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 살인사건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3
에드거 월리스 지음, 허선영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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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깊이 파고들수록 더 혼란스럽네요. 부유한 한 남자가, 그것도 지독하게 원한을 품을 만한 원수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 하이드파크 공원에서 죽은 채 발견됐단 말이죠. 여자 실크 잠옷으로 가슴이 동여매어져 있고, 천으로 된 슬리퍼가 발에 신겨 있고, 중국 사자성어가 쓰인 빨간색 종이가 주머니에 들어 있었어요. 게다가 더 당혹수러운 건 수선화 한 다발이 가슴 위에 놓은 채로요.

 

 

허세가 이자 재력가인 손튼 라인.

그의 사촌이자 중국에서 형사로 지내다 귀국한 사립탐정 잭 탈링.

탈링의 조수이자 중국에서 형사였던 링추.

그들이 만나고 나서 며칠 뒤 손튼이 시체로 발견된다. 그의 시체엔 수선화 한 다발이 가슴 위에 놓여 있었다.

 

 

손튼은 자신의 백화점에 근무하는 밀버그가 지속적으로 회삿돈을 횡령하고 있다는 심증을 가지고 탈링에게 그를 조사해달라고 의뢰하기 위해서 탈링을 만났으나 밀버그의 횡령은 잊혔고, 대신 미모의 여직원 오데트를 범죄에 엮어달라 요청한다.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오데트를 벌하기 위한 손튼의 계략에 탈링은 그 사건을 맡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손튼이 죽고 오데트는 범인으로 몰린다.

그리고 상속인이 없이 죽은 손튼의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을 사람은 바로 탈링 자신이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손튼을 죽인 권총이 발견되는데 그 총은 바로 탈링의 총이었다.

도대체 이 사건은 어디로 흘러가는걸까?

그리고 손튼을 죽인 건 누구일까?

 

 

월리스의 이야기는 읽는 재미가 있다.

가끔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도 있지만(주로 로맨스 관련해서!) 그의 이야기에 빼놓지 않고 스며있는 게 바로 로맨스다.

이번 이야기에서 탐정이자 손튼의 살인사건을 경찰과 함께 수사하게 된 탈링은 미모의 오데트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는데 그래서 그녀에게 씌워진 혐의를 벗기고자 엄청 노력한다.

하지만 단서들은 자꾸 오데트를 향하고,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밀버그와 손튼을 죽였다며 오데트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손튼을 흠모하던 범죄자 샘 스테이가 등장하면서 사건은 자꾸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게다가 중국어로 적힌 사자성어는 자화번뇌(스스로 일을 자초했다)라는 뜻이 적혀있다.

도대체 손튼과 중국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단순해 보이는 사건이 단순하지 않고, 상관없어 보이는 인물들이 서로 얽혀있고, 도대체가 피어날 거 같지 않은 로맨스가 피어난다.

월리스의 매력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1900년대 초반 소설인데 중국인을 등장시키고, 중국에서 형사로 활약했던 영국인이 등장한다.

월리스의 추리 소설은 두 번째로 읽었는데 굉장히 다양한 인물들과 생소한 이야기들을 지어낸 작가다.

요즘처럼 심리적으로 디테일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그 당시에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 냈을까를 감탄하며 읽게 된다.

 

 

하지만 큰 단서는 늘 평범한 일상에서 생겨나는 법이다.

 

 

밀버그라는 인물과 샘 스테이라는 인물은 아마도 이후의 추리소설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캐릭터들의 선조 격일 거 같다.

극본을 썼기 때문인지 그의 작품은 마치 드라마를 보는듯한 재미가 있다.

오래된 영국식 드라마 한 편을 본 느낌이다.

마지막까지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요리조리 흐트러 놓는 단서들과 상황들이 반전을 기다리고 있다.

뭐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살짝~ 예측하긴 했겠지만, 그 당시에 이 소설을 접한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작품이었을 거 같다.

