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 특별 합본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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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은 거기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화도 그 의미를 읽으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뜻에서 신화는 미궁과 같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내게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어릴 때부터 계속해서 읽어가고 있는 이 그리스 로마 신화들은 거의가 번역본이었다.

남의 나라 사람의 생각을 주워 담은 신화 이야기는 다른 듯 같고, 같은 듯 달랐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좋은 이유는 내 나라말로 신화를 써 내려갔기 때문이다.

찰떡같은 비유와 동서양을 아우르는 해석은 여느 책에서는 볼 수 없는 읽을거리였다.

 

 

5권의 책 합본으로 이루어진 이 특별판의 두께는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벽돌 책이다.

그 안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얽힌 그림이나 조각상들의 사진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윤기 선생님이 직접 다녀온 유적지의 사진과 그곳에서의 경험담이 담겨 있다.

 

 

 

 

 

 

들어가는 말과 나오는 말에서 다루어지는 전체적인 책의 느낌들이 책을 읽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등장인물이 많을 뿐더러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가지를 뻗고 있지만 우리가 아는 이야기들은 거의 비슷하다.

유명하거나, 자주 다루는 신화들만 다루다 보니 깊이 없는 겉핥기 식의 이야기들이 많았다.

이 책엔 이야기의 유래가 담겼고, 각 인물들과의 관계도 잘 설명되어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하면 중복되는 이야기들이 있는 점이다.

그것 역시나 앞뒤 이야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만 합본인 관계로 중복 느낌이 많이 들었다.

 

 

이 이야기를 비교적 쉽게 느낀 이유는 우리말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해박한 지식과 방대한 이야기의 맥을 간추려서 우리 작가가 우리글로 적어 내려간 이 책의 묘미라면 오래전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지탱하고 있던 신화가 결국은 우리에게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연결해 놓은 사실이다.

이것이야말로 이윤기 선생님의 해박한 지식이 없었다면 그 근거를 대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 이해의 열쇠가 신화라면 신화 이해의 열쇠는 무엇일까? 상상력이다. 상상력의 빗장을 풀지 않으면 그 문은 열리지 않는다.

신화라는 이름의 꽃은 장엄하면서도 무시무시하다. 신화가 고대 비극 작가들의 영감을 끊임없이 자극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닫힌 상상력으로는 신화를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지 못하면 영감을 받을 수 없다.

21세기에도 그리스 로마 신화는 우리에게 인기가 많은 이야기다.

그건 신이라는 존재가 무한한 능력을 가진 존재이지만 인간과 다름이 별로 없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지전능한 신들이 하는 짓거리가 모두 인간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음은 인간사에 많은 위로가 된다.

신임에도 당해야 했던 고통들은 많은 인간들에게 영감을 준다.

 

 

최근에 유명세를 치른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원작인 닥터 포스터가 메데이아와 이아손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메데이아와 이아손의 이야기는 이 합본의 제5권에 자세하게 나온다.

자신의 조국을 배신하고 동생까지 죽이며 이아손을 택했지만 결국 그에게 버림받은 메데이아는 자신과 이아손 사이에 낳은 아이 둘을 죽이고, 이아손이 결혼한 코린토스의 공주까지 죽이고 도망친다.

 

제우스는 결혼을 관장하는 여신 헤라의 남편이지만 늘 끊임없이, 물불 안 가리고 바람을 피운다.

그리고 매번 걸린다.

헤라는 남편을 벌주지 못하고 제우스의 희생양들에게 벌을 내린다.

여신이 헤라가 이럴진대 인간 여자라고 다를까.

 

 

복잡하고, 끝이 없는 이야기 그리스 로마 신화.

더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가셨으면 좋았겠지만 우리에겐 5권이 이윤기 선생님이 남겨주신 이야기의 전부다.

좀 더 일찍 이 이야기가 진행되었더라면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들을 읽는 즐거움을 누렸을 텐데..

그분의 못다 한 이야기가 어딘가에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을 그 누군가에게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아쉬움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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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마음 델핀 드 비강의 마음시리즈 2
델핀 드 비강 지음, 윤석헌 옮김 / 레모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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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바로 그 가을날이 왔다.

그전에는 괜찮았다. 그 이후에는 더 이상 괜찮지 않았다.

 

미쉬카 할머니는 예전 신문사에서 교정 교열을 보았다.

단어는 그녀의 생활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단어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말이 멈추고,

발이 멈추고,

생각이 멈추고,

마음이 멈춘다.

 

모르겠어요. 그런데 느껴져요. 빠져나가는 게.... 빠져나가요.

