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서른, 세계여행 - 현실 자매 리얼 여행기
한다솜 지음 / 비채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15일간의 세계여행은 나를 낱낱이 알려주는 '안내자'였다. 어떤 외부적인 요인이나 누군가의 평가도 아닌, 내가 나를 직접 겪고 느끼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가장 느리고도 빠른 길이었다.

 

 

스물다섯의 동생과 서른의 언니가 함께 세계여행을 떠났다.

아주 이상적임과 동시에 언제나 꿈으로만 남을 거 같은 환상이 현실이 된 걸 보는 느낌이다.

나는 왜 나의 자매들과 저런 여행을 할 생각을 못 했을까?

 

이 책을 읽고 부러워서 동생과 통화하면서 넌즈시 얘기를 꺼냈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동생의 대답은 자기 아들이 대학 갈 때까지 참아라였다.

이제 6살짜리가 대학 갈 때까지 언제 기다릴까.

 

여행길에선 친구가 남남이 되기도 하고, 생전 처음 보는 남이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럼 자매들의 여행은 어떨까?

 

한 뱃속에서 나왔어도 제각각인 자매들은 성격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다.

그럼에도 서로를 의지하며 여행을 계속한다.

생각지도 못한 좋은 숙소에서 환대를 받는가 하면

벌레가 기어 다닐 정도로 관리가 안 된 곳에서 며칠을 기거해야 하기도 한다.

예약 확인을 잘 하지 못해서 비행기를 놓칠 뻔하기도 하고,

서로의 취향대로 각자 알아서 따로 여행지를 둘러 보기도 한다.

 

한두 마디 자매들의 대화가 두 사람의 확고하게 다른 점을 나타내줘서 싱긋거리며 읽었다.

나와 내 동생도 여행을 간다면 저 자매들처럼 잘 다닐 수 있을까?

내심 상상해보는 재미도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대단한 무언가를 이뤄야만 만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행을 떠나온 지금은 이렇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사람들의 웃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곽 찬다. 이렇게 변해가는 내 모습이 좋다.

 

 

 

여행은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다.

무엇이든 여행길에서는 깨닫고, 알게 되고, 느껴지는 게 있다.

일상에서와는 다른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의 일상을 뒤로하고 자꾸 낯선 곳으로 가려 하나 보다.

 

 

 

 

215일간의 여행 경비의 기록들과 함께 짧은 여행기 사이사이 깨알 팁들이 담겨 있다.

이 책은 두 사람의 여행기를 얘기하지만 한 사람의 일방적인 시선만 담겨있다.

상세한 가이드 라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소소한 여행의 여정이 잘 담긴것도 아니다.

맥락이 끊기는 느낌이 많아서 여행 가이드북으로 삼기는 어려운 책이다.

그래서 많이 아쉬운 느낌이다.

여행하다 보면 나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모든 면을 꺼내게 된다. 예상치 못한 여러 상황과 힘든 시간, 즐거운 시간을 모두 겪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알지 못했던 나를 알게 되면서 컨트롤하고 다스리며 한 단계 성장하는 것 같았다.

 

세계 여행자란 명함을 들고 세계 곳곳을 다닌 자매는 떠나기 전의 자신들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요즘처럼 취업하기 힘든 시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홀연히 떠날 수 있는 용기는 아무에게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녀들의 215일이 그녀들 인생에 가장 값진 날들인 것만은 바꾸지 않겠지..

유럽 사람들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지 않는 선에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참 자유롭다.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보다는 '나의 행복'을 더 중요시하는 것. 배우고 싶고, 배우고 있는 마인드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 땅에서 탈피한 그녀들의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여행기를 쓴 사람이 언니라 그런지 동생에 대한 평가가 냉정(?) 하다.

내 동생이 여행하는 이유 중 하나는 '더 큰 세계로 나아가 잘생긴 남자들을 보려고'가 확실하다.