 

 

고전의 묘미는 추리소설도 예외는 아니다.

핸드폰 대신 공중전화나 전보를 쳐야 하고.

CCTV 대신 목격자를 찾아다녀야 하고.

모아진 단서를 눈에 새기게 들여다보며 머리를 굴려야 한다.

 

 

답답할 거 같은 고전이 뜻밖에 재미를 준다는 사실이 경이로울 뿐이다.

요즘 날고 기는 형사들과 범죄자들의 조상님 격을 만나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에드거 월리스는 만날 때마다 새롭다.

다음 작품도 빨리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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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다시, 당신에게로
오철만 지음 / 황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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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들은 말해지지 않고 묻어두어도 좋다.

우리가 왜 지금 이곳을 걷는지 알지 못해도 된다.

 

 

 

사진이나 그림, 여행 에세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진도, 그림도 아니다.

글이다.

오철만 사진작가의 글은 시 같다.

 

 

사진가들은 모두 시인이다

내면의 파도 소리가 잠잠해질 때까지

귀 기울여 듣고

부드럽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받아적는 일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내뱉는 일

시인이 하는 일이다.

 

 

 

사진들 사이사이로 글들이 흐른다.

때론 아련하고, 때론 사무치고, 때론 허심탄회하고, 때론 정스럽고, 때론 사색적이고 때론 감정적인 글들이

사진 한 켠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진작가의 사진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글에 더 마음이 기운다.

누군가의 심사숙고한 글이

누군가의 사색 가득한 글이

누군가의 호젓한 글이

책안에 담뿍 담겨있다.

 

 

 

그림 같은 사진도

선명한 화질도

무심한 길들도

잠시 멈춘 사람도

안개 자욱한 세상도

푸른빛 담뿍 담긴 바다도

책안에 담겨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나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간다.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엔 세월이 담겼다.

이리저리 찍어대서 한 컷 건지는 디지털카메라는 이해하지 못할 신중한 한 컷.

담긴 풍경을 보기까지의 시간도 인내해야 한다.

그래서 그가 수많은 시간 동안 필름인 채로 남겨 두었던 사진들을 현상하고자 했을 땐

이미 현상소가 거의 사라지고 없는 세상이 되었다.

 

오래된 필름에서 나오는 세월은 디카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의 사진들에서 느껴지는 느낌들이 뭔가 아련한 것은 그 때문인 거 같다.

 

 

모두가 그렇게 어쩔 도리가 없는 터널을 지난다. 한동안 푹 가라앉아 있다가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기를, 부디 그 시간이 짧아지기를 바랄뿐이다.

 

여행길에서

생활에서 만나지는 고달픈 인생살이도 그저 묵묵히 들어 줄밖에.

침묵으로 위로하는 모습이 든든해 보인다.

 

 

삶이 더해질수록 간직하고 싶은 장면들이 늘어날 것 같았으나 새로운 시간은 그저 과거의 시간을 밀어낼 뿐이었다.

 

 

 

글들이 깊은 밤을 날아 마음에 새겨진 시간이었다.

여행자의 마음은 늘 그렇게 놓아지는 게 많다.

수없이 많은 사진을 찍고도 정작 자신의 사진은 없다.

수없이 많은 사람을 찍고도 정작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은 없다.

 

늘 먼 곳만 바라보다

자신 곁을 보지 못한 회한이 사무친다.

 

길은 다시, 당신에게로...

 

언제나 발자국은

먼 곳에 있더라도

되짚어 온다.

당신에게로...

 

긴 밤들을 나와 함께 했던 책이었다.

깊은 사진과 더 깊은 이야기로 마음을 어루만져 준 글이었다.

