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유미.
자신은 공정한 선생이라는 명제가 머릿속에 박힌 형석에게 사과란 왜? 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문제다.
그가 위키디피아까지 들먹여 가며 내뱉은 사과에 웃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학교에서 무분별하게 가해지는 성희롱과 언어폭력.
너무나 일반화되어서 그게 문제일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선생들과 남학생들.
여학생들은 그저 그렇게 웃고 넘겨야만 할까?
유미처럼 웃지 않고 손을 들어 한마디를 하면 안 되는 걸까?
아직도 되풀이되고 있는 이 입담들 앞에서 유미의 기분이 온전히 느껴져서 형석의 웃고픈 사과까지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싶은 이 마음이 비단 나뿐일까?
누구세요?
묻고 싶다.
익히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 주변의 남자들에게 누구냐고.
나라고 알고 있던 나에게 묻고 싶다.
넌 정말 너로 살고 있냐고.
마지막 이야기 누구세요? 는
남자와 여자가 잠시 바뀌었을 뿐이다.
근데 왜 이리 자극적인 걸까?
왜 이리 통쾌한 걸까?
왜 이리 웃음이 나는 걸까?
그리고 왜 죄지었다는 느낌이 안 드는 걸까?
6편의 이야기는 한숨을 쉬게 한다.
매 이야기마다 새로운 주인공을 만나게 되지만 모두 내가 아는 사람들이다.
현남 오빠에게.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는 못다 한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있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일 뿐이다.
페미니즘이란 단어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도 이 짧은 단편들을 읽어 보라 권하고 싶다.
여기엔 우리가 일상에서 스치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지어낸 이야기지만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심코. 늘 그래왔듯이. 언제나처럼. 무분별하게. 의식하지 못하고. 그게 왜? 어때서? 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
누군가의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후벼 판 일이기도 하다는걸.
누군가에게 마구잡이로 상처를 주었다는 뜻이기도 하다는걸.
배워가자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