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인간적인 하루들 - 미리 알아 좋을 것 없지만 늦게 알면 후회스러운 거의 모든 불행의 역사
마이클 파쿼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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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365일이 빼곡하게 담긴 책이다.

그래서 700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꽤 두꺼운 벽돌 책이다.

그 하루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사건이 담겨 있다.

행복하고, 행운적인 이야기가 아닌 불행이 담긴 이야기라는 게 조금 생소할 뿐.

 

누군가의 불행을 읽고 나를 다독이는 건 너무 얌체 같은 짓일까?

 

새해 첫날 모두가 무탈하게 지나가길 바라지만 그날마저 불행이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404년 검투사들의 목숨 건 싸움을 말리려 한 수도승 텔레마코스는 재미난 구경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광기에 휩쓸린 관중들의 돌에 맞아 죽었다.

두 사람의 목숨을 구하려다 돌에 맞아 죽은 수도승이라니...

그 이유가 구경거리를 방해한다는 거였다니.. 이 수도승의 죽음엔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9월 14일엔 우리가 아는 유명인사들이 유명을 달리한 날이다.

불운의 날이라고나 할까.

평범한 날인 거 같은데 평범하지 않은 슬픈 날이다.

1899년 세계 최초의 교통사고 사망자가 탄생(?) 한 날이기도 하고,

1982년엔 그레이스 켈리가 교통사고로 사망.

1927년엔 이사도라 텅 컨 이 자신의 목에 둘렀던 스카프가 자동차 뒷바퀴에 걸리는 바람에 목이 부러져 즉사했다.

그러고 보니 모두 교통사고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날은 특히 교통사고를 조심해야 하는 날로 마음속에 담아 두어야겠다.

 

10월 20일은 세상에서 가장 큰 도둑을 알게 된 날이다.

1986년 브루나이 술탄은 자신의 동생 제프리를 재정부 장관에 임명했는데, 그 제프리가 바로 가장 큰 도둑질을 한 장본인이다. 횡령한 돈의 액수가 150억 달러라니. 그 당시에~

자고로 사치가 심한 사람은 돈 통 근처에는 절대 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재정부 장관으로서 나라의 재정을 통괄하라 했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라고 하진 않았는데 말이지.

그 자리를 자신의 욕심으로 가득 채운 브루나이 왕자.

그는 결국 자신의 모든 재산을 몰수 당했다.

 

11월 16일 러시아의 대 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사선에 서 있었다.

러시아 황제는 영원히 정신적인 상처를 남기려는 목적으로 매서운 계략을 꾸몄다.

1849년 지식인 몇이 총살형을 선고받는다.

 

죽음을 기다리는 끔찍한, 정도를 가늠할 수 없이 끔찍한 시간이 시작됐다. 추운 날씨였다. 정말 지독하게 추웠다. 그들은 우리의 외투뿐만 아니라 겉옷까지 벗겼다. 기온은 영하 20도였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썼다.

영하 20도의 기온에 속옷만 입은 채로 총살을 당하기 위해 말뚝에 묶여있는 기분은 도대체 어떤 걸까?

하지만 이 모든 건 황제의 깜짝 쇼였다. 총살은 취소되었고, 위대한 작가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고 한다.

최악의 순간을 지나왔다는 느낌 외에는.

그 덕에 우리는 이후에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외의 다른 작품들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황제가 그날 진짜 총살형을 강행했더라면 우리는 저 작품들을 알지 못했을 테지.

 

12월 3일.

 

1992년 닐 팹워스가 최초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게 왜 불행의 역사냐고?

 

그날 이후 10대들은 상대에게 실제로 입을 열어 말하기를 멈췄고, 맞춤법을 지키는 일은 구식이 되었고, 운전자가 문자 메시지를 작성하는 중 발생한 교통사고가 음주 운전보다 더 많은 사망자를 내고 있다.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

문자 메시지의 위대한 발명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단절로 몰아가고, 이렇게 많은 사망사고를 일으킬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세계의 언어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말이 와닿는다.

