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속의 새를 꺼내주세요 - 문정희 페미시집
문정희 지음, 김원숙 그림 / 파람북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림 그리는 손과
시 쓰는 손이 손을 잡았다
 - 이생진. 무연고 시집. 오수환화백 중


시인의 시와 화가의 그림이 꿈처럼 펼쳐진 시화집.

여성의
여성에의한
여성을위한
여성의 시

시아비는 내 손을 잘라 가고
시어미는 내 눈을 도려 가고
남편은 내 날개를
그리고 또 누군가 내 머리를 가지고
달아나서
하나씩 더 붙이고 유령이 되지 ㅡ 유령



사춘기 때부터 레이스 헝겁 속에
꼭꼭 싸매 놓은 유방
누구에게나 있지만 항상
여자의 것만 문제가 되어
마치 수치스러운 과일이 달린 듯
깊이 숨겨 왔던 유방

다행히 내게도 두 개나 있어 좋았지만
오랜동안 진정 나의 소유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것이었고
또 아기의 것이었으니까 ㅡ 유방



시가 글보다 처절할 때가 있다
시가 긴 이야기보다 더 길어질 때가 있다
한 편. 한 편. 읊조리며
조금씩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여자로서의 삶에 대해
이 땅과 이 세계의 여자들에 대해
말이 시처럼 흘러
강물처럼 파도친다

심청을 팔고, 홍도를 팔고 살아난 아비와 오빠



효심과 눈물을 빙자한 착취의 역사속에서
꽃들을 지켜내지 못한 그들은 사죄조차도 받아내지 못했지


저녁 현관문이 열리고 결혼이 들어온다


부랴부랴 저녁을 지어내려 신사임당은
어우동을 시와 함께 물리고 청국장을 끓인다
어우동은 코를 막고 저만치 물러서 있는데.

이 땅에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줌마라는
또 하나의 종족이 있다는 것을



급격한 현대사를 지나오면서 우리에겐
새로운 종족이 생겨났다
그 이름은 아.줌.마.

무지한 전통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두려운 결혼 속으로 멋모르고 뛰어들었지
전쟁보다 정교하게 여성을 파괴시킨다는
결혼 외에는 어디에도 갈 데가 없었지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여자는 선택지가 없었던 시대
불과 30.40년 전
엄마들은 전통의 탈을 쓴 전쟁보다 더한 곳으로
피난을 갔다
그리고
우리는 그속에서 태어났다
조금 더한 자유를 손에쥐고.

남자들은
딸을 낳아 아버지가 될 때
비로소 자신 속에서 으르렁거리던 짐승과
결별한다



요즘은 딱히 그런 거 같지도 않지만.

이 한 권의 시집이
그 어떤 여자를 위한 이야기들 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 냈다

속시원히 가려운 곳을
품위있게 긁어주며
못 다한 말이 없을 정도로
우아하게 갈겨준다

이 시집을
문정희 시인을
알게되었음이
나의 올 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시를
알아가는 기쁨이
목마른 마음을
모처럼
설레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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