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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마틴 스콜세지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상을 잘 못 받는 것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크게 안타까워 하진 않습니다. 분명 매력적인 배우인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그 사람의 매력에 빠져 주연한 영화들을 일일이 다 찾아본 경험이 있으니까요. [아이언 마스크]를 보고 갑자기 정나미가 뚝 떨어져서 더 안 찾아보긴 했지만요. 어쨌든 개인적으로 이름이 알려질 운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이효리씨처럼 이름이 독특해서요. 이게 아마 보시는 분들 입장에선 무슨 얼토당토 않는 소리인가 싶으시겠지만, 그리고 실제로 얼토당토 않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이름이 독특하면서 예쁜 사람은 그 이름 값을 하지 않나 싶어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니, 너무 예술적인 이름 아닙니까.
마틴 스콜세지의 페르소나로 그의 작품들에 열심히 등장하면서 자기복제에 가까우면서 묘하게 반복적인 기능공 연기를 하는 그이입니다. 저는 냉정하게 말씀 드리자면, 그가 절치부심하거나 대오각성을 하지 않는 이상, 소위 '연기를 인정받는 상'을 받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연기 못한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에요. 잘합니다. 그런데 대체로 비슷비슷한 느낌이 들어요. 모든 배역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개인의 아우라가 사라지지 않기도 하는 감상이 들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신 쟝고에서의 악역도 저는 사실 다른 작품들에서의 그가 보여준 연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디카프리오가 옛날의 고운 얼굴이 사라지고 난 다음 거친 역할들을 많이 맡기 시작했는데, 저는 그 거친 역할들 자체가 서로 유사한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배우에 대한 제 개인적 감상이 사족으로 먼저 들어가는 이유는 이 배우가 보여준 그 비슷비슷한 연기들 속에서도 저는 이번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서 보여준 모습이 가장 훌륭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명확한 이유는 왜인지 잘 모르겠어요. 마약에 취해서 엉금엉금 기어 고급 차(기종이 무엇인지 모르겠네요)에 올라타려고 발악하는 모습 보며 저는 레오나르도 고생했네를 연발 외쳤거든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두번째 마누라가 그냥 건성으로 마지막 섹스를 해주는 장면에서 완전 사랑에 도취된 채 삽입하는 연기 장면이었습니다. 얼마나 비참한 연기를 그렇게 끔찍하게 잘 이해하며 영상에 표현하던지. 조단 벨포트 역으로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어요. 조단 벨포트의 정상과 몰락의 아주 세밀한 감정과 소회가 그의 얼굴에 분명 비쳐지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금융계에서 도덕 윤리따위는 잠시 안드로메다로 집어치우고 마약과 섹스를 일삼으며 천문학적인 부를 누리는 남성들을 다룹니다. 섹스와 마약이 정말 오질나게도 나오더군요. 남성이 중점적으로 많이 나오긴 합니다만, 굳이 언급하자면 이곳에 나오는 여성들의 모습도 쉽고 거칠게 표현하면 속물들이죠. 조단 벨포트는 자본주의의 허락 받지 못한 사이비 교주 중 하나였습니다만 그의 신도들은 교주와 큰 차이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교주는 이렇게 말하지요. 나는 부자로 사는 삶이 좋다. 부자가 싫다고 말하는 새끼들은 다 맥도날드 가서 서빙 일이나 해라. 그러므로 우리는 샤넬 옷을 입고 벤츠를 몰면 되는 겁니다. 마치 올림픽 경기를 뛰듯 연속적으로 쾌락 속을 종횡무진하며 자극과 아드레날린이 폭발적으로 분비되는 바닷 속에 침몰하듯이 말이죠. 그러나 한때 배우 김정은 씨가 찍은 화제의 광고였던 '여러분 모두 부자되세요'를 생각해보면, 한국이든 어디든 그러한 소비행태가 권장되는 사태는 놀랍지 않은 일이죠.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중반부터 극심한 피곤함을 느꼈습니다. 오르가즘이든 고통을 주는 자극이든 무엇이 한계치에 도달하면 그 감각마저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그 선에 도달해버린 것이죠. 이곳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절 피곤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눈을 부릅 뜨고 이 몰락을 차근차근 보았습니다. 실화라는 것을 강조하는 영화인데, 영화는 그저 영화 같습니다. 비정상적으로 예쁜 여자들과 살면서 보기도 힘든 요트들, 집들, 물건들, 파티가 나오고, 무슨 범죄 영화에서나 볼 법한 마약들이 쏟아져 나오죠. 우리가 예사로 들어본 마약들은 이 사람들 기준으로 마약 취급도 못 받는 것이고요. 이러한 삶에 젖어든 사람들에게 그 모든 삶이 멈춘다면 삶은 재미없는 무엇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조단도 친구인 도니한테 마약을 끊고, 알코올을 중단한 다음 그렇게 말하죠. 인생이 아주 재미없어졌다고요. 인생은 사실 원래 재미없는 것인데 말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돈으로 삶을 영화처럼 살아온 거죠.
사실 몇 달 사이에 어떤 분이 (혹시 이 글을 보실지 모르겠네요. 듀나게시판 분이라서요.) 아주 인상적인 말을 해주셨습니다. 누군가를 거짓말 하게 만드는 상황에 빠지게 해놓고 그 누군가에게 왜 거짓말을 했느냐고 다그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말씀이셨어요. 어쩌다 나온 이야기였지만, 저는 그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깊이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그 말씀이 생각났어요. 자본주의 사회 자체가 바로 함정 그 자체가 아닌가 싶어서요. 부자가 되는 것이 다들 좋다고 말해서 부자가 되었다면, 그게 어디에 문제가 있을까요? 도덕과 윤리는 원래 승리자들한테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조약에 불과한 것 아니었습니까? 조단과 친구들에게 사기꾼 말에 걸려 넘어지는 그 어리숙한 놈이 그저 문제 있는 호구입니다.
만약 지금 당장의 저에게 조단 벨포트처럼 살 것이냐, 지금처럼 살아갈 것이냐고 묻는다면 제가 당차게 나는 지금의 나 자신이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제가 확실한 것은 있습니다. 만약 제가 조단 벨포트의 삶을 조금이라도 맛본다면, 아마 저는 지금처럼 살 것이냐 조단 벨포트처럼 살 것이냐의 문제에서 조단 벨포트의 삶을 선택할 확률이 더 높아질 거에요. 그런데 이런 유치한 양자택일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사는 사회는 우리에게 그러한 자극의 힘을 끝없이 제공하며 유혹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도처에 놓여 있습니다. 자본은 우리에게 변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주며 다른 사람들을 누르고, 다른 사람들의 것을 빼앗으며 안온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만들어 주죠. 나와 내 가족, 내 친구들'만' 잘 살면 됩니다. 다른 사람까지 구조해 줄 정도로 배가 넓지 못하기 때문이죠. 아니, 애초에 그 사람들을 쫓아내야 배에 자리가 나는 구조가 바로 자본주의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조단 벨포트가 과연 '죄인'이냐는 문제에 있어 쉽게 입을 뗄 수 없습니다. 물론 법적으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는 죄인입니다. 그리고 사회적인 가치라고 불리는 윤리적 기준에서도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저는 그저 평범한 저란 인간, 영화의 마지막, 부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저 자신을 봅니다. 그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우리, 부추기는 사회, 이 안에서 살아가는 한 조단 벨포트의 삶이 언제 내 삶이 될지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