우리의 아름다운 한글도 SNS 발전 이후로 망가지고, 알 수 없는 언어가 되어 버렸으니...

 

12월 25일은 크리스마스.

이날 엄청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복권에 당첨된 잭 휘태커

2002년 잭은 역사상 가장 큰 복권에 당첨되어 사람들을 돕고 선한 마음을 널리 전하고 싶다고 밝혔으나

그의 의지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스트립바에서 돈을 뿌리고, 음주운전으로 체포되고, 교통사고를 내는 일이 잇따랐다.

 

 

돈이 그의 선한 면을 모두 먹어치운 것 같았어요.

마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자신의 보물을 가진 작은 친구 같았어요. 이름이 뭐더라? 골룸이었나? 보물이 당신을 먹어 치우죠. 당신이 그냥 돈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되죠.

 

 

복권에 당첨된 사람의 뒤끝이 좋았다는 예를 별로 들어 본 적이 없던 차에 이 잭 휘태커의 인생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분에 넘치는 많은 돈을 갖게 되면 사람은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되나 보다.

잭 휘태커는 복권을 찢어 버렸으면 좋았을 거라고 말했다.

 

 

이 불행한 역사에서 우리가 배울 게 있다면 행운과 불행은 자그마한 차이로 갈린 다는 것이다.

행운이 불행으로

불행이 행운으로

갈리는 그 지점.

 

그건 평소 나의 신념과 사소한 결정들, 나의 태도, 말, 행동들의 결집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운도 빼먹으면 안된다.

엄청난 행운을 걸머 쥐었어도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그것은 불행을 자초한다.

행운도 그렇지만 불행 역시도 사소한 부주의가 야기한 것들이 많다는 것

어처구니 없는 불행한 이야기들을 알게 되면서 나에게 해당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위로아닌 위로도 받아 본다.

 

가끔은

반대적 의미로서

이런 이야기들이 삶에 위로가 된다는 걸 깨달은 시간이었다.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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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앱솔루트 달링
가브리엘 탤런트 지음, 김효정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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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상황은 끝났어도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터틀은 '무식한 잡년'이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깡통 속에 담겨 있던 뭔가가 왈칵 쏟아지듯이 그 말의 의미가 갑자기 그녀를 덮쳤다. 스스로 이름한 적도 없고 자세히 들여다본 적도 없는 그녀의 일부에 마틴이 이름을 붙이면 터틀은 그의 표현 그대로 자신을 인식하면서 자기혐오에 빠지곤 했다.





학대받는 소녀의 절망적인 현실

폭력과 구속에서 벗어나

해방을 얻기 위한 처절한 투쟁

심리 드라마와 액션이 엉킨 문제작

강렬한 문구들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오지에서 청소년 삼림 감시단을 이끌며 두 계절을 보낸 작가의 장편소설 데뷔작이다.

소설 초안으로 수십억 달러의 출판 계약이 성립되었다니 웬만큼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뜻이다.

제목도 강렬하고

책을 설명하는 문구들도 강한 여운을 남겼고,

신선한 작가의 피로 이 흔한 이야기를 어찌 풀어냈을지 몹시 궁금했다.

읽기 편한 소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읽어 내렸다.

압도적인 자연의 묘사와 터틀의 상황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야생에 버려진 소녀의 생존기 같은 느낌이 가득한 이 이야기는 숨 막히는 현실감을 주변 환경의 묘사로 희석한 느낌이다.

줄리아 앨버스턴.

터틀, 개밥, 무식한 잡년

모두 같은 사람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불리는.

여성 혐오증과 세상의 종말을 염려하는 강박은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격리 시킨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라는 그의 마지막 보물 줄리아.

그는 딸아이에게 총 쏘는 법을 가르치고, 일부러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 가서 그녀가 버티게 만든다.

자기만의 교육법이라고 생각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소녀는 그것이 전부라 믿게 된다.