 

 

그녀가 그토록 오랫동안 다루었던 단어들이 그녀를 빠져 나가고 있었다.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하고, 비슷한 발음으로 대체 되고, 어떤 것은 도저히 떠올리지 못하는 시간들.

상실의 시간이 이런 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술술 빠져나가고 있는 내가 가진 가장 큰 무엇.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는 단어들.

나이 들어서 얻을 수 있는 당연한 것들.

그래서 미쉬카는 악몽을 꾼다.

 

이런 것들이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어요, 미쉬카 할머니. 짧은 보폭, 깜박 졸기, 조그만 간식거리들, 짧은 외출들, 짧은 방문들.

작아지고 축소되었지만, 완벽하게 규정된 삶.

 

 

요양원에 보내진 미쉬카에겐 마리가 있다.

결혼도 안하고 아이도 없었던 미쉬카 곁에 이웃집 소녀였던 마리가 있었다.

어린아이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 주었던 미쉬카.

너무 일찍 상실의 아픔을 맛보고 있던 마리에게 그녀는 곁을 내어 주었다.

예전에 누군가가 미쉬카에게 그랬던 것처럼.

 

선행은 세대를 건너서도 이어진다.

미쉬카에서 마리에게로.

미쉬카는 점점 빠져나가는 말과 생명 사이로 오래전의 사람들을 찾는다.

나치의 손아귀에서 자신을 맡아 주었던 젊은 부부. 그 부부에게 미쉬카는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나는 언어치료사다. 말과 침묵, 말해지지 않은 것들과 일한다. 수치심과 비밀, 회한과 일한다. 부재와 사라진 기억들, 그리고 이름, 이미지, 향기를 거쳐 되돌아온 기억들과 일한다. 나는 어제와 오늘의 고통과 일한다. 속내 이야기들과.

그리고 죽는다는 두려움과 함께.

이런 것들이 내가 다루는 일이다.

 

 

제롬은 언어치료사다.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걸 천직으로 여긴다.

말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주고, 그 말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다.

그들의 말을 그는 녹음한다.

그들이 가고 나도 그 말들은 그에게 남아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잃어버릴 줄 아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매주, 아니 거의 매일 새로운 손실과 손상, 손해를 입는 것이다. 이게 내가 이해한 바이다.

그리고 이득이 되는 것을 적는 칸에는 이제 아무것도 실려있지 않다.

 

 

요양원에서 이루어지는 미쉬카와 제롬의 만남.

미쉬카와 마리의 만남.

그리고 미쉬카의 꿈.

 

짧지만 응축된 감정들이 행간 사이사이를 꽉 채우고 있다.

미쉬카, 제롬, 마리 사이를 오고 가며 이야기가 끝났을 때 감정이 꽉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맹렬하게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을 깨닫게 된다.

 

완벽하지 않은 세 사람은 그 완벽하지 않음으로 서로에게 의지처가 된다.

서로를 품고 가게 되는 마음들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계속 나를 놀라게 하는 것, 심지어 경악하게 하는 것, 때로는 숨이 멎을 정도로 놀라게 하는 것 - 십 년도 넘게 이 일을 한 지금도 여전히 - 은 바로 어린 시절 고통이 지속된다는 점이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생생하게 타오르는 흔적. 그것은 지워지지 않는다.

 

 

노인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젊은 시절을 유추해보면서도 제롬은 그들이 어릴 때 입은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어른으로 살아가면서도, 노인이 되었음에도 어린 시절의 상처는 되돌아오는 부메랑 같다.

제롬 역시도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단순히 말에 대한 고마움을 이야기하는 걸로 생각했다.

공기처럼 늘 곁에 있어서 그 고마움을 깨닫지 못하는 말.

전작 [충실한 마음]처럼 이 고마운 마음 역시 읽고 나서도 정리되지 않은 마음들이 허공 속에 맴돌았다.

 

나는 고마움이라는 마음을 얼마나 가지고 살고 있을까?

보이는 고마움이든, 보이지 않는 고마움이든, 표현된 고마움은 과연 얼마나 될까?

단순히 고마운 마음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누군가 내게 해준 모든 행동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었다.

충실한 마음을 앞에 두고 생각이 많았다면, 고마운 마음을 앞에 두고는 어딘가로 흐르는 마음을 따라잡기 힘들었다.

철썩이는 파도처럼 감정들이 끊임없이 밀려온다.

 

프랑스어로 읽을 수 있다면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마다 쓰이는 언어의 차이로 원작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 옮길 수 없어서 번역자도 답답했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미쉬카의 말이 제롬과 마리에게 이어진다.

