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모델,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왜 유능한가 - 대의민주주의의 덫과 현능정치의 도전
대니얼 A. 벨 지음, 김기협 옮김 / 서해문집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The China Model : Political Meritocracy and the Limits of Democracy


(책을 읽은 감상 요약)

  일단 간략하게 이 책을 평하자면, 나는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경의를 표한다. 내가 먼저 밝히고 싶은 것은 나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 저자의 사상이 내가 앞으로 싸워나가야 할 반대 지평의 주요한 흐름 중 하나일 것임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열심히 펼쳐나가려는 그 노력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주석의 양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밝히기를 전체 내용의 3분의 1이 주석이다. 그의 이 충실함은 학문적으로 가치가 있다. 그가 주장하는 길이 옳지 않다고 반박될 수도 있고, 그의 사상이 결국 중국에서 널리 받아져 활용될 수도 있는 등 여러 가능성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세계에서 존재하고 있고 꽤나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사상에 관해 진지하게 접근했다는 점에서 일독의 가치가 있는 학자였다.


(책의 주요 내용을 본문의 문장을 빌어 설명, 인용은 쪽수로 처리한다.

7 - 품성과 능력이 뛰어난 지도자의 선발을 인민의 투표에만 맡기지 않는 현능주의 meritocracy 정치제도를 다룬 책이다.

21 - 민주주의의 위험은 다음 네 가지이다. '다수의 전횡', '소수의 전횡', '투표 집단의 전횡', '경쟁적 개인주의자의 전횡' 

23 - 현능주의에 따르는 중요한 문제점은 다음 세 가지이다. '통치자의 권력 남용', '사회 유동성의 저하', '체제 정당성을 외부에 설득시키는 것의 어려움'

38 - 중요한 문제는, 지도자에게 경험과 전문성을 요구하지 않는 제도가 거의 의심을 용납하지 않는 절대적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71 - 선거란 것은 정권을 바꿈으로써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많은 경우 잘못된) 믿음을 심어줌으로써 실제 정치적 문제를 국민의 관심으로부터 가려주는 장치다. 

289~290 - 쑨원은 미국 헌정체제의 3권분립을 찬성하면서도 그것으로 부족하다며 '중하민국의 장래 헌법'에는 5권분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추가될 두 기관은 전통시대 정부기구를 현대화한 것이다. ... 간단히 말해서, 인민이 선출한 지도자의 실력을 시험으로 검증함으로써 현능주의와 민주주의를 배합한다는 것이다. 

314 - 바닥은 민주주의, 꼭대기는 현능주의, 그리고 중간은 실험 공간으로 하는 이 수직 모델을 '차이나 모델'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이고 단편적인 생각)

- 이 책의 주장은 플라톤이 말한 철인정치와 비슷하다. 

- 확실히 사람들이 복잡한 현대 사회의 문제를 알 만한 여유가 없거나, 이해한다고 해도 공익을 생각하지 않고 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정의 공정성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가치를 옹호하는 힘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절차의 중요성은 우리 모두에게 기회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하여 사회의 문제점을 민중이 직시하게 하여 모두가 모두의 힘으로 고쳐나가게 한다. 즉, 민주주의가 불완전하다고 하는 것은 인간이 불완전하다고 하는 말이나 같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립이다. 나는 도산 안창호가 말한 자립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적이고 이기적일 수 있지만 그것보다 분명한 더 넓은 시야의 '우리'가 있다. 인간은 교육으로 나만이 아닌 '우리'를 볼 수 있다. 민주주의는 인간에 대한 투자와 함께 나아갈 수 있다. 일부 엘리트 교육을 통해 그들의 통치로 우리는 개선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라는 주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만 남을 뿐이다. 

- 본문은 싱가포르의 예를 많이 들고 있다. 하지만 저자도 인지하다시피 싱가포르에도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이 커지고 있다. 이것은 현능주의 체제의 문제 아닌가? 또한 엘리트를 양성하고 그들로 하여금 정치 지도자를 선발하는 절차는 틀에 박힌, 운이 좋은 엘리트만을 양성할 뿐이다. 시대의 도도한 흐름 속에 급변하는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일군의 비슷한 사람들만을 뽑아낼 엘리트 체제가 이처럼 급변하는 체제에 옳을까?

