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과제로 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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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벼움과 무거움이 교차하는 60년대 서울의 겨울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을 읽고심리주의 비평 중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개념으로 분석


 

 

목차

 

Ⅰ. 서론 - 가벼운 욕망의 젊은이들, 무거운 이별을 한 남자와 우연히 만나다

 

Ⅱ. 가벼운 남자들, 그리고 지나치게 무거운 한 남자

1. 두 젊은이의 욕망을 둘러가는 대화

2. 세상을 포기한 우울한 남자

 

Ⅲ. 결론 - 인간의 저열한 밑바닥인가, 인간 본성의 나약함인가

 

Ⅳ. 참고문헌

 

 

 

Ⅰ. 서론 - 가벼운 욕망의 젊은이들, 무거운 이별을 한 남자와 우연히 만나다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은 짧은 단편이다. 김승옥의 대표적인 글 중 하나인 이 단편은 도시화가 진행된 서울을 배경으로 밤에 우연히 만난 스물다섯의 두 남자와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전개된다. 막 아내를 잃은 삼십대 중반의 남자의 절절한 괴로움과는 대조적으로 그것이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 없다는 듯 남의 불행을 부담스러워만 하는 두 젊은 남자의 심리는 독자의 눈에 비양심적이고 무책임하게만 보인다. 하지만 무기력하게 흐느적거리는 김승옥의 서울에서는 그 모든 인간적 양심이 휘발되어도 놀랍지 않게만 느껴진다.

  이 소설을 제대로 비평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 서울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시대의 서울이 갖고 있는 도시화의 모습, 그 안에서 파편적으로 분열되고 고립된 개인상의 끔찍한 외로움이야말로 김승옥이 그려내고 싶었던 일면들 중 하나일 것이다. 이미 앞서 이러한 서울의 도시적 공간과 그 안의 소외된 모습을 상징과 모티프로 분석한 논문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서울, 1964년 겨울」을 읽으면서 그러한 거대한 흐름을 전제로 하되, 개인들의 심리 양상에 집중하고 싶었다. 필자의 눈에 극중 인물들의 모습은 단지 서울이라는 공간에서만 가능한 행동들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기보다 그들은 프로이트 식으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과 문명 안의 괴리에서 끝없이 방황하고 괴로워하는 초로(草露)의 인간들에 가까웠다.

  필자는 본론에서 「서울, 1964년 겨울」을 심리비평의 방법 중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인 개념을 이용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그러한 분석에서 마주칠 수 있는 인간의 깊은 심리에서 복잡한 사회와 스스로를 분리시켜 무책임한 회피와 단순한 쾌락만을 목적으로 하는 일면, 진지하고 밀도 깊었던 인간관계의 붕괴로 깊은 슬픔에 빠져 죄책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일면, 그리고 그러한 인물들의 어색하고 낯선 만남을 이야기해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Ⅱ. 가벼운 남자들, 그리고 지나치게 무거운 한 남자

 

1. 두 젊은이의 욕망을 둘러가는 대화

 

  「서울, 1964년 겨울」의 도입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황당하다. 25살의 젊은 두 남자는 배경이나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사람들이다. ‘나’는 시골 출신에, 고등학교만 마치고, 원하던 직업을 못 구해 구청 병사계에서 일하는, 게다가 성병에도 한 번 걸려본 적 있는 사람이다. 반대로 대학원생이라 자신을 소개한 ‘안’이라는 인물은 집도 잘 사는 것처럼 보인다. 공통점 하나 없어 보이는 이 두 사람은 만나서 파리와 움직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외간 사람들이 보기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를 소재를 그들은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무의미함은 무의식에 숨어있는 그들의 욕망을 은근 드러낸다.

  날아다니던 파리의 이미지가 꿈틀거리는 것으로, 그리고 "그 여자의 아랫배가 조용히 오르내리는 것"이라는 이미지로 움직여 갈 때, 우리는 젊은 남성의 의식 언저리에 있는 성적인 욕망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배운 사람이라는 '안'은 그것을 음탕한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린다. '안'의 낙인에 '나'는 속으로 발끈해 본다. '안'은 '나'의 욕망에서 좀 더 나아가 데모를 이야기한다. 같은 생명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개인적인 욕망만이 아닌 사회적인 욕망까지 읽어낸다. 그가 받은 교육의 힘으로 짐작된다. '안'은 서울이 모든 욕망의 집결지라고 답을 내린다.

