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obbit & The Lord of the Rings Boxed Set (Multiple-component retail product, slip-cased)
J. R. R. Tolkien 지음 / HarperCollins / 199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새 "반지의 제왕"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반지의 제왕" 이야기를 하면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마 오늘의 이 글만으로도 끝나지 않으리라.


1. 이게 어떻게 꿈일 수가 있죠?


2001년 겨울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를 본 10살짜리 꼬맹이는, 영화가 3부작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프로도와 샘의 뒷모습부터 모르도르의 어두컴컴한 배경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에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충격을 받았다.


2002년 2편이 영화 상영되기까지 그 1년 간, 내 기억에 따르면, 나는 "반지의 제왕" 책들을 전부 다 읽었다. 그 책의 출판사가 황금가지였나, 1권부터 6권까지 출판된 책을 사서 다 읽었다. "호빗"도 읽었다. "실마릴리온"도 읽었다. 그렇게 중간계의 역사를 다 꿴 꼬맹이는 2편 영화를 10번? 20번? 영화관에서 보았다.


3편이 나오기 전까지는 1편과 2편의 확장판까지 구입해서 메이킹필름까지 확인했다. 


개인적으로 영화 3부작 중 최고는 2편, 두 개의 탑이었다. 왜냐하면 그런 순간 있지 않은가. 사과 첫 맛은 너무 신데 맨 마지막 맛은 너무 물려서 먹기 가장 좋은 건 중간쯤인 것. 순전히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십대 때 나는 많이 연약했다. 처음 만나는 세상의 추위와 나 자신의 다름을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 할지 모르는, 전형적인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었달까? 그럴 때 나는 판타지 세계로 깊이 침잠했다. 일본만화 나루토, 소설 반지의 제왕을 읽으며 그들의 세계관과 역사 속에 빠져들었고, 상상 속에서는 그러한 역사 속의 영웅이었다.


한 번은 너무 심하게 이 현실을 탈피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고, "반지의 제왕"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심하게 해서, 꽤나 우울해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초연함, 강함 그리고 자연 속에서의 영성을 부러워 했던 것 같다.


2.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다시 접하면서 새롭게 "반지의 제왕"을 마주하기 시작하다


물론 어렸을 때도 "반지의 제왕"을 영어로 읽으려 한 적이 있었다. 호빗을 아주 재미나게 읽진 않았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반지의 제왕을 읽으면서 영어공부를 해야겠다는 야무진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너무 어려웠다. 사실 그 나이 때는 반지의 제왕을 한국어로 읽는 것도 마냥 쉽지는 않았다 (맙소사, 지금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4학년에서 6학년 때 일이다!) . 


다만 읽으면서 이 이야기는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구나.. 감탄을 할 뿐이었다. 매우 고풍스럽고 우아했다. 비교하는 건 적절하지 않겠지만, 동시대에 유명했던 환상소설인 해리 포터가 현대물과 같은 느낌이라면, 반지의 제왕은 정말 아름답지만 섬세하고, 신화 같을 때도 있지만 동시에 인물들이 우리와 같이 느껴질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한국어로 읽을 때도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최근, 나는 갑자기 "반지의 제왕"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시간 여유가 있는 연말/연초에는 3부작 영화를 한 번에 몰아보는 것이 백미지! 그리고 선택된 것이 고전 중의 고전이었던 것이다. 수첩을 보니 4일 날 그렇게 몰아본 이후부터, 여운이 가시지 않아 소설 반지의 제왕을 집게 되었다. 물론 이번에는, 영어로 말이다.


그런데 영어로 읽으니, 왜인걸, 아주 많은 생각이 머릿 속에 엉키게 되었다.


3. 본질, 선과 악, 그리고 나는 간달프의 말을 드디어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우선, 다시 읽기 시작하는데, 한국어를 읽는 것만큼 속도가 빠르진 않지만, 소리내어서 읽다보니, 이 글이 얼마나 수려하고 아름답고 운문체인지 절감하고, 또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는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간달프의 말을 드디어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I wish it need not have happened in my time,’ said Frodo. ‘So do I,’ said Gandalf, ‘and so do all who live to see such times. But that is not for them to decide. All we have to decide is what to do with the time that is given us.

; The Lord of the Rings: The Fellowship of the Ring, The Two Towers, The Return of the King (p. 51). HarperCollins Publishers. Kindle Edition.

