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 다다미 넉 장 반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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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가모 유스이 장 2층에 사는 신과 마주친 것은 그날 밤이다.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났다.

평행우주 이론처럼 대학 1학년 신입생의 동아리 선택지를 놓고 어느 동아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등장인물도 그대로고 일어나야 하는 일들은 모두 똑같이 일어나지만 상황에 따른 미묘한 변화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다다미 넉 장 반>의 묘미다.

영화 동아리 '계'

기상천외한 전단 '제자 구함'

소프트볼 동아리 '포그니'

비밀 기관 '복표반점'

이 4군데 동아리의 선택지에 따라 인물들의 관계도가 조금씩 변하고, 벌어지는 일들이 조금씩 다르게 벌어진다.

하지만 그 조금씩 다른 상황이 이 이야기 전체를 다르게 몰고 간다는 사실이 재밌다.

이런 이야기가 17년 전에 나왔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대학 3학년 봄까지 이 년간, 실익 있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노라고 단언해두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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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는 예의 요괴 같은 웃음을 띠며 헤실헤실 웃었다.

"제 나름의 사랑입니다."

"그렇게 더러운 것은 필요 없다."

나는 대답했다.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 같은 소설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이야기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느낌을 준다.

게다가 타인의 불행을 반찬으로 밥을 세 공기 먹는 '오즈'라는 마법사적인 이름의 묘한 요괴 같은 등장인물은 처음엔 징그러운 느낌이었는데 이야기의 회차를 넘길수록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온다.

그리고 주인공 '나'에게 대리인을 시키고 사라진 스승님 히구치씨 역시 첫 이야기에서 자신을 '신'이라고 지칭한 걸로 봐서는 이 이야기의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그리고 조금씩 다르게 설정되는 상황이 뒷이야기로 자연스레 이어지면서 같으면서도 다른 이야기가 서서히 진행되는 느낌이다.

무한 루프의 타임머신에 타고 있는 기분이랄까?

처음 이야기에선 인물들도 벌어지는 상황도 맘에 들지 않았는데 진도가 나갈수록 흥미로움이 배가 된다.

이야기의 트릭을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재미를 느낀 거 같다.

어떻게 같은 이야기를 이렇게 다른 버전으로 살짝살짝 바꿀 수 있는지 모리미 도미히코 작가의 치밀함이 놀랍다.

아무 생각 없이 읽다 보면 나도 그 안에서 무한 타임 루프를 하는 기분이 든다.

어쩜 또 다른 공간에서 나는 이 <다다미 넉 장 반>을 읽으며 다른 식으로 리뷰를 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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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세상에 맞설 때
황종권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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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렇게 벼린 낫이여, 풀을 이기지 못하느니

낫은 매번 이기고, 이겨서 자꾸 지고

언제나 풀은 지면서 이기기 때문이다



마음이 타오르는 시들과 글이 내 마음을 대변해 줘서 좋았다.

낫이 아무리 베어내어도 풀은 지치지 않고 자란다.

힘없는 무리라 생각해서 누르고, 무시하고, 금방 잊어먹을 거라 생각하는 자들이 아무리 눈 가리고 아웅해도

우리 힘없는 무리들은 늘 밝혀내고, 이겨내고, 밀어내 버렸다.

모든 시대엔 그 시대의 권력에 저항하는 시들이 있다.

<시가 세상에 맞설 때>에 담긴 시들은 모두 한국의 근현대사의 폭력과 권력과 부도덕에 맞서는 시다.

그 시들에 지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을 담아내는 황종권 시인의 이야기가 현실을 돌아 보게 한다.






우리의 시는 시대가 위독할 때마다 가장 먼저 일어나 가장 먼저 사람을 지켰다. 이 책은 세상의 모든 폭력과 고통에 항거했던 사람의 이야기이며, 시로서 맞설 수밖에 없었던 사람의 숭고한 정신을 담았다.




그래서인지 본색을 입은 노란 표지 속 금 간 담벼락에 피어난 잎사귀가 온몸으로 부르짖는 거 같다.

이 신선한 봄을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게 이제 그만 물러가라고.

너희가 아무리 승기를 잡은 거처럼 느껴도 우리는 이제 모든 걸 알아버렸다고.

그러니 더 구차해지기 전에 네 발로 그만 가라고..



세상의 모든 총들이 방아쇠가 없다면

탄약 창고엔 탄약 대신 읽어야 할 시집이 가득하다면

행운을 접어놓은 평화가 갑자기 침침해진다면

군인들은 이제 군화를 벗어 던지고

그냥 가거나 오는 것도 없는 국경의 밤을 생각할지도



벌써 3개월이 흘렀다.

계엄령이 무슨 TV 쇼처럼 펼쳐졌다 접힌 게.

기획자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났으니 아무 일도 아니라고 한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한다고 한 인간은 오로지 마누라한테만 충성질이다.

