지음, 한지원 옮김 / 딜라일라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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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리가 말했듯이 만약 일이 잘못되면 나는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두려움 너머의 곳에서 살았던 것 같다. 삶이란 게 불확실하고 어차피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그런 곳에서 말이다. 모국에서 살 때도, 나는 레즈비언 바에서 체포되면 직장을 잃을 것이고, 만약 직장을 잃으면 싸구려 여인숙 같은 곳을 전전하게 되리란 걸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바 출입을 멈추지 않았는데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인생이 마른 쓰레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장르의 책을 오래 읽다 보면 책에 대한 느낌이 올 때가 있다.

그건 단순하게 책의 재미만이 따져지는 게 아니다.

문체라든가, 표현이라든가, 서사라든가, 생각의 흐름이라던가, 드러내지 않았지만 드러나는 것들. 이 종종 느껴지는 때가 있다.

 

이 베라 켈리는 누구인가? 라는 이야기 역시 읽어가는 내내 마음을 흔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퀴어 스파이 소설이라는 표현은 시선을 잡아 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저 대목은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뭔가 색다르다는 느낌이 온다.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중반의 시간이 오며 가며 이 이야기에 담겨있다.

과거와 현재.

 

과거의 베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모호하지만 알게 되고, 아마도 그것을 눈치 챈 엄마는 딸에게 정확하게 표현하지는 못하고 그 분노의 마음을 손찌검으로 나타내게 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와 단 둘이 남은 베라는 학교 성적도 곤두박질치고, 가장 친했던 친구 조앤도 만나지 못하게 된다.

점점 모든 것에 흥미를 잃어가는 베라는 어느 날 엄마와 싸우고 때리는 엄마에 맞서 엄마를 때리고 차를 훔쳐타고 집을 나온다.

 

아마도 50년대 말 그 당시에 딸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된 엄마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엄마 마음은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베라가 인지하게 될 자신의 정체였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베라를 신고하고 체포된 베라는 소년원에서 지내게 된다.

그곳에서 개화되기를 바랐던 엄마였겠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렇게 베라 켈리는 비행 소녀가 되어 기숙 학교로 보내지고 홀로서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60년대 아르헨티나

앤은 캐나다에서 유학 온 대학생이다.

겉모습은 그렇다.

그녀는 CIA로 캐나다 국적으로 아르헨티나에 잠입했다. 대학생 신분으로 KGB로 의심되는 학생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의 동태를 살피고, 쿠데타가 일어날 그곳에서 주요인물들을 도청하며 상황을 지켜보는 임무를 맡는다.

위험해지면 빠져나갈 루트를 꿰고 있었고, 그곳의 조력자의 도움도 안정적이라 믿었다.

그녀는 로만이라는 학생을 감시하기 위해 그의 친구들에게 접근하고 로만의 애인 빅토리아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빅토리아 역시 그녀와 같은 사람이었지만 그 당시엔 모든 것이. 특히 여자는. 더욱더 몸을 사려야 하는 시기였다.

쿠데타가 일어나고 불안정한 상황에서 앤의 조력자는 그녀를 배신한다.

간발의 차로 경찰을 따돌린 앤은 미국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외국인의 발이 묶인 아르헨티나에서 탈출구는 없어 보였다.

유학생 신분으로 위장한 CIA 요원.

임무는 끝났지만 새로운 임무를 부여하며 그녀의 탈출을 적극 지원하지 않는 조직.

믿었던 조력자의 배신.

KGB라 믿었던 친구들의 위험한 여정.

그녀는 자신의 정체와 정체성을 숨기며 그곳에서 탈출할 기회를 엿보며 숨어 지낸다.

그녀는 과연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탈출할 수 있을까?

세상은 레즈비언들의 밀회를 용납하지 못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렇지도 않았던 것이다. 적어도 메릴랜드 소년원에서 복역할 정도로 자신의 세게를 이미 충분히 망가뜨린 뒤라면 말이다.

스파이 소설이라기에는 너무 진지한 문체다.

마치 문학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스파이 소설을 정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로잘리 크넥트는 마치 50년대에서 시간을 거슬러 온 사람 같다.

그 시대를 관통한 사람에게서 나올법한 문체로 베라와 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제목이 베라 켈리는 누구인가? 였나 보다.

베라 켈리라는 레즈비언의 독특한 이력에 대한 이야기였다.