그 의미는 그녀를 아끼고, 알았던 두 사람만의 은어가 될 것이다.

 

"그냥요."

"거마워요."

 

나의 미래를 엿보는 기분으로 내내 읽었다.

선명하게 그려지는 모습들이 언젠가 내게도 닥칠 일이라는 걸 알려주는 거 같다.

제롬과 마리가 미쉬카를 대하는 그 마음들처럼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언젠가 내게도 제롬과 마리가 곁에 있을까?

 

고마운 마음.

이 마음이 지닌 의미를 살아가면서 깨우칠 거 같다.

앞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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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바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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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부탁이 있어. 알아봐 줬으면 하는 게 있거든. '마리아 님은 집에 언제 돌아왔지?'라는 거야. 성모 마리아의 마리아야. 성경이나 다른 어딘가에 실려 있을 것 같은데, 조사해 줘. 다시 말하는데 나한테 아주 중요해. 잘 부탁해. 이 은혜는 나중에 꼭 갚을게.

 

 

 

1년 전 오빠가 죽었다.

오빠의 비보를 들은 후에 뒤늦게 도착한 오빠의 엽서엔 '마리아 님은 집에 언제 돌아왔지?'라는 뜻을 알아봐 달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나오코는 친구 마코토와 함께 오빠가 묶었던 산장으로 향한다.

자살로 판명된 오빠의 죽음이 석연치 않았던 나오코는 오빠가 죽은 산장의 오빠가 쓰던 방을 예약한다.

산장에 도착해서 나오코는 그곳에 해마다 같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죽은 건 오빠만이 아니었다.

 

 

 

원래 영국 사람의 별장이었던 그곳은 펜션으로 운영 중이었다.

영국 냄새 물씬 풍기는 산장의 방엔 방마다 각각의 이름이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벽걸이가 걸려 있었고, 그 벽걸이엔 머더구스가 적혀 있었다.

영국의 동요가 방방마다 적혀있는 산장.

오빠는 정말 자살한 게 맞는 걸까?

 

 

 

여기에 모두 모이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 아니라. 뭔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

 

 

 

나오코와 마코토는 머더구스를 토대로 죽음을 추리한다.

방마다 걸려 있는 벽걸이에 적혀있는 머더구스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누군가 무엇을 감추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밀실 살인 사건을 어떻게 풀어내는 냐에 초점을 맞추게끔 짜여 있다.

그래서 한 우물만 파듯이 어떻게 자살이 아닌 타살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느라 머리에 쥐날 거 같았다.

게다가 해마다 일정 기간을 같은 곳에서 묶는 단골들 중에 범인이 있을 거라 믿었기에 그들의 캐릭터를 점검하느라 줄곧 빈틈을 찾아 헤맸다.

어째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추리의 달인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는지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나오코와 마코토가 자신들의 신분을 숨기고 조용히 오빠의 죽음을 캐던 중 나오코에게 관심을 보이던 오오키가 죽는다.

술에 취한 오오키가 실족사했다는 사고사로 결정될 즈음 마코토는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낸다.

산장의 모두가 모여서 파티를 했던 그 밤.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있던 그 시간.

바람이나 쐬고 오겠다던 오오키의 죽음은 사고일까? 타살일까?

 

이야기의 끝에 마주치는 반전. 그리고 반전.

이 사연 많은 산장의 나머지 이야기는 끝까지 읽어야만 알아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야 게이고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물론. 이건 그저 나의 생각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이 펜션은 비밀 투성이었고, 그 비밀은 암호가 되어 방방마다 걸려 있었다.

그것을 알아낸 사람들은 차례로 죽음과 마주했다.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영혼들.

그것을 알지 못하면 영원한 파수꾼으로 남아야 하는 사람들.

그것을 알아내더라도 그들은 절대 이전과 같은 삶을 살지는 못할 것이다.

 

이중삼중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훔친 히가시노 게이고.

단순한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하고 덤볐다가 뒤통수 맞은 느낌이다.

 

남의 비밀을 알게 되면 가슴에 묻어라.

그 비밀로 이득을 보려 하지 마라.

결국 그 비밀은 파 헤져치는 순간 내게 칼날이 되어 박힐 것이니.

 

남의 것을 탐하지 마라.

그것은 결국 누구의 것도 되지 못하리니.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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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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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가 배경인 난장이 연작 소설을 모은 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제목이 의미하는 느낌이 책을 읽고 나면 진하게 느껴진다.

미비하지만 그 파장은 거대함으로...