- 특히 대한민국의 맥락에서 요새 우리는 굉장히 성장한 시민의식을 보인 바 있다. 2016년 촛불혁명이 그러하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일은 벨이 이야기하는 선거의 문제점을 노출시키기도 한다. 우리가 선거를 잘못하여 박근혜 대통령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우리 손으로 박근혜를 끌어내리기도 하였다. 그것도 굉장히 평화로운 방법으로 이룩해냈다. 민중이 문제의 심각함을 감각하고 그것을 개선시킬 수 있다는 높은 수준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엘리트에게만 의존해서 문제를 처리할 필요가 있을까?

- 벨은 중국 공산당의 집권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들이 밑에서부터 올라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논리는 사실 꽤나 효력있는 생각이고, 실제로 타당하다. 나부터도 어떤 일을 할 때 밑에서부터 올라가는 것만큼 우수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구조가 받쳐주지 않으면 외부 인사는 내부 그룹에 적응하기 쉽지 않고, 원래 있던 곳에 있던 사람만큼 더 잘하기는 매우 힘들다. 그만큼 그 조직에 대한 이해도가 외부 인사로서도 높거나 하는 등 적어도 이전부터 그 조직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2, 30년 간 공무원으로 아래서부터 위까지 치고 올라간 사람들의 현장 실무 경험은 정말 막강하다. 나부터도 그것을 피부로 느끼는 직업군이기 때문에 절절히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당 장기 집권이 그 현능주의 체제를 보장하는 것인지 나는 의문이다. 스스로 개혁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큰 관건인데 현능주의 체제에서는 엘리트들의 구성원이 바뀔 뿐 그들의 정신이 어떤 식으로 감찰되고 변화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 저자가 추구하는 방향은 유학적인 사상으로 보이기는 하는데 가끔 지나치게 비합리적이고, 지나치게 사회/공동체/집단주의에 가까워 보일 때가 있다. 개인의 자유를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생각을 한다고 여겨질 때가 있는데, 191쪽에서 그의 주장을 확인하면 "둘 이상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치매가 5년 가량 늦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므로(해당 연구 인용) 여러 언어를 쓰는 정치 지도자들은 은퇴를 좀 늦게 해도 괜찮을 것이다.", 191~192쪽의 "헌법에 대통령과 부통령은 35세, 상원의원은 30세, 하원의원은 25세 이상이어야 한다. 중요한 자리일수록 연령 제한도 올라가야 한다는 원칙은 바람직한 것이지만 선동정치와 반엘리트주의가 팽배하고 젊음이 예찬받는 지금 미국 사회에서는 내놓기 어려울 것 같다."라는 주장을 한다. 전형적인 Ageism이다. 

- 238쪽에서 그는 "일본과 한국과 대만에서 유교 전통의 유산과 민주주의 정치 체제가 상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주장하는데 개인적으로 상치되는 점이 있다고 느낀다. 아주 동의하지는 않지만 지나치게 교조화된 성리학 정신이 팽배한 조선 후기의 문화가 우리의 현재 민주주의/다원주의 사회와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 어떤 점에서 중국의 현실에 굉장히 나이브하고 순진해 보일 때가 있다. 261쪽의 주석을 보면 "시진핑 주석이 두 차례 정치국 상무위원회 임기를 넘어 주석직을 지키려고 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쁜 황제'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내 주장을 재고하겠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문제는 (1) 시진핑 체제에 대한 긍정적인 벨의 신뢰/개인적 믿음이 책 전체 주장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 (2) 시진핑이 굳이 주석직 지키지 않고 상왕 노릇을 한다면 여전히 '나쁜 황제' 문제는 걱정할 것이 아닌지 등이 있다. 학자가 믿음을 가지고 연구하는 것을 나는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여러 모로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 체제에 대해 본인이 좋은 점을 크게 놓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볼 수는 있다. 270쪽의 주석에서 그는 "중국의 경우 정부가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편이고, 수백만 중국인이 여행과 유학으로부터 정치적 믿음이 바뀌지 않은 채 돌아오고 있으며, 믿을 만한 여론조사에서 정권이 높은 지지율을 꾸준히 누리고 있다. 그러므로 중국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짓된 의식 상태'에 빠져 있을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겠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정말 의아스럽다. 많은 중국 인재들이 미국 가서 사는 것이 문제 된다는 뉴스를 본 기억은 차치하고서라도, 실제로 벨의 주장대로 사람들이 유학을 하고 정치적 믿음이 바뀌지 않은 채 돌아온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 또한 다른 여러 요소들, 문화나 사회적인 문제, 언어, 게다가 중화사상까지 고려하지 않고서 중국 정치 체제의 만족도를 단순히 정당화시키는 것에는 큰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 

