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거울나라의 앨리스 (양장) - 1871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얼 그림, 손인혜 옮김 / 더스토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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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대중문화에 정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 작품이잖아요! 책을 읽지 않으신 분들도 영화나 드라마, 만화, 2차 창작, 심지어는 CF에서까지도 온갖 분야에서 다양하게 등장하는 이미지는 아마 보셨을 거예요. 시계를 든 토끼나 티타임을 가지는 모자장수, 트럼프 카드의 하트 여왕 같은 강렬하고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온갖 대중문화에서 '너네 이거 다 알지?' 하는 식으로 오마주되곤 하니까요.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바로 그 후속작입니다. 앨리스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전작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들이 등장해서 연관성은 거의 없어요.


 <거울 나라의 앨리스> 같은 경우, 앨리스가 말 그대로 거울로 빨려들어가면서 시작되는 모험입니다. 이상한 나라에 다녀온 뒤 반년쯤 지난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 거울 속 세계는 체스와 비슷한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앨리스는 처음에는 병졸로 시작해서 제일 마지막 칸에 다다르게 되면 여왕으로 변신합니다. 세계관 전체가 체스에 기반을 둔 만큼, 체스를 알고 있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가장 계급이 낮은 폰이 끝에 다다르면 퀸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체스 룰이니까요. 앨리스는 체스 판처럼 한 칸 한 칸 전진하면서 이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온갖 다양한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붉은 여왕과 하얀 여왕, 붉은 기사와 하얀 기사, 트위들덤과 트위들디, 험프티 덤프티, 사자와 유니콘 등인데 전자는 체스에서 후자는 유명한 동요에서 따온 캐릭터에요. 참고로 초판본 표지의 앞면이 붉은 여왕, 뒷면이 하얀 여왕에요! 


 언어유희가 워낙 많아서, 원어민이 아니면 느끼지 못하는 매력이 꽤 많은 작품입니다. 작가인 루이스 캐럴이 워낙에 언어의 리듬이나 라임, 말장난을 중요시하는데 번역이 되다보면 아무래도 직관적으로 이해가 딱 되지는 않아요. '감사합니다'를 '감사합디다'로 바꿔 말한다면 아주 작은 차이지만 뉘앙스가 확 달라지잖아요? 그런데 이걸 번역으로 전달하려고 하면 여러모로 골치가 아프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루이스 캐럴 작품에는 주석이 굉장히 많은 편이에요. 만약 원어를 모른다면 이게 왜 농담인지, 이게 왜 재치있는지, 이게 어떤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전혀 알 수가 없어지거든요. 책 속에 등장하는 '재버워키'라는 시는 영미권에서는 거의 전설로 인정받는 최고의 넌센스 시라고 하는데, 번역본으로 봤을 때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몰라서 애를 먹었어요. 이런 식이거든요↓




 물론 나중에 가면 앨리스가 거울에 비쳐서 제대로 된 문장이 나오긴 하는데, 그것도 역시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ㅋㅋㅋ 제가 영미권 독자였다면 이 시에 담긴 말장난을 훨씬 더 빨리 캐치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ㅠ 주인공인 앨리스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모른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있는다는 표현이 있는 걸 보면 시 자체가 의미없는 하나의 농담 같기도 해요!


 상징적인 내용이 많아서 그냥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읽어도 재밌지만 어른을 위한 동화 같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붉은 여왕은 뭐든지 서둘러야 한다면서 빨리빨리 하는 모습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그런 모습이거든요. 이 작품 덕에 [붉은 여왕 효과]라는 용어도 생겼다고 해요. 죽을 둥 살 둥 숨이 턱까지 차게 달려야 겨우 현상유지가 가능하고, 그렇지 못하면 사라진다는 건데.. 정말 섬뜩하고 슬픈 현실을 나타내는 말이죠ㅠ <앨리스> 작품 안에서는 뭘 위해 그렇게 달리는지도 모른 채 그냥 죽어라 달리는 모습을 풍자하기 위해 등장한 것 같지만요.


 "말도 안 돼. 계속 이 나무 아래에 있었던 거야! 모든 게 아까와 똑같아요!"

 "당연하지. 그럼 어떨 거라고 생각했느냐?"
 여왕이 말했다.

 "제가 사는 곳에서는 오랫동안 빨리 달리고 나면 보통 다른 곳에 도착해요."

 앨리스는 여전히 약간 헐떡이면서 말했다.

 "정말 느린 나라구나! 여기서는 같은 장소에 있으려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뛰어야만 하지. 만약 다른 곳에 가고 싶으면 적어도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하고!" - p.44


 환상문학이 대개 그렇듯 환상 속에 깃든 현실을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때로는 과장되게 때로는 엉뚱하게 나타나서 읽는 재미가 있어요! 이런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 이런 글재주를 가지고 있다니, 그러면서도 현실은 수학자이자 교수였다니, 정말 세상은 넓고 능력자는 많은 것 같아요. 상상력이 메말라버린 독자에겐 그저 놀랍고 경이로울 뿐입니다.. 우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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