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아래 글에 대한 정보를 우선 밝히겠다.
(1) 저번 신자유주의 수업에서 교수님이 내주신 양식에 따라 제출한 기말 시험 답안지를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세 권 중 내가 선택한 두 권은 다음과 같다. 본론에 쓰이는 인용문은 바로 다음 두 텍스트에서 나오는 인용들임을 밝힌다.
(ㄱ) Introduction by Plehwe from The Road from Mont Pelerin: The Making of the Neoliberal Thought Collective
(정확한 인용은) Mirowski, P., & Plehwe, D. (2009). The making of the neoliberal thought collective.
책 “몽페를린 소사이어티로부터의 길, 신자유주의 집단 사고 형성 과정에 대하여”에서 나오는 플류의 서문
[노트] 음 우선 저자의 이름을 플류? 무엇이라고 읽을까… 선생님은 플류라고 읽었던 것 같은데 가물가물… 그리고 thought collective가 신자유주의적 집단 사고 ..? 음 나는 사실 집단 지성 이런 느낌이 들었는데 다시 보니 아닌 것 같아서 이렇게 바꿨다. 확실히 본문 내용은 (오스트리아-미국 신자유주의들이 어떻게 자기 패거리의 세를 불렸는지에 대한 내용이라서…)
2. Dardot and Laval’s The New Way of the World: On Neo-Liberal Society
(정확한 인용은 )Dardot, P., Laval, C., & Elliot, G. (2014). The new way of the world: On neoliberal society.
(ㄴ) 다르도와 라발의 책 “세계의 새로운 질서: 신자유주의 사회에 대하여”
[노트] 이 책 진짜 좋다. 꼭 필히 번역되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2) 이 수업은 할배교수에 의해 진행되었는데 할배교수는 좀 심하게 과장해서 말하면 진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선생님 급일 정도로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특히 그 진가가 빛난 게 이 기말 시험인데, 보다시피 위의 두 책들은 이론서이기 때문에 비교가 쉽지 않다. 일반적 경우라면 그냥 각자 책에 대해 대략의 큰 주장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어떤 것이 더 우월한지 근거를 대라 정도일 텐데, 할배교수는 진짜 짬밥 장난 아니신지라 그 전개 양식부터 정말 논리적으로, 학생이 이론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 체크될 수 있는 답을 쓸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각 내용에 대한 이해가 100프로 선행되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시험지 양식을 제공하였다. 그 양식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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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A와 B에 나오는 결론을 쓰시오. 그리고 그 결론의 증거들을 찾아 쓰시오.
(ㄴ) 둘 중에 더 합당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고르시오. 그 이유를 설명하시오.
(ㄷ) (그리고 여기서부터 정말 소위 쩌는데) 만약 당신이 A를 골랐다고 친다면, A의 약점/혹은 B의 강점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진술하시오.
(ㄹ)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생각하기에 A가 더 나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 약점을 상쇄할 만한 강점은 무엇이었는가를 설명하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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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텍스트 이해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절대 쓸 수 없는 답지들이고, 내가 봤던 모든 서술식 평가문항 중 가장 이론적으로 완벽하다.
(3) 만약 내가 저번 학기에 썼던 답지들 중 가장 만족할 만한 글이라면 주저없이 나는 이 글을 꼽는다. 왜냐하면 이 답지들은 보다시피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서 그만큼 완벽한 만점을 뽑아낼 수 있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ㄱ) 부분을 제외하고 모두 만점을 받았는데, (ㄱ) 부분 같은 경우도 결론과 그 결론의 증거들 중에서 둘이 중첩적으로 이루어진 탓에 내가 결론의 증거들에 일부러 몰빵했기 때문에 몇 점이 깎였을 뿐, 하자는 없었다. (나는 답이 중첩적으로 이루어지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았기 떄문에 의도적으로 이렇게 썼다) 즉, 나는 이 질문지를 봤을 때 교수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해 썼고 텍스트에 나오는 말들을 적절히 인용하여 내가 해당 질문지에 맞는 답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할배 교수도 이 답안지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다음과 같은 부분/전체 코멘트를 달아주었다. “Exellent answer; well-written, thoughtful, creative, and excellent”, “This was a superb exam, showing mastery of understanding of both readings.”
