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경의 치유의 말들
박주경 지음 / 부크럼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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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뉴스 앵커라는 현직 때문에 오히려 글의 빛이 가려지는 게 아쉬운,

(그런데, 그러면서도 또 그 얘길 안 할 수는 없는 이 아이러니..-_-;;;)


박주경 작가님의 <치유의 말들>을 읽었어요.


전작인 <따뜻한 냉정>도 워낙 잘 읽어서 주저없이 다음 책도 읽어보았는데요.

<따뜻한 냉정>에 비해 차분해진 느낌이에요.


<따뜻한 냉정>의 유머 코드가 저랑 잘 맞아서 아주 웃기게도 읽었는데

이번 책은 '웃김'은 살짝 빼고 '조심스러움'이 더 가미되었어요.

두 책 모두 '감동'은 당연히 피자 도우처럼 깔려 있고요.


여기서 제가 말하는 '조심스러움'이란, 작가님의 자기 반성과 성찰, 그에 따른 겸손인 것 같아요.

언론인으로서 말과 글이 지닌 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작가로서 글과 책의 홍수 속에 더해지는 자신의 글이 가질 가치에 대해 고민한 결과,

조심스럽게 이 책이 나왔어요.


​책 표지의 저자명 표기도 '박주경 건네다'라고 되어 있는 게 예사로 보이지가 않더라고요.

그 위에 눈물 한 방울도요.




책이 나온 시기도 그렇잖아요.


작가님은 '모두가 아픈 해'라고 하셨는데,

작가님 인스타그램에서 그 말을 본 이후 계속 가슴에 남았어요.


​모두가 아픈 해.

모두가 아픈 해.


​정말 올해는....  그렇죠.

모두가 환자.


그런데 사실 저는 위로, 위안, 힐링... 이런 말 싫어해요.

아주 지긋지긋해요.

위로하고 위안을 주고 힐링이 된다는 책이 너무너무 많아서요.

아마 최근 몇 년 동안 인기 있었던 에세이의 광고를 모아보면 저 단어 없는 게 드물 거예요.


저는 좀 우습더라고요.

그렇게 상처 받은 사람이 많다면 그 상처는 누가 주었다는 건지.

왜 상처 받은 사람만 있는지.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분명 그 수만큼 상처를 준 사람도 있을 텐데, 

왜 내가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나.

사람들은 다들 내가 받은 상처만 중요하고 내가 준 상처는 생각도 않는 건가.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가득한 현실이 말이 되나.


그리고 위로와 위안을 준다는 수많은 책들.

실체와 알맹이는 없고 듣기 좋은 예쁜 말만 가득한, 포장지 예쁜 빈 깡통 같은 책들.

고작 저런 책으로 위로 받을 수 있는 정도의 상처라면 굳이 상처라고 할 것도 없지 않을까.


그런 책을 쓴 저자들.

대체 자기가 뭐라고 상처 받은 사람들을 위로한다고 저럴까.

타인을 위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가만히 들어주는 거라면서 왜 책을 '써서' 말을 할까.


....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결론적으로 박주경 작가님 책은 그렇지가 않아서 좋아해요.


뜬구름 잡는 책이 아니에요.

독자를 가르치려 들지도 않고요.


그냥 본인이 경험한 이야기를 하시고, 자신과 지인의 이야기를 하세요.

그런데 그걸 읽다보면 자꾸 눈물이 나네요???


카페에서 이 책을 혼자 읽는데 자꾸 눈물이 나서 어찌나 민망했던지. ^^;;;


결정적으로 저는 이 책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건 제가 평소 늘 마음에 품고 다니는 말을 이 책에서도 작가님이 해주셔서요.


그 말은 영화 <인터스텔라>의 포스터 문구이기도 한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랑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에요.

희망적이지 않은 상황일 땐 첫 번째 문장을,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땐 두 번째 문장을 되새기곤 하는데

그 말이 책의 띠지에도, 본문에도, 맺음말에도 나오니 그때마다 따뜻한 용기를 얻었어요.


그리고 몇 번이나 '지금' '여기'를 강조하시던 글도요.


​요즘 제가 읽은 여러 책에서 비슷한 걸 느꼈거든요. 카뮈의 <페스트>에서,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에서. 결국 이 세상을 움직이는 건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다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거.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지금' '여기'에서 진심을 다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박주경 작가님도 '니 생각이 옳다' 해주시는 것 같았어요.


떠도는 마음을 붙잡을 수 없었던 2020년.

