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 장정일 단상
장정일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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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묘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그리파의 각상을 먼저 그리게 된다. 아그리파가 석고상의 기본인 까닭은 데생의 기본인 양감과 선 처리에 있어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암의 질감을 명확하게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석고상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그 이미지가 달라진다. 상을 정면 혹은 측면에 놓고 바라보면 빛의 기울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기본’이라는 딱지를 땐 예비 화가들의 아그리파를 보면 제자리에 들어 찬 충실한 선들의 노련함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장정일 단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장정일의 <생각>(행복한 책읽기)을 읽다보면 작가의 시각이 석고상의 정면도 측면도 아닌, 아그리파의 정수리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완벽한 형태와 구도로 이루어진 완성작을 바라보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겠지만, 어눌한 말투처럼 투박한 그의 글을 통해 내가 가진 ‘생각의 관점’을 잠시 바꿔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원고 청탁이라는 강제적 글쓰기가 아니면 자발적 글쓰기가 어려운 작가는 아직 프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까닭에 “원고 청탁을 거부하고 자발적인 투고에 의한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의지이지만, 청탁을 받지 않고 투고를 원칙으로 글을 쓰는 작가가 전무하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 그의 투지는 이단적으로까지 비춰 지기도 한다.

10대 매매춘 범행자의 신상 공개에 대해, 공무원 비리나 음주 운전자 또한 같은 법으로 다스려야한다는 그의 생각에서도 역시 ‘장정일 다운 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제목만큼이나 간결한 단락으로 이루어진 <생각>은 가벼운 산책로를 걷듯 그가 그리는 생각의 단상과 영화에 대한 짧은 소견, 그리고 삼국지에 빗대 현실을 이야기한 글들로 구성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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