(4) 내가 위의 같은 교수 코멘트를 단 이유는 자랑하기 위함(…)도 있지만 그건 소소하고, 전체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이 글의 이 책들에 대한 정확도가 적어도 아주 그릇되게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담보하기 위함이다. 내가 이 글을 번역해 쓰는 가장 큰 목적은 위의 이 두 책들과 그에 대한 내 분석을 한글로 번역하여 한국 사람들에게 신자유주의 책과 그 내용에 관련해 미국/유럽(내가 넣진 않았지만 나머지 하나는 미국 정치학자 웬디 브라운의 책이었다.) 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담론의 일부를 공유하기 위함을 밝힌다. 내용 적인 측면에서 나는 현재 신자유주의를 아나키즘 이론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석사논문으로 쓰려고 하는 사람인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고, 이 두 개의 책 특히 다르도와 라발의 책은 내게 매우 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밝히는 바이다. 두 번째 목적은 교수가 교사로서 제출한 시험지 양식의 뛰어남이 공유되어 많은 서술형 문제지를 작성하는 교사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그리고 글쓰는 학생들은 이에 어떻게 답을 해야하는지의 하나의 예시를 보이기 위해서이다. (특히 한글과 영어 공용으로) 내가 백프로 잘 쓰지 않았고 이상하게 쓴 부분도 있지만, 이 글은 다른 내 영어 글보다 꽤나 정확하게 쓰여진 글이다. 인용도 많았고. (….)
본론
질문항은 교수의 질문지. 답은 내 답지.
A. The Main Conclusions of the Works
A. 저작들의 주요 결론을 말하시오.
(a) 몽페를린~ 관련
Plehwe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에서 매우 중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의 세계적이고, 다채롭고, 그만큼 모호한 성격을 사학적 관찰로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 현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신자유주의는 같은 목적 하에 모인 수많은 지식인들에 의해 사전에 충분히 준비되어 장기적으로 진행되어온 프로젝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에 의하면 “사람들과 조직들 간의 중요한 네트워크들 뿐 아니라 헤게모니 차지를 향한 신자유주의의 부상을 위해 꼭 필요한 지식 영역, 사회적 지위를 갖춘 모임들, 국경, 그리고 문화를 가로질러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 채널들” (3쪽)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지 않고서 신자유주의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점이 바로 그가 몽페를린 소사이어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이유이다. 몽페를린 소사이어티는 오랜 기간 신자유주의를 형성시켜온 매우 중요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a) Introduction by Dieter Plehwe from The Road from Mont Pelerin
: The main conclusion of Plehwe is that since neoliberalism has been considerably influential all over the world, we need to examine its cosmopolitan, diverse, and obscure characteristics through historical observations. Above all, if we examine it attentively, we can find out that neoliberalism is a well premeditated, long-term project by various intellectuals, who share the same goal.
According to Plehwe, it is impossible to understand neoliberalism thoroughly without knowing the fact that there have been “crucial networks of people and organizations as well as channels of communication cutting across knowledge domains, social status groups, borders, and cultures that were crucial to the rise of neoliberalism to hegemony” (3). That is one of the main reasons why he primarily deals with Mont Pèlerin society; it is a crucial organization which has shaped neoliberalism for a long time.
(b) 다르도와 라발의 책에 관련해
다르도와 라발은 개인과 국가가 정치 이슈가 아닌 경제적 요소들에 집중해온 이래로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를 약화시켜왔다고 결론짓는다. 저자들은 신자유주의 사회를 비민주적인 사회로 규정하며 국가와 개인 차원에서의 두 가지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첫번째는, 사람들이 국가 차원에서 자치적인 통치성(governmentality)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의 상황에서 파생되어선 안 되고 완전히 새로운 상상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들은 정부가 사람들을 위해 존재해야 하지, 사람들을 통제하면 안 된다고 보는 시각을 견지한다. 두번째로, 그들은 주체화의 실천으로 ‘받아치는 행동(counter-conduct)’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개인 사업 모델을 따르는 현재 주체화 양식의 대안” (316쪽)으로, 개인의 수준에서 저항하는 양식으로 존재해야 한다. 이 두 가지의 방안은 사회적 조건과 인간 행동의 일반 준거 양식이라는 두 방향에서 모두 기능하는 신자유주의적 합리성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을 모색한다.