작가는 오늘도 용기가 나지 않아 여행을 꿈만 꾸는 사람들에게 찰떡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용기는 생각이 나 고민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직접 부딪혀 겪으며 얻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필요한 것은 준비된 마음과 조금은 철저한 정보 조사입니다.

 

 

나도 언젠간

내 동생과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

각자의 가정이 있어 서로의 시간을 맞추기 힘들겠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음으로 언젠가는 이루어질 거라 믿는다.

무엇을 하는 데 있어서 늦은 때라는 건 결코 없음을 나는 알고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미래나 과거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더 잘 알 수는 있는 것입니다.

 

 

테드 창을 통해 미래를 잠시 엿보고 왔다.

내가 여지껏 상상했던 미래와 조금 다른 미래의 이야기다.

영화나 소설을 통해 시간을 거스르는 일들을 종종 봐왔는데 그들은 모두 과거든 미래든 자신과 마주치는 것을 경계했다.

테드 창은 자기 자신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도록 한다. 미래의 자신과의 만남에서 시간 여행을 하는 자들은 조금은 더 현명해지고, 조금은 더 깊어졌을 자신들과 대화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의 길을 다지고 있다.

물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는 결국 본인 자신의 선택이다.

 

그 무엇도 과거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회개가 있고, 속죄가 있고, 용서가 있습니다.

단지 그뿐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어려운 문장들의 나열들이면 어떡하나 걱정했던 건 기우였다.

과학적 지식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테드 창의 이야기는 쉽게 다가서게 한다.

테드 창의 이력은 우리가 흔히 분류하는 이과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어떤 문학작품 속의 이야기보다 더 감정적이다.

그래서인지 세련된 미래의 문학작품 세계를 접한 느낌이다.

가본적 없는 미래를 마치 가서 눈여겨보고 온 사람처럼 이야기하기에 그의 모든 이야기가 사실처럼 느껴진다.

 

가만히 있으면서 주의를 끌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치에 맞는 행동이다.

 

 

거대한 침묵에서 우주로 자꾸 신호를 보내는 인간들은 자신들의 곁에서 자신들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앵무새들에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우주가 당혹스런 침묵을 지니는 이유는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다.

많은 문명들이 존재하는 우주에서 자신들을 드러냈다가는 원하지 않는 접촉으로 인해 멸망을 자초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런 두려움없이 무모하게 자꾸 신호를 보내고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우주로 쏘아 올리는 신호에 들이는 비용을 앵무새를 연구하는 데 쓴다면 앵무새로 인해 다른 종의 동물들과의 소통도 이루어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인간의 활동은 나의 동포들을 멸종 직전까지 내몰았지만, 나는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생명이 없이도 스스로 진화해가는 디지언트들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는 어때야 하는가?

단지 프로그램이니까 사용하다 싫증 나면 던져 놓으면 되는 것인지

살아 숨 쉬는 생명체는 아니지만 프로그램을 켜 놓으면 스스로 학습하면 발전해가는 그들을 생명이 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하는지 읽으면서도 답을 낼 수가 없었다.

 

마르코를 존중하고 싶다면 그를 인간처럼 대해야 할까, 아니면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까?

 

선행 학습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내겐.

알 수 없는 미래에 벌어질 법한 문제들을 미리 예습해 보는 시간들을 지나서 나는 미래가 생각만큼 두려운 시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테드 창 같은 작가들이 그리는 미래의 세계들을 우리가 잘 읽고 계속 상상해간다면 좀 더 현명한 미래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우리의 행보는 미래로 가는 길목에 있다.

기계가 능한 게 있고, 인간이 능한 게 있다.

기계와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세계가 미래라면, 가상세계 역시도 우리가 가지게 될 하나의 세상이라면

우리는 그 모두를 아우르는 마음과 생각을 지녀야 할 것이다.

그것에 관해서 그 누구보다 심도 있게 다루고 아름답게 들려줄 사람은 테드 창 같은 감수성을 가진 이성적인 작가일 것이다.

