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를 믿다
나스타샤 마르탱 지음, 한국화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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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가죽 위로 피가 맺힌다. 그가 내게서 멀어지고 내가 나 자신으로 되돌아올수록 우리는 각자 스스로를 되찾는다. 그는 나 없이, 나는 그 없이, 서로의 몸 안에 잃어버린 것을 견디며 살아남는다. 남겨진 것들과 함께 살아간다.



인류학자 나스타샤 마르탱은 캄차카 화산 지대에서 곰의 습격을 받는다.

그녀는 용감하게 싸웠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곰은 그녀를 먹지 않고 떠났다.

얼굴 전체와 오른쪽 다리가 찢기고 턱 일부는 곰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그런 무참한 공격에서 살아남은 나스타샤는 여러 차례 수술을 받지만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 책은 살아남은 그녀의 기록이다.

변한 자신을 보는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에서 탈피하고자 그녀는 다시 캄차카로 돌아간다.


남자들과 여자들, 그리고 어린 여자애들 앞에서 이토록 속수무책으로, 이렇게까지 무기력했던 적이 없는데. 알몸으로 묶인 채 누군가가 주는 밥을 먹으며 나는 인간성의 경계에, 사람이 견딜 수 있는 한계의 끄트머리에 선다.



나라면

그 고통을 견딜 수 있을까?

나라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을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질문했다.

그녀의 고통이 전혀 짐작이 되지 않았기에.

손끝에 조그만 가시만 박혀도 아픔을 못 참는데 곰의 이빨에 난도질당한 채로 살아남은 사람의 그 고통은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 컸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





너는 이제 미에드카(에벤어로 곰과의 조우에서 살아남은, 곰의 표식을 받은 사람을 지칭. 이 이름을 가진 자가 이제 반은 인간이고 반은 곰이라는 생각을 나타낸다)야, 서로 다른 세상의 경계에서 사는 자.



그녀는 곰과 자신이 동일시되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이 곰에 속해있고, 곰도 자신에 속해있다는..

꿈에서 그녀는 곰의 공격을 받던 순간을 계속 마주한다.

나라면 미쳐버렸을 거 같다.

그런 장면을 꿈꾸는 것도 무서울 텐데 그건 꿈이 아니라 진짜 일어났던 일을 복기하는 거였으니까...

친구들의 동정 어린 시선을 피해 자신을 되찾기 위해 돌아온 캄차카에서 일부의 사람들은 그녀를 미에드카라며 꺼린다.

곰이 그녀를 계속 따라다닐 거고 그래서 그녀의 모든것이 불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존재는 그녀를 더 힘들게 한다.




나는 우리의 삶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고 얇지만 단단한 내공이 담긴 책을 읽으며 전혀 다른 세상을 보게 되었다.

자연에 동화된 사람들은 문명인이라 자부하는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아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이야기가 소설이 아니기때문에 더 생생했다.

소설이라면 정말 맘 편하게 읽을 수 있었을테고 주인공의 용기를 맘껏 칭찬할 수 있었겠지만 이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였기에 한 문장 한 문장이 고통이었고, 용기였으며 존경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태곳적 만남을 따라 끝까지 갔지만 다시 돌아왔고 여전히 살아 있다. 이종교배가 일어났지만 나는 여전히 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나를 닮은 무엇인가에 애니미즘 가면의 특징을 더한 채로 나의 안과 밖은 뒤집혔다.



나는 다짐한다. 언젠가 이 순간을 모두 기록할 거라고.



이 책이 그녀에게 위안을 주었을까?

그랬으리라 믿는다.

자신의 고통과 생각과 마음과 감정을 글로 옮기는 동안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그녀가 느꼈을 모든것들을 조금씩 나눠가졌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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