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의 포석 - 제124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호리에 도시유키 지음, 신은주.홍순애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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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호리에 도시유키의 소설 <곰의 포석>(문학동네)은 에세이풍이 가미된 단편 세 편을 모아놓은 소설집이다. 표제작인 <곰의 포석>은 ‘파리를 쫓기 위해 포석을 집어던진 곰’의 우화를 통해 친구와의 우정을 성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쓸데없는 호의나 간섭을 뜻하는 ‘곰의 포석’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때로는 ‘선’한 행위로 끝나지 않고 상처를 안겨 줄 수도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어쩌면 “말할 필요가 없는 것들을 ‘왠지 모르게’ 말하여 상처를 들어나게 하는” 친구는 “무관심하고 냉담한 타인보다 위험한 존재” 이겠지만, 그 허울로 인해 ‘우정’이라는 인과관계는 더욱 치밀하게 형성 될지도 모를 일이다.

호리에의 소설이 하얀 백사장에 앉아 잔잔한 파도를 바라보는 것처럼 쉽게 읽혀지는 까닭은 프랑스에서 경험한 작가의 개인적 체험이 고스란히 작품에 녹아들어 담백한 맛을 우려냈기 때문이다.

소설에 실린 <모래장수가 지나간다>를 통해 지난날의 ‘환희’를 회상해보는 즐거움이나 <성터에서>처럼 ‘공포’라는 가장 순수하고도 말초적인 자극을 간접적으로 느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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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 광수씨 광수놈 - 광수생각 그 네 번째 이야기
박광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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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온ㆍ오프라인을 오르내리며 ‘광수 생각’이란 신드롬을 일으켰던 작가 박광수씨가 오랜만에 <광수 광수씨 광수놈>(랜덤하우스중앙)이란 제목의 네 번째 ‘광수 생각’을 펴냈다.

이번 작품은 한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작가가 겪어야했던 고뇌와 상처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 그 울림이 더욱 크다. “내 냄비의 물이 빨리 끓는다고 좋아 할 것 없다. 작은 냄비의 물이 빨리 끓는 법이다. 내가 그 작은 냄비였다. 그래서 빨리 끓었을 뿐이었다.” 치솟던 인기만큼이나 빨리 식어버린 독자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그가 느껴야했던 좌절감은 컸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으로 인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법이다.

“난 이제 모두가 음습하다고 말하는 찬장 속에서 인생을 다시 배운다.”
어쩌면 <광수 생각>에 등장하는 ‘신뽀리’의 캐릭터가 외롭다고 느껴지는 것은 작가의 심경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뽀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사랑하는 이’(독자)가 떠나버린 텅 빈 공간들이거나,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못내 아쉬워하는 그리움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회전을 하는 선풍기 그림 밑으로 “늦은 여름. 선풍기마저 사는게 재미없다고, 그녀를 못잊겠다고 고개를 젓는다.”라는 텍스트를 보면서, 어쩌면 신뽀리를 통해 작가 박광수는 자신의 그리움을 표현하기보다는 그리움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중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의 만화가 단지 만화로써만 읽혀지지 않는 까닭은 그가 짊어졌던 삶의 무게가 혼자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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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직한 도쿄가 좋다
서환 지음 / 좋은책만들기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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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서환에게 ‘진정한 스무 살의 자유’를 가져다준, ‘제1일의 도시’ 이야기 <나는 솔직한 도쿄가 좋다>(좋은책만들기)는 일본의 심장부 ‘도쿄’를 무대로 한다.

서환은 일본의 다른 도시와는 차별되는 도쿄만의 문화와 그 속에서 발산되는 젊은이들의 매력을 생기발랄한 문체로 그려냈다. 웬만한 B급 연예인보다도 화려한 삶을 사는 AV모델, 10대 폭력 서클의 헤드, 일본의 TOP 스타들 등, 도쿄 문화의 한 페이지를 장악한 젊은이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이 책은 “도쿄문화 쾌락 에세이”란 문구를 전면에 앞세운 만큼 <국화와 칼>이나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보았던 깊이 있는 ‘문화론’은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의사 전달’ 보다는 ‘의사 파악’에 중점을 두는 일본인의 내밀한 다중성이나 축소 지향으로 특정되어지는 일본의 치밀한 경제를 논하기 보다는, 20대 작가의 호기심이 보여주는 대도시 도쿄의 활발한 모습을 읽는 재미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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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人間 - 젊은 세대를 위한 20세기 위인 열전
요제프 크바트플리크 지음, 김지영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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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선’과 ‘절대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복잡한 조합의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의 구성원이 인정하는 보편적 가치를 지킬 수 있다면 그 사회는 ‘평등’에 조금 더 다가선 ‘선진’일 것이다. <세기의 인간>(생각의나무)에 등장하는 20명의 위인들 역시 ‘절대선’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평등의 원칙이 모든 이들에게 공정히 분배되기를 갈망했던 이들이었다. 전쟁터에서 적군과 아군 없이 모든 병든 자들을 치료해준 적십자운동의 아버지 앙리뒤앙이나 이웃 사랑과 노동자 복지에 힘쓴 마리 유차크, 그리고 흑인들의 자유를 위해 위대한 행진을 한 마틴 루터 킹의 생은 인습과 전통, 인종 차별과 폭정이라는 거대한 해일에 맞선 ‘의지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평등의 원칙이 ‘모든 이들은 같아야 한다’는 획일성으로 치닫는 것은 주의해야한다.

“모든 사람이 다 같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만이 차이를 싫어하고, 생각하고 들여다보고 이해할 필요가 있는 다양성을 불편해 합니다.”
야누스 코르차크의 말처럼 평등이란 사람들이 지닌 다양성을 인정할 때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스무 명의 위인들이 들려주는 평화와 관용 그리고 평등의 정신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모든 파시즘에 좋은 치료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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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 장정일 단상
장정일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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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묘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그리파의 각상을 먼저 그리게 된다. 아그리파가 석고상의 기본인 까닭은 데생의 기본인 양감과 선 처리에 있어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암의 질감을 명확하게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석고상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그 이미지가 달라진다. 상을 정면 혹은 측면에 놓고 바라보면 빛의 기울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기본’이라는 딱지를 땐 예비 화가들의 아그리파를 보면 제자리에 들어 찬 충실한 선들의 노련함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장정일 단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장정일의 <생각>(행복한 책읽기)을 읽다보면 작가의 시각이 석고상의 정면도 측면도 아닌, 아그리파의 정수리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완벽한 형태와 구도로 이루어진 완성작을 바라보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겠지만, 어눌한 말투처럼 투박한 그의 글을 통해 내가 가진 ‘생각의 관점’을 잠시 바꿔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원고 청탁이라는 강제적 글쓰기가 아니면 자발적 글쓰기가 어려운 작가는 아직 프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까닭에 “원고 청탁을 거부하고 자발적인 투고에 의한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의지이지만, 청탁을 받지 않고 투고를 원칙으로 글을 쓰는 작가가 전무하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 그의 투지는 이단적으로까지 비춰 지기도 한다.

10대 매매춘 범행자의 신상 공개에 대해, 공무원 비리나 음주 운전자 또한 같은 법으로 다스려야한다는 그의 생각에서도 역시 ‘장정일 다운 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제목만큼이나 간결한 단락으로 이루어진 <생각>은 가벼운 산책로를 걷듯 그가 그리는 생각의 단상과 영화에 대한 짧은 소견, 그리고 삼국지에 빗대 현실을 이야기한 글들로 구성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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