 

 

 

내가 무서워하는 것은 자네의 마음야.

 

 

무엇이 이 마음을 먹게 했을까?

난장이는 그날 밤 휘발유와 함께 허공에서 불기둥을 솟게 한 그곳에 무엇을 두었을까?

꼽추는 왜 난장이와 함께 가지 않았을까?

 

 

첫 이야기부터 질문이 머릿속에서 난무한다.

아직 내가 글의 행간을 다 헤아리지 못한 탓이다.

답도 없고, 비전도 없어 보이는 철거민들의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마치 2020년의 어느 한 모습을 축소해서 벼려 놓은 거 같은 배경이다.

 

 

어디에나 난장이의 흔적이 있고

누구에게서나 난장이의 모습이 보인다.

 

 

공무원 월급표를 보면 뒷집 남자의 월급은 남편의 월급보다 사뭇 적다. 단출한 식구에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자기네는 조용한데, 많은 식구에 적은 월급을 받는 뒷집은 흥청댄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귀가 아프게 들어온 잘살 수 있는 세상이 뒷집에만 온 것 같다. 뒷집에 가난은 없다. 그래서 신애는 생각한다. 저 집은 도대체 어느 편인가? 우리는 또 어느 편인가? 그리고 어느 편이 좋은 편이고, 어느 편이 나쁜 편인가? 도대체 이 세상에 좋은 편이 있기는 한가?

 

 

 

은강이란 곳의 가장 소외계층 난장이 가족.

난장이와 그의 아이들의 모습은 최하층민을 상징한다.

영수, 영호는 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에 취직한다. 영수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으며 세상을 알아간다.

부당함에 대해서 말하지만 그 말은 묵살되고 부메랑이 되어 날아온다.

부당한 세상에서 부당함을 말하면 부당함은 말한 사람에게 당연하게 되돌아오는 법이지.

 

 

197X년, 한국은 죄인들로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죄인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2020년에도 죄인 아닌 사람이 없는 한국.

그래서 이 이야기는 시대를 거슬러서도 여전히 우리를 말해주는 작품인 것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가장 높은 곳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아우르는 이야기의 얼개가 연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난장이의 아픔으로 이끈다.

난장이는 바로 우리 모두이기에.

 

 

 

아버지의 시대가 아버지를 고문했다.

 

 

희망으로 차 있는 겉모습에 가려져 피눈물이 보이지 않았던 70년대.

희망찬 구호 아래 힘없이 쓰러져갔던 무수한 사람들의 희망과 꿈이 이 작품 안에 오롯이 담겨있다.

그래서 읽으면서 내내 암울했다.

그 어두운 터널은 현재에도 계속 남아있고, 난장이들은 아직도 그 터널 안쪽에서 빛을 향해 끝없이 걷고 있을 테니.

 

 

같은 세상에 살면서 서로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은 생각의 차이 때문이다.

 

 

생각의 차이.

높은 곳과 낮은 곳의 차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

가진것과 못 가진 것의 차이.

무수한 차이들이 서로의 말을 못 알아듣게 만들었다.

같은 얘기를 하지만 서로가 모르는 말로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더 슬프다.

 

 

모두가 좋은 세상, 더 나은 세상, 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결이 다를 뿐

세상은 언제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들의 소통하지 못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뿐이다.

 

 

현대 문학으로 탄생해서 고전이 되어가고 있는 작품을 만났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그 공들은 허공을 날아 저마다의 가슴에 안착할 것이다.

 

 

그것이 모두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깃발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10년 뒤에 다시 한번 읽었으면 좋겠다.

그때의 나는 이 작품을 어떻게 또 해석하게 될지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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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 브라더스 -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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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많은 사람이 다 지면서 살고 있다. 지면서도 산다. 어쩌면 그게 삶의 숭고함일지도 모르겠다. 그러자 갑자기 만화가 그리고 싶어졌다. 지면서도 살아가는 사람들. 매일 검붉은 노을로 지지만 다음 날 빠알간 햇살로 빛나는, 태양 같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졌다.

 

 

 

고단하고 찌질한 이야기를 구질구질하지 않게 쓰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을 해낸 작가가 바로 김호연이다.

인생의 실패자들과 삶의 패배자들의 조합이 유쾌할리 없다.

근데 실로 유쾌하다.

이유가 뭘까?

 

 

기러기도 못돼는 펭귄 아빠 김 부장.

황혼 이혼을 당할 위기에 처해있는 싸부.

사시를 포기하고 공시에 도전해보는 고시원생 삼척동자.