곁에 두고 싶은 책이 한 권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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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오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
필립 스테드 지음, 에린 스테드 그림, 김경주 옮김, 마크 트웨인 원작 / arte(아르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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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 사후 마크 트웨인 기록 보관소에서 잠자고 있던 이 원고는 2011년 윈스립 대학의 트웨인 연구자 존 버드 박사가 마크 트웨인 요리법을 구성하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올레오 마가린'이란 단어만 보고 신청해서 세상에 드러난 작품이다. (트웨인이 요리도 잘했나 봄?) 트웨인은 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즐겼겠지만(?) 사실 딸들이 그만 보면 갖가지 것들을 들이밀며 이야기를 해달라 졸랐고, 그때그때 딸들이 가져온 것들을 소재 삼아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느라 고생(?) 좀 했다 한다.

 

이 올레오 마가린 왕자 이야기는 어느 날 딸들이 들이민 해부학 도면을 보고 지어낸 이야기 중 하나이다.

파리에서 딸들에게 양팔을 내어 주고 해부학 도면을 보며 조니라는 인물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히트 쳐서 장장 5일 동안 배드 타임 스토리를 만들어 내야 했던 마크 트웨인에게 늦었지만 위로를 보낸다.

덕분에 100년이 지난 오늘날 나는 즐겁다.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겠지만 기록으로 남긴 건 이 올레오 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뿐인데 미완성으로 남겨졌다.

그것을 작가 필립 스테드가 이어 쓰고, 그의 아내 에린 스테드가 삽화를 그려 100년 후에 완성되었다.

이 부부는 동화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칼데콧 수상 작가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삽화의 그림이 참 신비롭다.

 

 

 

 

 

조니는 전염병과 기근이라는 닭 한 마리와 할아버지와 살고 있었다.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가난한 할아버지는 욕을 입에 달고 살았고, 급기야 조니에게 전염병과 기근을 팔아 오라고 시킨다.

아무도 사지 않을 거 같은 닭. 전염병과 기근.

전염병과 기근이란 이름을 가진 닭을 팔아버리는 건 아마도 상징이지 싶다.

전염병과 기근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아무도 사 갈 거 같지 않은 닭을 조니는 도와달라는 노파에게 주고 씨앗을 받는다.

이 대목에서 재크와 콩나무가 생각난다. 이 씨앗이 쑥쑥 자라 조니에게 어떤 모험을 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지만 씨앗을 본 할아버지는 심장이 멈추고, 조니는 할아버지 무덤에 한 알 남은 씨앗을 심는다.

 

 

이 씨앗은 엄청 힘든 상황이 왔을 때에만 심어야 돼요. 심고 나서는 확신을 갖고 결과를 기다려요. 봄에 씨앗을 심고, 동이 틀 때와 밤 12시 정각에 물을 줘요. 항상 씨앗을 돌봐 주고 순수한 마음을 간직 하고요. 불평하고 싶어도 참아야 합니다. 꽃이 피면, 그 꽃을 먹어요. 그 꽃이 당신을 배부르게 해 줄 거고, 당신은 두 번 다시 허기를 느끼지 않을 거예요.

 

 

이 엄청난 말을 그대로 따른 조니에게 어느 날 꽃이 피는 것으로 씨앗이 답했다.

너무 배가 고팠던 조니는 꽃을 따서 먹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스컹크 수지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동물들의 말을 알아듣게 된 조니는 동물들의 도움으로 새집을 짓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게 된다.

올레오 마가린 왕자의 도난 사건을 접하기 전까지.

 

오직 인간만 우리 말을 못 알아들어.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굉장히 무지하고 성장도 더디고, 외롭고도 슬픈 존재야.

 

 

이 대목에서 괜스레 부끄러워진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거창한 칭호를 스스로 부여한 인간이 읽기엔 너무나 비참한 구절이다.

 

올레오 마가린 왕자와 그의 아버지 왕의 모습은 자기만 옳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다. 자기 외엔 아무도 옳지 않은 세상을 사는 독불장군들.