한해가 저물어가는 이때, 이 책을 꼭 읽어보기시를 모두에게 추천해요.




#치유에세이 #박주경의치유의말들 #치유의말들 #에세이추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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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양장)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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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창비와 카카오페이지가 함께 주최한 영어덜트 장르문학상에서 첫 대상을 받은 

박소영 작가님의 <스노볼>을 가제본으로 먼저 읽어보았어요.


배경은 평균 기온 영하 41도의 미래 사회.

영화 '설국 열차'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예술가의 상상력이 어느 정도는 미래를 예견한다고 생각하는데

두 작품 모두 미래를 냉동 지구로 그리고 있는 걸 보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현대 사회의 종말은 정말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로 인해 다가오나 봐요.


설국 열차에서 신분의 차이는 열차의 등급으로 나뉘었다면

소설 <스노볼>에서는 '스노볼'과 그 바깥으로 나뉘어요.


선택받은 몇 명만이 스노볼 안에 살 수 있는데요.

그 안에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사회를 이렇게 만든 '이본 미디어 그룹' 일가 사람들과 그 안에서 자신의 모든 삶을 중계 해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중계를 책임지는 방송 관계자들이에요.


 재미있는 건 스노볼 밖에 사는 사람들이 스노볼 안에 사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오히려 그들을 동경하고, 자신도 그 안에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자격을 얻기를 갈망해요.


설정 하나하나가 굉장히 현실 비판적이더라고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도 사실은 보이지 않는 사회적 계급의 틀에 묶여 있는데,

노력하면 나도 상위 계급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갖고, 기득권들 손에 놀아나고 있잖아요.


<스노볼>에서는 그렇게 사람들을 장악하고 조종하는 시스템이 '방송'이라는 것도 재미있어요.

소설 속 차설 디렉터처럼 방송은 조작이 가능하고, 그 조작을 위해 방송의 주인공이나 타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건 그들에겐 쉬운 일이죠.

방송은 곧 언론을 뜻하는 것일 테고요.


또 스노볼 안에서 바깥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인기와 편안함을 누리는 액터들은 자신의 삶을 모두에게 보여줘야 해요. 나의 모든 것이 까발려지는 삶에는 사생활 보호는 물론이고 인권도 없죠. 영화 '트루먼 쇼'와 비슷한데, 트루먼 쇼와 다른 건 주인공 스스로도 나의 생활이 사람들에게 방송된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배경 설정도 흥미로운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정말 더더욱 흥미진진!!!!


"해리가 어젯밤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초반부에 나오는 이 대사도 충격이었는데,

그 이후 휘몰아치는 반전과 반전에 정말 결말이 궁금해서,

제가 전에 읽었던 영어덜트 소설에 비해 분량이 상당한데도, 한번 책을 읽기 시작하자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어요.


 (후반부까지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에 비해 성급하게 끝맺음을 한다는 느낌이 아주 약간 들긴 하지만)


진짜 자신의 삶을 살길 바라는 주인공(들)의 싸움을 응원하며 읽었지요.


 영어덜트 소설에 이렇게 많은 의미를 심어 놓을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해요.


그동안 창비에서 선보인 (제가 읽어 본) 영어덜트 소설인 <아몬드>, <페인트>, <버드 스트라이크>, <위저드 베이커리>, <어느 날 난민> 다 그랬어요.


사실 저는 '영어덜트'라는 이름이 독자를 제한하는 것 같아요.

좋은 소설을 읽는 데에 굳이 '영어덜트'일 필요 있나요.ㅋ

영 어덜트든 올드 어덜트든, 어덜트가 아니든 모두에게 추천합니다.



#스노볼 #창비사전서평단 #영어덜트소설 #장르소설 #카카오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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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페스트 (초호화 스카이버 금장 에디션) - 1947년 오리지널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알베르 카뮈 지음, 변광배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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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읽었어요.

이 책은 즐겨보던 TV 프로그램인 <책 읽어드립니다>에서 설민석 선생님의 강연으로 내용은 알고 있었는데, 책으로 읽으니 줄거리를 듣는 거랑은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외국 문학을 읽는 거에 좀 어려움을 느끼는데 이 책은 아주 잘 읽혔어요.


정말 놀랍게도, 요즘 시기에도 정확히 들어맞는 책이잖아요.

코로나 발생도 아무도 몰랐지만, 그게 이렇게 오래 갈 거라는 것도 아무도 몰랐고요.

예상밖의 오랜 펜데믹 시기를 겪으면서.. 그 느낌을... 저는 '임시 거주 하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표현했어요.

