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들러스 타운의 동양 상점
우성준 지음, 송섬별 옮김 / 아토포스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여기가 좋아?" 누나가 물었다. 여기라는 것이 이 가게를 말하는 건지, 이 나라를 말하는 건지, 이 지구를 말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정확히 무슨 뜻인지 물으려다가 어차피 내 대답은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이만하면 됐어." 내가 말했다.

누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이만하길 다행이지."

 

 

 

12살 대준이는 엄마와 누나와 함께 미국에 도착한다. 그들을 기다리는 건 5년 전 먼저 건너와 자리를 잡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페들러스 타운에 동양 상점이라는 이름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대준에서 데이빗이 된 12살 어른 꼬마의 좌충우돌 이민사! 라고 생각했는데, 읽어가는 내내 그들을 둘러싼 주변인들까지 아우르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뜨끈해진다.

 

 

부모님이 다투는 소리와 누나의 피아노 소리가 뒤섞이자 이상하게도 노래처럼 들렸다.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았다. 그냥, 우리 가족 같았다.

 

 

한참 사춘기였던 누나는 준이 보다 미국 생활에 적응하는데 더 많은 외로움을 느꼈다. 자주 싸우는 부모님과 누나의 예민함에 가려져 준이는 어른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마이 굿 선~"

아빠가 이렇게 준이를 부를 때마다 준이는 알 수 없는 거부감을 느낀다.

아마도 떨어져 있는 동안 상상했던 아빠와 직접 마주한 아빠는 많이 어색하고 달랐다.

그런 아빠가 자신과 어떡하든 친해져 보려는 모습을 대하는 준이의 자세가 상당히 어른스럽다.

준이 눈에 아빠가 자신을 마이 굿 선~ 이라고 부를 때면 뭔가 요구 사항이 있거나, 난처한 사항에 자신을 밀어 넣거나,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키기 때문이다.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준이지만 이 묵묵한 아이는 아빠의 청을 거절하지 못한다.

 

가게는 생각 보다 컸고, 영어가 짧은 아빠는 홍씨 아저씨의 도움을 받으며 그래도 장사를 잘 해간다.

준과 수는 학교 외에는 늘 가게에서 아빠와 엄마를 돕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하는 페들러스 타운의 가게 주인들의 시선으로 자신들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스피커를 파는 드미트리 포포브. 거울 가게를 하는 테드 맥마너스, 가방 가게를 하는 홍씨 아저씨, 탐정인 밀러씨, 식당 주인 제이크.

이들의 이야기가 양념처럼 곁들여지면서 이 이야기는 한 이민자 가족에서 시작해서 다른 세계로 확대되어 간다.

 

이제는 가족이 다시 함께하게 되었으니 행복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낯선 나라에 와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뿐만은 아니었다. 지금은 혼자 남겨진 게 아닌데도 여전히 혼자라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남편이 변해서인 건지도 몰랐다. 변한 건 사랑을 나누는 방식이라든지 좋아하는 음식처럼 큰 것들이 아니라 자잘한 것들이었데, 그녀는 지금까지 이런 별 것 아닌 것들이 사람의 성격에서 그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몰랐다.

 

 

5년이란 세월은 부부 사이에도 넘기 힘든 간극이었다.

게다가 다른 한 사람의 외도는 더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잦은 부부 싸움에도 그들은 가게에서는 언제나 다정한 가족이어야 했다.

부모의 싸움을 지켜보며 그것에 대처하는 준과 수의 모습.

 

 

솔직히 말하면 최대한 아빠와 거리를 두고 싶었다. 죄지은 사람과 생활공간을 공유하다는 오명을 안는것도 별로인데다가 엄마에게 내가 아빠 편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도 않았다.

 

수는 엄마와 준은 아빠와 한 방을 쓰게 된다.

물론 준은 아빠 편을 들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빠를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12살 어린 준에겐 부모님의 이혼이 기정사실화되는 것이 세상에 그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든 일이기에.

 

낯선 곳에서 10대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의 마음속엔 무엇이 있을까?

자신들의 고단함보다는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급급했던 그들에겐 무엇이 남았을까?

자꾸만 쓰러지던 크리스마스트리는 그런 그들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엄마가 없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빠 없이는 몇 년이나 살아 봤지만, 엄마 없는 세상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요즈음 엄마는 엄마 노릇을 별로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엄마가 없는 것과는 천지차이였다.

 

 

이민자의 이야기엔 늘 부당함이 첨부되어 있다.

그래서 읽기 불편할 때가 종종 있다.

이 이야기엔 그런 이야기가 거의 없다. 그래서 훈훈하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해하려 하는 마음들이 페들러스 타운엔 존재한다.

준이의 시선에서 그들의 시선으로, 그들의 시선에서 가족 각자의 시선으로 하는 이야기는 그래서 서로에 대한 편견이 있더라도 각자의 성격대로 해석되기 때문에 그 객관적인 해석이 독자에게 웃음을 준다.

 

 

 

아빠가 왜 그렇게 못되게 구는 지 몰랐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안다. 그럴 수 있어서였다. 처음으로 미국인을 부릴 기회를 얻은 아빠는 그 권력에 취했던 것이다.

 

 

처음으로 미국인 아르바이트생을 쓰면서 장사가 잘 되자 그의 면전에서 그를 물건 파는 기계 취급하며 못생겼다고 한국말로 그의 칭찬 아닌 칭찬을 늘어놓는 아빠의 모습이 어린 준 이에겐 못되게 보였지만 어른이 된 준이는 그때의 아빠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져 페들타운의 사람들을 이어준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아도 놀랍도록 서로를 이해하는 수준이랄까?

12살 소년의 시선으로 보아지는 이야기는 객관적이고 따스하며 유머러스하다.

억지로 웃기려 작정을 한 것 보다는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서로의 다름이 빛을 발한다고 할까?

페들러스 타운엔 정스런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거 같다.

서로의 사정을 보살피며, 가끔 서로의 민낯을 보게 되지만 기본적인 존중을 가지고 서로를 대했던 그때 그 사람들.

 

이제 허물어져서 흔적도 남지 않은 곳을 바라보며 어른이 된 준이와 수는 그곳에서의 추억을 회상한다.

그곳은 그들에게 또 다른 고향이었다.

처음 낯선 나라에 발을 디디고 자신들의 터전인 이곳에서 모든 걸 스스로 극복해가야 했던 고달픈 이민자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관심과 이해와 존중과 삶을 선사했던 곳 페들러스 타운.

그때 그 어른들은 이제 그곳에 없지만 준이와 수의 마음속엔 살아있으리라 믿는다.

 

모처럼

고달프면서도 서럽고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훈훈하고 따스하게 버무린 이야기로 읽었다.

그래서인지 마음속에 온기가 퍼지는 느낌이다.

수와 준이 잘 자라주었다는 느낌과 페들러스타운을 다시 찾는 그들의 발걸음에서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소리 없는 따스함이 책을 통해 전해지는 느낌이다.

지긋지긋했던 곳이라면 고향이라도 두 번 다시 찾지 않았을 것이 사람 마음이라.

그곳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에 발걸음을 한 어른이 된 두 아이의 추억이 그만큼 따스했으리라 믿는다.

 

 

균형 잡힌 이야기들에 마음이 끌린다.

다음 이야기도 기대되는 작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