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월드
야즈키 미치코 지음, 최고은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사회적 위치가 뒤바뀐 세상! 성별 권력이라는 게 뭔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 내용을 보다보면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을 거예요. 어쩐지 너무 이상하다고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벤트의 연속이잖아요. 어라? 어라? 어라? 그러다보면 지금 현실에서 여성이 놓여져 있는 위치가 얼마나 취약한지 새삼 느껴지고요.


<미러 월드>는 일본판 <이갈리아의 딸들>입니다. 모든 게 동일한데 여자와 남자의 사회적 위치만 바뀐 판타지 세계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저는 <미러 월드> 속 내용이 더 어려웠어요. 소설이 묘사하는 현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어요. 다만 즉각적으로 확 와닿지가 않고 현실로 한 번 필터링을 하고 나서야 그게 어떤 상황인지 이해할 수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서구(사위와 장인) 갈등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아 이건 고부 갈등에 대한 미러링이구나 하고 이해를 하고 나서야 그 사람들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가 판단되는 거예요. 그냥 서구 갈등~ 처부모~ 뭐 이런 단어만으로는 지금 어떤 상황인지 잠깐 3초 정도 이해가 안 되서 스스로도 신기할 정도였어요. 거울 속 거꾸로 비친 글자를 읽기 어려운 그런 감각이에요.


소설 속 그려지는 거의 대부분이 한국 상황과 일치합니다. 성범죄, 성별 관련해 망언을 일삼는 정치인, 일상에서 만나는 중노년의 무례한 언어적/신체적 폭력, 너무나 고착화된 성별로 인한 능력 무시 등등.. 사실 너무 새삼스러운 얘기라 특별히 충격적이지도 않더라고요. 다만 일본의 이야기이다 보니 한국과는 다른 내용이 있었는데, 외부의 시선으로 볼 때 그게 얼마나 이상해보이는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일본은 결혼을 하면 여자의 성이 바뀌는 국가이다 보니, 소설 속에서는 결혼을 하면 남자의 성이 바뀌는 걸로 나오거든요? 그런데 결혼을 하나 안 하나 여성의 성과 이름 모두 유지되는 나라에서 보면 '저렇게 불편하고 번거로운 짓을 왜 할까?' 싶어요. 아내가 남편의 성을 따라가는 제도를 가진 나라들은 굳이 그 전통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고집하는 모양인데, 모든 차별이 그런 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외부에서 보면 비효율적이고 이상해보이는 짓을 우리는 예전부터 그래왔어~ 하면서 지적하는 쪽을 번거로워 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그게 정말 그렇게 별 게 아니라도 내일이라도 당장 바꾸면 되잖아요? 예를 들어 학교 학급에서 남자를 1번부터 줄 세우고, 여자를 나중 번호로 쭉 세우는데 (요즘은 바뀌었을지도 몰라요 예전엔 그랬습니다) 그걸 바꾸자고 하면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난리라는 식으로 말하는 남자들이 꼭 있었거든요. 남자에게 1번을 먼저 주는 게 그렇게 별 거 아니면 당장 내일부터 여자에게 1번을 줘도 되는 거 아닙니까? 그게 사실은 별 거라는 걸 아니까 그렇게 기를 쓰고 반대했던 거면서, 아닌 척 하기는. 정말 치졸하다니까요.


어떤 식으로 마무리지을까 궁금했는데, 그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거는 듯한 뉘앙스로 끝이 났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현실의 차별이 철폐되지 않았는데, 소설 속에서 어떻게 평등한 세상을 그리며 끝나겠어요ㅠ 하지만 어느 쪽 현실에서도, 싸우는 아이들은 싸우고 바뀔 것은 바뀌겠죠. 거기에 희망을 걸어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