뭔가 딱 이거다! 할 수 없이 내일을 계획할 수 없이 그냥저냥 대충 사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영화 <아비정전>에서 아비가 말하는 '발 없는 새'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 책에서 너무 딱 맞는 단어를 봤지 뭐예요.


"그래서 그들은 심연과 절정의 중간에서 좌초되어, 산다기보다는 부유(浮遊)했다. 방향 없는 날들과 쓸데없는 추억에 내던져져, 고통의 흙 속에 뿌리를 내리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힘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방황하는 망령들이었다.(95~96쪽)"


 원어로도 '부유'라는 뜻의 단어를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문장을 읽으니 어쩜 이렇게 딱 지금 우리의 상태를 대변한 것 같던지. '방향 없는 날들과 쓸데없는 추억'이라는 표현이 정말 너무 적절해서... 무서웠어요.


이제 지금 쓰인 소설도 아닌데.....


흔히 '세계 명작'이라고 부는 작품들이 시대를 초월해서 읽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구나!라는 걸 처음 느꼈어요. 어느 특정 시기, 특정 사건에 국한된 게 아니라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심리나 관계의 모습, 인간의 행동이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는 거.


그래서 언제 읽어도 지금의 나 또는 현재 상황을 대입 시켜 생각해볼 수 있다는 거요.


처음 페스트가 퍼지기 시작했을 때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결국 그것을 인정하는 전보의 문구에도 소름이 쫙~!


"페스트 사태를 공표하라. 도시를 폐쇄하라." (85쪽)


우린 아직 끝나지 않은 전염병 사태에 살고 있죠.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앞으로의 변화도 조금 가늠해보았는데요. 


 결국 끝나겠죠. 언젠가 끝은 날 거예요. 그럼 사람들은 다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생활할 테고요.


"그들은 자명한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살마이 파리처럼 죽어 나가던 어처구니없는 세상이, 그 분명한 야만성이, 페스트의 치밀한 광기와 소름 끼치는 자유(감금)가, 아연실색하긴 했어도 죽을 정도는 아니었던 화장터의 냄새가, 지금 여기 어디에 있느냐고 태연하게 반박하고 있었다.(376쪽)"


그래서 더욱 무서워요.


"페스트 간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고 수십 년간 가구나 옷 속에서 잠들어 있을 수 있어서 방, 지하실, 짐 가방 ,손수건, 폐지 속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가 사람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쥐들을 깨워 어느 행복한 도시로 보낼 날이 분명 오리라는 사실을 말이다.(391쪽)"


카뮈도 말하듯이, 페스트는 분명 어떤 모습으로든 다시 우리를 찾아올 거라서요. 그게 꼭 전염병이 아니더라도 전쟁으로, 종교로, 극단적 애국주의로, 환경 파괴로, 이기주의로, 차별로....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할 거예요.


그때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의사 리외, 그랑, 타루, 기자 랑베르, 신부 파늘루......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카뮈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요.



+


 책의 내용도 물론 좋았지만, 책 표지가 진짜!

요즘은 책도 왜 이리 예쁘게 나오는지요.


더스토리의 초판본 시리즈를 원래도 좋아하긴 했지만(이미 여러 권 소장하고 있어요.ㅋ)

이 책은 정말 그 고급스러움이 남달라서 책을 손에 들고 있는 내내 기분이 좋았어요.


책장에 꽂아두기만 해도 정말 멋있을 것 같지요?

선물 받은 맥주와도 깔맞춤이 제대로라 절로 술을 부르는 책이었네요. ㅎㅎㅎㅎㅎ




# 프랑스소설 # 페스트 #페스트초판본 #더스토리초판본시리즈 #더스토리 #알베르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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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 N번방 추적기와 우리의 이야기
추적단 불꽃 지음 / 이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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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가장 충격적인 뉴스는 아무래도 N번방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해본 적 없거니와 

N번방에 가입되어 있다는 사람의 숫자에 경악을 금치 못했고,

사실 아직도 그 어마어마한 숫자가 감이 오진 않아요. 


서울에서 운행중인 택시 숫자와 비슷하다는 얘길 들은 것 같아요.

그러니 우리가 밖에 나가면 흔하게 택시를 볼 수 있는 것만큼 우리 주위에도 N번방에 가입한 남자가 있을 거라고요.

누군지 알 수 없고 전혀 아닌 것 같아도.