반성하지 않아도.

1년만 지나면 다 잊어버릴 개, 돼지들이 있기에

저절로 회복된다 믿는 저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너희가 감추었던 민낯이

너무나 낱낱이 드러나서

우리는 지금 어이 상실 중이라고

이제 조금씩 회복되는 중이고, 즐기는 중이라고

그러니 실컷 방심하라

그 방심의 대가는 너희의 상상을 무너뜨릴 것이니...



오로지 계산만을 따지는 욕망처럼 "못 된 것 못 된 것'들이 흉기를 드는 세상이 왔다. 하지만 이 시를 보면 사람의 슬픔이 있는 한, 환한 눈물을 만날 수 있으며 마침내 못을 뽑을 날도 있다는 걸 알겠다.



수많은 슬픔들이 우주에 구멍을 내듯이

사연 없는 시들이 없듯이

시대의 아픔을 시로써 토로하고

시대의 슬픔을 시로써 위로하고

시대의 고독을 시로써 달랬다

무수한 글들 속에서 갑자기 시를 만났을 때

마음이 잠시 글 사이에서 오붓한 오솔길을 찾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가끔 시를 탐했다.

내가 찾았던 시들은 그저 아름답고

그저 예쁘고

그저 화사했다

교과서에서 만났던 나라 잃은 울분의 시들은 이미 잊힌지 오래였다.

저항시가 있었다는 걸 잊고 산 내 시간은 행복했나?

시대를 품은 시를 그저 사랑시로 잘못 해석하며 살지 않았나?

책도 안 읽는 시절에

시는 더더욱 보이지 않았다.

그런 시들이

소리 없이 아우성치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봄은 왔지만

마음이 춥다.

울컥이는 마음을

시들이 어루만져 준다.

누군가의 아픔이

누군가의 고통이

누군가의 고독이

돌고 돌아

내 안의 감정들을 희석시켜 주었다.

똑똑해져야겠다.

그 나라의 정치는 국민들 수준 이랬지.

이 나라를 저들에게 맡긴 건 슬프지만 우리다.

그러니

이제 잘 수습하자.

우리는 후진 정치를 물려받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런 후진 정치만은 물려주지 말아야지..

바람 잘 날 없는 봄날

시들이 소리 없이 외치는 봄날

내 마음도 소리 없이 외쳐댔다

이렇게 살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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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 - 읽기만 해도 어휘력이 늘고 말과 글에 깊이가 더해지는 책
장인용 지음 / 그래도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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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는 '집터가 있던 자취'를 말한다. 그런 자취조차 없으니 거기에 집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터무니없는 것이다.



제목이 참 사연 있어 보여서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다.

다양한 단어에 담긴 뜻과 그 단어가 만들어진 어원을 찾아보는 시간이었다.

읽으면서 중국과 일본과 미국이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력을 수시로 깨닫게 된다.

아름다운 우리 고유어는 한자어와 일본어와 영어에 밀려서 이제는 쓰이지 못하고 사라진 것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럼에도 꿋꿋이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하는 단어들도 많다.

독보적이어서 그 단어 외에는 그 어떤 단어로도 대체될 수 없는 단어들의 존재는 경이롭다.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는 말도 있지만 변하는 말뜻도 있다. 언어는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도구를 다른 용도로 쓴다고 탓할 수는 없다.



우리가 아는 오징어는 원래 꼴뚜기의 한 종류라고 한다.

정말 오징어는 '갑오징어'이다. 꼴뚜기의 한 종류가 오징어가 되는 바람에 진짜 오징어는 '갑'이라는 말을 앞에 달아야 한다.

'복숭아'는 왠지 한자어 같은데 순 토박이 우리말이다.

우리말 같은 앵두와 자두는 한자어란다. 그러고 보니 잘못 알 고 있는 것들이 꽤 있다.

수박도 우리말이란다.

이름 유래에 애매함이 남아 한자어에서는 벗어났다고 한다. 중국에서 수박은 서쪽에서 온 과일이라 해서 서과(西瓜)라고 한다.

그럼 쓸쓸하다, 흐지부지, 으레, 나중, 잠깐, 조용히는 순우리말일까?

외상, 자작나무, 흉, 어음, 수월하다는 한자어일까?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말에서 한자어를 무시할 수 없다. 아주 오랫동안 한자를 써왔기에 거기에서 파생된 말들이 아직까지 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동안 한자를 가르치지 않아서 요즘 들어 한자어를 못 알아보고 실수하는 예들이 짤로 돌아다니는 걸 보게 된다.

같은 언어로 소통되지 않을 때 사회는 더 혼란해질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이기에 불교 용어에서 나온 말들도 상당하다.

읽으면서도 참 놀라웠다.

