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휴먼카인드 -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조현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3월
평점 :
품절
엄청난 책을 읽었어요.
인간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성선설 성악설로 일컬어지는 이 오랜 질문에, 대부분은 '성악설'로 마음속 정답을 정해놓으셨을 것 같은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인간은 본래 악한 심성을 갖고 태어났는데 사회화와 교육의 힘으로 악한 본성을 누르고 사는 거라고.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악마 같은 범죄 뉴스는 그런 생각을 더욱 확신하게 해주고요.
그런데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책이 나왔어요.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휴먼카인드>입니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인간은 선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고 인류 역사상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평화롭게 살았는데 재산의 사유화와 문명이 그것을 깨뜨리기 시작했고, 언론매체와 권력이 성악설을 강화시켰다는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져온 '인간은 악하다'는 믿음이 왜 생겨났는지, 그 믿음의 증거가 되어온 여러 사례와 연구, 실험의 허점과 감춰진 진실을 밝히고 있는데요.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유명한 실험들이 사실 이랬던 것인가 배신감이 들 지경이더라고요.
그동안의 상식과 제가 가져온 가치관에 한방 충격을 주는 책이었어요.
너무 흥미롭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라 아이 재우고 새벽잠 줄여가며 책을 읽었어요.
제가 이런 종류의 책에 진짜 취약해서 소위 '벽돌책'이라고 부르는 교양 필독서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나 제러드 다이아몬드 <총균쇠> 등등을 한 번도 완독한 적이 없는데.
이 책은 다 읽었어요!
요즘 뉴스를 보면... 정말 암울하잖아요?
사람에 대한 신뢰는 떨어지고 미래가 기대되기는커녕 걱정과 불안만 가득해지고요.
그 어떤 책도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아요.
심지어 소설이나 영화 등의 픽션도 '현실적이다''현실을 반영했다'는 건 곧 고통스럽고 절망적이고 비관적이라는 뜻이고요.
제가 요즘 절실히 찾고 있는 건 '희망'이었어요.
그래도 내가 현재를 살아갈 가치가 있고 내 아이가 계속 살 만한 세상을 꿈꾸고 싶어서요.
그런데 이 책에서 조금 희망이 보이네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절멸하게 만들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믿는 것이 우리를 만든다. 우리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고, 우리가 예측하는 일은 일어나게 된다.(40쪽)'면 다같이 선한 본성을 믿고 희망을 찾고 긍정적인 미래를 예측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책을 한 권 읽는다고 갑자기 생각이 180도 뒤집어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인간이 '악하다'고 믿게 만드는 사건들과 사람들, 증거들... 그것들을 제외한 더 많은 부분이 '선한' 채로 남아있다고 믿고 싶어요.
53쪽 인간의 선함을 옹호하는 것은 존재하는 권력에 대항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권력자들에게 인간 본성에 대한 희망적인 견해는 곧바로 위험이 된다. 파괴적이고 선동적이다. 이는 우리가 속박하고 통제하며 규제할 필요가 있는 이기적인 짐승이 아니라는 의미이며, 우리에게 다른 종류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동기가 부여된 직원이 있는 회사에는 관리자가 필요하지 않고, 참여하는 시민이 주도하는 민주주의에는 직업 정치인이 필요하지 않다.
108쪽 사람은 길들여진 유인원이다. 가장 친화적이고 성품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은 자식을 갖는 현상이 수만 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 종의 진화는 '가장 우호적인 자의 생존'에 근거를 두고 있다.
198쪽 나는 기후 변화에 대해 회의적이지 않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도전이며, 대처할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내가 회의적인 것은 붕괴라는 숙명론적 수사이다. 우리 인간이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라거나 더 나쁘게는 지구의 재앙이라는 인식이다. 나는 이런 인식이 '현실적'으로 널리 퍼질 때 의심을 품으며, 여기에 출구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회의적이 된다. 너무 많은 환경운동가들이 인류의 회복력을 과소평가한다. 나의 두려움은 그들의 냉소주의가 자기 충족적 예언, 즉 지구 기온이 변함없이 오르는 동안 우리를 절망으로 마비시키는 노시보가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249쪽 우리가 자신의 부패함을 그토록 믿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껍데기 이론이 순서를 바꾸면서 구없이 계속 되돌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편리함과 많은 관련이 있다고 의심한다. 이상하게도 우리 자신의 죄많은 본성을 믿는 것은 위로가 도니다. 그것은 일종의 사면을 제공한다. 만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쁘다면 참여와 저항은 노력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인류의 죄 많은 본성에 대한 믿음은 또한 악의 존재를 명확하게 설명해준다. 증오나 이기심에 직면했을 때 당신은 "아, 그건 그냥 인간의 본성이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선하다고 믿는다면 왜 악이 존재하는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이는 참여와 저항에 가치가 있음을 의미하며, 행동할 의무를 우리에게 부과한다.
304쪽 한 가지는 확실하다. 더 나은 세상은 더 많은 공감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공감은 우리로 하여금 덜 용서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우리가 피해자와 더 많이 동일시할수록 적에 대해 더 일반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소수에게 밝은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면 적의 관점은 보지 못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우리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332쪽 하지만 뻔뻔한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대담한 행동은 대중매체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현대사회에서 보상으로 돌아온다. 뉴스는 비정상적이고 터무니없는 것을 집중 조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세상에서 정상에 오르는 것은 가장 친절하고 공감력이 큰 사람이 아니라 그 반대인 사람이다.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가장 뻔뻔한 자가 살아남는다.
380쪽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부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방법이 문제가 되어야 한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보수적인 것도 진보적인 것도 아니며, 자본주의적이지도 공산주의적이지도 않다. 이것은 새로운 운동, 새로운 현실주의를 말한다. 스스로 하고 싶어서 무언가를 하는 사람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504쪽 사람들이 원래 친절하게 태어났다고 믿는 것은 감상적이거나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평화와 용서를 믿는 것은 용감하고 현실적이다.
508쪽 이 시점에서 내가 자기 계발 장르의 팬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야 하겠다. 내 개인적인 생각에 따르면 우리는 너무 많은 내적 성찰과 너무 적은 외적 성찰의 시대에 살고 있다. 더 나은 세상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와 함께 시작된다. 우리의 주요 임무는 다른 기관을 만드는 것이다.
#휴먼카인드 #HUMANKIND #뤼트허르브레흐만 #사피엔스 #유발하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