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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
앨러스테어 레이놀즈 지음, 이동윤 옮김 / 푸른숲 / 2025년 7월
평점 :

"당신은 지금까지 쭉 그런 존재였어."
"알아. 하지만 잠시 동안 다른 존재가 되는 꿈을 꿨어."
스포없이 이 감정들을 얘기하려니 너무 어렵다.
하나의 이야기를 시대별로 재구성한 작품 같다.
마치 영화감독의 머릿속에서 구현되는 다양한 버전으로 새롭게 세팅해서 시대별로 같은 탐사 이야기를 꾸며낸다.
새로운 버전의 이야기로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이야기는 점점 본질로 향해 나아간다.
어떤 틈을 발견한 순간 주인공의 죽음으로 끝났다가 다음 버전에서는 틈이라고 알고 있었던 정체의 전체 샷을 볼 수 있다든지
그다음 버전에선 그것의 중심부로 비행선을 타고 내려가는 승무원들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 다음번엔 그곳에서 자행되는 '어떤 사실'을 본다.
버전이 달라질수록 이야기의 중심을 틀어쥐고 있는 틈, 거대한 장벽, 얼음 속의 존재, 확인되지 않은 어떤 생명체에 근접하게 된다.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사일러스 코드와 데메테르의 승무원들은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이 읽는 내내 나를 혼란하게 만들었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좀체 감을 잡을 수 없음에도 자꾸 이야기에 끌려들어 갔다.
과거에서, 현재와 비슷한 시기에서, 근미래와 미래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일러스 코드에게 집중하게 된다.
이 모험의 여정에 없어서는 안 될 그는 늘 소설을 쓰고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그의 소설인 건 아닌가 하는 결말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사일러스의 정체를 알게 되었어도 나는 그를 믿는다.
그의 고뇌와 의사로서 가지는 책임감과 그로 인한 딜레마를 같이 느꼈다.
그 어떤 승무원들 보다 가장 믿음이 가는 그가 살아남기를 바랐다...
망망대해에 혼자 떠 있는 느낌이랄까?
저 가늠할 수 없는 우주 한복판에서 홀로 유영하는 기분이랄까?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고도 나는 사이러스를 버릴 수 없었다.
"우리는 마치 유령선에 타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이미 죽어버린 존재인 것처럼 말이죠."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걸까?
다른 버전으로 재생될 때마다 증폭되어가는 클라이막스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반반이었다.
믿고 싶은 맘, 믿고 싶지 않은 맘.
사일러스와 함께 고뇌했다.
너무나 인간적인 그의 반응에 내 심장도 덩달아 나댔다.
그가 믿고 싶지 않아 하는 것들은 나도 믿고 싶지 않았다.
미래 어느 시점엔 이런 탐험이 이루어질 것이다.
인가의 한계치를 넘어서는 그 어떤 것과 마주하게 됐을 때
가장 인간적인 판단을 하게 되는 건 무엇일까?
사일러스는 그 어떤 승무원들보다 더 인간적이었다.
승무원 명단에 없는 승무원이었지만...
그가 마지막에 꿈꾸는 꿈처럼 그와 에이다가 함께 아름다운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앨러스테어 레이놀즈의 다른 작품들이 기다려진다.
그는 우리가 예상하는 그 어떤 것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끄는 작가다.
SF가 이토록 가슴 저리게 할 줄 몰랐다.
사일러스가 가진 그 감정은 우리가 잃어가는 감정이다.
이 감정들이 결국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존재인데 인간은 자꾸 인간다운 것을 다른 것에서 찾으려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이제부터라도 심사숙고해야 하는 것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