얼추, 단박에, 시달리다, 아사리판, 노파심, 타계, 명복 등이 산스크리트어에서 온 말들이다.

한자어나 순우리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 예배, 설교, 찬송, 기도, 신앙은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용어들은 모두 불교에서 유래했다. 놀랍다!

재미, 맛, 멋이 모두 같은 의미였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렇게 알고 보니 그 뜻들이 다 연관 있어 보인다.

그저 무심코 썼을 뿐 한 번도 궁금해한 적 없는 우리말.

그저 미루어 짐작했을 뿐 그 유래에 대해 알아볼 생각도 못 했던 내가 쓰는 말들.

언어의 변천도, 원래의 유래도,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서 달라진 말들을 마주하는 시간이 좋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책을 읽는 동안 자꾸 뇌리를 스쳤다.

자꾸 배워야 함을 깨우쳐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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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
줄리애나 배곳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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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다. 슬픔은 우주에 구멍을 뚫을 수 있다고.



아주 긴 제목이 너무 시적이라서 제목만 몇 번을 읊조렸다.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라는 제목은 <포털>이란 이야기에서 가져왔다.

사람들의 슬픔이 우주에 구멍을 내어 포털이 생겨난다.

아이 잃은 집 마당의 타이어 그네에도 포털이 생겼다.

숲속에 생긴 포털을 통해 아버지를 어루만질 수 있었던 형제.

수영장 필터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왔고 그것을 조사하던 경관은 그 포털 속에서 엄마의 비명소리를 듣는다.

나는 사랑했던 콜렛을 만나고 싶다. 한 번도 고백하지 못했던 첫사랑 콜렛.

커밍아웃 할 수 없었던 시대에 홀로 가슴 앓이 했던 소녀는 콜렛을 만나기 위해 숲에 있는 포털을 찾는다.

그곳에서 소녀가 만난 건 무엇일까?



아버님은 노년에서 중년까지 젊어질 겁니다. 그런 뒤 청년기로, 십 대로, 그러다가 아이가 되고, 어린 나이로 죽어요. 일반적인 사인은 폐 미발달이 됩니다.



<역노화> 는 죽음을 택할 수 있는 방식 중에 하나다.

점점 어려지다 갓난아이가 되어 죽는 방식이다.

이 방법을 택하면 역노화의 진행을 지켜볼 사람이 필요하다.

아버지의 역노화를 지켜보는 딸과 점점 어려지는 아버지는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하게 될까?

점점 어려지는 부모를 지켜본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이 이야기를 읽으며 잠시 내 엄마가 어려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엄마와 내 나이가 같은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엄마의 어떤 모습을 보게 될까?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내 부모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거친 인간화의 과정을 내 부모가 먼저 겪었다는걸.

자란 시대가 달랐을 뿐 그들도 나와 같은 감정으로 살았음을..

나는 많은 부분을 그들에게서 물려받았음을 깨치며 읽게 됐다...

갓난 아기가 된 아빠를 품에 안고 뛰어가는 딸의 마음이 어떤 건지 짐작도 못하겠다...



*초판 한정 '문장 책갈피' (랜덤 1종 증정)



바쁜 나를 대신할 봇 <버전들>

이 버전들이 결혼식장에서 만났을 때 봇들끼리 감정이 생길 수 있을까?

아트리스와 벤은 한 결혼식에 초대를 받는다. 그곳이 그들이 마주친 첫 결혼식이다.

그러나 그들은 바빠서 직접 참석하지 못하고 그들의 버전을 대신 보낸다.

옆자리에 앉게 된 버전들은 그들이 가진 단순한 언어로 소통을 하게 되는데...

미래를 잠시 보고 온 느낌이다.

버전들과 죽은 사람들의 홀로그램이 참석하는 결혼식.

버전들의 주인들이 직접 참석했다면 마음이 통하는 일이 벌어졌을까?

한정되게 입력된 언어들로 자신들의 감정을 나누는 버전들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소름도 끼친다.

감정이 생기는 로봇이라니... 내가 바라는 상황은 아니다.




몇 년 전 거대 테크기업과 사이버 보안을 겨냥한 통합법안이 통과되면서 재수 없는 연애 상대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모든 앱에 의무화되었다. 우리 같은 인간들을 가려내기 위한 연애 신용점수 같은 것이 고안되어 일괄 적용된 것이다.



<당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아요>는 재수 없는 연애 상대로 찍힌 사람들이 데이트 앱에서 영구 퇴출 되는 세상이다.

와! 신박하다!

현실에도 이 제도가 생긴다면 데이트 폭력이 줄어들까?

하지만 이것을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런 여자다.

퇴출된 사람들을 지지하는 모임에서조차 자신의 희생양을 찾는.

그런데 어딘지 그곳과 어울리지 않는 남자가 모임에 참석했다. 여자는 그 남자를 살며시 꼬셔서 자신들의 연애 신용점수를 높이고자 한다. 그렇게 시작한 연애 과연 잘 될까?