(b) Dardot and Laval’s The New Way of the World: On Neo-Liberal Society
: Dardot and Laval conclude that neoliberalism undermines democracy since individuals and states have prioritized economic factors, not political issues anymore. The authors define the neoliberal society as anti-democratic and suggest two solutions according to the level of state and subject. First, people need to invent autonomous governmentality on the state level, which should be invented not from current contexts but novel imaginations. They argue that government should be for people, not controlling them. Second, they suggest ‘counter-conducts’ as practices of subjectivation. It should be “the present alternative forms of subjectivation to the model of personal enterprise (316)”, which would be a recalcitrant way on the subject level. Both suggestions aim for escaping neoliberal rationality, which has become a general standard for social condition and human behavior.
B. Supporting Evidences for A
A의 결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제시하시오.
(a) 몽페를린~ 관련
Plehwe는 1947년 이래로 중대한 신자유주의 조직 중 하나로 자리해온 몽페를린 소사이어티를 깊이 파고든다. 그에 의하면 왜 그렇게나 다양한 신자유주의자들이 한곳에 모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두 가지 관심사를 공유했기 때문이다. “하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이 고립되었다고 느꼈다. … 두번째는, 하이에크와 다른 이들은 고전자유주의가 이론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길은 뜻이 맞는 지성인 모임에서 집중적인 토론을 통해서라 보았다.” (16쪽) 몽페를린 소사이어티가 시작될 즈음 신자유주의자들은 정책 행정에 사회적 계획을 적용하는 지식인들(케인스 학파)에게 수적으로 불리했다. (16쪽) 신자유주의자들이 여러 모로 불리했고, 전체주의와 같은 사상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몇 십 년에 걸친 신자유주의적 지성인들을 키워내는 장기적 전략을 계발하기로 동의했다.” (15쪽)
이러한 맥락에서 몽페를린 소사이어티는 신자유주의가 매우 오랜 기간 형성되어온 집단적 사고의 의도적 결과물이라는 증거물로 존재한다. 이 조직은 매우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싱크탱크였는데 “초학문적이고 … 학제간으 넘나들며… 초학문적이라 설명될 수 있는 집단의 노력”(5쪽)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국적과 학문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의 발전을 위해 몽페를린 소사이어티로 모여들었다. 저자는 몽페를린 소사이어티 지도자들의 자세한 명단, (19쪽) 간략한 역사와 만남 장소들 (17)쪽을 보여주는데, 이는 이 조직이 초국가적이고 국제적인 성격을 지녔음을 보인다. 하지만 몽페를린 소사이어티가 다양한 구성원을 자랑했음에도 그들이 몽페를린 소사이어티 안에서 같은 목적을 공유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집단응집성을 바탕으로 “신자유주의적 사고 집단을 이끄는 구성원들의 국제적 명망은 싱크탱크와 다른 조직들을 확장하고 설립하는 데 있어 필요한 기금 형성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6쪽). 한마디로 몽페를린 소사이어티는 같은 목적을 공유하고 신자유주의를 전파시키는 데 성공한 지식인들의 중요한 사례 중 하나이다.
: Plehwe delves into the Mont Pèlerin Society, which has been one of the crucial neoliberal organizations since 1947. According to him, the reason why such diverse neoliberalists gathered in the same place is that they shared two considerations: “First, the (neo)liberals felt isolated … Second, Hayek and others believed that classical liberalism had failed because of crippling conceptual flaws and that the only way to diagnose and rectify them was to withdraw into an intensive discussion group of similarly minded intellectuals” (16). At that time around when MPS begins, neoliberalists were outnumbered by the others who apply social plans to policymaking (16). Since neoliberalists were aware of the disadvantaged conditions, and willing to stand against ideologies such as totalitarianism, they “agreed on the need to develop long-term strategies projected over a horizon of several decades, possibly to involve several generations of neoliberal intellectuals” (15).