이들이 명색이 이름만 남은 만화가 오영준의 망원동 옥탑방에 한 명씩 고개를 들이밀고 들러붙는다.

 

 

사회적인 냉정한 시선으로 본다면 그들은 낙오자들이고 패배자들이다.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자기 자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자기 자리가 어딘지 알지 못하고,

자기 자리에서 안주하지 못하는.

 

 

그 8평 남짓의 옥탑방 집주인 슈퍼할아버지는 자식들이 찾지 않은 지 오래된 망원동 오지라퍼다.

집 나간 아들 대신 손자 석이를 키우며 복덕방을 하는 집주인 할아버지의 잔소리는 옥탑방 브라더스들을 더 쓸모없게 보이게 할 뿐이다.

빈대, 기생충, 바퀴벌레 같은 그들을 내치지 못하고 집안에 들인 만화가는 살기 위해 거들떠도 안 보던 학습지 만화를 그리고 있다.

 

 

그들 모두 한때 잘나가던 자들이었다. 한때는.

 

우리는 모두 왕년에는, 나 때는, 이라고 시작할 말들이 있다.

저마다의 가슴에 깃발처럼 꽂혀 있는 자신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왕년은 과거일 뿐이고, 나 때는 라떼가 된지 오래다.

현실은 그들의 발목을 잡고 적응하지 못한 자들은 낙오자가 되었다.

 

 

 

"결혼 안 하고 애 안 낳으면 되지, 뭐."

"씨발, 인생 한 번 사는데 마누라랑 애새끼 가질 자격도 없으면 그게 인생이냐? 난 마누라도 둘은 가지고 싶고 애도 셋 이상은 낳아야 되거든. 그러니까 졸부가 돼야 한다고. 너랑은 삶의 태도가 달라요."

 

 

 

 

생각의 차이는 삶의 차이를 가져오고, 삶의 차이는 결국 욕심의 차이일 뿐이다.

 

나는 이 대책 없어 보이고, 가슴에 가득 무언가를 담고 있지만 현실에선 무능하기 짝이 없는 남자들이 참 안쓰러우면서도 그들 어깨에 놓인 짐들 때문이 가슴이 시려왔다.

그래서 망원동이라는 이름이 망한 사람들의 원망이 스며든 곳이라는 느낌으로 자꾸 읽혔다.

마치 그곳을 벗어나면 그 모든 현실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을 거 같은 착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아갔다.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오뚝이처럼 오똑오똑 일어났다.

강펀치를 때리면 그럴수록 더 발딱 빠르게 일어섰다.

 

 

 

텐트 아래서 땀을 줄줄 흘리면서 한 손엔 전화기를 한 손엔 메모지를 들고 자기 인생을 적어나가는 사내. 그 모습에 어느 정도 고무된 나도 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가정이 있든 없든

이 사회가 남자들에게 지게 하는 삶의 무게가 찌질하지만 구질하지 않게,

한심하지만 유쾌하게,

답답하지만 부지런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들은 멈춰서 답이 보이지 않는 인생에서 잠시도 쉰 적이 없다.

그리고 포기할 수도 없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이런저런 인연으로 기생하며 공생하게 된 그들은 어느새 서로의 버팀목이 되었으니까.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그래서 더 짠한 마음이 드는 망원동 브라더스.

가족을 잃은 사람은 사랑을 찾고,

가족을 멀리 보낸 사람은 보금자리를 찾고,

인생의 방향을 찾지 못한 사람은 드디어 닻은 내렸고,

자신감이 부족했던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찾아냈다.

 

서로가 서로에게 쓴소리를 할망정 서로를 보살피는 마음들이 읽는 내내 망원동과 겹쳐진다.

아직 예전의 모습들이 남아 있는 정겨운 동네는 사람들 마저도 그렇게 필연으로 엮어 내는구나.

한 건물에 살면서도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 삭막한 삶이 도처에서 서로를 외롭게 만드는 이 사회에서 망원동 브라더스는 가족 아닌 가족이 되어 서로를 보살피고 있었다.

 

망원동.

먼 경치도 잘 볼 수 있다는 망원정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그래서 그런지 망원동 옥탑방 브라더스는 그곳의 기운을 담뿍 받아 자신들의 미래를 잘 헤쳐나갔던 게 아닐까.

 

현실에 존재하는 남자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고

그들의 속마음을 살짝 엿본 기분이다.

 

삶의 무게는 저마다에게 있지만 가장의 무게는 그보다 한층 더 무겁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랑님에게 좀 더 잘해주어야겠다는 친절한(?) 마음이 덤으로 드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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