 

어째서 다들 테드 창에 열광하는지 이제야 알 거 같다.

그가 그리는 세계가 결코 어느 하나만을 유리하게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쪽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한쪽을 통해 양쪽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글쓰기를 잃어버리는 시점에 와 있다.

필사가 유행을 하고, 손글씨로 된 무언가가 많은 사람들에게 굉장한 일처럼 생각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는 이미 테드 창의 이야기 한 편에 자리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찾아내야 하는 건 인간다움이다.

가상의 세계에서도 기계의 세상에서도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것.

인간다움을 지켜내는 것이 우리가 살 길이다.

그 모든 것들로부터 우리를 다르게 만드는 건 바로 우리의 마음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들러스 타운의 동양 상점
우성준 지음, 송섬별 옮김 / 아토포스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여기가 좋아?" 누나가 물었다. 여기라는 것이 이 가게를 말하는 건지, 이 나라를 말하는 건지, 이 지구를 말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 물으려다가 어차피 내 대답은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이만하면 됐어." 내가 말했다.

누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이만하길 다행이지."

 

 

 

12살 대준이는 엄마와 누나와 함께 미국에 도착한다. 그들을 기다리는 건 5년 전 먼저 건너와 자리를 잡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페들러스 타운에 동양 상점이라는 이름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대준에서 데이빗이 된 12살 어른 꼬마의 좌충우돌 이민사! 라고 생각했는데, 읽어가는 내내 그들을 둘러싼 주변인들까지 아우르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뜨끈해진다.

 

 

부모님이 다투는 소리와 누나의 피아노 소리가 뒤섞이자 이상하게도 노래처럼 들렸다.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았다. 그냥, 우리 가족 같았다.

 

 

한참 사춘기였던 누나는 준이 보다 미국 생활에 적응하는데 더 많은 외로움을 느꼈다. 자주 싸우는 부모님과 누나의 예민함에 가려져 준이는 어른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마이 굿 선~"

아빠가 이렇게 준이를 부를 때마다 준이는 알 수 없는 거부감을 느낀다.

아마도 떨어져 있는 동안 상상했던 아빠와 직접 마주한 아빠는 많이 어색하고 달랐다.

그런 아빠가 자신과 어떡하든 친해져 보려는 모습을 대하는 준이의 자세가 상당히 어른스럽다.

준이 눈에 아빠가 자신을 마이 굿 선~ 이라고 부를 때면 뭔가 요구 사항이 있거나, 난처한 사항에 자신을 밀어 넣거나,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키기 때문이다.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준이지만 이 묵묵한 아이는 아빠의 청을 거절하지 못한다.

 

가게는 생각 보다 컸고, 영어가 짧은 아빠는 홍씨 아저씨의 도움을 받으며 그래도 장사를 잘 해간다.

준과 수는 학교 외에는 늘 가게에서 아빠와 엄마를 돕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하는 페들러스 타운의 가게 주인들의 시선으로 자신들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스피커를 파는 드미트리 포포브. 거울 가게를 하는 테드 맥마너스, 가방 가게를 하는 홍씨 아저씨, 탐정인 밀러씨, 식당 주인 제이크.

이들의 이야기가 양념처럼 곁들여지면서 이 이야기는 한 이민자 가족에서 시작해서 다른 세계로 확대되어 간다.

 

이제는 가족이 다시 함께하게 되었으니 행복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낯선 나라에 와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뿐만은 아니었다. 지금은 혼자 남겨진 게 아닌데도 여전히 혼자라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남편이 변해서인 건지도 몰랐다. 변한 건 사랑을 나누는 방식이라든지 좋아하는 음식처럼 큰 것들이 아니라 자잘한 것들이었데, 그녀는 지금까지 이런 별 것 아닌 것들이 사람의 성격에서 그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몰랐다.

 

 

5년이란 세월은 부부 사이에도 넘기 힘든 간극이었다.

