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노아의 재발견
인터넷 검색의 묘미 중 하나는 자기 닉네임 혹은 자기 이름을 검색기에 집어넣고 돌려보는 일이다.
같은 맥락에서 책 중에 가장 만들기 힘든 책은 인명록 혹은 졸업앨범인데, 그 까닭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름 석자라는 것이 모르면 절대로 수정할 수 없기 때문인데,
예를 들어 '김경호'를 '김경효'로 적어두었다고 해도 그 사람을 알지 않는 한 고칠 수가 없다.
문장이라면 읽다가 뭔가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름은 그렇지도 않다.
그 어려움 두 번째는 사람들이 자기 이름은 거의 반드시 찾아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틀리긴 쉬운데, 노려보는 눈초리는 여간 무서운 것이 아닌데다 틀리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어쨌거나 사물의 이름을 기억하고, 되새김질 하는 것이 사물의 본질로 들어가는 키워드라고 했을 때
누군가의 친숙한 이름, 혹은 그간 몰랐던 상대의 매력을 발견하는 일도 어쩌면 그 이름을 낯설게,
낯선 장소에서, 낯선 방식으로 발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여간 그런 인터넷 검색의 묘미를 아직까지 즐겨보지 않은 분들이라면...
이제라도 자신이 즐겨 사용하는 닉네임이나 이메일계정으로 검색해보시라.
특히 구글 검색 기능을 활용해보시면 대체로 둘 중 하나다.
내가 이렇게 많은 곳에 노출되어 있다니 하는 놀라움과 두려움을 확인하게 되거나
아니면 뜻밖에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된다.
엊그제 할머니 제사가 있었다.
문득 할머니 생각이 나서 "할머니와 소년"이란 제목을 넣고 구글에서 검색했더니
뜻밖에 영화 "사토라레" 이야기가 나왔다. "사토라레" 이야기는 예전에 양방언의 음반 리뷰를 할 때
나 역시 한 번 이야기했던 적이 있는 영화였다. 그 리뷰는 이렇게 시작한다.
초등학교 때 읽었던 책 중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안경과 자신의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단추를 갖게 된 주인공.
안경을 끼고서 사람들을 만나니, 그들의 속마음이 너무 잘 보여서 주인공은 많은 실망을 겪게 된다.
마음과 다른 말들로 치장하는 사람들에 지친 주인공은,
이제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단추를 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친다.
나를 포함해서 리뷰를 쓰다보면...
이것이 리뷰인지 논술문인지 알 수 없게 글을 쓰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이 사람의 리뷰는 그와 같이 본말이 전도되지 않은 가운데서 읽는 맛이 나는 소담한 리뷰였다.
그래서 누구냐? 이렇게 맛깔나는 리뷰를 쓰는 자가?
하고 살펴보니 마노아님이었다.
사실 알라딘에서 영화 리뷰나 음반 리뷰는 들인 공에 비해 지나치게 찬 밥이다.
이 분야에 대해 한 칼 하는 자가 워낙 많은 탓도 있지만 알라딘이 기본적으로 도서 리뷰 중심이라
그렇기도 하다. 그래서 일부러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보기 참 어려운데...
예전에 드팀전님의 서재에 오르는 리뷰들을 보면서 '정말 글 잘 쓴다'고 감탄한 적이 있었는데...
물론 드팀전과는 다른 케이스이긴 하지만, 마노아님의 영화 리뷰들
(아직 다른 리뷰들을 읽어보진 못했으므로)은 별점이 너무 후하다는 것을 제외하곤
부담없이 읽어가는 동안 영화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하고,
글쓴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만드는, 소박하며 무엇보다 즐거운, 잘 쓴 리뷰였다.
7번째의 사토라레로 발견된 사토미 켄이치가 있다면...
나에겐 8번째로 발견된 또 하나의 사토라레로 '마노아'가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조곤조곤 속삭이듯 있는 듯 없는 듯 하면서 참 담백한 리뷰였다.
좋은 건 함께 나눠야 한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참 많구나 하는 점을 새삼 느끼면서
올해는 한 사람 한 사람 집중해서 서재의 집중탐구랄까, 밀어두고 읽지 못했던 책을 읽듯 읽어보리라...
그 첫 타자로 3월엔 마노아님을 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