MPS, in the context, is an evidence to prove that neoliberalism has been a deliberate outcome of collective thought for a long time. It was a think tank full of diversity because there was “the collective effort (which) can be described as transdisciplinary, … interdisciplinary, … and transacademic” (5). People from a variety of nationalities and professional fields co-operated for the development of neoliberalism within MPS. Plehwe shows readers the detailed list of MPS leaders (19), its brief history and several meeting locations (17), which implies it has been transnational and cosmopolitan. Even though MPS has various members, however, they share the goal in the statement of aims of the MPS. Based on its cohesiveness, “the international reputation of leading members of the neoliberal thought collective has worked wonders in local fund-raising efforts to establish or expand think tanks and other organizations” (6). In short, MPS is a great example of intellectuals who share the same goal and succeed to empower neoliberalism.
(b) 다르도와 라발의 책에 관련해
다르도와 라발은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를 약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이를 가능하게 한 신자유주의의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첫번째, 신자유주의는 “구성주의적 사업”이다. 두 번째, 시장질서는 경쟁을 기초로 한다. 세번째, 국가는 경쟁을 위한 수호자로 기능하고 있다. 네번째, 사람들이 인간 자본 혹은 사업체들로 취급받고 있다. (301, 302쪽)
경쟁이 신자유주의 사회의 규범이 된 이래로 많은 사람들이 경쟁 속에서 다른 이들을 제치고 승자가 되는 것에 실패하였다. 신자유주의 이론에 따르면 이들은 성공적인 인간 자본이 아니기에 사회는 이러한 “패자”들을 돌볼 책임을 지니지 않는다. 이러한 논리는 패자들이 보호받을 수 없는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한다. 그렇기에 “신자유주의는 ‘부차적 시민(sub-citizens;일반 시민보다 그 권리가 덜 적용되는 것을 뜻함)과 ‘비시민(non-citiznes)’이라는 사회적 배제 구조를 강화한다.” (304쪽)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정치적 자유를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스스로 알아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인 개인적 자유 (다른 말로, ‘사유재산)’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306쪽)
다르도와 라발의 결론은 우리가 경제적 요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에 맞설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형식의 통치성과 주체를 만들기 위해 푸코의 이론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푸코에게서 여러 표현을 빌린다. 대안으로서의 통치성을 “발명” (312쪽)해야 한다는 표현은 기존의 좌파이론이나 사회주의로부터 만들어질 수 없다는 인식에서 나온다. (저자들은 책에서 제3의 길이나 블레어주의 같은 좌파이론의 실패를 설명한다. 그들은 “지배적 합리성에 노골적 종속을 주장한” (183쪽) 신자유주의 좌파였지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다.)
저자들은 “통치는 정확히 ‘배치’”이며, 이때 “배치는 사람에 반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개념” (132쪽)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푸코에 기반해 정부에 관한 의견을 개진한다. 다른 말로, 정부란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하지 통제하거나 조종해선 안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들은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주권을 형성할 자주적 통치성을 개발하고자 한다.
다른 해결책인 ‘받아치는 행동’이란 주체화의 훈련양식이다. 이는 주체적 수준에서의 조치이며 마찬가지로 푸코의 개념에서 비롯한다. 신자유주의적 사회의 인간이 인간 자본으로 전락했기 때문에 저자들은 ‘받아치는 행동’과 같이 저항할 수 있는 윤리적 방법을 제안한다. 이것은 “비행(잘못된 행동)”과는 다른데, 비행은 수동적이기 때문이다. ‘받아치는 행동’은 “사람들이 다른 이들의 행동에서 자유롭기를 원하지만 동시에 타인에게 자신들의 행동이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319쪽) 하는 적극적인 행동양식이다. 즉, ‘받아치는 행동’은 주체적 차원에서 신자유주의 질서를 거스르는 행위다.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거부함으로써 사람들은 그들을 인간 자본으로 포획하려는 신자유주의의 영향력에서 도망쳐 나올 수 있다.
(b) Dardot and Laval’s The New Way of the World: On Neo-Liberal Society
: The authors claim that neoliberalism undermines democracy, based on its characteristics as follows: First, neoliberalism is a “’constructivist project’”; second, the market order has a basis on competition; third, the state functions as a guardian for competition; and, fourth, people are treated as human capital or enterprises (301, 302).