제이콥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 무엇도 비교할 수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줄리아에겐 아버지와 그녀. 근처에 사는 할아버지만이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사회생활과 사람과의 관계를 배우지 못한 줄리아는 학교는 다니지만 친구는 없고, 성적도 좋지 않다.

그녀에게 주의를 기울인 사람은 그녀의 담임 애나 선생님이었지만 그 외에는 아무도 그녀의 상황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이는

고립된 환경에서 총과 칼을 쓰며 야생처럼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곧 세상이 멸망할 테니 아무것도 소용없고, 그런 세상에 너를 내보낼 수 없다는 마틴의 주장이 터틀의 세상이었다.

하지만.

한밤중 자신을 찾는 마틴의 행동에 대해

그것을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들이지만

그래도 어딘가에서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것을 거부하는 그녀의 자아가 숨어 있었다.


 

 

 

 

 

마틴을 닮아서인지 그녀의 정신은 결코 강압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가 아니고 그의 일부도 아니었다.



그녀는 혼자인 시간을 즐겼고, 자신을 혐오하면서도 이런 시간이 간절했다.

숲속을 헤매는 소녀의 모습이 애처로웠다. 그 길을 따라 터틀이 도망치기를 나는 간절히 바랬다.

누군가 그녀를 도와 그녀를 그 지옥에서 데리고 가주기를 절실히 바랐다.

모든 비슷한 이야기에서 그렇듯. 그녀를 위해 용기를 내어주는 누군가가 나타날 거라 나는 믿었다.

그게 할아버지이거나 엄마 친구였던 캐롤라인이거나 담임선생님 애나이기를 굳게 믿었다.

이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그게 이 소설의 매력이자 공포이다.

사실 호평받는 첫 데뷔작인 이야기들을 올해 몇 편 읽었는데 다 특별했지만 이 이야기가 가장 특별했다.

깡마른 소녀의 강한 정신력은 어쩌면 그의 아버지에 의해 단련된 것이기도 하다

종말이 올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슨 일에도 겁을 먹어서는 안되고, 물러나도 안되고, 악착같이 살기 위해 버텨야 한다는 걸 몸소 가르쳐준 마틴.

그런 아버지의 행동을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밖에 없었던 터틀.

몇 번의 탈출을 꿈꾸지만 그녀는 늘 돌아왔다.

매번 더 한 고통이 따랐지만 그래도 그녀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그들의 상황에 전환점을 가져왔다.

마틴은 터틀을 버리고 떠났으며 그가 없는 동안 터틀은 제이콥과 브레트와 어울리며 자신의 삶과 비교할 것들을 알아갔다.

그 이전으로 돌아가도 결코 그 이전이 될 수 없는. 그런 여자가 되었다.

다시 돌아온 마틴에겐 작은 아이가 딸려왔다.

그 아이를 통해 터틀은 자신의 처지를 되짚어 보게 된다.

아무리 그럴싸한 언변을 토해내서 자신의 상황을 모면하려 해도 그는 어쩔 수 없는 소아성애자였다.



사실을 왜곡하기 시작하면 절대 원상으로 되돌리지 못해.




터틀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마틴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를 배신하는 거 같았기 때문에...

그래서 탈출을 꿈꾸면서도 그의 곁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엄마를 잃고 그 충격과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아빠에겐 터틀이 세상의 전부였으니까.


"넌 내 거다." 마틴이 부지깽이를 휘둘러 그녀의 팔을 내리쳤다. 터틀은 진흙탕에 엎어졌다.




이야기의 결말로 치달을 때 작가의 의도가 궁금했다.

어째서 상황을 그렇게 만들어 버렸는지.

그 모든 이야기를 담아내고 터틀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계속되는 공포는 시간이 지나면 치유가 될까?

스스로의 의지.

그것이 없으면 어떤 상황에서 도움의 손길이 와도 잡을 수 없다.

터틀은 그 손길을 스스로 몇 번 내쳤다.

그런 후회가 그녀의 가슴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겠지.

그리고 그녀와 같은 상황을 맞게 될 카이엔을 위해 터틀은 용기를 내었다.