게다가 다른 한 사람의 외도는 더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잦은 부부 싸움에도 그들은 가게에서는 언제나 다정한 가족이어야 했다.

부모의 싸움을 지켜보며 그것에 대처하는 준과 수의 모습.

 

 

솔직히 말하면 최대한 아빠와 거리를 두고 싶었다. 죄지은 사람과 생활공간을 공유하다는 오명을 안는것도 별로인데다가 엄마에게 내가 아빠 편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도 않았다.

 

수는 엄마와 준은 아빠와 한 방을 쓰게 된다.

물론 준은 아빠 편을 들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빠를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12살 어린 준에겐 부모님의 이혼이 기정사실화되는 것이 세상에 그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든 일이기에.

 

낯선 곳에서 10대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의 마음속엔 무엇이 있을까?

자신들의 고단함보다는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급급했던 그들에겐 무엇이 남았을까?

자꾸만 쓰러지던 크리스마스트리는 그런 그들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엄마가 없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빠 없이는 몇 년이나 살아 봤지만, 엄마 없는 세상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요즈음 엄마는 엄마 노릇을 별로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엄마가 없는 것과는 천지차이였다.

 

 

이민자의 이야기엔 늘 부당함이 첨부되어 있다.

그래서 읽기 불편할 때가 종종 있다.

이 이야기엔 그런 이야기가 거의 없다. 그래서 훈훈하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해하려 하는 마음들이 페들러스 타운엔 존재한다.

준이의 시선에서 그들의 시선으로, 그들의 시선에서 가족 각자의 시선으로 하는 이야기는 그래서 서로에 대한 편견이 있더라도 각자의 성격대로 해석되기 때문에 그 객관적인 해석이 독자에게 웃음을 준다.

 

 

 

아빠가 왜 그렇게 못되게 구는 지 몰랐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안다. 그럴 수 있어서였다. 처음으로 미국인을 부릴 기회를 얻은 아빠는 그 권력에 취했던 것이다.

 

 

처음으로 미국인 아르바이트생을 쓰면서 장사가 잘 되자 그의 면전에서 그를 물건 파는 기계 취급하며 못생겼다고 한국말로 그의 칭찬 아닌 칭찬을 늘어놓는 아빠의 모습이 어린 준 이에겐 못되게 보였지만 어른이 된 준이는 그때의 아빠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져 페들타운의 사람들을 이어준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아도 놀랍도록 서로를 이해하는 수준이랄까?

12살 소년의 시선으로 보아지는 이야기는 객관적이고 따스하며 유머러스하다.

억지로 웃기려 작정을 한 것 보다는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서로의 다름이 빛을 발한다고 할까?

페들러스 타운엔 정스런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거 같다.

서로의 사정을 보살피며, 가끔 서로의 민낯을 보게 되지만 기본적인 존중을 가지고 서로를 대했던 그때 그 사람들.

 

이제 허물어져서 흔적도 남지 않은 곳을 바라보며 어른이 된 준이와 수는 그곳에서의 추억을 회상한다.

그곳은 그들에게 또 다른 고향이었다.

처음 낯선 나라에 발을 디디고 자신들의 터전인 이곳에서 모든 걸 스스로 극복해가야 했던 고달픈 이민자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관심과 이해와 존중과 삶을 선사했던 곳 페들러스 타운.

그때 그 어른들은 이제 그곳에 없지만 준이와 수의 마음속엔 살아있으리라 믿는다.

 

모처럼

고달프면서도 서럽고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훈훈하고 따스하게 버무린 이야기로 읽었다.

그래서인지 마음속에 온기가 퍼지는 느낌이다.

수와 준이 잘 자라주었다는 느낌과 페들러스타운을 다시 찾는 그들의 발걸음에서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소리 없는 따스함이 책을 통해 전해지는 느낌이다.

지긋지긋했던 곳이라면 고향이라도 두 번 다시 찾지 않았을 것이 사람 마음이라.