심지어 왕은 자신보다 큰 사람들을 거인이라 지칭하고 적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이 왕국 사람들은 모두 구부정한 자세로 살고 있다. 거인이 되지 않기 위해.

그들을 피해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이 사는 그곳.

그곳에 왕과 꼭 닮은 올레오 마가린 왕자가 있었다.

 

 

 

 

 

 

 

끊임없이 어리석은 폭력에 휘말리는 인간들을 구원해낼 절호의 말을. 인간들이 어쩌다 한 번만이라도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니는 말했다.

"여러분을 알게 돼서 정말 기뻐요."

 

거인들은(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왕국 사람들) 왕을 피해 모여 살고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구부정하게 서 있기를 포기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길 원했다.

그런 그들에게 조니가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는 모두의 가슴을 적셨다.

 

마크 트웨인이 이 이상하고도, 신비한 이야기에서 딸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마도 언제나 다정한 한 마디를 잊지 말라는 거 아니었을까?

 

끝맺지 못한 이야기를 잘 다듬어 자신과 트웨인이 친구이며 서로 이 이야기에 대해 대화를 한다고 생각하며 마무리를 한 필립 스테드.

이 이야기는 한 번만 읽어서는 그 뜻이 잘 스며들지 않는다.

그림을 찬찬히 바라보며 이야기를 음미하다 보면 그들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심어주려 했는지 알게 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아니며

모든 것을 지배할 위치도 아니라는 것.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면 살기 힘든 세상이 된다는 것.

친구를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따뜻한 말 한마디라는 것.

여러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

 

내가 발견한 이야기의 내용이다.

아마도 다른 많은 것들을 더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림은 어른들에게도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제목처럼 특이한 올레오 마가린 왕자 도난 사건.

왜 납치가 아니라 도난일까?

읽으면서 그 의미를 찾아보시길...

 

 

이야기에도

인연이 있다는 게

참 신기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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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은네디 오코라포르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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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보기만 해도, 내가 강간으로 태어난 아이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처음 날 보았을 때 아빠는 그 점을 곧장 넘겨 버렸다. 어머니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첫눈에 나를 사랑해 주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빠가 죽었을 때 내가 떠나보내기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다.

내가 직접 어머니를 위해 아빠를 골랐다. 여섯 살 때였다.

 

 

온예손우.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야기의 제목이기도 하다.

 

에우.

강간으로 태어난 혼혈아를 부르는 이름이다.

 

온예손우는 에우이다.

오케케족인 그녀의 어머니가 누루족 남자에게 강간당할 때 어머니의 마을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누루족 무장단체는 오케케족 여자들이 사막으로 가서 이레 동안 아니 여신께 경의를 표하는 피정(避靜)을 기다려 왔다. '오케케'는 '창조된 자들'이란 뜻이다. 오케케족은 낮이 되기 전 창조되었기에 밤처럼 피부가 새카맸다. 그들이 최초의 인간이었다. 한참 후에, 누루족이 등장했다. 누루족은 별에서 왔기에 피부가 태양의 색을 띠었다.

 

 

그렇게 태어난 온예손우에겐 마법이 깃들어 있다.

부당함에서 태어나 모진 시선을 견뎌내야 하는 소녀는 멈추지 않는 학살과 폭력의 중심지에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새아버지의 죽음으로 온예에게 깃든 마법의 힘이 깨어나고, 그로부터 그녀의 긴 여정이 시작된다.

 

그녀가 첫 번째 변신을 했을 때 그녀의 곁을 지켜주었던 소년 므위타는 온예의 사랑이 되었고, 온예와 므위타는 그녀의 생물학적 아버지에게 연결되어 있었다.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녀를 죽이길 원하는 생부. 그런 그에게 복수할 날만은 꿈꾸는 소녀 마법사 온예. 자신의 사부이지만 잔혹함에 그를 벗어나 도망친 므위타. 서로를 잇는 인연은 고통스럽지만 그렇기에 그들의 사랑은 굳건하다.