 [번역(내 맘대로 엄청 의역)]

프로도가 말했다. "우리 시대에 이런 일들이 일어날 필요가 없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나도 그렇다네." 간달프가 말했다. 

"이러한 시대를 겪어야 하는 모든 이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러나 선택권은 없네. 주어진 시간 안에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의 문제만 빼고." 


‘No, and I don’t want to,’ said Frodo. ‘I can’t understand you. Do you mean to say that you, and the Elves, have let him live on after all those horrible deeds? Now at any rate he is as bad as an Orc, and just an enemy. He deserves death.’ ‘Deserves it! I daresay he does. Many that live deserve death. And some that die deserve life. Can you give it to them? Then do not be too eager to deal out death in judgement. For even the very wise cannot see all ends.

; The Lord of the Rings: The Fellowship of the Ring, The Two Towers, The Return of the King (p. 59). HarperCollins Publishers. Kindle Edition. 

 [번역(내 맘대로 엄청 의역)]

"아니요, 그러고 싶지 않아요." 프로도가 말했다. "간달프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골룸이 그런 끔찍한 일들을 저질렀는데도 엘프들과 간달프 당신이 골룸을 살려줬다는 거에요? 하여간 지금 골룸은 오크만큼이나 사악한, 그저 적에 불과할 뿐이에요. 죽어도 싸다고요."

"죽어도 싸다고! 그렇다고 말할 수 있지. 살아있는 많은 이들이 죽어 마땅하고, 죽은 자들이 살아 마땅한 경우가 있으니. 자네가 그들에게 삶과 죽음을 나눠줄 수 있기라도 한가?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성급히 누가 죽어야 할지 정해 놓지 말게. 매우 현명한 자들도 끝을 이야기할 수 없는 법이니까."


옛날부터도 생각한 거지만, 간달프는 우리 마음의 희망을 대변하는 존재다. 그리고 희망은 간달프가 가진 지혜, 더 큰 것을 조망할 줄 아는 제3의 눈으로부터 온다. 

왜냐하면 희망을 없애는 것은 두려움과 좌절인데, 두려움과 좌절은 이성을 상실하고 눈이 멀어 한치 앞을 보지 못할 때 찾아오기 때문이다. 


위의 대화 중 첫번째에서 보여지듯이, 진정한 현자는 한탄하며 현실을 피하지 않는 법이다. 현실을 돌파할 뿐이다.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인간과 세상은 잡탕이다. 선과 악이 회색지대로 섞여 있어 그것들을 구분해 내는 방법이란 애초에 없다. 선이 얼굴을 돌리면 악이 나오고, 악이 얼굴을 돌리면 선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처음부터 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밖에 없다. 바로 "나의 선택에 따른 행동" 뿐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우리는 아는 것이 많지 않다. 소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방치하면 언제나 우리는 자기도 잘 알지 못하는 선택을 하고, 옳지 못한 선택에서 자신으로 말미암은 행동의 결과도 책임질 준비가 되지 못하여, 결국 추락하고 타락한다. 


그래서 진정한 현자는 항상 몸을 낮춘다. 언제나 잘못되고 그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니까. 그리고 진정한 선인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항상 수련하고, 공부하고, 연마할 것을 주문한다. 학식에 갇혀서 몸이 묶여 지식의 죄수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읽는 한 글자를 몸에 체득하여 그것을 언제든 "증명"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간달프가 말했듯이, 그 시험의 순간이 언제인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다. 다만 그 때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위해 매사 살아나갈 수 있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다시 생각해보면 시험의 순간은 언제나 항상, 매분매초이다. 


또한 두번째 대화에서 간달프는 끝을 성급하게 재지 말라고 주문한다. 이는 간달프가 왜 호빗들에게 절대반지를 맡겼는지, 왜 자신은 절대반지를 맡지 않으려고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이 문제는 실마릴리온 역사를 살펴보면, 그리고 고금의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원래 자기 자신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쉽게 타락한다. 가장 높이 나는 자들이 가장 높은 데서 추락하는 이치다. 그리하여 동양에서도 어려서 출세한 경우, 부모가 영향력 있는 경우, 재능이 뛰어난 경우를 경계한다. 왜냐하면 너무 빨리 자기 그릇에 충분치 못한 것을 받아들일 때 균형을 쉽게 잃기 때문이다. 