그곳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에 발걸음을 한 어른이 된 두 아이의 추억이 그만큼 따스했으리라 믿는다.

 

 

균형 잡힌 이야기들에 마음이 끌린다.

다음 이야기도 기대되는 작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을 꾸듯 춤을 추듯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7
김재아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인간으로 태어나 보니 서른 살 남자다.

나를 만든 어머니는 내가 태어난 날 화형 당했다.

내 영원한 친구는 협박을 받고 있다.

내 친구 제이슨은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내 몸을 기억하는 여자가 나타났다.

그 몸인 박서로는 자꾸만 눈물을 흘린다.

사람들에게 나란 존재를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

내 직장에는 어느 여성이 16년째 갇혀 있다.

16년 동안 매일 죽음과 다투었고, 이제 탈출과 자살을 원한다.

자신과 별 차이 없는 존재이지만 자신과 다른 취급을 받는 내게 도움을 구하고 있다.

나는 해결 방법을 모른다.

 

 

제목처럼 꿈을 꾸듯 춤을 추듯 이야기를 읽었다.

 

 

138억 년의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지구의 역사를 되풀이 학습해온 로봇이 인간의 몸을 빌어 인간으로 태어났다.

뇌사한 인간의 몸에 이식된 칩으로 인간으로 깨어난 로움은 사륜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태어난 날 자신을 만들고 자신이 인간이 되기를 도와주었던 노아가 화형 당한 사실을 알게 된 사륜.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인간의 신체와 결합된 뇌를 가진 인공지능 인간은 그 자체로 두려움의 대상이다. 급진파들은 급기야 사륜을 만든 노아를 마녀사냥하듯 화형 시켜버린다.

사륜은 자신의 존재를 감추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

 

죽음을 연구하는 연구실에 연구원으로 들어간 사륜은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인간 아닌 인간 엘리야를 만난다.

그녀 역시 죽은 인간의 몸에 뇌가 이식된 마루타였다.

온갖 질병을 감염시켜 그 치료법을 찾아내는 마루타로 사용되는 엘리야.

사륜의 존재를 알아챈 엘리야는 그에게 자신을 탈출시켜 달라 말한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말인데 겨우 뇌의 일부가 기계일 뿐인데 네가 왜 기계로 취급받지? 인간들은 왜 당신을 기계라고 말하지? 당신은 아마도 인간과 똑같이 아파했을 테고, 인간과 똑같이 웃었을 테고, 인간과 똑같이 눈물 흘렸을 거야."

"그건 중요하지 않아, 인간에겐.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나를 규정해. 그게 양심의 가책을 덜어주니까."

 

 

 

 

 

이런 세상이 언젠가는 올 거라 예상했지만 이토록 아프게 다가올 줄 몰랐다.

서정적인 문체가 기계인지 인간인지 단정할 수 없는 사륜과 엘리야를 너무도 인간답게 그려내기에 나도 모르게 그들을 지지하고 그들을 반대하는 인간들을 미워하게 된다.

 

 

참 독특하고 아름답게 슬픈 이야기였다.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인간들의 가난한 삶.

일자리는 빼앗겼지만 인간성마저 빼앗길 수 없는 인간의 몸부림.

인간이고 싶었던 로봇이 인간이 되었을 때 환영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자신을 숨기며 살아내야 하는 상황.

인간들의 질병 치료제를 찾기 위해 실험실의 동물들 처지가 된 인간 마루타.

이 복잡한 이야기를 차분하고 정감있게 그려낸 작가의 솜씨.

꿈처럼, 춤처럼 흘러가는 이야기에 홀린 느낌이 든다.

 

 

 

 

 

 

 

 

 

 

 

"죽지 못 해 살아가죠, 이제 인간은."

 

 

수명이 130년으로 늘고, 과학의 발달로 공기의 질이 좋아지고, 인공 몸으로 대체하여 장애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지만

인간은 일자리가 없다. 기계가 온갖 일자리를 다 차지했고, 그 기계가 내는 세금으로 인간은 연명하며 살아간다.

