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Hiroshima Mon Amour (히로시마 내 사랑) (1960)(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Criterion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영화는 벌거벗은 두 사람이 서로를 애타게 끌어안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장면이 주인공들의 섹스라는 에로틱한 현재인지, 혹은 낙진을 잔뜩 묻은 채 죽어가는 히로시마 원폭 사태라는 과거의 두 사람인지 식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살뜰히 애무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을 간간히 삽입하며, 영화는 관객에게 히로시마 원폭 사태에 대한 이미지들을 제공한다. 여자주인공은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이 히로시마 원폭 사태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했다고 진술한다. 그러나 남자주인공은 여자에게 당신이 본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그녀의 말을 부정한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국적이 다르다그들은 처음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지만 옛날부터 연인인 사람들 같다그들은 먼저 육체의 결합을 통해 가까워졌다서로 애정을 느끼는 만큼 그들은 서로의 영혼에 가까워지려고 한다그들은 서로의 과거를 탐색한다여자가 히로시마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공유하려고 했던 것은 그러한 시도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그러나 남자는 그러한 인위적인 이어짐여자가 시도하려 하는 공통된 과거를 거부한다그들이 그 대화에서 소통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히로시마 원폭이 각자에게 있어 동일한 기억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곧 다른 과거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여자는 남자의 요구에 맞추어 자신이 기억하는 것들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그녀가 과거를 이야기할 때, 일본 남자를 ‘당신’이라고 부름으로써 그를 느베르에서 만난 첫사랑이자 죽은 독일인 병사처럼 대한다는 것이다. 술집에서의 이 대화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녀에게 죽은 군인이 아직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첫사랑이 죽었던 고통스러운 기억은 그녀의 눈에 가끔씩 다른 사람의 이미지 위로 생생히 겹쳐 보인다. 독일병사는 기억이미지로서 현재이자 동시에 과거이다. 그녀가 첫사랑을 서서히 잊어가지만 그래도 잊지 못하는 것은 변하지 않을 사랑의 맹세이며, 동시에 죽은 그를 언제나 마주할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다.

 

  그녀의 과거를 들은 남자는 자신만이 여자의 기억을 온전히 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왜냐하면 이때껏 그녀가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았던 사랑의 기억을 알게 된 순간, 자신이 그녀에게 있어 그 독일병사라는 과거와 동일한 위치임을 자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자신이 그녀의 영원한 첫사랑인 독일인의 현재형임을 알게 된 것이다. 남자는 그러한 사랑의 원리에 익숙하며 그것을 질투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그것을 영광으로 여기는 듯하다.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은 시간 이미지를 사랑이라는 소재와 연결시켜 보여주는 명작이다. 과거는 현재의 잠재적인, 또 다른 얼굴이다. 여자에게 있어 자신의 사랑과 죽음으로 이별하게 되었던 그 순간에 그녀가 독일 병사에 대해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의 기억뿐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나누어 가진 기억 속에서 죽은 연인은 현존으로써 불멸이 되었고, 과거이면서 현재인 이미지가 되었다. 그 이미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그 때가 와야 독일병사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끝날 것이다. 또한 새로운 사랑에 있어서도 그들은 더 이상 일치하지 않는 과거를 공유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서로를 히로시마와 느베르로 기억하는 것이다. 그들이 결국 이 사랑을 통해 가질 수 있는 것은 서로에 대한 기억뿐이다. 여자가 독일병사를 느베르로 기억하는 것처럼 이 둘은 서로를 히로시마와 느베르로 기억함으로써 언제나 각자의 추억 속에서 그 기억을 잃지 않는 한 불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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