 

11세 소녀들에겐 할례의식이 치러진다.

에우인 온예는 그 의식을 치룸으로써 나중에 그녀와 함께 여정을 떠날 평생의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할례를 치르고 마법사를 찾아가 제자로 받아들여달라 간청하지만 '여자'라서 내쳐진다.

 

 

남녀의 가치와 운명에 대한 구식 믿음. 그게 내가 므위타에게서 유일하게 좋아하지 않는 점이었다. 어떻게 자기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의 중심이 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만났을 때부터 줄곧 이게 문제였다.

 

 

이 이야기엔 인종, 종족, 학살, 강간, 폭력, 차별, 불평등, 갈등, 마법, 환상 등이 잘 버무려져 있다.

폭력과 강간의 묘사가 사실적이라 마음속에 불꽃이 튀지만 현실은 이야기보다 더 난이도가 있음으로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 문명의 잔재들도 곳곳에 보인다. 그래서 이야기의 시대를 논하는 건 불필요한 거 같다.

이 이야기 자체가 현실에서 가져온 이야기를 환상과 마법의 힘을 빌려 이야기한 것이기에.

동물로 변신을 하고, 현계와 이계를 넘나들고, 죽은 자를 되살리고, 병을 치료하는 능력을 갖춘 마법사 소녀 온예.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아 사막을 건너며 자신을 키워나가는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어린애들인데 그네들에겐 이미 어른이나 마찬가지인 사실 앞에 살짝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어떤 틀이 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이름처럼 살게 되는 인생이었다.

다혈질이고, 자신을 억제하는 게 제일 힘들었던 온예지만 그래서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많은 걸 파괴하고 말았지만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기로 마음먹은 사람처럼 죽음을 쫓았다.

 

 

 

 

서부에서 누루족의 보는 이가 예언하길, 누루 마법사가 나타나 위대한 책에 쓰인 것을 바꿔 놓으리라고 했더랬다.

 

오케케이자 누루인 온예는 예언의 적임자가 된다.

그녀는 위대한 책의 이야기를 바꿀 수 있을까?

예언서를 바꿀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마법사가 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그것이 궁금했다. 위대한 마법사라는 건 어떤 존재일까?

 

어쩜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이야기들은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 때문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

온예도 자신은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믿고, 그 길을 걷게끔 유도했기에 그 고난의 길을 걸어간 게 아닌가 싶다.

모든 걸 잃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은 누구를 위한 대의를 짊어지는 건지 알 수 없음이다.

 

그동안 읽었던 판타지들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기승전결이 있고, 모험 뒤엔 무언가를 성취하는 이야기들만 보다가

이 현실과 버무려진 너무나 사실적인 이야기를 마주하고 있으니 그동안 내게 심어진 편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루유는 므위타가 곁에 있지 못할 때마다 내 곁에 머물렀다. 루유는 내가 사라졌을 때 옆에 있었고 같은 장소에 내가 다시 나타났을때도 여전히 거기 있었다. 겁에 질린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거기 있었다. 루유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얘기를 나눌 때면 자기가 잠자리했던 남자들이나 다른 사소한 일에 대해 말했다. 루유는 나를 웃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판타지 이야기마다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있게 마련이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이야기가 끝났을 때 아쉬움을 주는 캐릭터 말이다.

루유는 온예에게 없어서는 안 될 쉼터이자 은신처였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곁에 머물며 내게 가장 필요한 휴식을 제공해 주는 친구.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위해 아낌없이 내달리는 그런 친구는 생에 만나기 힘들다.

이 이야기에서 끝까지 가야만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있는 캐릭터인 루유.

처음엔 별로였지만 점점 맘에 드는 캐릭터였다.

우정이라는 게 어떤 건지 잘 보여준 캐릭터였다.

그래서인지 온예 다음에 므위타가 떠올라야 하는 게 이야기의 정석이지만 나는 루유에게 마음이 더 간다.