그런 세상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로 남을까?

 

 

 

인간은 감각이다. 감각하는 동물이다.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감각하는 동물이다. 생각하는 능력은 AI가 더 뛰어나니 인간의 특징은 감각이다. 생생한 감각을 가진 동물이다. 그러나 앞으로 감각마저 AI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


 

 

 

 

 

사륜의 시선을 통해 이어지는 미래의 이야기는 다정하다.

신랄하지도, 무능하지도, 폭력적이지도, 감정적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글 사이사이에서 느껴지는 자잘한 변화들이 사륜을 점점 인간으로 만들어 간다.

로움이었다가 박서로의 몸으로 사륜이 된 AI.

그는 자신에게 닥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까?

노아가 남기고 간 '영원한 친구' 몽이를 어떻게 지켜낼까?

 

 

이 이야기가 아름답게 슬픈 이유는 마지막에 있다.

몽이를 지켜내기 위해 사륜이 내린 결정.

엘리야를 지키기 위해 사륜이 내린 결정.

 

 

인간과 AI의 차이가 뭘까?

이 이야기대로라면 어떤 차이도 알아 내기 힘들 거 같다.

몸의 절반이 기계화되더라도 살수만 있다면 행복할까?

직업없이 그저 나라의 보조금으로 산다면 행복할까?

모든 게 기계화된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것일까?

 

 

신인 작가의 이야기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이야기 속의 딜레마를 내가 겪지 않아도 될 거라는 생각에 안도하는 나 자신을 본다.

저 멀리 외계에서 온 연락은 인간에게 희망보다는 두려움을 주었다.

이 지구를 기계와 외계인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어쩜 인간보다 더 오래 지구에서 살아낸 모든 생물체들에게 인간이 기계일 수 있다.

인간으로 인해서 지구에서 멸종된 생물체에게 인간이 외계인일 수 있다.

편의에 의해서 공존보다는 멸종을 선택한 인간의 의지가 결국 자신들이 만들어낸 기계들에 의해서 스스로의 멸종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권의 책은

나를 저 멀리 닿을 수 없는 세상으로 데려갔다가

겁이 나도록 또렷한 현실로 뚝 떨어뜨려 놓았다.

꿈을 꾸듯, 춤을 추듯. 그렇게...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벽의 방문자들 - 테마소설 페미니즘 다산책방 테마소설
장류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남 오빠에게 그 이후 그녀들의 이야기는 달라진 게 있을까?

페미니즘.

우리가 늘 쓰고 있지만 정말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알지 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 책엔 6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새벽의 방문자들 - 장류진

룰루와 랄라 ㅡ 하유지

베이비 그루피 ㅡ 정지향

예의 바른 악당 ㅡ 박민정

유미의 기분 ㅡ 김 현

누구세요? ㅡ 김현진

새벽마다 초인종을 누르는 낯선 남자들.

그 남자들의 사진을 찍어 벽에 붙여 놓고 간략한 인상과 점수를 매겨 넣는 여자.

그녀 혼자 사는 오피스텔은 예전에 누가 살았는지 모를 사람들의 흔적이 새벽에 초인종을 누른다.

새벽의 방문자들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찾아왔다. 여자는 초인종이 울릴 때마다 비디오 폰에 달린 모니터로 남자들을 관찰했다. 그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별일 아니라고 주문을 거는 듯한 태연함, 남에게 들키기 싫은 일을 할 때의 부끄러움, 돌연 술이 확 깨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의 주저함, 그러면서도 어쨌든 곧 벌어지게 될 눈먼 섹스에 대한 설렘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얼굴들.

 

 

모두가 잠들어 있어야 할 새벽에 잠들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그녀의 밤은 늘 조마조마하다.

두려움이 호기심으로, 호기심이 관찰로 변했던 그 좁은 공간.

다른 동 같은 호수의 그녀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걸 그녀는 알게 된다.