아라고른의 경우를 생각해도 그렇다. 그는 두네다인 족장이고 고귀한 혈통이지만 방랑자로서의 온갖 위험한 역경을 거쳤고, 익명에 숨어 오롯한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수많은 과정을 거쳤다. 그가 그렇기에 인간 중에 최고의 인간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왜 온갖 영웅들에게 시련이 필요한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성숙할 많은 기회들 속에서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장 좋은 배움은 자기 자신이 뛰어나다고 혹은 열등하다고 주입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좋은 배움은 이 세상이 얼마나 넓고 얼마나 아름답고 배울 것이 많은지, 그리하여 자기 자신이 얼마나 작고 작은 존재인지, 그러나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나만의 무엇인가로 자라나서 다시 그 넓고 아름다운 세계의 일부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그러한 성질의 배움이다.


힘이 크고 재능이 뛰어난 이들은 절대반지를 맡지 않는 것이 자기 자신을 증명하고, 균형점을 유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현명한 만큼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평화 속에서 소박한 것들만 바라는 것이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관습이 된 호빗들이야말로 절대반지의 악에서 강하게 버텨낼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물론 골룸이라는 개별차가 있긴 하니 일반화 시킬 수는 없지만, 소박하고 아름다운 백엔드의 삶을 사랑한 프로도와, 정원사로서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것을 소망한 샘을 생각하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가끔은 이러한 소시민이 왜 필요한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누가 진짜로 강한지, 약한지, 어리석은지, 현명한지는 매사 그 순간마다 결정되며, 그 끝은 결국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타락은 대단한 것이 아니며, 당장 내일 아침 오른쪽 길로 갈지 왼쪽 길로 갈지 정도의 문제다. 

그러니 우리도 타인을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비난은 쉽지만, 그 사람의 입장에 선다면, 당신도 똑같이 행동할 확률이 높다. 

그러고 싶지 않다면, 부단히 노력하고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결국 우리는 타인을 쉽게 비난할 근거를 상실할 것이다. 노력과 증명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 그 안에 자리한 선과 악이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함을 직면할 터이니. 


4. 그가 노래한 순간, 세상이 만들어졌노라- 환상과 현실의 경계 속에서


"반지의 제왕"을 소설로도 읽고, 영화로도 읽으며 생각한 것은, 이야기의 창작이 바로 나의 논문/연구와도 그렇게 분리되어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피터 잭슨은 어떻게 이렇게 원작을 토대로 영화화를 잘 할 수 있었을까? 물론 잭슨과 그 제작진의 부단한 노력, 성실함, 재능이 빛을 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톨킨에게 집중하고 싶다.


단도직입적으로, 잭슨이 영화화를 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톨킨의 상세하고 방대하고 성실한 작업물이었다고 본다. 그에게 이 작업은 정말 일루바타르가 자기 자신이라고 이야기할만큼 대단한 것인데, 보통 사람들이 꿈결에서나 혹은 지나가는 상상으로 그칠 것을 그가 글로 하나하나씩 기록해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를 대단한 능력이라 이름 붙일지 모르나, 나는 이 능력은 다름이 아니라 성실함과 꾸준함이라고 밖에 보지 않는다. 그는 중간계의 언어들을 만들어냈고, 호빗과 엘프와 난쟁이들을 상세하게 "관찰"했다. 그리고 그는 기록을 남겼다. 그는 자신이 공부했던 옛 신화와 전승들에서 발견한 것들을 조합하고, 편집해냈다. 


요즘과 같은 시대에 글을 쓰는 것을 하나의 특기로 두고자 하는 나로서, 그의 이러한 서술과 이야기 창작 능력이 영상매체와 같은 현대기술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고민을 해봤다. 나는 그가 정말 순수한 "창조자"로서 백지들에 수많은 이미지들을 촘촘히 던져놓았다고 말하고 싶다. 언어로 그는 수많은 정보들과 지침들을 제공했고, 그러한 기록된 섬세함을 바탕으로 잭슨과 같은 많은 할리우드 기술자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바탕으로 이미지를 구체화 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하여 바로 이러한 톨킨의 성취가 바로 나의 성취가 되어야 함을 나는 직감한 것이다. 나는 다만 정치를 예술로 구현하고 싶을 뿐이다. 혹자는 정치와 환상문학이 무슨 관계냐고 묻겠지만,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우리의 현실은 누군가가 이미 누군가가 꿈꿔놓은 상(이미지image)였다고 말이다. 소설가들과 철학자, 모든 말을 업으로 삼은 자들이 얼기설기 그려놓고 계획한 것들을, 기술자들이 살을 덮어놓아 숨쉬게 만들었다. 