여정을 끝까지 함께 해낸 친구이자, 전사였으므로.

 

아프리카에서 자행되고 있는 끔찍한 일들에 대해 마법과 환상으로 이야기했다.

이 책이 바라는 바는 복수가 아니다.

본 마음을 찾아낸 사람들의 공존이다.

누루족 장군의(현실엔 서구 문명) 마법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인간성으로 서로 공존해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들의 희생은 가치가 있게 되는 것이다.

평화와 공존은 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것들이기에.

 

그들에게 평화가 찾아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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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아프리카 소설 2 키워드로 읽는 아프리카 소설 2
고인환 외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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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아프리카 소설. 이라고 해서 진짜 아프리카 작가들의 작품이 엮어진 소설집으로 생각했다.

이 책은 아프리카 작가의 소설을 읽고 그에 대한 감상과 생각을 적은 것이다.

말하자면 해설집이라 할 수 있다.

아동. 여성. 인종. 고발. 이야기

다섯 개의 키워드로 구분된 아프리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그 작품에 대한 감상과 평을 엮은 책이라는 걸 깨닫고 당황스러웠다.

작품을 직접 보지도 못한 채로 그것에 대한 해설을 적은 글에 대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리뷰에 대한 리뷰.

 

남의 리뷰를 읽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건 어렵다.

게다가 내가 그 이야기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점을 찾자면 아프리카 문학 작품들의 맛을 본 접이랄까?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었던 작품들이 어떠한 것들이 있으며 그 작품을 어떻게 읽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잡아준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아프리카는 척박한 땅에서 나름의 풍요를 누리며 많은 부족들이 살아가고 있는 땅이었다.

백인들이 눈독 들이기 전까지는.

백인은 아프리카 땅을 점령하고, 그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만들었다.

미개하다는 이름하에.

남의 문명을 존중하지 못하는 자들이야말로 미개인인 것을.

 자신들을 침략하고 약탈한 자들의 언어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던 아프리카 사람들이 이제야 조금씩 이야기를 엮어나가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만났을 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경희대학교 출판부에서 이제3세계로 분류되는 아프리카의 작품들을 발굴해서 영미권 작품들이 판치는 우리나라에 색다름을 주는 거라 믿었는데 자세히 살펴보지 못한 내 불찰이다.

 

 

 

 

 

 

 

아프리카 출신 작가들의 정체성은 모호합니다. 그들은 조국을 떠나 서구의 여러 나라들과 아프리카를 떠돌며 문화적 혼종성을 체현하고 있는 경계인들입니다. 아프리카 작가들은 제국의 언어로 생산된 자신들의 작품이 아프리카 독자들을 일차적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민중을 위해 글을 쓰고 있다는 소명의식 또한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은 지배자의 언어와 아프리카 민중들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정체성을 증명해야 하는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운명을 지녔습니다.

  

지금도 아프리카 여러 곳에서는 학살이 멈추지 않고 있다.

그들이 가진 자원을 빼내기 위한 서구 열강들의 그늘 아래 동족끼리 자행되는 학살과 착취는 영혼이 아름다웠던 아프리카인들을 돈의 노예로 전락시켰다.

서구 문명이 아프리카에 뿌린 씨는 돈의 노예가 되어가는 현대인이라는 문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여러 나라로 떠돌아다니는 유목민 같은 그들의 모습을 담은 소말리아의 나디파 모하메드의 <<모래바람을 걷는 소년>>과 알제리의 아시아 제바르의 <<사랑, 판타지아>> 앙골라의 주제 에두아르두 아구아루사의 <<기억을 파는 남자>>가 읽어 보고 싶어졌다.

이 책에 제목만 실려있는 책들을 만나 볼 날이 오기를 기다려본다.

우리나라의 문학에도 서구 중심의 문학작품들 말고 비서구적 가치를 지닌 작품들이 많이 번역되어 다양한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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