자신을 위한 용기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일에서 용기는 훨씬 빠르게 작용한다.

이 아름다울 수 없는 이야기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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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7년
에트가르 케레트 지음, 이나경 옮김 / 이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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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서 태어난 그날로부터, 우리는 지난 몇백 년 동안 유럽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줄줄이 이어진 박해와 집단 학살뿐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고, 그러고 나면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려는 욕구에도 불구하고 그 가르침이 뱃속 어딘가에서 계속해서 곪아간다.
            



이스라엘의 작가.
처음 접하는 글인데 굉장히 호감이 간다.
극적인 상황에 매일 노출되어서도 유머러스함이 빛을 발하는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내가처한 난처함이라던지 극박함이라던지 평소에 생각해오던 심각함들이 모두 우스워진다.

탈무드의 현실판을 읽는 기분이다.

찰나를 살아내는 긴박한 사람들의 일반적 일상
그안에 고스란히 담긴 선조들의 지혜를 은연중 삶에 접목시켜 사는 달관된 생각들

웃으며 읽다가 찡해지는 마음
어쩜 이렇게 극적일까? 하는 사람들의 모습
늘 전쟁과 테러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앓는 모습들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사람들이 지갑도 챙기지 않고 걸어 다니고, 상점은 모두 문을 닫고, 텔레비전 방송도 없고, 웹사이트 업데이트조차 없는 날



속죄일.
그런날을 기릴 줄 아는 그들의 삶.
책을 읽다 이 대목에서
단 하루도 인터넷과 모든 편의시설 없이는 살 수 없는 우리를 떠올린다.


벌레를 죽이는것과 개구리를 죽이는 것을 구별하는 선이 있다. 그리고 작가는 살면서 그 선을 넘은 적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지적해야만 한다.
작가는 이세상의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을 조금 더 예리하게 감지하고 조금 더 정확한 언어로 설명하는, 또 하나의 죄인일 뿐이다.



아버지의 아들로
아들의 아버지로 살았 던 7년.


이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빠는 누가 지켜줘?




아버지는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아들은 아버지 앞에선 울 수 있는데...


바 또는 기차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는 말하지만 옆집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는 이야기.

 

 


이스라엘에선 출간되지 않은 36편의 이야기
작가의 낯선이가 된 기분이 참 은근하게 좋다.
그가 정말 친한 사람들이 아닌
낯선이들에게 들려주는 그의 일상들이
독특한 울림으로 내 마음에 남았다.

가족에 대해서
나아가 이웃에 대하여
더 나아가 우정에 대해
그리고 인류애에 대하여

이토록 소소하고
이토록 세련된 에세이는 처음이다

표지 딋편에 적힌 다양한 평들중
알렉산다르 헤몬의 평이 내 마음과 같다



 

   도대체 어떻게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쓰면 어떤 것이라도 좋은 이야기가 된다.



고속도로에서 공습 사이렌이 들려온다.
'' 엄마랑 나는 식빵이야. 너는 파스트라미야. 우리는 최대한 빨리 샌드위치를 만들어야해.''
레브가 시라의 등 위에 엎드리더니 있는 힘껏 끌어안는다. 나는 두 사람 위에 엎드리고, 내 무게로 짓누르지 않도록 축축한 땅을 손으로 짚고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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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좋은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박지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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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모습은 앞 모습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람의 뒷모습만 보아 온 나에게
동물들의 뒷모습은 사람보다 더 이련하다

그것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라면 더욱.

외롭다고 느꼈던 일상이 조금 나아졌다. 정글 같은 매일은 여전했지만.



매일 생존을 위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피곤함 속에도
따뜻한 온기를 나뉘주는 러블리덕에 작가는 힘을 얻는다

 

 

 

 

 

 

 

 

 

세상의 모든 문이 너에게만 닫혀 있다고 생각되는 날이 있을 거야.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너를 괴롭히지 마.