다른 이름으로 살면서 사회에서 격리당하고 조직에서 버림받을 것을 걱정했던 소심하고 여린 베라가

앤이 되어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자신을 바꿔가며 노력한 흔적들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그럼에도 앤으로서 살았던 아르헨티나에서의 모험은 그녀가 진정한 베라로 돌아올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자신은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마지막 딜은 그녀를 쓸모 있을 때까지만 이용하려는 조직에게 받아낼 수 있는 최대한이었다.

그녀의 이용 가치가 높아지도록 그녀 스스로 몸값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그녀가 스스로 탈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베라 켈리로 돌아온 그녀의 삶이 전과는 같지 않겠지만

조용히 베라로 살 거라 생각했겠지만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는 게 조금 서운하다.

왜냐하면 베라는 제임스 본드 같은 스파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그저 소심하고, 어딘가 독특하지만 수줍음으로 그것을 메워버리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언젠가는 증명하고픈 욕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가 베라의 첫 번째 이야기였기를 바란다.

진정한 자아를 찾은 사람만이 어떠한 모험 앞에서도 초연해질 수 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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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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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었지. 나는 생각한다. 세상에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건 없다. 거짓말은 절대 검은색 아니면 희색이 아니다. 전부 회색이다. 진실을 가리는 안개다. 가끔은 그 안개가 너무 짙어서 우리 자신조차 진실을 볼 수가 없다.

 

 


조는 예전에 떠났던 고향 안힐로 돌아왔다.

 

고향은 전혀 변한 것이 없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닫힌 기억의 문. 앞에 발을 디디고 선 조에게 벌어질 일들은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일까?

 

폐광.

구멍.

호기심.

아이들.

쇠지렛대.

해골.

딱정벌레.

그리고

애니.

 

조가 둥지를 튼 그곳은 자신의 전임 교사가 아들을 죽이고 자살한 집이다.

피로 쓰여진 글자.

- 내 아들이 아니야.

 

그 느낌을 조는 안다.

애니도 애니가 아니었으니까.

 

 

 


스티븐 허스트 - 가학적이고 도덕관념이 없지만 영리한 아이. 위험한 조합이죠. 닉 플래처 - 똑똑하지는 않지만 분노가 지나쳤던 아이. 그걸 좀 더 좋은 쪽으로 발산할 방법을 찾지 못했으니 안타까운 일이죠. 크리스 매닝 - 머리가 좋고 상처가 있고 길을 잃고 헤맸던 아이. 항상 찾을 수 없는 걸 찾아다녔죠. 그리고 선생님 - 다크호스. 말로 공격을 튕겨내는. 스티븐에게 진정한 친구와 가장 가까웠던 존재. 그에게는 선생님이 필요했어요. 선생님이 느꼈던 것보다 훨씬 더.

 

 

 

누군가 아주 어릴 때부터 그들을 지켜보아왔고, 그들이 저지른 일들을 알고 있으며, 조를 이곳으로 다시 불러들였다.

그들이 겪은 일들이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마을 안힐로.

 

폐광촌 안힐의 땅속 깊은 곳엔 해골들의 무덤이 존재한다.

그곳은 아무나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곳이 누군가를 찾아내지 않는 이상.

오래된 마을의 전설 속에서 사라진 많은 영혼들의 안식처이자 딱정벌레의 서식처.

그곳이 그들을 찾아냈다. 그들을 불러들였고, 그들은 그곳에서 끔찍한 일을 겪었다.

 

 

 


"오빠를 따라왔어."

 

 

 

 


쇠지렛대에 묻은 피는 애니의 피다.

그날 애니는 죽었었다.

사라졌고, 48시간 후에 나타났다.

어른들은 애니가 가출했다 돌아온 줄로 이해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그 아이들은 알았다.

 

애니가 달라진 걸 아는 건 조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애니와 아빠는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이중 어느 하나도 사실이 아닌 건 없다.

발견되지 않은 거짓이 있었을 뿐.

 

초크맨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튜더는 전작에서 끝 모를 오싹함을 남긴 채 퇴장했다.

그리고 일년 후 애니가 돌아왔다. 라는 제목으로 다시 돌아왔다.

제목과 살짝 흘린 줄거리 때문에 이 이야기는 공포 이야기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것 역시 섣부른 판단이었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

아마도 마무리가 되지 않고 열려있는 결론 때문이다.

마치 쥬만지의 게임판이 어딘가에 묻혀서 다시 둥~둥~ 소리 내기만을 기다리는 기분처럼.