Since a competition has become a norm of neoliberal society, there are many people who fail to outrival others in the competition. According to neoliberalism, they are not successful human capital, and society does not have responsibilities to take care of those ‘losers.’ This logic brings about the social inequality in which losers cannot be protected. Therefore, “it strengthens social logics of exclusion that manufacture a growing number of ‘sub-citizens’ and ‘non-citizens’” (304). In the circumstances, people do not pay attention to political liberty since there is only “individual liberty, understood as a faculty left to individuals to create a protected domain for themselves (their ‘property’)” (306)
Dardot and Laval’s conclusion is that we need an alternative to the current neoliberal governmentality, which too much focuses only on economic factors. They rely on Foucault’s theory to make solutions in the new form of governmentality and subject. As they borrow the expressions from Foucault, the alternative governmentality should be “invented” (312) since it cannot be found from existing socialism or left theories. (The authors criticize the left theories’ failures in their book, such as ‘the third way’ or ‘Blairism’. They were neo-liberal left “suggesting outright submission to the dominant rationality” (183), not solving underlying problem of neoliberalism) They examine the idea of government based on Foucault, who argue “governing precisely consists in ‘disposing things’” and it should be “understood that by ‘things’ is meant not things as opposed to people” (132). In other words, the government should help people, not control nor manipulate them. In this context, the authors seek a way to invent the autonomous governmentality in which people could be its direct sovereign.
The other solution, ‘counter-conducts,’ is practices of subjectivation. It is a treatment on the subject level, relying on Foucault’s concept. Since human in neoliberal society has become a human capital, they propose an ethical method to be resistant with ‘counter-conduct.’ It is different from ‘misconduct,’ which implies the passivity. ‘Counter-conduct’ is an active movement in which “people seek both to escape conduction by others and to define a way of conducting themselves towards others” (319). In other words, ‘counter-conduct’ is to disobey neoliberal order on the subject level. By denying neoliberal order, people can escape from the attempt of neoliberalism, which tries to make them human capital.
C. Which work offers the most sound or superior conclusion?
둘 중의 하나를 고른다면, 어떤 텍스트가 더 설득력 있는가?
나는 다르도와 라발의 책을 골랐다.
D. What reasons can you offer to support your assessment in response to Question C.?
그 텍스트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비록 Plehwe의 관찰이 신자유주의의 역사적 배경지식을 알기에는 그 의의가 크나, 현재 신자유주의 사회를 바꾸기 위한 대답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의 결론은 신자유주의가 왜 현재 성공적인지를 설명하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을 주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다르도와 라발은 현 신자유주의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가능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은 국가와 개인들이 시장 질서에서 행동과 사업의 내용을 규정하는 신자유주의 합리성에 매몰된 문제를 분석한다. 그 다음 그들은 지배적인 신자유주의 질서에 저항하기 위한 국가적/주체적 차원의 다른 방안을 제시한다.
더욱이 Plehwe의 역사적 관찰은 다르도와 라발의 연구에 비해 범위가 좁고 그 깊이가 얕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주요 시작점으로 몽페를린 소사이어티를 주로 다루지만 다르도와 라발은 신자유주의의 기원을 더 심오하고 넓게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사회에서 경쟁의 중요성과 같은 중요한 신자유주의 개념을 고안한” 허버트 스펜서와 같은 몽페를린 소사이어티 이전의 인물들에 주목한다. (다르도와 라발, 29쪽) 게다가 그들은 “1947년의 몽페를린 소사이어티의 창발이 종종 신자유주의의 탄생으로 잘못 인용된다. … 1938년 8월 26일에서 5일 간 열린 월터 리프만 학회가 진정한 탄생의 순간이다.”라고 밝힌다. (다르도와 라발, 49쪽)
한편, Plehwe는 몽페를린 소사이어티 이전의 신자유주의 기원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의 글에서 월터 리프만 학회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그 학회를 “경제학자, 철학자, 사회학자들의 느슨한 모임” (Plehwe, 12쪽)으로 묘사하며 이를 “보통 몽페를린 소사이어티의 선임격으로 간주되는” 모임이라고 규정한다. (Plehwe, 12쪽) 몽페를린 소사이어티만 부각시킴으로써 질서자유주의/독일식 자유주의(ordoliberalism)과 같이 몽페를린 소사이어티를 배경으로 삼지 않는 다른 신자유주의 이론들에는 소홀한 경향을 보인다. 즉, 그의 단편적인 시각은 더 넓고 깊은 신자유주의를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Even though Plehwe’s observation is meaningful to know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neoliberalism, it is not a sufficient answer to change the current neoliberal society. His conclusion is good enough to explain how neoliberalism is so successful now, but it does not contain any prospects of how to overcome neoliberalism. On the contrary, Dardot and Laval make readers see possible ways to reform the current neoliberal society. They analyze the problem that states and subjects are subject to neoliberal rationality, which reproduces and manages their behavior and projects on the logic of the market. Therefore, they propose that states and subjects should find out the other way to resist the dominant neoliberal order.
