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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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 박물관>의 인물들은 이름이 없습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모든 인물들의 이름을 삭제해버렸어요. 아마추어 야구의 열기나 마을축제, 가족에게 보내는 부적의 의미가 담긴 선물 등을 통해 전체적으로 일본의 문화가 베이스로 깔려 있는 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때로는 국가가 특정되지 않은 가상의 어느 마을 이야기라고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인물을 지칭해야 할 때는 '의뢰인'이나 '소녀', '정원사'나 '형수' 혹은 '79세 여성' 같은 단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단 한 번도 누군가의 이름이 나오지 않아서 그 지점이 재밌었어요. 물론 한국이 아닌 건 확실합니다. 이 소설 어디에도 한국의 시골 풍경 같은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아요ㅋㅋㅋ


 중간까지만 해도, 이 소설이 미스터리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잠깐 뜬금없이 폭파사건이나 살인사건이 등장했지만, 딱히 서술트릭으로 주인공을 옹호하려는 기미도 보이질 않았거든요. 주인공이 범인일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그 사건들은 주변부로 밀려나고, 중심에는 '박물관'이라는 공간에 대한 주인공과 의뢰인 노파의 미학이 자리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결말이 그렇게.. 그로테스크하게 날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침묵 박물관' 자체가 어딘가 묘하게 현실과 어긋나있는 곳이라 처음부터 어쩐지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는데도 말이죠.


 저는 박물관에 대해서 잘 모르고 관심도 없었지만, 소설을 읽다보니 '세계의 척도'라는 표현 덕분에 왠지 근사하게 느껴졌어요. 비록 세계 전체를 담을 수는 없지만 이 세계의 축소판으로서 분명하게 존재하는.. 언제까지나 확장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공간!! 하지만 어딘가에 정말로 유물 박물관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곳에 가보고 싶지는 않아요. 그건 또 다른 문제니까요. 누군가가 살아있었다는 분명한 표식. 그게 왜 필요한지 아직도 잘 이해하지는 못하겠어요. 모든 사람들은 그런 유품이 없이도 살아있고 죽어가고 또 잊혀지기 마련이잖아요. 잊혀지기 않기 위해 유물이 필요하다면, 누구에게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죠? 그 박물관을 구경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정작 죽은 그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을 텐데요..


 살인사건이 엮이면서 좀 더 기묘하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형성됐지만, 미스터리가 엮이면서 뭔가 주인공의 심리에 공감이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에요. 침묵 박물관을 향한 애정과는 별개로 피해자에 대한 태도가 너무 극단주의 종교인 같아서 좀 아쉬웠습니다. 모든 사람은 죽으니까~ 우리는 그 죽음을 평생 박제해서 오히려 그 생에 대해 이야기할 거라고~ 하는 태도가 굉장히 그로테스크하긴 했어요ㅋㅋㅋ 다만 저는 가해자보다는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은 인간이라 그런지 거기에 동조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읽으면서 만약 내가 죽게 된다면, 내 유품은 뭐가 좋을까? 하고 생각해봤는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어요. 제 삶이 배여있는, 누가 봐도 딱 나를 표현했다고 느낄만한, 그런 물건이 도대체 뭐가 있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더라고요. 물건으로 방이 터져 나갈 지경인데 정작 하나를 고를 수 없다니!  타인의 눈으로 봤을 때 제가 딱 한 가지 물건으로 압축될 수 있다면, 그게 뭘까 싶어서 궁금해집니다. 누가 봐도 이거다! 싶은 게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죠. 각자 자신의 유품으로 뭘 남기게 될지 생각해보심 좋을 것 같아요. 은근 어려운 질문이라니까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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