 

공포로 시작했지만 스릴러였고, 스릴러로 알았는데 심리 소설이었으며 심리 소설인 줄 알았는데 복수혈전이었고, 복수인 줄 알았는데 거짓 투성이였다.

서로가 서로의 뒤통수를 치며 엎치락뒤치락 하는 가운데 안힐의 전설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상황에서 끝이 났다.

이놈의 전설이 파헤쳐 졌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엄청나게 공포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찝찝함은 덤이고.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 때문에 이 되풀이되는 역사의 연결고리는 아마도 튜더의 이야기가 무르익을 즈음 다시 되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준다.

 

뭔가 더 근사하고

뭔가 더 확실하고

뭔가 더 쪼이는 그런 이야기로 돌아오지 않을까?

 

제목에 속았다고 울지 말길.

애니와 처키 같은 인형은 속임수였다는 걸 깨달았다고 화내지 말길.

누가 사이코인지 알아내려 하지 말길.

사이코들의 세상에선 사이코가 보이지 않으니.

 

 

 

이 곳은 누가 소유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이곳은 그렇게 착각하도록 내버려 둘지 몰랐다. 심지어 그렇게 착각해주길 바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이곳의 수법이었다. 이곳은 그런 식으로 사람을 끌어들였다. 그런 식으로 소유했다.

 

 

 


튜더는 그런 식으로 우리를 끌어당겼다.

덜 익은 풋사과처럼 풋풋한 여운을 남기며 다음을 기약한다.

저 안힐의 구덩이 속에서 무르익어 언젠가 킹다운 킹을 능가하는 필력으로 되돌아오길 기다릴밖에.

 

애니가 돌아왔다.

제목에 한몫한 애니는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마지막에 홀연 나타나 사람들의 마음에 의문점만 남긴다.

그게 그녀가 돌아온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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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나답게 - 인생은 느슨하게 매일은 성실하게, 개정판
한수희 지음 / 인디고(글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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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언제나 말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 사고가 아니라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 자기 삶의 진실을 드러낸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그런 작고 사소한 것들에 대해서 잔뜩 썼다. 내가 쓰고 싶은 것들과 내가 쓸 수 있는 유일한 것들에 대해 썼다. 진심을 가득 담아 썼다.

 

 

 

 

2016년 첫 출간된 책의 개정판이다.

30대였던 저자의 일상에 대한 글.

정확하게는 소비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의 일상 이야기를 적고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을 객관화해서 글을 쓰는 게 쉽지는 않다.

자기 자신을 분석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니까.

이 책엔 그러한 이야기들이 가감 없이 담겼다.

그래서 읽는 즐거움이 있다.

나도 그런 적 있는데.

나도 같은 걸 느꼈는데.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와 같은 공감의 느낌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같은 시대를 관통해 오면서 저마다의 위치와, 상황과, 형편이 달랐음에도 지나온 과정들은 엇비슷한 우리의 삶.

그 평범한 이야기들을 토해내며서 대리만족감을 느끼게 해주는 작가의 글이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우리의 인생이지만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별로 없다. 그래서 반대로 우리는 나답게, 자신답게 살기를 그토록 바라는 것이리라.

 

 

 

 

두 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누군가의 딸로 살면서도 나 자신을 찾는 것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의 글 자취.

온전히 나답게란 제목엔 그런 뜻이 담겨 있는 거 같다.

스스로를 아무 생각 없이 산 사람이라 말하지만 그렇기에 지금의 그녀가 있는 거 아닐까?

 

 

생각이 많았다면 여행 한 번 못해보고 생각만 하다 말았겠지.

생각이 많았다면 카페 같은 거 해보지도 못하고 생각만 하다 말았겠지.

생각이 많았다면 저지르지 않고 갈망만 하다 말았을 테지.

생각이 많았다면 이런 글도 쓰지 못했겠지.

그녀가 남들 눈엔 무모해 보이는 일을 벌인 것이 고스란히 누군가에겐 간접 경험이 되고, 공감이 되고, 느껴지는 바가 되었다.

그러니 그녀의 생각 없음은 그녀를 위해서도, 그녀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좋은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내 가방 속 물건들은 해결하지 못한 내 문제들 같다.

언젠가는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는 그런 문제들말이다. 아마 나는 그 문제들을 다 해결하지 못한 채로 죽게 될 것이다. 죽을 때는 짐을 꾸릴 수 없을 테니 그때는 좀 가볍게 떠날 수 있으려나.