 

 

 

 

 

 

 

 

    가면을 쓰지 않아도 괜찮은 내 사람들을 찾아봐.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의 마음이 보이는 거 같다
외로움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따뜻한 마음도 간직하고 있는
그래서 이 책의 그림들엔
외로워 보이지만 따뜻한 온기가 담겨있다

한 번 보았을 땐
쓸쓸한 뒷 모습만 보였다
누군가를 계속 기다리기만 하는.

다시 보았을 땐
온기가 느껴졌다
기다리는 설레임이 담긴.

계속 보게되면
의지가 담긴 뒷 모습이 보인다
외로움과 온기에 가려서 감춰져있던
열심히 자기 길을 가는 그런 모든 생명체의 꿋꿋함이.


자기전 머리맡에 두고 보고 있으려니
그가 다가와 말을건다.

"이젠 그림책도 보는거야?"

마치 잠자리에서 책 읽는 딸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듯 아빠미소를 띠고
머리를 쓰담쓰담 해준다

그런 책이다.
읽다보면
누군가의 사랑스런 쓰다듬을 받게되는

곁가지로
때가 때인지라
크리스마스나 새해 선물로 참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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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속의 새를 꺼내주세요 - 문정희 페미시집
문정희 지음, 김원숙 그림 / 파람북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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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손과
시 쓰는 손이 손을 잡았다
 - 이생진. 무연고 시집. 오수환화백 중


시인의 시와 화가의 그림이 꿈처럼 펼쳐진 시화집.

여성의
여성에의한
여성을위한
여성의 시

시아비는 내 손을 잘라 가고
시어미는 내 눈을 도려 가고
남편은 내 날개를
그리고 또 누군가 내 머리를 가지고
달아나서
하나씩 더 붙이고 유령이 되지 ㅡ 유령



사춘기 때부터 레이스 헝겁 속에
꼭꼭 싸매 놓은 유방
누구에게나 있지만 항상
여자의 것만 문제가 되어
마치 수치스러운 과일이 달린 듯
깊이 숨겨 왔던 유방

다행히 내게도 두 개나 있어 좋았지만
오랜동안 진정 나의 소유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것이었고
또 아기의 것이었으니까 ㅡ 유방



시가 글보다 처절할 때가 있다
시가 긴 이야기보다 더 길어질 때가 있다
한 편. 한 편. 읊조리며
조금씩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여자로서의 삶에 대해
이 땅과 이 세계의 여자들에 대해
말이 시처럼 흘러
강물처럼 파도친다

심청을 팔고, 홍도를 팔고 살아난 아비와 오빠



효심과 눈물을 빙자한 착취의 역사속에서
꽃들을 지켜내지 못한 그들은 사죄조차도 받아내지 못했지


저녁 현관문이 열리고 결혼이 들어온다


부랴부랴 저녁을 지어내려 신사임당은
어우동을 시와 함께 물리고 청국장을 끓인다
어우동은 코를 막고 저만치 물러서 있는데.

이 땅에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줌마라는
또 하나의 종족이 있다는 것을



급격한 현대사를 지나오면서 우리에겐
새로운 종족이 생겨났다
그 이름은 아.줌.마.

무지한 전통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두려운 결혼 속으로 멋모르고 뛰어들었지
전쟁보다 정교하게 여성을 파괴시킨다는
결혼 외에는 어디에도 갈 데가 없었지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여자는 선택지가 없었던 시대
불과 30.40년 전
엄마들은 전통의 탈을 쓴 전쟁보다 더한 곳으로
피난을 갔다
그리고
우리는 그속에서 태어났다
조금 더한 자유를 손에쥐고.

남자들은
딸을 낳아 아버지가 될 때
비로소 자신 속에서 으르렁거리던 짐승과
결별한다



요즘은 딱히 그런 거 같지도 않지만.

이 한 권의 시집이
그 어떤 여자를 위한 이야기들 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 냈다

속시원히 가려운 곳을
품위있게 긁어주며
못 다한 말이 없을 정도로
우아하게 갈겨준다

이 시집을
문정희 시인을
알게되었음이
나의 올 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시를
알아가는 기쁨이
목마른 마음을
모처럼
설레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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