  '안'의 진술은 상당히 정확하다. 서울은 무수한 개인들의 욕망들을 담아내고 있는 거대한 공간이다. 이 문명 공간에는 분명한 질서가 있다. 그 질서는 산업화, 현대화의 질서다. 빠른 속도로 변하는 이 공간은 그 안에 있는 개인들을 포근히 안아준다기보다는 소외시켜 버린다. 사방이 막혀버린 벽 같은 어느 선술집은 서울 안에서 소외된 전망 부재의 공간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 공간은 동시에 인간에게 남아있는 본능과 욕망을 부채질한다. 서울 곳곳에 있는 아리따운 아가씨들을 위시한 광고들은 조용히 젊은 사내들을 향해 미소 짓고 있다.

  문명의 고고함과 문명 안에 잔존하는 개인의 욕망은 프로이트적인 관점에서는 당연한 병존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은 여러 편리함과 생명 유지를 위해 문명을 이룩했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 자신의 본능을 억눌러야 했다. 인간이 갖고 있는 여러 욕망이 규제되지 않는 한, 평화로운 문명을 이룩해 진보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인간 본능의 억제를 프로이트는 문화적 '욕구 불만'이라고 묘사한다.

  「서울, 1964년 겨울」에 나오는 이 두 청년 역시 욕구 불만에 시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서투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도하던 그들은 결국 의미 없는 대화만이 서로가 무리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방식임을 깨닫는다. 꿈틀거림, 삶과 생에 대한 에너지는 그들이 갖고 있는 진짜 욕망이지만, 그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외설적이고 음탕한 것이 된다. 지성인인 '안'은 그러한 욕망에 더욱 예민하다. 음탕하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욕망을 더 구체적으로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내면의 욕망에서 비롯된 인간 본능의 진지함을 피하려 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가 '안'을 곯리려고 시작한 의미 없는 대화가 더 편하게 이루어진다. 평화시장 앞의 가로등들, 화신백화점 육층의 창들, 물건 파는 여자의 모습,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들이야말로 그들이 아무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들의 대화는 의미 없는 부분을 항해하다가 생(生)으로 귀환한다. 욕망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다시 욕망으로 돌아온다. 대화는 욕망을 둘러 이루어진다. 그들이 왜 지금 그 늦은 시간에 밖에 나왔는지 밝히는 부분에서 그들이 자그마하게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욕구가 암시된다. '나'는 하숙방에 들어앉아 벽이나 쳐다보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안'은 밤거리에 나와 풍부해지는 느낌, 살아있는 느낌을 얻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고 밝힌다.

  젊은이들은 욕구불만을 양산하는 문명의 질서 속에서 더 나은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그들도 자신들의 욕구 자체가 모두 해소되고 밝혀지는 것을 기대하진 않는다. 그저 이 외로운 거리 속에서 자신과 비슷한 존재가 또 몇 있다는 공감을 원한다. 그 단편적인 감정의 공유와 사소한 쾌락의 충족만이 그들이 원하는 바다. 자그마한 위로를 받고 싶어서 나온 그들이 만약 원래 계획대로 정식으로 한 잔만 하고 헤어졌다면, 아마 그들은 자신들의 무의미하고 가벼운 욕망만을 갖고 다시 원래의 삶으로 복귀했을 것이다.

 

2. 세상을 포기한 우울한 남자

 

  이 젊은이들은 예상치 못한 인물을 한 명 더 만나게 된다. 가벼운 욕망만을 가진 그들의 곁에 다가온 인물은 서른대여섯 살로 보이는 한 사내다. 그 사내는 가난뱅이 냄새가 난다는 서술자의 표현처럼 빈약하고 약하고, 우울해 보인다. 그는 중국 요릿집으로 두 명의 젊은이들을 데리고 가서는 비싼 음식을 시킨다. 부담스러울 것 같은 묵직한 이야기를 금방이라도 뱉을 것처럼 보이는 그의 얼굴 앞에서 두 젊은이들은 어색해 죽을 것만 같다. 술자리에서 재미있게 접근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이렇게 곧 죽을상으로 접근하는 사람은 없었다는 '나'의 진술은 의미심장하다. 가벼운 쾌락끼리의 만남은 가볍게 끝나지만, 진지하고 묵직한 존재와의 만남은 그 이상을 요구한다. 복잡한 문명의 질서 속에서 보잘것없는 욕망의 가벼운 해소만을 바라는 개인들에게 과한 마음의 짐은 기필코 사양해야 할 무엇이다.