 

냉철한 현실감각을 갖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에 환상의 색채를 더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30대의 나는 그녀와는 다른 삶을 살았다.

아마도 결혼의 유무와 아이의 유무가 가장 컸겠지만 나는 현실감각이 전혀 없이 살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결국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 나이 때에 하지 않은 것은 나이가 들어도 꼭 통과의례를 겪는다는 것.

내가 30대를 지나면서 느꼈던 것이다.

그녀는 나보다 더 다채로운 삶을 살았지만 현실적으로만 살지 않았다.

아마도 환상의 색채를 더할 줄 알았던 그녀의 능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모든 사람이 가슴속에 가난을 품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좀 더 다정해지고 좀 더 담백해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좀 더 인간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웠던 사람이 어려운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상황을 비슷하게라도 겪어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

아마 저 말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가난을 품는다는 건 누군가의 고단함을 근본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 이해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와 마주쳤을 때 진심 어린 위로의 말이라고 꺼낼 수 있는 것이다.

마음에 가난을 품지 않은 사람의 말들은 그저 공허할 뿐이니...

다시 말해 완벽한 장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해나가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인지도 모른다.

 

 

완벽한 장소와 완벽한 시간은 현실에 거의 동시에 존재하기가 어렵다.

어느 하나가 꼭 비기 마련이니까.

우리는 둘 중 하나만 가지고도 맞춰가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비결인 거 같다.

옆 사람이 뒤처졌을 때는 같이 걸음을 좀 늦추면서 손을 잡아줘야 살 수 있다.

 

이 문장에서 잠시 생각해본다.

뒤처진 사람을 그냥 두고 앞서갔던 시간들에 대해...

오지랖 떨고 싶지 않아서 외면했던 것들이 결국은 나에게로 돌아오는 부메랑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계속 그렇게 외면한 채로 살 수 있을까?

곁을 주지 않을 거 같은 작가의 글엔 곁을 내어준 흔적들이 있다.

날카롭게 잘라 낼 거 같은 작가의 글엔 어느새 보듬어 주는 느낌이 있다.

이기적일 거 같은 작가의 글엔 받는 지도 모르게 받게 되는 배려가 있다.

무엇보다

치장이 없어서 좋다.

그때도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세월이라는 무게를 지나왔을 뿐.

온전히 나답게를 읽는 시간 동안 나 역시 나다움에 깊이 빠져 있었다.

내가 원했던 나다움은. 아직 내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어딘가에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나는 나를 갈고닦는 시간을 즐기고 있다.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그 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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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마스터
카린 지에벨 지음, 이승재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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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방, 유의미한 살인으로 이름을 읽힌 카린 지에벨.

이름은 알고 있었으나 작품으로 만난 건 이 게임 마스터가 처음이다.

게임 마스터엔 두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이미 전작들로 스릴러와 공포를 버무린 이야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지에벨의 단편은 어떤 느낌일까?

 

죽음 뒤에

 

 

인기 스타 모르간 아고스티니.

그녀의 팬이라는 남자가 그녀에게 작은 집 한 채를 유산으로 남긴다.

일면식도 없는 남자의 유산상속.

그의 형제는 그녀가 유산을 상속받는 걸 못마땅해한다.

하지만 간곡한 그의 편지는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녀는 남편과 함께 집을 둘러보러 떠난다.

게임은 그 집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시작된다.

오벵 메닐.

죽은 남자의 이름이다.

그는 모르간 앞으로 집을 남겼고, 그 집에 그녀를 위해 깜짝 선물을 준비해 놓았다.

아무도 알 수 없고.

아무도 알아챌 수 없는 완전범죄.

 

 

우리는 한 번 만났지만 당신은 아마 기억도 못 할 거야. 당신은 당신 자신을 챙기기 바빴거든. 성공에 눈이 멀었다고 해야겠지.

.

.

지옥에 당신 자리를 하나 예약해 둘게. 거기 오면 내 상대역으로 열연을 펼쳐야 할 거야.

 

 


이 짧은 이야기에 두 번의 반전이 들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한 번의 반전으로 뒤통수를 맞고 아찔해져 있을 즈음

마지막 반전에서 맥컬리 컬킨처럼 양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 소리를 치게 될 것이다.

캬아아아아아악~~~~~~~

그건 미처 모르간이 지르지 못한 비명을 내가 대신 지르는 셈이다.

마치 스릴러인 줄 알고 열심히 달려오다 공포소설과 마주치며 끝나는 거 같다.