Moreover, Plehwe’s historical observation is narrower and shallower than a research of Dardot and Laval. Plehwe mainly deals with MPS as a pivotal starting point of neoliberalism, while Dardot and Laval dig into the more profound and broader origin of neoliberalism. For example, they pay attention to the past before MPS, such as Hebert Spencer, who “introduced some of the most important themes of neoliberalism-in particular, the primacy of competition in social relations” (Dardot and Laval, 29). Besides, they argue that “the creation of the MPS in 1947 is often incorrectly cited as marking the birth of neo-liberalism … it was the Walter Lippmann Colloquium held over five days from 26 august 1938” (Dardot and Laval, 49).
On the other hand, Plehwe did not pay attention to the origin of neoliberalism before MPS. I am not saying that Plehwe did not mention Walter Lippmann Colloquium in his article. However, he describes Colloquium as “a loose group of economists, philosophers, and sociologists” (Plehwe, 12), and defines it as “often regarded as the precursor of the MPS” (Plehwe, 12). By only highlighting the MPS, Plehwe loses other neoliberal theories which are not mainly based on MPS, such as ordoliberalism. In short, Plehwe’s narrow approach lacks opportunities to explain neoliberalism deeper and broader.
E. How might the author NOT judged to be superior in Question C reply to the reasoned defense expressed in your response to Question D?
어떤 지점에서 보면, D에서의 답변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면서 C에서의 선택이 다른 선택보다 더 우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한 지점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라.
(한마디로 D에서의 문제점을 방어하고 C에서 내놓은 답변의 약점을 진술하라는 말)
다르도와 라발의 결론은 현실에 적용하기에 기술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그들의 답안은 실용적이라기보다는 이론적이다. 푸코의 논의에 기대어 그들은 새로운 통치성과 ‘받아치는 행동’ 양식의 새로운 발명을 주장한다. 하지만 어떠한 종류의 통치성과 ‘받아치는 행동’이 존재해야 하는지에 관해 분명한 답을 주지 않고 있다. 가능이나 하긴 한 건지를 보여줄 역사적 예시가 없다. 세부사항들은 독자들에게 미궁으로 남았으며, 남은 부분은 우리가 채워나가야 한다.
게다가 다르도와 라발의 결론이 신자유주의에 관한 깊은 배경지식을 토대로 삼는다 하더라도 Plehwe의 몽페를린 소사이어티에 대한 풍부한 설명은 사람들로 하여금 오스트리아-미국 신자유주의 학파에 관해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그는 몽페를린 소사이어티의 전반적 형성 과정을 소상히 밝히며 이 조직의 영향력과 중요성을 밝힌다. 다르도와 라발이 신자유주의를 전반적으로 탐구할 동안 Plehwe는 몽페를린 소사이어티의 역사를 분석하고 이 조직의 국제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구성원 명단을 제공한다. 그의 접근법은 오스트리아-미국 신자유주의 학파가 자신들의 영향력을 오랜 기간 쌓아온 과정을 매우 성공적으로 소개한다.
Dardot and Laval’s conclusions lack technical and realistic methods to apply their solutions to reality; they are theoretical instead of being practical. Based on Foucault’s argument, they merely suggest that we should invent new governmentality and ‘counter-conduct.’ However, they do not have clear answers of what kind of governmentality and ‘counter-conducts’ should exist; there are no historical examples which show if it is possible or not; details are left in mystery for readers, and now it is their task to fill the remaining parts.
