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끝내 서로를 놓지 않았다
박정헌 지음 / 열림원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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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위대함은 정상을 밟은 자들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상에 서는 짧은 순간을 위해 고도의 압력과 가빠지는 호흡을 참아내고 손발이 어는 추위를 견디며 7밀리미터의 자일에 그들은 몸을 싣는 것이다. 수천 킬로미터의 낭떠러지를 외면 할 수 있는 것은 알피니스트의 의지와 동지애가 있어 가능한 것이다.

<끈 - 우리는 끝내 서로를 놓지 않았다>(열린원)에서 보여주는 산과의 사투는 생명을 담보로 인간의 의지를 실험하는 산 사나이들이 주인공이다. 6,440킬로미터의 고지와 깎아지른 수직의 벽으로 유명한 촐라체는 ‘타와체’ 북벽과 그 남쪽의 ‘캉테카’ 북벽과 더불어 쿰부 히말라야를 대표하는 어려운 벽으로 통한다.

그 촐라체를 하산하던 중 강식은 크레바스(빙하나 설계에 균열이 생겨 갈라진 틈새)에 빠진다. 강식에게 단 하나의 희망은 7밀리미터의 가느다란 자일 뿐 이다. 더구나 그 줄을 지탱하는 것은 자신보다도 작은 동료의 몸이다. 줄 하나에 연결된 생명은 자칫 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

 갈비뼈가 부러진 상태에서 벽을 잡고 서있는 정헌에게 90킬로그램의 하중은 너무 버겁다. 자일이 흔들릴 때마다 그의 몸은 마지막 수분까지 배출되는 느낌이다. 실제로 동료를 살리기 위해 또는 자신의 목숨만이라도 건지기 위해 자일을 끊었던 알피니스트들이 많음을 안다. 그 역시도 고통에 겨워 잠시나마 자일을 끊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인다.

“함께 등반을 간다는 건 이미 서로의 생명을 나누기로 결심하는 것과 같다. 천길 낭떠러지 빙벽에서 자일로 서로의 몸을 연결하여 자일 파티가 될 때 두 사람의 생명은 하나가 된다.”


여덟 개의 손가락을 동상으로 잘라내고, 다시는 산에 오르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세워도 결국 산악인은 산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본다. 산은 그들의 삶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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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와 무늬
최영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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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이라는 긴 시간을 다듬어 만든 최영미의 소설 <흉터와 무늬>(렌덤하우스중앙)는 마치 엽서 소설을 엮어 만든 듯 137개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으로 시인의 되었던 그녀가 11년 만에 <흉터와 무늬>로 소설가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마흔이 넘은 여자의 얼굴은 자잘한 손톱자국들로 얼룩져 있다. 그 거울 속 상처를 통해 그녀는 잊었던 시간을 떠올린다. 삶의 무늬가 되어버린 흉터는 자신이 잊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 곱게 미화되었던 아버지의 군 퇴역 내용과 심장질환으로 고통 받는 언니를 괴롭히던 사람이 바로 ‘나’임을 그 흉터는 용케도 기억해내고 있다.

어머니에게 “아니 이 여자가”라는 모진 말을 내뱉었던 고등학교 시절과 16살에 수술을 하기위해 고아로 위장해 미국으로 떠났던 언니의 부고 소식은 얼굴의 주름처럼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 하지만 개인의 상처와 가족의 아픔이 묘하게 들어맞았을 때 느끼는 가족애를 통해 ‘나’는 더 이상 외로운 존재가 아니다.

1960년대와 7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추억은 아픔을 동반 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아픔이 시대의 고통과 맞물려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흉터로 만들어진 가족사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은 얼룩처럼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얼룩이 짙을수록, 추억할 삶이 모질수록 가족애는 새록새록 돋아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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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근대미술 뒷이야기 - 한국 근대미술사학의 개척자 이구열의 화단 비화
이구열 지음 / 돌베개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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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로 처음 고종의 초상을 그린 이탈리아인 새비지 랜도어는 서울에 머무르는 1891년 1년 동안 여러 계층의 조선 사람과 풍경을 그렸다. 동양과는 다른 서양의 사실주의 기법과 유화라는 색체의 향연은 조선인들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로부터 한참 후인 1906년 서울 대안동에서 서화가 판매됐으며 1년뒤인 1월에는 서화판매와 서화 학원을 겸한 ‘교육서화관’이 발족됐다.
급기야 대한제국의 종말이 급박해지던1909년에는 [대한 일보] 1면 중앙에 시사만화가 연제됨으로써 서화는 서민들의 생활에 자리를 잡아갔다.

당시 이도영이 그린 만화의 주제나 내용은 친일파 고발이나 규탄, 항일 구국 정신 고취, 계몽 등을 날카롭게 풍자함으로써 시사성이라는 개념을 확장했다.