최근 검찰이 N번방 박사방 운영자였던 문형욱과 조주빈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죠. 실제 선고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들의 범죄 행위가 알려졌다는 것, 검거되었다는 것도 성범죄에 대한 인식과 처벌이 약한 우리나라에서는 큰 성과가 아닐 수 없고, 이들의 범죄가 매우 악질이고 위중하다는 전국민적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온라인 성범죄에 대한 법이 만들어졌다는 것도 놀라울 만한 성과예요.


그리고 이 모든 성과가 두 '학생'의 잠입 취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또한 너무 놀라웠어요.


추적단 불꽃.


이들이 아니었으면, 우리도 알지 못하는 그 끔찍한 범죄는 지금까지도 계속되었을 거예요.

(지금도 보이지 않은 또 다른 어딘가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겠지만.ㅠㅜ)


이 책 추적단 불꽃이 어떻게 N번방에 들어가게 됐는지 어떻게 그들을 신고하게 됐는지, 그후 어떻게 되고 있는지에 대한 기록이에요.


리뷰를 통해 조금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저는 이 사건의 최초 보도자와 신고자가 N번방을 잠입 취재한 대학생 두 명이라는 뉴스를 보고 그 두 대학생이 '남자'일 거라 생각했어요. 아니, 굳이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렇게 여겼던 거 같아요. 추적단 불꽃이 여학생들이라는 걸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어떻게 그렇게 대단한 일을 했지? 무섭지 않았을까? 정말 힘들었겠다. 남자라고 생각해서 미안하다. 이런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바로, '그래, 여자니까 신고했겠지.'라고 수긍이 되었고 그 수긍에 뒤따라 슬픔과 분노가 이어졌어요. N번방에 가입한 그 수많은 남자들은 그걸 보고도 아무도 신고할 생각을 안 했단 말인가? 단 한 명도???? 설령 호기심에 가입했다 하더라도 어떤 일이 자행되고 있는지를 목격했는데 아무도 신고를 안 하고 즐겼단 말이지. 그 많은 남자들이!!!!!


그 충격을 어찌해야 할까요. 이 현실을 어찌해야 할까요...ㅠㅜ


그래서 더 추적단 불꽃의 용기에 감사하게 됐어요.


책을 읽어보니, 이들도 당연히 무섭고 힘들고 괴로웠다고 해요. 어떻게 멀쩡하겠어요. 끔찍한 일을 당하고 있는 어린아이들을 보는 것이 어떻게 괜찮겠어요.

그 괴로움을 견디고, 포기하지 않고 사건을 밝혀주어서 정말 고마워요.


추적단 불꽃 덕분에 우리 사회가 그래도 조금은, 아주 조금일지 몰라도 조금은 나아졌고 더 많이 나아질 가능성이 생겼으니까요.


남편에게 이 책을 권하니 읽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제가 정치 얘기 듣기 싫어하는 것처럼 이런 얘길 들을수록 더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고요.


저도 처음엔 읽고 싶지 않았어요. 책을 통해 알게될 실상을 접하고 싶지 않아서요. 모르고 사는 게 편하니까..ㅠㅜ 하지만 추적단 불꽃의 용기에 미약하게나마 힘을 보태고 싶어서 책을 손에 들었습니다. 알아야 공감하고 공감해야 지지하고 지지해야 함께하게 될 테니까요.


아주 다행히도 책에서 범죄의 구체적 행태는 많이 묘사되지 않았어요. 그랬으면 저는 책 읽기가 너무 힘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추적단 불꽃은 역시나 사려깊은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됐죠. 그런 자극적인 묘사 또한 2차 가해가 될 거라는 걸 알았을 거예요. 피해자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사건 수사 과정에서도 보여졌어요. 


그런 배려와 공감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 추적단 불꽃이 될 수 있었겠죠. N번방에서 사건을 목격하면서도 낄낄대며 즐기는 그들은 공감 능력이 없는 인간들이기에 범죄자이고요. (그걸 보는 사람 역시 공범입니다.)


책을 읽고 말도 안 되는 현실을 알게 되었지만 절망에 빠지진 않았어요. 만족할 만큼은 아니지만 분명 조금 나아지고 있으니까요. 


몇 만 명의 범죄자들이 있지만 그들을 신고하고 바로잡고자 하는 두 명이 있고, 그 두 명은 불꽃이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에 불을 지피니까요.


이 용기있고 대견한 두 명에게, 조금 더 오래 산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이 나라에 같이 사는 여성으로서 딸아이의 엄마로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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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유전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강화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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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아르테의 작은책 시리즈 여덟 번째 소설은 강화길 작가님의 <다정한 유전>이에요.