Moreover, although Dardot and Laval’s conclusion has a more in-depth basis on neoliberalism, Plehwe’s detailed description of MPS is beneficial for readers to understand Austro-American neoliberalism especially. He concentrates the whole process of MPS and reveals its importance and the reason why it has been so influential. While Dardot and Laval examine neoliberalism generally, Plehwe analyzes MPS’ history and offers a detailed list of members to show the cosmopolitan characteristics of MPS. His approach is useful in the sense that it successfully reveals that Austro-American neoliberalism has developed its clout for a long time.
F. What rejoinder to the reply you provided to Question E can you provide in defense of your judgment of which work was superior?
E에서 내놓은 답변을 어떻게 응수해야 당신이 선택한 텍스트가 다른 텍스트보다 낫다고 설득할 수 있는가? (다시 E를 비틀어보라는 말)
비록 다르도와 라발의 결론이 추상적이긴 해도 그들은 현 신자유주의 사회를 극복할 방향성을 제시한다. 그들은 현 상황이 완전히 새로운 대안으로 극복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이 사람들을 억압하고 조종해 온 이상 그들은 지배질서로 사람들을 조종하지 않을 새로운 통치성을 고안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새로운 종류의 통치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통치성의 근본이 될 주권을 만드는 과정에 직접적으로 개입시킬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사유재산에 의거한 ‘부차적 시민’이나 ‘비시민’과 같이 사람들이 동일한 정치권 권리를 갖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할 자립적인 통치성을 통해 민주주의를 구원하고자 한다.
또한 이는 주체에 관한 그들의 다른 해결책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주체들은 ‘받아치는 행동’을 해야 한다. 비로 저자들이 역사적 사건들에서 예시를 주고 있진 않으나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부터 그 예시들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예시들은 사실상 다른 말로 하면 시민 불복종이다. 우리는 우리의 현재에서부터 사회 질서에 저항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공유경제가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받아치는 행동’의 일환이라고 본다. 공유경제는 경제의 개념을 소유와 비교하기로부터 빌리고 공유하는 것으로 전환시킨다. 다르도와 라발이 우리에게 큰 청사진을 제공해 준 이상 우리는 남은 부분을 우리 자신의 ‘받아치는 행동’으로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다르도와 라발의 논의는 신자유주의 이론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까지 다루며 신자유주의의 전반적인 구조와 영향력을 설명한다. 그들은 신자유주의가 경쟁을 중시하는 합리성을 구축해냈고, 국가와 주체들로 하여금 신자유주의적 통치성 하에 자기통치를 하도록 유도했다. 비록 저자들이 단 하나의 신자유주의만 집중적으로 파지 않았으나 그들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깊은 통찰은 이를 더 넓은 시야에서 조망하고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Even though Dardot and Laval’s conclusions are abstract, they offer direction for people to overcome the current neoliberal society. They have a point that the current situations should be treated with a completely new alternative. Since neoliberal governmentality has oppressed and manipulated people, they should design new governmentality which would not control people under the dominant order. Therefore, the form of new governmentality should guarantee people to participate directly in the process of making sovereignty, which would be the source of governmentality. It is a valuable perspective since it emphasizes autonomous governmentality to save democracy in which everyone has equal political rights and no one gets excluded as noncitizien or subsitizen based on their properties.
Also, it is similar when it comes to their other solution about subjects; that subjects should do ‘counter-conduct.’ Even though they do not give an example of it from historical events, we can imagine these examples from our everyday. It is, in other words, civil disobedience; people can resist oppressive social order in their lives. For example, I think people who focus on sharing economy are doing ‘counter-conduct’ against neoliberalism. They try to change the concept of the economy from owning and comparing to burrowing and sharing. Since Dardot and Laval suggests a big blueprint for all of us, we could fill the remaining part with our ‘counter-conducts.’
Also, Dardot and Laval’s discussion explains the overall structure and effects of neoliberalism, covering not only one neoliberal theory but also others. They reveal that neoliberalism has constructed rationality which highlights competition, and made states and subjects self-govern them under the neoliberal governmentality. Although it does not concentrate on only one neoliberalism, their examination on liberalism is valid to explain it in a broad s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