나는 그리하여 내가 배우고, 내가 보았던 상들을 조합하여 현실의 정치현실에서 기술적으로 구현하고, 작동 가능한 이야기와 담론들을 생성해야 한다. 


어쩌면 직접민주주의와 아나키즘은 환상에 불과할 수 있다. 대체 어느 시대에 그런 게 있었다는 것이죠? 우리한테 그런 일이 가능하긴 한 거죠?


그렇다면 내가 노래하리라. 나한테 주어진 시간들 속에서 말을 계속 내뱉고 주문을 외우고 편집하고 조건들을 설치하고 일궈내고 영향을 주며 그려진 청사진이 언젠가 뚜렷해지면, 그 때 아주 소수의 사람만 꾸었던 환상이 아주 많은 사람들이 보는 현실이 되며, 경계선이 사라지리라. 


5. 다시 묻기를, 이게 어떻게 현실일 수가 있죠?


그리하여 나는 요새 행복하다. 내 마음 속에는 감사함이 샘솟고, 즐거움이 자리한다. 물론 어떤 때에는 이 세상의 악함과 내 마음의 악함이 간혹 무섭고 두렵다. 내가 저지른 악업과 잘못들 속에서 언제 내가 무너지고 타락할까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그러나 나는 한편으로 주문을 외운다. 내 언젠가 이 시험에서 통과할지 안 통과할지 모르겠으나 통과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부단히 노력하며 살겠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니 항상 몸을 낮추고 살며,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사랑하고, 모든 욕심과 근심을 버리며,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내 두 발로 서며, 조건이 달라져 모든 것이 쇠한다 하여도 최선을 다해 마주하고 동시에 끝나는 것을 슬퍼해 눈물을 흘릴 지언정 순리에 거스르는 일을 하여 나 스스로를 윤회의 억압에 빠지게 하지 않으리!


여러 상황 속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장 귀여운 생명체와 함께 셋이서 가족을 오순도순 만들어 사는 데 감사하고, 몸 건강히 살아있음을 감사하고,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충분히 할 수 있는 여건에서, 배우는 즐거움을 누리는 데서 감사한다.


이 감사함을 바탕으로 비양심의 순간에 언제나 가장 정직하게 나 자신을 바라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불의를 선택하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흑백이 구분되지 않는 순간에 내 안의 기준으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성실할 것이며, 내가 받은 온갖 좋은 것들과 온갖 나쁜 것들을 잊지 않고 좋은 것은 그 이상으로 나누고 더 좋게 만들 수 있도록 발벗고 나설 것이며, 나쁜 것들은 나쁜 것들로 이어지지 않도록 좋은 승화의 방법을 찾아 악영향을 중화시켜 순환의 고리가 끊겨지도록 마찬가지로 발벗고 나설 것이다.


그러니 다시 묻기를, 이게 어떻게 현실일 수가 있는가?


이 거대한 하나의 세계는 우리가 만들어놓은 환상이지만, 우리는 이 환상과 단 한 번도 분리되어 있던 적이 없다. 그렇기에 우리가 사랑하고, 아파하고, 죽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믿는다. 이천만번을 다시 태어나 이 세계의 모든 우리가 언젠가 억압의 고리를 끊고 진정 아름다운 선택만을 할 그 날이 도래하리라는 것을. 바로 극락의 때를-

그리하여 나는 믿는다. 내가 죽어도 결국 내가 다시 돌아오리라는 것을. 

"나"는 "인간"이 죽지 않는 이상 없어지지 않을 것이니. 







‘I wish it need not have happened in my time,’ said Frodo. ‘So do I,’ said Gandalf, ‘and so do all who live to see such times. But that is not for them to decide. All we have to decide is what to do with the time that is given us.

; The Lord of the Rings: The Fellowship of the Ring, The Two Towers, The Return of the King (p. 51). HarperCollins Publishers. Kindle Edition.


‘No, and I don’t want to,’ said Frodo. ‘I can’t understand you. Do you mean to say that you, and the Elves, have let him live on after all those horrible deeds? Now at any rate he is as bad as an Orc, and just an enemy. He deserves death.’ ‘Deserves it! I daresay he does. Many that live deserve death. And some that die deserve life. Can you give it to them? Then do not be too eager to deal out death in judgement. For even the very wise cannot see all ends.
(p. 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