강화길 작가님 소설이 제게는 좀 어렵긴 한데... 그래도 읽을 수밖에 없게 되는 끌림이 있어요.


<다정한 유전>도  길지 않은 소설인데 몇 번이나 앞쪽을 다시 뒤적거렸는지 몰라요.ㅋ


지금은 지도에도 없는 해인 마을, 조용하고 작은 이 시골 마을을 벗어나는 것은 아이들의 소망.

마을을 벗어나려면 대학을 가야 하고, 대학에 가는 데 유리한 백일장 출전권을 두고 문제가 생겼어요. 백일장에 참가할 수 있는 한 명이 되기 위해 모두 글을 써서 보여주고 제일 잘한 사람이 나가기로 했다는 게 큰 틀이고,

아이들이 쓴 글이 이어져요.


​그런데 설명이 친절하지 않아서, 이게 누가 쓴 글인지, 이게 글인지 실제 사건인지 헷갈리더라고요.


'나'가 누구지? 작가 김지우는 누구지? 김지우의 친구는 선아. 그럼 김지우와 이선아가 민영이랑 진영인가???? 하다보면 또 뒤에는 이선아가 작가라고 나오고, 병원에서 사라진 환자가 김지우라고 나오고....


계속 앞뒤를 뒤적뒤적하면서 읽었는데.


소설 속에서 아이들이 쓴 여러 편의 이야기, 그러니까 액자식 구성처럼 들어있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의 주인공이 각각 다른 사람이면서 같은 이름을 사용한 것처럼 보였어요.


​그리고 이 경계 없는 모호함이 오히려 더 소설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어요.


​누가 누군지 모르는 이 이야기들은 곧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우리의 이야기일 수도 있으니까요.


"나는 아무도 아닙니다."(69쪽)


​내가 누구라는 것을 명확히 하면 할수록, 여성이 정확하고 크게 목소리를 내면 낼수록 공격받아야 했던 사회에서 여성은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이 생존 전략이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살아 남는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잖아요.


​"서로를 돌보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고통은 함께 경험한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17쪽)


​각자가 쓴 글에서 함께 경험하는 고통이 묻어나오니, 나는 지우이고 지우는 선아이고 선아는 민영이고 민영은 진영이고.... 우리의 삶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는 거겠죠.


그 고통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의미심장해요.


"그녀는 그렇게 매일 글을 썼다. 일기는 그녀가 많은 것을 견디게 한 수단이었다. 그녀는 이 방법, 그러니까 바닥으로 완전히 가라앉지 않을 수 있게 이 방법을 알려준 그 친구, 김지우에게 감사했다."(32쪽)


​누군가는 쓰고 누군가는 읽죠.


​"이미 너희와 나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너의 글을 읽는 건... 모르겠어. 그 세계들이 만나는 일 같다고 느껴졌어. 어떤 질문을 받은 것 같았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중략... 그렇다면, 그냥 내 방식대로 말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 ...중략... 하지만 이게 내 세계에서 말하는 방식이야."(70~71쪽)


남편의 사업 때문에 맘에 들지 않는 대학 동기 모임에 나가야 하는 여자도, 남자친구에게 매 맞고 사는 여자도, 일부다처제의 마지막 후손으로 남은 옹주도, 생활력이 전혀 없는 무능한 남편 때문에 혼자 아이 셋을 먹여 살려야 했던 여자도 분명 존재했고 존재할 터이기에, '아무도 아'니면서 그 모두이기도 한 우리는 쓰고 읽어야 해요. 그게 우리가 우리 세계에서 말하는 방식이니까요.


"그해, 단 한 명만이 마을을 떠났다." (10쪽, 130쪽)


마을을 떠난 단 한 명은 누구일까요.


"처음은 단 한 명이었다. 그 애가 떠난 후, 뒤이어 많은 아이가 하나둘 마을을 떠났다. 꿈꿀 수 없는 일들은 생각보다 쉽게 벌어진다.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다."(147쪽)


그 한 명은 힘들게 떠났지만, 최초의 어려움이 있었다면 그 다음은 점점 쉬워질 거예요.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내어 말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쓰고, 읽는다.


작가님은 그 방법을 다정하게 전해주고 싶으셨는지 모르겠어요.

<다정한 유전>으로.


​아르테의 작은책 시리즈는 종이책뿐 아니라 소리책으로도 나와요.

저도 조만간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다정한유전 #강화길 #소설 #강화길소설 #아르테작은책 #책스타그램 #서평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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