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듯 춤을 추듯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7
김재아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인간으로 태어나 보니 서른 살 남자다.

나를 만든 어머니는 내가 태어난 날 화형 당했다.

내 영원한 친구는 협박을 받고 있다.

내 친구 제이슨은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내 몸을 기억하는 여자가 나타났다.

그 몸인 박서로는 자꾸만 눈물을 흘린다.

사람들에게 나란 존재를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

내 직장에는 어느 여성이 16년째 갇혀 있다.

16년 동안 매일 죽음과 다투었고, 이제 탈출과 자살을 원한다.

자신과 별 차이 없는 존재이지만 자신과 다른 취급을 받는 내게 도움을 구하고 있다.

나는 해결 방법을 모른다.

 

 

제목처럼 꿈을 꾸듯 춤을 추듯 이야기를 읽었다.

 

 

138억 년의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지구의 역사를 되풀이 학습해온 로봇이 인간의 몸을 빌어 인간으로 태어났다.

뇌사한 인간의 몸에 이식된 칩으로 인간으로 깨어난 로움은 사륜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태어난 날 자신을 만들고 자신이 인간이 되기를 도와주었던 노아가 화형 당한 사실을 알게 된 사륜.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인간의 신체와 결합된 뇌를 가진 인공지능 인간은 그 자체로 두려움의 대상이다. 급진파들은 급기야 사륜을 만든 노아를 마녀사냥하듯 화형 시켜버린다.

사륜은 자신의 존재를 감추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

 

죽음을 연구하는 연구실에 연구원으로 들어간 사륜은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인간 아닌 인간 엘리야를 만난다.

그녀 역시 죽은 인간의 몸에 뇌가 이식된 마루타였다.

온갖 질병을 감염시켜 그 치료법을 찾아내는 마루타로 사용되는 엘리야.

사륜의 존재를 알아챈 엘리야는 그에게 자신을 탈출시켜 달라 말한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말인데 겨우 뇌의 일부가 기계일 뿐인데 네가 왜 기계로 취급받지? 인간들은 왜 당신을 기계라고 말하지? 당신은 아마도 인간과 똑같이 아파했을 테고, 인간과 똑같이 웃었을 테고, 인간과 똑같이 눈물 흘렸을 거야."

"그건 중요하지 않아, 인간에겐.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나를 규정해. 그게 양심의 가책을 덜어주니까."

 

 

 

 

 

이런 세상이 언젠가는 올 거라 예상했지만 이토록 아프게 다가올 줄 몰랐다.

서정적인 문체가 기계인지 인간인지 단정할 수 없는 사륜과 엘리야를 너무도 인간답게 그려내기에 나도 모르게 그들을 지지하고 그들을 반대하는 인간들을 미워하게 된다.

 

 

참 독특하고 아름답게 슬픈 이야기였다.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인간들의 가난한 삶.

일자리는 빼앗겼지만 인간성마저 빼앗길 수 없는 인간의 몸부림.

인간이고 싶었던 로봇이 인간이 되었을 때 환영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자신을 숨기며 살아내야 하는 상황.

인간들의 질병 치료제를 찾기 위해 실험실의 동물들 처지가 된 인간 마루타.

이 복잡한 이야기를 차분하고 정감있게 그려낸 작가의 솜씨.

꿈처럼, 춤처럼 흘러가는 이야기에 홀린 느낌이 든다.

 

 

 

 

 

 

 

 

 

 

 

"죽지 못 해 살아가죠, 이제 인간은."

 

 

수명이 130년으로 늘고, 과학의 발달로 공기의 질이 좋아지고, 인공 몸으로 대체하여 장애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지만

인간은 일자리가 없다. 기계가 온갖 일자리를 다 차지했고, 그 기계가 내는 세금으로 인간은 연명하며 살아간다.

그런 세상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로 남을까?

 

 

 

인간은 감각이다. 감각하는 동물이다.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감각하는 동물이다. 생각하는 능력은 AI가 더 뛰어나니 인간의 특징은 감각이다. 생생한 감각을 가진 동물이다. 그러나 앞으로 감각마저 AI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


 

 

 

 

 

사륜의 시선을 통해 이어지는 미래의 이야기는 다정하다.

신랄하지도, 무능하지도, 폭력적이지도, 감정적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글 사이사이에서 느껴지는 자잘한 변화들이 사륜을 점점 인간으로 만들어 간다.

로움이었다가 박서로의 몸으로 사륜이 된 AI.

그는 자신에게 닥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까?

노아가 남기고 간 '영원한 친구' 몽이를 어떻게 지켜낼까?

 

 

이 이야기가 아름답게 슬픈 이유는 마지막에 있다.

몽이를 지켜내기 위해 사륜이 내린 결정.

엘리야를 지키기 위해 사륜이 내린 결정.

 

 

인간과 AI의 차이가 뭘까?

이 이야기대로라면 어떤 차이도 알아 내기 힘들 거 같다.

몸의 절반이 기계화되더라도 살수만 있다면 행복할까?

직업없이 그저 나라의 보조금으로 산다면 행복할까?

모든 게 기계화된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것일까?

 

 

신인 작가의 이야기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이야기 속의 딜레마를 내가 겪지 않아도 될 거라는 생각에 안도하는 나 자신을 본다.

저 멀리 외계에서 온 연락은 인간에게 희망보다는 두려움을 주었다.

이 지구를 기계와 외계인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어쩜 인간보다 더 오래 지구에서 살아낸 모든 생물체들에게 인간이 기계일 수 있다.

인간으로 인해서 지구에서 멸종된 생물체에게 인간이 외계인일 수 있다.

편의에 의해서 공존보다는 멸종을 선택한 인간의 의지가 결국 자신들이 만들어낸 기계들에 의해서 스스로의 멸종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권의 책은

나를 저 멀리 닿을 수 없는 세상으로 데려갔다가

겁이 나도록 또렷한 현실로 뚝 떨어뜨려 놓았다.

꿈을 꾸듯, 춤을 추듯. 그렇게...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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