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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에서 본 거리 - 다섯손가락 이두헌 노래글
이두헌 지음 / 이은북 / 2026년 4월
평점 :

노래엔 과거를 소환하는 기능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노래에 취했고 아련한 내 기억의 한 귀퉁이로 잠깐씩 피접을 갔었다.
가사를 음미하며 읽으면 아는 노래 앞에서는 자동으로 노래가 재생되어 가사를 음미하지 못했고
모르는 노래 가사 앞에서는 이토록 시적인 가사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하다가 예상치 못한 에피소드 앞에서 현실을 맛보게 된다.
어릴 때 어른이 되어 사랑을 하면 이런 마음일까? 싶었던 노래 가사들을 그동안 잊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그 노래 가사들처럼 살고 있지 않아서 그랬는지 모른다.
비가 오는 수요일에는 라디오에서, 길거리 리어카에서 흘러나오던 노래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들을 때마다 기차 타고 떠난 사람도 없는데 마음이 기차역에서 헤매는 거 같았던 <새벽 기차>
동요처럼 불렀었던 <풍선>
사랑이 뭔지도 몰랐던 시절에 어린 가슴속에 애절함을 켜켜이 쌓게 만들었던 <사랑할 순 없는지>
내가 가장 좋아했고 많이 불렀던 노래들을 그 세월 동안 잊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잊고 있었던 그 시절 감성도 함께 소환해왔다.
잠시 동안 느껴봤던 80년대 감정들...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우리는 잠시 어른의 외투를 벗고 그 시절의 조그만 아이로 돌아간다. 지나가버린 시절은 돌아오지 않지만, 우리가 하늘을 보며 흘리는 눈물 속에는 여전히 노란 풍선 하나가 띄워져 있다.
요즘 노래들에서 느낄 수 없는 가사의 아름다움을 맘껏 느낀 시간이었다.
노래가 만들어진 에피소드에서 80년대 시절을 복기해 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최루탄이 날아다녔던 그 시절.
학생이었다가 전경으로 바뀐 자리에서 학우들에게 돌격해야 했던 수많은 청춘들..
가진 건 없지만 낭만은 있었던 시절.
나는 어렸지만 그 시절 언니 오빠들에겐 지금과는 다른 반짝임이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의 순위는 108위였다. 그 숫자를 확인하는 순간, 내 안에서는 108 번뇌가 들끓기 시작했다.
그러게.
왜 '사랑'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거 같은데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 108위 일까?
'사랑'은 방송용이고 유행가 가사에만 존재하나?
내 맘에도 108 번뇌가 생길라한다.
<미안해요, 용서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이 노래는 처음 마주했는데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가사 같다.
이 세상 모든 걸 바꿀 말들..
이두헌의 목소리는 쓸쓸함을 장착했는데 그 쓸쓸함이 노래를 덤덤하게 만들고 그 덤덤함이 가사를 응축시키고, 그 가사의 힘이 마음을 다독이는 마법이 있다.
늦게라도 다섯손가락의 노래에 담긴 뜻밖의 사연들을 알아서 즐거웠고
QR코드가 있어서 검색하지 않아도 바로 노래를 들을 수 있어 좋았고
위트 있는 글에 슬며시 미소 지어져서 좋았으며
모처럼 시 같은 노래 가사를 마주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이두헌 작가님이 직접 찍은 사진들도 감성 돋아서 보고, 읽고, 듣는 맛이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은 나에게 타임머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