이 한 편을 읽고 나서 설레는 마음을 멈출 수 없었다.

이렇게 멋진 반전을 두 번씩이나 준비하다니!!!

이것이 단편이라 더 압축되어 미처 독자들이 추리를 하기도 전에 결말이 난다는 점이 바로 이 이야기의 가장 큰 압권이다.

모르간과 오벵은 어떤 인연이 있었던 걸까?

아름답고 인기를 거머쥔 스타 모르간의 실제 삶은 행복한 삶이었을까?

모르는 사람의 유산을 덜컥 상속받은 자의 끝은 어찌되는 것일까?

얼마나 복수심에 불탔으면 이런 계략을 꾸밀 수 있을까?

읽어 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이 이야기의 묘미.

공포와 스릴과 짧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얻고 싶다면 강추!

 

 

먼저 당신 마음속에 죄책감이 들기 시작할 거야. 슬그머니.

그리고 그 감정이 당신 속을 갉아먹기 시작할 거야. 서서히.

그러다 벌을 받는 순간이 찾아올 거야.

내가 내리는 벌....

 

 

 

 

 

 

 

 

 

 

사랑스러운 공포

 

 

연쇄살인범이 정신병원에서 탈출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무력해진 남편이 보는 앞에서 그 사람의 아내를 욕보이는 것이었다. 간혹, 그 자리에 불행히도 자녀가 있는 경우, 자녀들까지 범죄의 대상으로 삼았다. 막심 에노는 어린아이를 살해한 전력이 있다.

 

 

 


그야말로 물불 안 가리는 살인마가 아이들이 탄 버스에 잠입해 검문소를 유유히 빠져나간다.

그를 잡아넣은 경력이 있는 형사 얀은 막심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자인지를 알고 있기에 불안하다.

마치 자신에게 칼날이 겨눠지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이 그를 초조하게 만든다.

여섯에서 여덟 살 사이의 아이들은 감각기관에 장애가 있거나 지능 발달이 더딘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을 인솔하는 교사 소니아와 학생의 부모 둘, 레크리에이션 강사 등이 그 차에 타고 있었다.

아이들의 캠핑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때부터 난 인간인 '누군가'가 될 수는 없었지만 괴물 같은 '무언가'가 될 수 있었어.

내가 바로 공포라는 존재란다.

 

 


6년간 정신 병동에 갇혀 있던 사형수 막심은 틈틈이 약을 줄여서 결국 탈출에 성공한다.

아이들과 인솔자들을 인질로 삼은 그는 그동안 감추고 있던 발톱을 잔뜩 세운 채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고,

조용한 캠핑장에서 벌어질 끔찍한 사건들을 상상하는 막심은 슬며시 발동을 거는 흥분을 만끽한다.

한편 얀은 막심이 아이들을 태운 버스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막심과의 최후 결전을 위해 아내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막심의 손길이 아내에게로 닿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소니아는 운전사 질과 레크리에이션 강사 뤽 두 사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그 둘의 관심을 즐긴다.

둘 다 매력적인 남자들이었고, 소니아는 아이들의 시선보다 자신을 매력적으로 바라봐 줄 남자들의 시선이 그리웠다.

과연 소니아의 매력을 거머쥘 남자는 누구일까?

난 남자가 아니거든. 난 신이야, 신. 너희 인간들이 얌전히 굴면 영생을 보장해 주는 그런 신 말고.... 너희 인간들이 말을 잘 듣거나 말거나 오직 죽음을 보장하는 그런 신! 죽음, 진짜 죽음. 유일하고 결정적인 죽음.

 


 


연쇄살인범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상황들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황들

인질로 잡힌 평범하지 않은 아이들

예쁘다는 말 한마디가 위로가 됐던 아이는 그 말을 한 어른을 사랑하게 된다.

그 작은 사랑이 어루만질 수 있는 감정의 깊이는 어디까지 일까?

보통스러웠던 나날들에 찬물을 끼얹은 거 같은 이야기였다.

단편의 묘미를 제대로 살린 이야기에 반전까지.

지에벨의 작품들을 다 읽어보고 싶어졌다.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단편집을 잊지 마시길.

사랑스러운 공포보다는 죽음 뒤에에 점수를 담뿍 주고 싶다.

작지만 영특하고, 스릴 만점에 반전의 묘미까지 잔뜩 멋을 부린 단편소설집.

무더운 휴가길에 함께 가기 좋은 책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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