  사내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는 아내와 자기가 맺었던 즐거운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재밌게 같이 살았던 아내가 급성 뇌막염으로 죽었다고 한다. '안'과 '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 사내로부터 빨리 벗어날 궁리만 한다. 그들이 그러는 이유는 분명하다. 프로이트는 "인간은 쾌락 자아에 따라 쾌락 생산에 매진하고 불쾌는 회피한다. 마찬가지로 현실 자아는 유용한 것을 추구하고, 손상을 당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말을 통해 젊은이들이 사내의 불행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이유를 파악할 수 있다. 그들은 즐거움을 쫓는다. 하지만 인생에서 맛볼 수 있는 슬픔과 비애는 전염병처럼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사내가 아내의 시체를 팔아 받은 돈을 흥청망청 쓰기 시작하자 '안'과 '나'는 죄책감도 없이 그의 불행에 승차한다. 그들은 넥타이를 사주겠다는 사내의 제안을 거절하지도 않고, 심지어 사내에게 제안해 성적 욕구를 풀러 종로 3가로 가자고까지 한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여자의 뱃살을 생각하는 ‘나’에게 음탕하다고 무안을 주던 ‘안’의 묵은 속내가 그때야 잠시 엿보인다. 억압되어 있던 욕구를 남의 불행에서 비롯된 돈으로라도 해소하려는 '안'의 가벼움에 사내는 그때서야 처음으로 경멸하듯 젊은이에게서 고개를 돌려버린다.

  두 젊은이에게 사내가 사랑한 아내의 죽음은 그들이 지나가다 마주하게 된 화재와 성질이 비슷하다. 그들이 보는 화재는 큰 사건이고, 그 안에서 분명 누군가가 막대한 손해를 입었을 테지만, '안'이 말한 것처럼 그들에게 그 화재는 화재 자신의 것이지 누구 한 특정한 개인의 것이 아니다. '안'의 것도 아니고, '나'의 것도 아니기에 그들은 화재에 흥미가 없다. 그들은 화재에 그러한 것처럼 사내의 아내의 죽음에도 마찬가지의 태도를 취한다. 사내의 아내와 사내가 가진 관계는 그 둘만의 것이기에 두 젊은이는 사내의 철저한 슬픔에 아무런 흥미가 없다.

  하지만 사내는 다르다. 프로이트는 두 사람이 맺은 관계가 깊은 애정에 묶여 있는 만큼 외부 세계에서 자신들을 고립시키는 경향이 더 강하다고 말한다. 사내가 아내의 친정이 정확히 어디였는지 모르는 것을 그 예시로 들 수 있다. 부부는 서로에만 몰두했었다. 프로이트는 사랑을 인간이 문명으로의 통합을 지향해주는 기능을 하는, 일종의 문명의 발명품이라고 보았다. 부부생활은 지속적인 성생활을 보장하고, 즐겁고 안락한 남녀의 생활을 상징한다. 그러나 사내에게 그러한 삶은 끝났다. 아내는 죽었고, 그는 죽은 아내의 시체를 판 대가로 돈을 받았다. 그 돈을 가지고 무엇이든 즐기려고 노력하는 사내의 모습은 그가 가졌던 사랑이라는 관계의 무거움으로부터 애타게 벗어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그는 곧 돈을 치워버린다. 화재 속으로 돈을 던져버린 사내는 아내에 대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그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에게 쾌락을 줄 수 있는 돈에서부터 벗어난 그는 곧 자신의 직업이 하는 대로 월부 책값을 받기 위해 한 집을 찾아가지만, 그곳에서 방문을 거절당한다. 세속적인 쾌락을 얻을 수 있는 수단과 단절되고, 자신이 세상에서 직업으로 삼았던 일에서마저 거절당한 그는 자신의 세계 중 가장 큰 일부였던 아내를 애타게 부르짖는다. 그때서야 그는 자신이 맺었던 관계 중 가장 가까웠던 존재가 이 세상에서 부재하다는 사실을, 자신이 아내의 시체를 팔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사실에 처절하게 직면한다.

  혼자 있기를 두려워하던 사내가 혼자 있게 된 여관방에서 자살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역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연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프로이트는 인생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고통을 일시적으로 완화시킬 수단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 중 가장 강력한 방법은 현실을 적으로 간주하고, 현실과의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현실이 그가 도전하기에 너무 강력하므로 그곳에서부터 회피하거나, 은자가 되거나, 아니면 사내처럼 죽어버리는 것이다. 자살은 결국 사회와 자신으로부터의 완벽한 단절을 상징한다. 그가 그러한 방식으로 세상과 단절할 정도로 괴로울 수밖에 없던 이유를 고민하면, 죄책감이라는 감정 때문일 수 있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자기 징벌을 하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 중의 하나가 죄책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에게 죄책감은 엄격한 초자아와 초자아의 지배를 받는 자아 사이의 긴장을 의미한다. 그의 논의를 따라 생각해보면, 문명이 우리 안에 있는 공격 본능을 다스리기 위해 만들어낸 그 양심이 사내를 죄책감이라는 창으로 공격했을 수 있다. 아니면 자신의 일부분일 만큼 깊은 관계였던 아내를 잃었다는 상실감 그 자체도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지나친 우울증에 빠진 사내는 여관방에서 죽어버렸고, 옆에서 동반하던 젊은 두 남자는 이 사고를 무참하게 방관 하였다. 그들은 사내가 가진 끔찍한 슬픔은 회피하려 했고, 사내가 베푼 즐거운 돈놀이에는 기꺼이 참여했다. 문명이 제공하는 거대 질서 안에서 익명성을 보호받은 그들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다. '안'은 사내를 혼자 놓아두면 죽지 않았을 줄 알았다고, '나'는 죽을 것이라고 예상도 못했다며 비겁하게 자신들을 비호한다. 그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사내의 자살에서도 아무 책임 없이 떠난다. 하지만 언젠가 그들도 십년 후 서울 어느 거리를 힘없이 거닐지도 모를 일이다.

