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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은네디 오코라포르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5월
평점 :
딱 보기만 해도, 내가
강간으로 태어난 아이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하지만 처음 날 보았을 때 아빠는 그 점을 곧장 넘겨 버렸다. 어머니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첫눈에
나를 사랑해 주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빠가 죽었을 때 내가 떠나보내기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다.
내가 직접 어머니를 위해
아빠를 골랐다. 여섯 살 때였다.
온예손우.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야기의 제목이기도 하다.
에우.
강간으로 태어난 혼혈아를 부르는 이름이다.
온예손우는 에우이다.
오케케족인 그녀의 어머니가 누루족 남자에게 강간당할 때 어머니의 마을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누루족 무장단체는 오케케족 여자들이 사막으로 가서 이레 동안 아니 여신께
경의를 표하는 피정(避靜)을 기다려 왔다. '오케케'는 '창조된 자들'이란 뜻이다. 오케케족은 낮이 되기 전 창조되었기에 밤처럼 피부가
새카맸다. 그들이 최초의 인간이었다. 한참 후에, 누루족이 등장했다. 누루족은 별에서 왔기에 피부가 태양의 색을
띠었다.
그렇게 태어난 온예손우에겐 마법이 깃들어 있다.
부당함에서 태어나 모진 시선을 견뎌내야 하는 소녀는 멈추지 않는 학살과 폭력의 중심지에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새아버지의 죽음으로 온예에게 깃든 마법의 힘이 깨어나고, 그로부터 그녀의 긴 여정이 시작된다.
그녀가 첫 번째 변신을 했을 때 그녀의 곁을 지켜주었던 소년 므위타는 온예의 사랑이 되었고, 온예와 므위타는 그녀의 생물학적
아버지에게 연결되어 있었다.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녀를 죽이길 원하는 생부. 그런 그에게 복수할 날만은 꿈꾸는 소녀 마법사 온예. 자신의
사부이지만 잔혹함에 그를 벗어나 도망친 므위타. 서로를 잇는 인연은 고통스럽지만 그렇기에 그들의 사랑은 굳건하다.
11세 소녀들에겐 할례의식이 치러진다.
에우인 온예는 그 의식을 치룸으로써 나중에 그녀와 함께 여정을 떠날 평생의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할례를 치르고 마법사를 찾아가 제자로 받아들여달라 간청하지만 '여자'라서 내쳐진다.
남녀의 가치와 운명에 대한 구식 믿음. 그게 내가 므위타에게서 유일하게
좋아하지 않는 점이었다. 어떻게 자기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의 중심이 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만났을 때부터 줄곧
이게 문제였다.
이 이야기엔 인종, 종족, 학살, 강간, 폭력, 차별,
불평등, 갈등, 마법, 환상 등이 잘 버무려져 있다.
폭력과 강간의 묘사가 사실적이라 마음속에 불꽃이 튀지만 현실은 이야기보다 더 난이도가 있음으로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 문명의 잔재들도 곳곳에 보인다. 그래서 이야기의 시대를 논하는 건 불필요한 거
같다.
이 이야기 자체가 현실에서 가져온 이야기를 환상과 마법의 힘을 빌려 이야기한
것이기에.
동물로 변신을 하고, 현계와 이계를 넘나들고, 죽은 자를 되살리고, 병을 치료하는 능력을 갖춘 마법사
소녀 온예.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아 사막을 건너며 자신을 키워나가는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어린애들인데 그네들에겐 이미 어른이나 마찬가지인 사실 앞에 살짝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어떤
틀이 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이름처럼 살게 되는
인생이었다.
다혈질이고, 자신을 억제하는 게 제일 힘들었던 온예지만 그래서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많은 걸
파괴하고 말았지만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기로 마음먹은 사람처럼 죽음을
쫓았다.
서부에서 누루족의 보는 이가 예언하길, 누루 마법사가 나타나 위대한 책에 쓰인
것을 바꿔 놓으리라고 했더랬다.
오케케이자 누루인 온예는 예언의 적임자가 된다.
그녀는 위대한 책의 이야기를 바꿀 수 있을까?
예언서를 바꿀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마법사가 될 수 있을까?
읽는 내내 그것이 궁금했다. 위대한 마법사라는 건 어떤 존재일까?
어쩜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이야기들은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 때문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
온예도 자신은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믿고, 그 길을 걷게끔 유도했기에 그 고난의 길을 걸어간 게 아닌가
싶다.
모든 걸 잃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은 누구를 위한 대의를 짊어지는 건지 알 수 없음이다.
그동안 읽었던 판타지들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기승전결이 있고, 모험 뒤엔 무언가를 성취하는 이야기들만 보다가
이 현실과 버무려진 너무나 사실적인 이야기를 마주하고 있으니 그동안 내게 심어진 편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루유는 므위타가 곁에 있지 못할 때마다 내 곁에 머물렀다. 루유는 내가
사라졌을 때 옆에 있었고 같은 장소에 내가 다시 나타났을때도 여전히 거기 있었다. 겁에 질린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거기 있었다. 루유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얘기를 나눌 때면 자기가 잠자리했던 남자들이나 다른 사소한 일에 대해 말했다. 루유는 나를 웃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판타지 이야기마다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있게 마련이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이야기가 끝났을 때 아쉬움을 주는 캐릭터 말이다.
루유는 온예에게 없어서는 안 될 쉼터이자 은신처였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곁에 머물며 내게 가장 필요한 휴식을
제공해 주는 친구.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위해 아낌없이 내달리는 그런 친구는 생에 만나기 힘들다.
이 이야기에서 끝까지 가야만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있는 캐릭터인 루유.
처음엔 별로였지만 점점 맘에 드는 캐릭터였다.
우정이라는 게 어떤 건지 잘 보여준 캐릭터였다.
그래서인지 온예 다음에 므위타가 떠올라야 하는 게 이야기의 정석이지만 나는 루유에게 마음이 더 간다.
여정을 끝까지 함께 해낸 친구이자, 전사였으므로.
아프리카에서 자행되고 있는 끔찍한 일들에 대해 마법과 환상으로 이야기했다.
이 책이 바라는 바는 복수가 아니다.
본 마음을 찾아낸 사람들의 공존이다.
누루족 장군의(현실엔 서구 문명) 마법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인간성으로 서로 공존해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들의 희생은 가치가 있게 되는 것이다.
평화와 공존은 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것들이기에.
그들에게 평화가 찾아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