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쓰고 날렸어욤.. 흑흑. 그러니 짧게 다시 올리겠습니당.
성평등과 성역할에 대해선 이미 많은 분들이 언급하셨으므로 패쓰~하고,
전 아파트 광고 얘기나 해볼까 합니다.

아파트 TV광고는 모두 고급브랜드 일색이지요. 촌스럽게 삼성아파트 쌍용건설 뭐 이런 거 아니고, 래미안, 푸르지오, 꿈에그린, 에버빌, 롯데캐슬 등등 이 세계가 아닌 환상의 세계와 같은 느낌을 줍니다.
우리가 평창동과 성북동의 그 수백평씩 하는 산동네를 떠올릴 때처럼요.
광고카피를 나열해볼까요?
'남들에겐 꿈이지만 자이에겐 생활입니다' '당신의 이름이 됩니다(래미안)'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롯데 캐슬)' '호텔에 와있는 것 같아요. 파티가 어울리는 아파트(에버빌)'

그들이 사는 집은 전혀 일상의 공간이 아닙니다.
베란다엔 젖은 빨래도 없고, 으리으리한 주방엔 음식의 냄새도 흔적도 없지요.
차려져 있는 식탁위엔 와인과 샴페인, 커피와 빵, 과일이 전부입니다.
남자는 나비넥타이와 멋진 양복을 입고 세계각국의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하고(현진 에버빌),
여자는 살랑살랑 하늘하늘대는 쉬폰드레스와 원피스만 입고 살지요.(이건 대부분의 광고 모두)
김남주는 집에 놀러온 친구가 인테리어에 반하여 김남주 몰래 디카로 찍자,
알면서도 모른체 합니다. 속물근성이 확 드러나는 CF.

아파트=명예,위신 이란 공식이 만들어집니다.
공공재의 성격이 강한 주택이 그 사람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다뇨.
그렇게 부의 신화를 이어갈 수록 빈은 경멸, 조롱, 비하(김남주가 친구에게 그러는 것처럼)를 떠안게 됩니다.


왜, 레트로광고라고 하나요? 지난 과거를 환기시키는 CF. (광고쪽으론 무지해욤; 하핫;)

중년의 남녀가 한 빌딩에서 회전문에서 남잔 나가고 여잔 들어오는 그 짧은 찰나,
중년의 여자는 그 남자를 알아봅니다. 그리고 그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남자는 중형차를 타고 떠나지요. 그랜져요.
그랬더니 여자의 멘트 "참 많이 변한 당신, 멋지게 사셨군요." 더군요.

삼성 래미안도 그래요. 장서희가 나오는 요즘 광고인데요.
옛 애인을 아파트에서 흘낏 훔쳐봅니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과거를 회상하고요. 수줍게 미소짓습니다.
"인생의 클라이막스를 산다"는 멘트.
인생의 클라이막스를 살고, 멋지게 사셨다는 평을 받으려면 그 정도 차는 타주고, 그 정도 집은 살아줘야 한다는 거 아닙니까!
만약 상대가 그런 차와 집을 가지고 있지 못한 채 재회를 했다면 애틋하지 못했을 거란 말인지. -.-
과거의 기억까지 현재의 상태에 따라 판가름 될 수 있단 거 아닙니까.
광고는 시대의 얼굴이기도 하고, 시대의 욕망을 창조해내는데, 물질적으로 치우친 비뚤어진 판단기준이라니.
사람을 평가할 때, 집과 차가 가장 큰 평가잣대란 거더군요.
현실의 공간을 환상적 공간으로 미화하고, 브랜드 네임=위신이라니.

기말레포트일 터인데, 28일까지 아녔습니까? 프흐흐 =3=3=3
미력이나마 도움되셨음 좋겠네욤.
아래는, 제가 3월달에 월드컵 관련광고에 대해 '쪽글' 썼던 건데요.
수업시간에 써서 겨우겨우 냈다는... 건 비밀입니닷. 후다닥! (아침수업이라서, 감안하고 읽으시라고욤;; 호홋;; 조사방법론 수업의 연습. 숙제. ^^)