그리고 헤어졌던 그 남자도 새벽에 초인종을 울린다.

섹스를 돈으로 사는 남자들의 머그샷을 두고 그녀는 이사를 간다.

룰루가 손으로 가리킨 그곳엔 금연 푯말이 있었다.

무신경한 흡연자에게 향한 룰루의 가냘픈 손짓엔 말보다 더한 감정이 흐른다.

버스 정류장에서 두 여자는 친구가 되었다.

오며 가며 마주치던 시선이 하필 버스 정류장에서 이야기를 하게 됐을까?

떠나고, 돌아오는 곳. 버스 정류장.

어느 버스를 타게 될지 안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알 수 없는 그곳.

마음의 고달픔을 털어내고 서로의 기억이 되어 주었던 그곳에 룰루와 함께 랄라를 기억하는 그녀가 있었다.

우리가 만나는 동안 P는 콘돔을 사용하지 않았다. 몇 번인가 더 섹스를 한 뒤 슬며시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는 한 번도 콘돔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 사이 내 24인치 캐리어에는 임신테스트기가 늘어갔다.

 

 

베이비 그루피.

무책임한 남자. 가 아닌 어른.

초와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때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서로의 상처를 내뱉은 그날에야 비로소 서로 마주 보며 웃을 수 있었다.

어린 마음을 후려친 그 남자 어른들은 '내 친구들도 그렇게 해왔고 아무 일도 없었던' 그 일에 대해 일말의 양심도 갖지 않았을 것이다.

보라는 피해자일까? 가해자일까?

누가 예의 바른 악당일까?

나는 아직도 그 이야기의 핵심을 알지 못하겠다. 진심으로.

형석은 사과할 자격을 잃어버리지 않는 인간이야말로 자신을 만만히 여기지 않는 이라고 생각했고, 승우는 사과하지 못했다는 것을 평생 기억하는 인간이야말로 누군가를 만만하게 여기지 않는 이라고 생각했다.

 

 

진지한 유미.

자신은 공정한 선생이라는 명제가 머릿속에 박힌 형석에게 사과란 왜?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문제다.

그가 위키디피아까지 들먹여 가며 내뱉은 사과에 웃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학교에서 무분별하게 가해지는 성희롱과 언어폭력.

너무나 일반화되어서 그게 문제일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선생들과 남학생들.

여학생들은 그저 그렇게 웃고 넘겨야만 할까?

유미처럼 웃지 않고 손을 들어 한마디를 하면 안 되는 걸까?

아직도 되풀이되고 있는 이 입담들 앞에서 유미의 기분이 온전히 느껴져서 형석의 웃고픈 사과까지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싶은 이 마음이 비단 나뿐일까?

누구세요?

묻고 싶다.

익히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 주변의 남자들에게 누구냐고.

나라고 알고 있던 나에게 묻고 싶다.

넌 정말 너로 살고 있냐고.

마지막 이야기 누구세요? 는

남자와 여자가 잠시 바뀌었을 뿐이다.

근데 왜 이리 자극적인 걸까?

왜 이리 통쾌한 걸까?

왜 이리 웃음이 나는 걸까?

그리고 왜 죄지었다는 느낌이 안 드는 걸까?

6편의 이야기는 한숨을 쉬게 한다.

매 이야기마다 새로운 주인공을 만나게 되지만 모두 내가 아는 사람들이다.

현남 오빠에게.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는 못다 한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일 뿐이다.

페미니즘이란 단어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도 이 짧은 단편들을 읽어 보라 권하고 싶다.

여기엔 우리가 일상에서 스치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지어낸 이야기지만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심코. 늘 그래왔듯이. 언제나처럼. 무분별하게. 의식하지 못하고. 그게 왜? 어때서? 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

누군가의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후벼 판 일이기도 하다는걸.

누군가에게 마구잡이로 상처를 주었다는 뜻이기도 하다는걸.

배워가자는 이야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