"나는 어린 시절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생각해. 발로 차고 고함지르고 슬픔과 공포를 느끼면서, 표면 아래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주도하는 거라고."



친구들과 휴가를 간 버몬트의 한 저택. 그곳 게임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각자의 어린 시절에 그린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게임.

봉인되었던 끔찍한 기억으로 들어가는 게임룸... <내가 그린 그림>

15편의 단편들은 뛰어난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마치 드라마 블랙미러를 글로 읽는 느낌이다.

모든 이야기가 실현 가능한 이야기라서 그런 미래가 곧 도달할 거 같다.

특히 가스라이터는 읽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조만간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면 어쩌지?

묘하게 아름답지만 한편으로 아주 끔찍한 느낌을 동시에 받게 되는 이야기의 집합체였다.

이 책에서 현실화되는 소재는 몇 개나 될까?

세상이 지금처럼 정신없이 앞으로만 달린다면 한두 개 정도는 현실화가 될 거 같다.

아니면 이미 진행 중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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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를 믿다
나스타샤 마르탱 지음, 한국화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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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가죽 위로 피가 맺힌다. 그가 내게서 멀어지고 내가 나 자신으로 되돌아올수록 우리는 각자 스스로를 되찾는다. 그는 나 없이, 나는 그 없이, 서로의 몸 안에 잃어버린 것을 견디며 살아남는다. 남겨진 것들과 함께 살아간다.



인류학자 나스타샤 마르탱은 캄차카 화산 지대에서 곰의 습격을 받는다.

그녀는 용감하게 싸웠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곰은 그녀를 먹지 않고 떠났다.

얼굴 전체와 오른쪽 다리가 찢기고 턱 일부는 곰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그런 무참한 공격에서 살아남은 나스타샤는 여러 차례 수술을 받지만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 책은 살아남은 그녀의 기록이다.

변한 자신을 보는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에서 탈피하고자 그녀는 다시 캄차카로 돌아간다.


남자들과 여자들, 그리고 어린 여자애들 앞에서 이토록 속수무책으로, 이렇게까지 무기력했던 적이 없는데. 알몸으로 묶인 채 누군가가 주는 밥을 먹으며 나는 인간성의 경계에, 사람이 견딜 수 있는 한계의 끄트머리에 선다.



나라면

그 고통을 견딜 수 있을까?

나라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을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질문했다.

그녀의 고통이 전혀 짐작이 되지 않았기에.

손끝에 조그만 가시만 박혀도 아픔을 못 참는데 곰의 이빨에 난도질당한 채로 살아남은 사람의 그 고통은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 컸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





너는 이제 미에드카(에벤어로 곰과의 조우에서 살아남은, 곰의 표식을 받은 사람을 지칭. 이 이름을 가진 자가 이제 반은 인간이고 반은 곰이라는 생각을 나타낸다)야, 서로 다른 세상의 경계에서 사는 자.



그녀는 곰과 자신이 동일시되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이 곰에 속해있고, 곰도 자신에 속해있다는..

꿈에서 그녀는 곰의 공격을 받던 순간을 계속 마주한다.

나라면 미쳐버렸을 거 같다.

그런 장면을 꿈꾸는 것도 무서울 텐데 그건 꿈이 아니라 진짜 일어났던 일을 복기하는 거였으니까...

친구들의 동정 어린 시선을 피해 자신을 되찾기 위해 돌아온 캄차카에서 일부의 사람들은 그녀를 미에드카라며 꺼린다.

곰이 그녀를 계속 따라다닐 거고 그래서 그녀의 모든것이 불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존재는 그녀를 더 힘들게 한다.




나는 우리의 삶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고 얇지만 단단한 내공이 담긴 책을 읽으며 전혀 다른 세상을 보게 되었다.

자연에 동화된 사람들은 문명인이라 자부하는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아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이야기가 소설이 아니기때문에 더 생생했다.

소설이라면 정말 맘 편하게 읽을 수 있었을테고 주인공의 용기를 맘껏 칭찬할 수 있었겠지만 이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였기에 한 문장 한 문장이 고통이었고, 용기였으며 존경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태곳적 만남을 따라 끝까지 갔지만 다시 돌아왔고 여전히 살아 있다. 이종교배가 일어났지만 나는 여전히 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나를 닮은 무엇인가에 애니미즘 가면의 특징을 더한 채로 나의 안과 밖은 뒤집혔다.



나는 다짐한다. 언젠가 이 순간을 모두 기록할 거라고.



이 책이 그녀에게 위안을 주었을까?

그랬으리라 믿는다.

자신의 고통과 생각과 마음과 감정을 글로 옮기는 동안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그녀가 느꼈을 모든것들을 조금씩 나눠가졌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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