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하고 찌질한 이야기를 구질구질하지 않게 쓰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을 해낸 작가가 바로 김호연이다.
인생의 실패자들과 삶의 패배자들의 조합이 유쾌할리 없다.
근데 실로 유쾌하다.
이유가 뭘까?
기러기도 못돼는 펭귄 아빠 김 부장.
황혼 이혼을 당할 위기에 처해있는 싸부.
사시를 포기하고 공시에 도전해보는 고시원생 삼척동자.
이들이 명색이 이름만 남은 만화가 오영준의 망원동 옥탑방에 한 명씩 고개를 들이밀고 들러붙는다.
사회적인 냉정한 시선으로 본다면 그들은 낙오자들이고 패배자들이다.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자기 자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자기 자리가 어딘지 알지 못하고,
자기 자리에서 안주하지 못하는.
그 8평 남짓의 옥탑방 집주인 슈퍼할아버지는 자식들이 찾지 않은 지 오래된 망원동 오지라퍼다.
집 나간 아들 대신 손자 석이를 키우며 복덕방을 하는 집주인 할아버지의 잔소리는 옥탑방 브라더스들을 더 쓸모없게 보이게 할 뿐이다.
빈대, 기생충, 바퀴벌레 같은 그들을 내치지 못하고 집안에 들인 만화가는 살기 위해 거들떠도 안 보던 학습지 만화를 그리고 있다.
그들 모두 한때 잘나가던 자들이었다. 한때는.
우리는 모두 왕년에는, 나 때는, 이라고 시작할 말들이 있다.
저마다의 가슴에 깃발처럼 꽂혀 있는 자신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왕년은 과거일 뿐이고, 나 때는 라떼가 된지 오래다.
현실은 그들의 발목을 잡고 적응하지 못한 자들은 낙오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