<우리 근대미술 뒷이야기>(돌베개)는 근대사 미술사의 이면과 비화들을 역사적 사건들과 연관지어 소개하고 있다. 근대 미술에 투신을 했던 여러 예술인들의 업적과 더불어 그 이면에서 기생했던 검은 커넥션의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는다.

권력자와 결탁해 1급 화가의 미술 작품 5점을 밀반출 했던 이영개의 파렴치한 행각이 그 한 예다.
하지만 33인 민족 대표였던 오세창과 최린, 3.1운동에 가담했던 나혜석, 도상봉 등 서화협회의 회원들이 보여준 독립을 위한 옥고는 좋은 귀감으로 남는다.

그 밖에 이 책은 양풍 조각의 선구자 김복진의 빛과 오욕, 구미 유학의 첫 양화가 부부 임용련․백남순의 축복과 비운 등 지식과 화단의 비화를 시대적으로 잘 정리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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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 - 박노자, 허동현의 지상격론
박노자, 허동현 지음 / 푸른역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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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만에 돌아온 열강 쟁패의 시대에’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하는 박노자, 허동현의 근현대의 국제관계 이해에 대한 역사적 논쟁을 모은 <열강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기>(푸른역사)는 한마디로 국제주위적 진보주의자와 민족주의적 시민주의자의 논쟁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그리고 일본이라는 한반도 주변-4강 외세와의 근대적 만남을 다각적 시각에서 조망해 본 이 책은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와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내비치기도 한다.


두 학자의 미세한 대립은 박노자씨가 미국에 대한 관점을 “개화기의 지식층이 미국을 일종의 유토피아로 보아 극도의 친밀성을 띄거나 숭미적이었다.”고 보는 반면 허동현씨는 “19세기 말 조선의 일부 지식인들은 객관적으로 미국의 다중성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라고 반론하는 식이다.


한 가지를 더 예로 들자면 역사적 논점이 많은 일본에 대한 견해는 그 입장 차이를 현저하게 드러낸다.
“우리를 괴롭힌 적대적 타자로 각인되어 다른 ‘야수들’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한 편이다.”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국 시회에 남긴 유산은 전통적인 신분관념을 깨뜨리고 우리 전체를 국민 또는 단일민족으로 인식하는 근대적 국가로 만들게 했다.

일본은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침략자인 동시에 ‘근대의 교사’였다.”는 박노자씨의 견해와는 달리 허동현씨는 “한국의 근대화 작업의 시작은 이미 개화기였다. 그리고 일본의 근대화 모방이 아닌 자발적인 노력이 있었고 18세기부터 전근개화적인 신분의 장벽이 해소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 한 예다.”라고 말하고 있다.

두 학자의 진지하고도 대립된 토론을 통해 본 근대 100년의 역사 되짚어 보기는 우리나라의 현재 와 미래에 대한 국제 관계 정립에 도움이 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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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바다로 간 아침
이치카와 다쿠지 지음, 홍성민 옮김 / 현문미디어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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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요구하는 아이에게 어른의 잣대는 걸림돌이 될 때가 있다. 부모의 바램이 아무리 올바른 방향으로 흐른다 해도 아이의 사고가 어른들의 시선보다 더욱 생동감 있게 조율되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들이 바다로 간 아침>(현문미디어) 에 나오는 가족의 모습은 어른의 사고와 아이의 시선이 잘 교차된 가족 소설이다.

어릴 때부터 허약했던 히로미는 아빠의 권유로 수영을 배우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갈비뼈 부근 겨드랑이에 길쭉한 상처가 생기면서부터 아이는 특별한 존재가 된다.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염려와는 달리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스스로 항해를 시작한다.

‘바다의 아이’라는 다소 황당한 소재를 썼음에도 이 소설은 전혀 황당하지가 않다. 가족애를 전재로 그렸음에도 너무 지나친 진지함이나 눈물어린 감동은 없다. 다만 이 소설을 읽고나서 느끼는 것은 가족이라는 모성체와 아이들이라는 소중한 선물에 대한 감사뿐이다.

독특한 소재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은 단숨에 263쪽의 두터운 내용을 독파하게 만든다.

2004년 한해 <지금, 만나러 갑니다>로 1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던 이치가와 다쿠치의 숨은 힘은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환상적으로 변화시키는데 있다. 하지만 그 환상은 몽안적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현실이라는 결계에 의해 그의 환타지는 신비적이면서도 일상적이라는 두 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든다.

아이들의 대화에서는 재치와 순수함이, 그리고 어른들의 대화에서는 이해와 관용이 물씬 풍겨나는 이 소설은 부모가 아이가 함께 읽을 만한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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