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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O
매슈 블레이크 지음, 유소영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7월
평점 :

너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정신에 갇혀있는 거라고.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증상이 시작됐다.
밤에 내가 어떤 존재가 되는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두렵다.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어두운 생각들이 두렵다.
범상치 않은 작품이다.
이 책에 인용되는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와 견줄만한 이야기다.
친구 두 명을 죽이고 잠들어서 4년간 깨어나지 못하는 일명 잠자는 숲속의 공주 안나 오길비.
그녀를 깨우는 임무를 맡은 수면의사 프린스 박사.
왕자와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만남.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안나의 일기와 프린스 박사의 이야기로 과거와 현재가 오고 간다.
체념 증후군, 수면살인이라는 생소한 키워드가 만들어내는 이 기묘한 스릴은 자꾸 어딘가 숨어 있는 범인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나는 정신세계의 형사다. 물질세계에서 정신적인 단서를, 공간과 시간 속에 흩어져 있는 행적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내 영역의 일부다.
수수께끼를 풀자. 불가사의를 파헤치자.
모든 연구자들이 그렇듯 프린스 박사 역시 위험한 걸 알면서도 안나에게 빠져든다.
그가 살인자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그녀를 깨워서 법정에 세우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안나 O 사건으로 인해 가정이 박살 났음에도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안나를 깨우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비극은 거기에서 다시 시작한다.
깨우지 말아야 할 사람을 깨웠으므로 그건 그가 영원히 지고 가야 하는 죄였을까?
읽고 나서 참 마음이 복잡한 이야기였다.
이렇게 뒤통수를 후려치고 친절하게 뒷얘기까지 적어놓다니!
이 작가님 정말 찜 해놔야 할 작가님이다!
마치 거대한 심리 게임에 참가한 기분이다.
이야기 막바지까지 가서야 범인을 알게 되는데 범인을 알고 나서도 개운하지 않은 이 감정이 문제다.
1999년, 2019년.
20년의 간격을 두고 벌어진 두 가지 사건.
이렇게 완벽한 복수극은 처음이다.
자신을 정신세계의 형사라고 생각하는 프린스 박사가 불쌍할 뿐...
세상에는 잠자는 괴물들이 많다.
그들이 잠들어 있다면 깨우지 말 것!
프린스 박사도 안나도 더할 나위 없이 영리했지만
뛰는 놈 위엔 나는 놈이, 나는 놈 위엔 비행기 타는 놈이 있다는 사실을 이 이야기가 완벽하게 보여준다.
마치 진짜 있었던 이야기 같아서 더 소름 돋는 <안나 O>
잘 살고 있나, X?
책장 어딘가에 숨어 있는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를 꺼내야겠다.
비교해 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