- 보론에서 벨은 사람들에게 받은 비판에 대해 대답한다. 실제로도 내가 가진 여러 질문을 벨 본인이 책을 발표하고 많이 받은 것 같다. 나는 온건하게 반응한 편이고, 굉장히 공격적인 반응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반응할 수 있다. 368쪽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비난이 내가 중국 정부의 '변호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런 주장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하나의 '이념'을 옹호하는 것이지, 특정한 정치 현실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굳이 딱지를 붙인다면 나는 정치이론가이고, 내 방법은 상황정치론이다. 사회의 공적 문화를 주도하는 정치적 이념을 합리적인 방어가 가능한 방법으로 설명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책을 전체 읽었으면 그런 말을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부정적인 방식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다. 나는 어떤 사람도 완벽한, 진공에 가까운 객관성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벨은 중국과 공산당 정치에 관해 분명히 낙관적인 지점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가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믿음을 전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부분은 내가 이미 위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는 분명 중국 공산당 시진핑 체제를 긍정하는 특정한 정치 현실에 대해 더 나은 개선점을 이야기하면서 그 체제의 현존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정치이념인 현능주의 체제를 성취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벨에게 안타까운 일일 수 있겠지만, 그가 믿는 시진핑과 중국 공산당이 정말 현능주의와 가까운지, 그리고 그들이 만약 실패한다면, 더 많은 사람을 억압하고, 더 많은 사람 위에 군림하여 guardian수호계급이 아니라 착취계급이 된다면, 그의 이 모든 이론들은 허망한 것이 될 것이고, 그는 전세계적 시대 흐름을 역행한 학자로 기록될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현행 민주주의에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현재 우리의 시점, 즉 촛불혁명을 겪고 나서 민중의 에너지를 관리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길이 크게 거론된다. 하나는 직접 민주주의의 강화이고 다른 하나는 정당의 강화이다. 나 개인적으로 전자보다 후자를 미는 사람으로서, 더 좋은 통치체제, 정치조직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전문화, 직업인으로서의 정치인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으로서 벨이 정치지도자는 우수한 인재여야 한다(유교적인 관점에서 왕도로 이끌 군자, 성인)는 점은 분명히 틀린 말이 아니다. 분명 우리는 웬만하면 우수한 사람을 뽑고 싶어하는데, 만약 우리 개인의 목소리와 자유가 크다면 우리는 꼭 우수한 사람을 뽑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나의 목소리를 잘 반영할 사람을 뽑는다. 미국 사람들이 트럼프를 뽑은 것도 같은 심리일 수 있다. 잘나거나 도덕군자가 아니라, 내가 요새 사회를 보며 갖는 생각들을 속시원하게 이야기하고 반영해 줄 사람으로서 트럼프를 뽑은 것이다. 이렇다면 직업정치인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나 많은 고민이 든다. 단순히 대중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결국 자극적인 민주주의의 프레임에서 사람들은 끝없이 자기를 착취할 사람을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사람으로 뽑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직업정치인이 대중의 의사에 반해 자신의 의사를 밀고 나가는, 그러나 그 의사가 전문적이고 타당한 것이라면? 이때의 가정을 벨은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확실히 쉬운 문제는 아니다. 인기에 영합하는 현재의 선거민주주의를 우리는 분명 고찰할 필요가 있다. 확실히 민주주의 안에 어떤 식으로 전문성을 투입시킬 수 있느냐는 정말, 정말 중요한 문제이긴 하다. 




* 책을 읽는 과정에서 궁금했던 내용들


1. 싱가포르 체제에 관하여(장/단점)

2.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

3. 시험 성적이 한 인간의 정치적 우수성을 얼마나 입증할 수 있는가?

4. 오스만 제국의 역사

5. 중국 송나라의 역사

6. 현대 유학자들의 동향

7. Foreign Policy 일독

8. 소시오패스에 관하여

9. 중국인은 '세뇌' 당하고 있는가?

10. 존 스튜어트 밀의 대표저작 일독

11. 동양과 서양의 가족관에 과하여

12. 1인 1표를 동양적 문화관에서 바라볼 때의 정당한 근거

13. 존 듀이의 저작 일독

14. 중국의 지난 30년 간의 객관적 성과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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