국가주의와 교미하는 상업주의에 대하여,

   ―월드컵을 차용한 광고를 중심으로


  TV를 보다 문득 놀란다. 언제부턴가 이동통신사들은 ‘우리는 대한민국입니다’ 혹은 ‘우리는 붉은 악마입니다’라고 외치고, 갓 태어난 아이에게조차 ‘붉은 악마’의 탄생이라고 호명한다. 국가주의와 교묘히 결합한 거대 자본의 이윤추구는 미디어를 통해 일파만파 전파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광고는 시대의 얼굴이며, 미디어를 접하는 다수 대중의 호감과 감흥을 필요로 한다. 그러한 점에서 애국심 마케팅을 벌이는 거대 자본들에 대해서 더욱 속속들이 파헤칠 필요가 있다. 가슴 뭉클한 ‘우리’의 의식, 애국주의는 교묘히 상업주의와 교미하고 있으며 여기서 태어날 자식은 그 부모의 합보다 훨씬 클 것이다.
  박정희는 탱크를 앞세운 독재자였으나, 이제는 자본이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애국심으로 온 나라의 국민들을 ‘가족’으로 만든다. ‘우리’가 공고히 될 수록 배제의 정치학은 생명력을 갖는다. 그 생명력은 우리와 차별 짓는 ‘타자’를 필요로 한다. 그 타자는 희생양으로 몰리고,  희생양의 피를 빨며 생명력은 성장해나간다. 빌헬름 라이히는 『파시즘의 대중심리』에서
“'나는 국가이며, 당국이며, 회사이며, 민족이다'라는 공식을 표현할 수 있는 당국 ․ 회사 ․ 국가 ․ 민족 등과의 이러한 동일시는 심리적 현실을 표현하는 것으로 물리적 힘이 된 이데올로기의 가장 좋은 예이다." 라고 히틀러와 독일사회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를 우리가 쉽게 넘길 수 있을까? 국가폭력에 숨죽였던 그 때보다 더욱 위험한 파시즘의 일상성이 우리에게서 발현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하지는 않을까?
  이러한 연유에서 영상시대인 지금에 가장 파급력이 높은 공중파의 광고를 분석해야할 이유가 응당 있으며, 점점 붉게 물드는 화면에의 이유도 고찰해 봐야 함을 느낀다. 얼마나 많은 거대 자본이, 미디어와 국민들 가슴 속의 애국심을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의 부를 축적하고 있는가. 왜 그런 광고들에 우린 가슴 뭉클해 하는가.

  때문에 나는 이러한 연계관계를 파악하기 위하여, 공중파 방송의 프라임 타임의 광고들을 관찰하기로 마음먹었다. 보통 프라임 타임은 8시부터 11시라고 여겨지는데, 이 중에서 8시부터 10시 2시간을 관찰하며, 혹시 모를 오류를 피하기 위해 2개의 방송사(한국방송공사와 문화방송)를 관찰했다.
  6월 9일부터 시작하는 2006 FIFA 독일 월드컵에 가까워짐에 따라 편성되는 광고 중 붉은 악마 혹은 ‘대한민국’이나 ‘코리아’, 혹은 월드컵 축구 스타들이 나오는 광고의 수를 살펴볼 것이다. 워낙엔 대한민국과 코리아를 외치는 광고를 다른 범주에 넣으려 하였으나, 그 호명은 붉은 악마 혹은 월드컵 축구 스타와 함께 사용되어 경계가 희미해서 범주에서 삭제하였다.

  

  이를 관찰한 결과로 3월 23일 목요일 문화방송의 모니터링의 결과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의 총 광고 54개 중 월드컵 관련 광고는 11개로 전체광고의 약 20%의 비중을 차지했다. 붉은 악마를 사용한 광고는 11개 중 7개, 스포츠 스타를 이용한 광고는 4개였다.
  3월 24일 금요일 한국방송공사의 관찰 결과는 총 광고 49개 중 8개가 월드컵과 관련되어 있고, 이는 전체광고의 약 16%를 차지한다. 붉은 악마를 사용한 광고는 5개, 스포츠 스타를 사용한 광고는 3개로 나타났다.


  너무 적은 시간을 관찰하여 광고 하나의 수가 많은 퍼센트를 좌우하긴 하지만, 광고의 개수를 대비해 보아도 결코 적은 수는 아닌 듯 하다. 이 둘의 평균값을 구하면 18% 정도가 되는데, 이는 결코 적은 비율이 아니다. 이렇게 많은 광고가 쓰이고 있다는 것은 이 광고가 얼마나 일반대중에게 속된 말로 먹히냐,를 설명한다.

  또한 축구스타나 붉은 악마와 ‘대한민국’이 함께 사용되어 진다는 것에의 의미는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축구스타로서의 대표성을 띄고, 최고의 브랜드는 대한민국이라 말하는 것은 일반 대중을 스타와 동일시하여 그들의 선전을 애국심으로 변질시키고, 그와 같은 내용을 대중에게도 자연스럽게 인식시키는 것이다. 붉은 악마입니다, 는 또 어떠한가. 그 붉은 집단 중 하나로 인정되면서 공고한 ‘우리’ 공동체 안에서의 집단의 소속감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월드컵이라는 스포츠 축제를 매개로 상업주의와 국가주의는 미디어에서 만나고, 우린 부지불식간에 그 광고를 받아들인다. 짧지만 강렬한 영상과 메시지는 반복하여 나타남으로 ‘우리’는 대한민국이라고, ‘우리’는 붉은 악마라고, ‘대한민국’은 최고의 브랜드라고 정체성을 부여한다. 우리가 아닌 타인에 대한 굉장히 배타적인 카피이며, ‘다시 해낼 수 있다’는 격렬한 선동은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붉은 악마’가 되는 일임을 각인시키고 있다.

