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한 숫자들 - 통계는 어떻게 부자의 편이 되는가
알렉스 코밤 지음, 고현석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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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통계를 얼마든지 조작 가능하다'는 게 상식이 되어버린 세상입니다. 어느 정도 경향이나 사실을 보여줄 수 있지만, 요즘에는 통계가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덥썩덥썩 믿지는 않아요. 그동안 언론에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눈에 띄는 조작을 시도하기도 했고, 통계라는 게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기도 한다는 걸 봐왔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통계는 모두 조작이다! 하고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숫자는 분명 뭔가를 알려주고 있어요. 문제는, 거기서 정말로 진실에 가까운 걸 뽑아내는 데는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불공정한 숫자들>을 집어들었을 때, 이 책이 저에게 그런 교육을 제공해주지 않을까 기대했어요. 책을 읽어가면서 느낀 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제가 원했던 바가 약간 어긋났다는 겁니다. 저자는 지금 '중립적'이랍시고 제시되고 있는 통계가 얼마나 편향적인지, 얼마나 최상위 계층에게 유리하게 판이 돌아가고 있는지, 얼마나 약자에게 불리한지를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서 알려주고 있어요. 제목과 목차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요. 다만 저는 풀어나가는 전개에서 사회과학 교양서에 가까운 내용을 기대했거든요. 보다보니 논문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습니다. 전문적인 용어도 많이 등장하고, 상당히 딱딱해요.


 


 1부에서는 통계가 약자를 어떻게 아예 없는 존재로 치부하는지, 그래서 통계에는 약자가 아예 잡히지 않은 결과만 반영되는지를 다룹니다. 2부에서는 최상층이 교묘하게 불법적인 부와 미묘하게 불법을 빗겨가는 자본을 어떻게 통계에 잡히지 않도록 숨기는지를 다루죠. 완전히 극과 극의 상황이지만 결과는 같습니다. 갑자기 가운데만 뚝 떨어져서 남는 상황이 돼요. 평균부터 시작해서 중앙값이나 최빈값, 이상값 등등 모든 요소가 다 왜곡됩니다. 


 저는 특히 충격을 받았던 게, 미국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인원을 어떻게 조정하는지 하는 거였습니다. 우리나라가 좀 이상할 정도로 전 국민이 행정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다 보니 깜빡 잊고 있었는데.. 미국에서는 장애인은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이 없는 경우가 많대요. 운전면허증 같은 게 없는 경우가 많은 거죠. 우리나라처럼 신분증이 20살만 되면 떡하니 나오는 시스템도 아니고요. 그러다보니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이 있는 사람만 투표가능' 같은 법을 만들면 그 사람들은 대거 배제됩니다. 미국의 원죄인 원주민 차별을 볼까요? 이 사람들은 차별과 배제의 역사를 겪으며 일정한 주거 주소 없이 우체국 사서함이 주소로 되어 있대요. 그런데 주에서 '확실한 주소 없으면 투표권 없음' 하고 법을 내놓으면, 원주민은 그냥 투표를 하지 말라는 소리죠.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권이 없는 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다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또다른 예로 형사사법체계가 인종차별적인 편향이 강하다 보니 '중범죄자들은 투표권 없음' 같은 법을 만들면 유색인종들이 당연히 더 많이 배제되고요. 이런 식으로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들에 의해서 교묘하게 조작되는 숫자는 당연히 통계에도 큰 영향을 발휘합니다.


 대충 그럴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로 약자를 아주 사회에서 '보이지 않게' 만드는 시스템을 명명백백하게 확인하는 건 정말 씁쓸한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2부에서 소위 선진국이라는 국가들이 아프리카 같은 지역을 어떻게 벗겨먹는지 보면 더 그래요. 부패인식지수 같은 숫자를 보면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지역이지만, 정작 그 지수를 살펴보면 가장 덜 부패했다고 하는 '깨끗한' 나라들의 절반 이상이 이 부패한 지역을 조세피난처로 삼아서 자기 부를 빼돌리는 데 쓰고 있죠. 사실 탈세와 횡령과 부패 하면 당연히 스위스 은행이 손꼽히는 게 맞지 않겠어요? 하지만 숫자와 통계는 은근슬쩍 스위스를 집계에서 뻬버리는 식입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예요.

 



 문제를 인식했으니 해결을 해야겠죠? 책에서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당사자에게 질문을 하여 통계에 적극 반영함으로써 불공정한 숫자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가장 최우선적으로는 우리가 가진 데이터가 불완전하고 치우쳐져 있음을 인식하는 단계가 꼭 필요합니다. 그 후에 어떤 집단이 소외되었는지, 그 집단을 통계에 포함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고민하자고 말해요. 통계를 집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 집계자를 감시하기 위한 시스템으로 불공정 자체를 보고하는 구조를 만들자고 주장합니다. 


 개인이 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이야기다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개인이 하나의 미디어인 시대라면, 각각의 개인이 노력하면 거대한 톱니바퀴를 돌리는 게 훨씬 더 쉬워질 것 같기도 해요. 특히 통계가 발표되었을 때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것은 개인도 가능하니까요. 결국 여론을 만드는 것도 개개인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언론이나 학회의 자료를 한 번 더 걸러서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요즘 계속 이렇게 불평등/불공정에 대한 책을 찾아 읽고 있는데, 갈수록 우리 사회가 점점 더 계급화되어 가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심해지네요.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아지는 밤입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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