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 브라더스 -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주변의 많은 사람이 다 지면서 살고 있다. 지면서도 산다. 어쩌면 그게 삶의 숭고함일지도 모르겠다. 그러자 갑자기 만화가 그리고 싶어졌다. 지면서도 살아가는 사람들. 매일 검붉은 노을로 지지만 다음 날 빠알간 햇살로 빛나는, 태양 같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졌다.

 

 

 

고단하고 찌질한 이야기를 구질구질하지 않게 쓰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을 해낸 작가가 바로 김호연이다.

인생의 실패자들과 삶의 패배자들의 조합이 유쾌할리 없다.

근데 실로 유쾌하다.

이유가 뭘까?

 

 

기러기도 못돼는 펭귄 아빠 김 부장.

황혼 이혼을 당할 위기에 처해있는 싸부.

사시를 포기하고 공시에 도전해보는 고시원생 삼척동자.

이들이 명색이 이름만 남은 만화가 오영준의 망원동 옥탑방에 한 명씩 고개를 들이밀고 들러붙는다.

 

 

사회적인 냉정한 시선으로 본다면 그들은 낙오자들이고 패배자들이다.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자기 자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자기 자리가 어딘지 알지 못하고,

자기 자리에서 안주하지 못하는.

 

 

그 8평 남짓의 옥탑방 집주인 슈퍼할아버지는 자식들이 찾지 않은 지 오래된 망원동 오지라퍼다.

집 나간 아들 대신 손자 석이를 키우며 복덕방을 하는 집주인 할아버지의 잔소리는 옥탑방 브라더스들을 더 쓸모없게 보이게 할 뿐이다.

빈대, 기생충, 바퀴벌레 같은 그들을 내치지 못하고 집안에 들인 만화가는 살기 위해 거들떠도 안 보던 학습지 만화를 그리고 있다.

 

 

그들 모두 한때 잘나가던 자들이었다. 한때는.

 

우리는 모두 왕년에는, 나 때는, 이라고 시작할 말들이 있다.

저마다의 가슴에 깃발처럼 꽂혀 있는 자신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왕년은 과거일 뿐이고, 나 때는 라떼가 된지 오래다.

현실은 그들의 발목을 잡고 적응하지 못한 자들은 낙오자가 되었다.

 

 

 

"결혼 안 하고 애 안 낳으면 되지, 뭐."

"씨발, 인생 한 번 사는데 마누라랑 애새끼 가질 자격도 없으면 그게 인생이냐? 난 마누라도 둘은 가지고 싶고 애도 셋 이상은 낳아야 되거든. 그러니까 졸부가 돼야 한다고. 너랑은 삶의 태도가 달라요."

 

 

 

 

생각의 차이는 삶의 차이를 가져오고, 삶의 차이는 결국 욕심의 차이일 뿐이다.

 

나는 이 대책 없어 보이고, 가슴에 가득 무언가를 담고 있지만 현실에선 무능하기 짝이 없는 남자들이 참 안쓰러우면서도 그들 어깨에 놓인 짐들 때문이 가슴이 시려왔다.

그래서 망원동이라는 이름이 망한 사람들의 원망이 스며든 곳이라는 느낌으로 자꾸 읽혔다.

마치 그곳을 벗어나면 그 모든 현실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을 거 같은 착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아갔다.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오뚝이처럼 오똑오똑 일어났다.

강펀치를 때리면 그럴수록 더 발딱 빠르게 일어섰다.

 

 

 

텐트 아래서 땀을 줄줄 흘리면서 한 손엔 전화기를 한 손엔 메모지를 들고 자기 인생을 적어나가는 사내. 그 모습에 어느 정도 고무된 나도 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가정이 있든 없든

이 사회가 남자들에게 지게 하는 삶의 무게가 찌질하지만 구질하지 않게,

한심하지만 유쾌하게,

답답하지만 부지런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들은 멈춰서 답이 보이지 않는 인생에서 잠시도 쉰 적이 없다.

그리고 포기할 수도 없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이런저런 인연으로 기생하며 공생하게 된 그들은 어느새 서로의 버팀목이 되었으니까.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그래서 더 짠한 마음이 드는 망원동 브라더스.

가족을 잃은 사람은 사랑을 찾고,

가족을 멀리 보낸 사람은 보금자리를 찾고,

인생의 방향을 찾지 못한 사람은 드디어 닻은 내렸고,

자신감이 부족했던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찾아냈다.

 

서로가 서로에게 쓴소리를 할망정 서로를 보살피는 마음들이 읽는 내내 망원동과 겹쳐진다.

아직 예전의 모습들이 남아 있는 정겨운 동네는 사람들 마저도 그렇게 필연으로 엮어 내는구나.

한 건물에 살면서도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 삭막한 삶이 도처에서 서로를 외롭게 만드는 이 사회에서 망원동 브라더스는 가족 아닌 가족이 되어 서로를 보살피고 있었다.

 

망원동.

먼 경치도 잘 볼 수 있다는 망원정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그래서 그런지 망원동 옥탑방 브라더스는 그곳의 기운을 담뿍 받아 자신들의 미래를 잘 헤쳐나갔던 게 아닐까.

 

현실에 존재하는 남자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고

그들의 속마음을 살짝 엿본 기분이다.

 

삶의 무게는 저마다에게 있지만 가장의 무게는 그보다 한층 더 무겁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랑님에게 좀 더 잘해주어야겠다는 친절한(?) 마음이 덤으로 드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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