  광고들끼리도 매커니즘이 있는지, 월드컵 응원법을 소개(세뇌)하고, 병뚜껑이나 콘껍질 아래 ‘진정한 우리’가 될 수 있는 독일행 티켓을 집어넣고, 국가화된 월드컵 축구 스타를 보며 동일시 하여 자긍심을 갖게 한다. 우리는 응원법을, 붉은 악마를, 애국심을, 대한민국을 소비하며 궁극적으로 상품을 소비한다. 거대 자본은 ‘우리’를 부추기고 교묘히 우리 안에 편입하면서 자신의 몸뚱이를 불리고 있다.


  광고효과가 극대화 되는 시간대에 월드컵 관련 광고들이 집중하는 지를 고찰하면서, 거대 상업자본이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를 향상시키며 어떻게 저항 없이 국민안의 국가주의,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며 그것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가가 명확해졌다. 또한 이로써 우리가 정말로 ‘우리안의 파시즘’(임지현 교수의 동명의 저작엔 완전한 동의를 할 수 없다)을 경계해야 할 때는 국가폭력 밑에 스러진 희생양을 딛고 폭력을 앞세워 권력을 휘두르던 그 암흑의 시대의 파시즘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일상의 파시즘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데에는 보편적인 미디어인 텔레비전을 통한 영상이 있으며, 이가 이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지는 새삼스레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광고를 통하여 이 시대의 상업주의와 국가주의를 고찰하며, 애국심 마케팅의 유행이 우리 안의 어떤 감성을 자극하기에 이처럼 번지고 있는가를 생각해본다. 소비가 미덕인 시대, 소비함으로써 존재를 확립하는 이 시대에 그 주체는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진 허상의 주체는 아닌지 반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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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나침반 2006-06-27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그렇군요. :) 진즉 말씀하시지. (그래봤자 도움도 안됐겠지만. ^^)

Mephistopheles 2006-06-27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랜저 광고의 그남자 사실은 그차 운전기사로 밝혀져 파문...
장XX가 나온 그 CF 결국 그 옛남자와 바람피다 현장 발각......
어쩌면 이것이 그 광고의 진실일수도 있습니다...

Apple 2006-06-27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치심 조장이라고나 할까요.-_-;
저는 그런 광고를 보고 그냥 지나치곤 하는데, 아무래도 아줌마들은 속물근성이 젊은 사람들보다 더 있는 편이니까, 그걸 보면서 자기신세를 한탄하기도 하더군요.
대표적인 사람이 우리엄마.-_-;
세상에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생활의 냄새가 없다"->에 동감합니다.
특히 장서희가 애혼자 집에 내버려두고, TV로 자장가 불러주는 광고는 비인간적이기도 하고, 무서워요.

행복나침반 2006-06-28 0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메피스토님. 재미난 분이시군요. ^^ 그런 상상력이라닛~
첨에 그랜져 광고보고 게거품 물었었답니다. 저거 뭐야~ ^^

따우님, 기말리포트랑 텀페이퍼랑 혼용해서 쓰는 분도 있고 따로 쓰는 분도 있고 그런 거 같던데요? ^^ 대부분 논문형식으로 리포트보다 쫌 길게 A4 3,40 페이지 정도 쓰는 걸 텀페이퍼라 불르는 것 같은데. 맞나욤;; 하하하;;

애플님, 속물적 근성을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하는 광고를 보면 정말 사람 천박하게 만들려는 것 같아요. 쳇~ 아줌마들이 속물건성이 있다기보단, 아무래도 쪼개쓰고 나눠쓰고 일해도 많이 받지 못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
맞아요, 저번에 애가 무서워~ 하니깐, 장서희가 엄마가 재워줄께 랬나? 그것도 참 섬뜩했지요. 삼성광고 중에 PC를 통해 엄마를 보고야 갓난아기가 울음을 그쳤던가? 그거랑 같이요. 불쌍한 아가들. (아부지들은 다 어디간게야!; ^^)

balmas 2006-06-28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재미있습니다. ^^a

씩씩하니 2006-06-2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요즘 특히 아파트 광고보면 드레스나 입구 맨날 차 타구 쇼핑이나 다녀야 잘사는건가,싶은 생각이 들어요..
밥 지어서 알콩달콩 사는 모습은 몽땅 사라지고 있지도 않은 숲 속에, 냇물에...기가 막히죠,,뭐..

행복나침반 2006-06-28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
씩씩하니님, 실제 아파트는 그렇지도 않음서.. 흐흐, 배신감 들지요. 글고보니 요즘 아파트에는 가족의 모습이 아니라 누구 한 사람만 등장하네요? 아파트가 원룸인가.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