 

Ⅲ. 결론 - 인간의 저열한 밑바닥인가, 인간 본성의 나약함인가

 

  필자는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을 심리주의 비평 중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관점을 이용해서 분석해보았다. 소설 안에는 억압된 욕망으로 인해 생길 수밖에 없는 욕구 불만을 서울의 길거리를 가볍게 부유하며 해소하는 청년들이 있다. 그들은 인간 소외를 부추기는 도시화된 서울이라는 문명에 짓눌려 있지만, 그 안에서 꿈틀되는 성과 생에 대한 에너지를 갈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그들과 반대로 사랑하는 이를 상실한 한 사내의 큰 절망도 있었다. 하지만 두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그 사람에게서 받아낼 수 있는 쾌락은 다 취하고, 옆에 있어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소통은 피해버렸다. 프로이트식의 쾌락원리에 따라 두 명의 젊은이는 자신들의 쾌만을 쫓았고, 낭떠러지로 달려가는 한 사람을 막을 수 있었는데도 막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형상화된 두 젊은이의 잔인한 면모는 인간의 저열한 밑바닥인가, 아니면 인간 본성의 나약함인 걸까? 프로이트는 인간의 본성이 파괴적이고, 성적인 것을 열망하는 단순한 원리를 가진 것에 대해 원래 인간은 고상한 존재가 아니므로 딱히 실망할 필요도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필자도 인간을 고상하거나 날 때부터 선한 존재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소설에 나타난 ‘안’과 ‘김’을 악하다고 비난할 의도는 없다.

  그러나 저열한 밑바닥을 보여준 것은 아닐지라도 김승옥이 그려내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그것은 인간 본성의 나약함을 그린 것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프로이트가 이야기한 문명과 본능의 충돌은 결국 인간이 완벽한 행복,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 왜 어려운지에 관해 설명하는 유용한 틀 중 하나일 뿐이다. 발전한 서울은 더 많은 인구를 껴안고, 더 많은 욕망 충족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그 안에서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외롭다. 파편화된 인간들은 나약해져 있고, 무기력해져 있다. 다른 인간에 대한 무관심은 그들이 다른 이를 위해 해줄 무언가는 애초에 없거나 불가능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그들에게 사내의 아내가 죽은 사건은 비극이긴 하지만 그들이 참견할 비극이 아니다. 자신들의 상처와 손실이 아니면 신경 쓸 것 없다는 생각에는 자신의 것만을 지키기에도 바쁘다는 인식이 숨어있다.

  프로이트가 인간 심리의 원리를 다소 어쩔 수 없는 비극으로 보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소망하는 완벽한 행복, 기대한 것과 결과물의 온전한 일치가 어렵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원하는 것을 항상 가질 수만은 없는 취약함을 안고 살아갈아야 할 우리의 자세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저 상황에서 ‘안’과 ‘나’가 다른 태도를 취했다면 한 명의 사람이 살 수 있었을 것이라는 가능성이다. 그렇게 보면 김승옥의 소설은 서울의 비겁한 60년대를 고발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김승옥이 보여준 1960년대의 서울이 외롭고 고독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책임에서 도망가게 종용하는 곳이었다면, 지금 2010년대의 서울은 어떠한 장소인가? 여전히 나약한 인간 본성을 가지고, 수없이 일어나는 비극들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는 핑계를 대며 비겁하게 도망가고 회피하는 인물들로 가득 차 있다면, 서울을 살아가는 수많은 인간 군상들에게 제각각 ‘안’과 ‘나’와 같은 성질이 있는 것은 아닐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Ⅳ. 참고문헌

 

김승옥, 『무진기행』, 일신서적출판사, 2007

송준호,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연구」, 『현대문학이론연구 제29집』, 2006

Freud Sigmund 지그문트 프로이트, 윤희기 옮김, 『프로이트 전집 13 무의식에 관하여』, 1997

Freud Sigmund 지그문트 프로이트, 김석희 옮김, 『프로이트 전집 15 문명 속의 불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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