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얼굴은 바뀌고 있다 - 세계적인 법정신의학자가 밝혀낸 악의 근원
라인하르트 할러 지음, 신혜원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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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의 얼굴은 바뀌고 있다>는 범죄자를 분석하면서 '악(惡)'의 근원을 탐구해보려는 시도가 담긴 책입니다. 그런데 시작부터가 당혹스러웠어요. 사실 누구도 '악(惡)'이라는 걸 명확하게 정의하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다들 막연하게 혹은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뜻이 있기는 한데, 학술적으로 딱 들어맞는 정의가 아직 세워지지 않았나봐요. 이런 상황에서 정신과 의사인 테오 R.파이크가 했다는 표현이 눈에 띕니다. "악은 그 지붕 아래 나쁜 모든 것이 모여 있는 기이한 구조물이다." 


 다양한 사례를 끌어오는데, 개인적으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범죄자보다 그렇지 않은 범죄자 쪽이 더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운 사례도 있었지만요. 물론 피해자 입장에서는 격분에 의해 순간적으로 살해가 되었든 아주 치밀한 계획에 의해 학살을 당했든 똑같이 '죽음'과 '고통' 그리고 '공포'라는 피해를 입었죠. 하지만 이게 일회성인지 아니면 또다시 되풀이될 문제인지는 범죄를 판단하는 데 중요하지 않겠어요? 다른 사람을 고문하고 죽이고는 태연히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다시 그런 악행을 할 확률이 높겠죠.


 저는 '세계적인 법정신의학자가 밝혀낸 악의 근원!' 같은 문구를 보면서 이 책이 정답을 찾아줄 거라고 기대했어요.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습니다. 정작 이 책의 내용은 아직도 우리는 악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다는 거예요. 다만 일반적인 바람이나 편견과는 달리, 우리 모두의 안에도 똑같이 악의 씨앗이 심어져 있으며 우리는 그것이 발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있는 힘껏 '악이 활개칠 수 있는 경향'에 반대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자꾸 고통스러운 상황에 노출되다 보면,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아예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방향으로 변한다고 해요. 어린 시절 학대를 받으면 공감능력이 떨어질 확률이 높고 그러다보면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타인에게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어른으로 자랄 확률이 높다는 거죠. 그러니 우리는 그런 고통스러운 상황을 최대한 줄여서 그런 환경이 만들어지는 걸 막아야 한다는 거예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범죄자나 전쟁 중에 벌어지는 홀로코스트나 학살 같은 건 딱지를 붙이기 쉬운 사례들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어려운 건,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고 사회생활도 곧잘 하며 중상층 이상의 환경에서 교육을 잘 받고 자란, 가정환경도 괜찮은 극악 범죄자들이었습니다. 이런 법정신의학자도 그럴 만한 이유를 찾지 못한 범죄자들. 이 돌연변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저는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갈피가 잡히지 않아요. 증오와 파괴의 충동이 인간의 본성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괜찮은 환경에서 갑자기 발현되는 극단적인 악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요? 우리가 황금률로 서로를 대하고, 사회구성원 전반이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는 사회를 만든다고 해서, 이 돌연변이들에게도 효과가 있을지.. 저는 확신이 서지 않아요.. 물론 보통 사람들이 서로에게 행하는 악은 당연히 줄어들 거라고 생각하지만요. 

 정답을 찾기 위해 책을 집어든다면 살짝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양한 악의 사례와 그것을 분석하는 정신의학의 관점이 보고 싶다면 꽤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거예요!


+) 중간에 아예 내용 자체가 겹쳐지는 구간이 있습니다. 202~204 페이지의 내용이 209~211 페이지에 그대로 복붙해서 나오고, 208페이지의 내용이 212~213페이지에 반복됩니다. 심지어 '갖기 못한다' 하는 오타도 똑같아요;;  확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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